일본 들춰보기 - 이방인이 본 일본의 오늘 나남신서 1193
황현탁 지음 / 나남출판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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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행 직전 일본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가자는 심정에서 책방에서 아무런 사전 정보없이 대충 훑어보고 이 책을 사게 되었다. 주일대사 홍보공사 출신의 저자는 일본에서 수년간 생활한 것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쓴 듯하다.


저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이 책은 저자가 이곳 저곳에서 읽고 스크랩해둔 것을 주제별, 이슈별로 나누어 놓고 짤막하게 저자의 소감을 덧붙인 정도이지 사실 책으로 내놓을 만큼의 완결성은 없는 것 같다. 대부분의 글들이 일본에서의 설문조사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한 통계자료의 나열과 그와 관련한 저자의 짧은 코멘트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자 고유의 생각을 쓴 부분은 거의 없고 있더라도 상투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아내의 남편에 대한 바램(p87), 조크로 알아보는 일본(p107) 등 상당수의 글들은 저자가 읽은 책에서 해당부분을 통째로 옮겨왔는데 인용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저자 고유의 생각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책의 제목인 ‘일본 들춰보기’나 부제인 ‘이방인이 본 일본의 오늘’과는 좀 거리가 먼, 저자의 취향대로 일본에서 모은 신문스크랩모음집 정도의 느낌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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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사 4 - 386세대에서 한미FTA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4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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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한홍구는 끊임없이 과거사, 군대문제 등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해왔다. 대한민국사 1,2,3에 이어 나온 4권은 과거 독재 정권시절 언론, 기업인에 대하여 행해진 악랄한 탄압, 언론과 기업의 강취에서부터 노근리학살, 한미 FTA, 386세대까지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약간은 두서없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저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한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서문에서 밝혔듯이 미워해야 마땅할 자들에 대한 정당한 공분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그들의 만행을 까발리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분노 뒤의 상황을 걱정하면서 희망의 역사를 이야기 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책의 방점은 앞부분에 찍혀 있지 않나 싶다.


미워해야 마땅할, 아니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고 사죄하며 부끄러움에 얼굴도 제대로 들고 다니지 못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사회적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고 자신들을 벌주어야 할 세력을 탄압하고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감추어온 우리 역사의 아이러니를 저자는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올해로 소위 수평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지도 10년째가 되었다.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 주류를 이루었던 세력이 정권에서 물러나고 소위 민주화 세력이 정권을 잡은 지 이미 10년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 자신들의 죄과를 반성하고 그들을 한번 정당하게 미워해보는 과거사 청산은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응당 죄를 짓고 부끄러워 해야 할 자들이 오히려 목청을 높여 역공세를 펼치고,

공과에 대한 일률적 판단은 어렵다 할지라도 수많은 탄압과 폭정에 대한 명백한 책임이 있는 독재자, 의 딸이 독재자의 후광만을 등에 업고 독재자의 그림자는 짊어지지 않은 채 대권에 도전하고 있을 정도로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의 기득권은 아직도 강력하고 사회적으로도 그들은 충분히 미움 받고 있지 않다.


물론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과 연계된 세력은 무조건 악이고 민주화 세력은 무조건 선이라는 도식적인 이분법은 타당하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어디까지가 미워할만한 놈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하고(단적인 예로 독재자의 잘못을 독재자의 딸의 잘못으로 바로 연결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적으로 기여한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소위 민주화 세력도 잘못도 많고 그들 자체가 이미 기득권이 된 그들이 과거의 잣대로만 언제까지나 순수성과 민주성을 담보한다고 볼 수도 없다. 그리고 과거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현재와 앞으로의 우리사회가 어떻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가 더욱 중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인정하더라도 잘못한 자들이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큰 잘못을 하여 사회적으로 미워해야 마땅할 놈들이 오히려 떵떵거리며 사는 사회는 기본적인 규범이나 틀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이다. 최소한 사회적 잘못에 대해서는 벌을 주고, 벌을 줄 수 없다 하더라도 소위 정당한 사회적 공분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과거가 미래보다 더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대한 진지한 반성 없이는 밝은 미래가 있을 수 없다.


저자는 일부 이슈에서는 주관적이고 때로는 편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 무비판이라든지 김대중 정부에 대한 특별한 이유 없는 높은 평가(북한과의 6.15.선언 때문인 것 같은데 그 자체의 역사적 가치나 평가는 제쳐두고서라도 그것만으로 김대중 정부의 사회, 경제정책의 실패에 대한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본다.), 같은 운동권(?) 출신으로서의 386에 대한 편애(마지못해  386이나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은 하는데 비판의 알맹이가 없고 결국 문제의 원인을 과거 독재정권에 돌리는 듯한 느낌이다) 등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류사회에 대한 삐딱한 시선은 여전히 가치 있다고 본다. 저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고, 저자 자신이 민주화세력으로서 언제나 도덕적, 이념적 우월성을 가진다는 듯한 태도가 조금 거슬릴 때도 있지만, 아직은 우리사회가 한홍구와 같은 삐딱함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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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 산책 - 정운영의 마지막 강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7
정운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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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본주의와 20세기의 역사,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고 정운영 선생의 글 몇 개를 모은 것이다.


첫째 장인 20세기 경제산책에서는 제국주의에서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 및 사회주의와의 냉전을 거쳐 세계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로 이어지는 자본주의의 흐름을 분석하고 새삼 인간의 탈을 주문할 만큼 막가는 세기말 자본주의의 탈선(p52)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세계화는 한마디로 자본의 효율성에 맞춘 경제 질서의 폭력적 개편을 가리킨다. 자본에 이익이면 사회에 이익이 된다는 논리를 바탕으로 자본의 활동에 완벽한 자유를 부여하려는 시대의 추세이다. (p49)


두 번째, 세 번째 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세계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헤일브로너의 ‘21세기 자본주의’라는 책에 대한 독후감으로 세기말 자본주의인 세계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데 헤일 브로너는 각각 경제활동에 대한 차별적인 이론을 가졌던 저명한 경제학자들 - 애덤스미스, 칼 마르크스, 케인즈, 그리고 슘페터 -을 분석의 틀 삼아 자본주의의 미래를 전망한다. 이 경제의 대가들은 대체로 자본주의의 미래를 어둡게 전망했는데 문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는 이들도 제대로 예상치 못한 변수라는 것이다.


세계화가 그 신봉자들의 주장대로 무역 장벽을 철폐하여 교역 증대의 건지와 국물을 같이 나누려는 노력이라면 별로 반대하고 싶지 않다...그러나 세계화는 강대국 이기주의를 은폐하고 변호하며, 그것을 강요하는 조류라는 점에서 분명히 ‘편파적으로’ 작동한다.(p72)


세계화의 실체가 이러할 진대 저자의 지적처럼 ‘세계화의 정체를 진지하게 파헤치려는 노력조차 없이 세계화만이 살길이라고 몽유병 환자처럼 외치는 오늘의 세태(p81)'가 정말 걱정스럽다.


세계화와 관련한 논의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둘 있었는데 그 중 하나는 ‘세계화와 지역화’ 였다. 세계화의 문어적 의미와는 역설적이게도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지역화가 더욱 활발해진다. 그리고 더욱 큰 문제는 이러한 지역화가 차별적 효과를 지닌다는 것이다. 즉 강대국은 세계화를 공격의 무기로 이용하고, 지역화를 방어의 완충장치로 활용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은 세계화를 통해 세계경제에의 미숙한 편입이 강요되고, 강대국의 지역화 때문에 선진 시장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차단된다.(p121) 자유무역협정이라는 FTA도 결국은 FTA를 맺지 않은 국가에 대하여는 차별적으로 불리하게 대하고 FTA를 맺은 국가들간의 지역화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결코 자유무역적이지 않다는 역설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할 수 있겠다.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국가의 임무를 국제기구 등에 위임함으로써 국가 고유의 기능이 무장해제되는 ‘국가의 국제화’ 였는데(p85), 최근에 정부의 개입이 사회적으로 해악을 초래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을 명시한 전경련 교과서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정운영 선생의 식견에 감탄하면서도 동시에 씁슬한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세계화 시대의 국가는 자본과 시민에게 일종의 기피인물로 선전된다. 시장 자율은 선이고, 정부 개입은 악이라는 따위의 그럴듯한 소문이 자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유포되기도 한다.(p125)


매년 수치적인 경제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자본주의 사회. 그 마저도 실물경제와 관계없는 자본거래가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파괴적 힘을 남용하고 있는 지금의 자본주의는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세기말 자본주의든 무엇이든 자본주의가 이러한 것들을 교정하지 못한다면 거시적으로 볼 때 지금 몰아치고 있는 세계화의 광풍이 자본주의의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1980년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에 관한 글은 우리 사회의 형태를 분석하기 위한 이론적 틀로써 당시 우리 사회를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전제한 뒤 논의를 진행하는데 솔직히 말해서 80년대 상황에 대한 무지와 경제학적, 경제사적 배경지식의 부족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앞으로 추가적인 공부가 필요한 부분이다. ;;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에서는 미국의 이해관계를 무시할 수 없는 현 남북관계에 있어서 남한이 취할 수 있는 현실적 수단들을 차분하게 분석하였다. 남북한 화해와 통일은 현상태의 유지를 바라는 미국의 이해관계에 상충된다는 것을 전제한 뒤 결국은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점진적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것이 정운영 선생 말씀의 요지다. 특히 남북한 경제교류 활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깊이 있는 내용의 글이 아닌 컬럼 형식의 글이었지만 신선한 내용도 있었고 막연하게 추상적으로 느껴졌던 남북관계에 대한 생각이 어느정도 구체화되는 느낌이었다.


한반도의 이해는 때로는 대북 공조의 이해와 다를 수 있고, 대미 공조의 이해와도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로 막힌 것을 경제가 뚫도록 하자. 그러나 그 경제가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므로 벽은 여전한 셈이다. 애초에 길이 있어서 사람이 다닌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꾸 다니다 보니 길이 생긴 것 아니겠는가? 이 지혜는 남북 경제의 장래와 미국의 관심이라는 우리의 논의에도 빌릴 만하다. 길이 안 보인다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자꾸 부딪치면서 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한민족의 고단한 운명이기 때문이다.(p254)


부끄러운 말이지만 정운영 선생이 고인이 되신 다음에야 선생을 알게 되었다. 선생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이 아쉽고 선생이 또 너무 빨리 고인이 되신 것이 아쉽다. 고 정운영 선생이 걱정하던 세기말 자본주의가 더욱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같다. 선생이 꿈꾸던 사회에 우리 사회가 우리 시대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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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들
김영현 지음 / 실천문학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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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크지 않은 동네에서 동네 유지인 최문술이 잔인하게 살해당한다. 과도로 가슴을 찔리고 도망가던 그를 범인은 목까지 졸라 살해한다. 외부 침입의 없다는 점에서 최문술을 잘 아는 면식범, 즉 그의 가까운 가족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유력한 용의자가 체포되고 최문술의 어두운 가족사가 하나씩 드러난다...


흡사 추리소설 같은 구성으로 작가는 피해자의 아들인 성연이 사건을 재구성해 가면서 자기 가족의 어두운 과거와 그로 인한 죄악의 씨앗이 한 가정을 파멸로 이끄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이끌어나간다.


예비신부였던 성연은 자기 가족의 숨겨진 죄악을 알게 되고 예기치 않게 더욱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옴으로써 신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성연이 무신론자가 된 것은 아니다.

성연이 ‘나의 하느님...그이는 이 세상과 함께 있는 분이라는 걸 이번 일을 겪으면서 깨달았어요...그이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사랑이야말로 때로는 지옥처럼 고통스럽지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생에 그이가 준 축복이자 선물이었어요.(p295)’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수도원이 아닌 속세에서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거나 수련이 더 필요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관련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을 읽고서 평소 가끔 하던 생각이 또 들었다. 정말로 큰 시련이 나에게 닥쳤을 때, 예컨대 가족의 죽음이나 건강의 상실 또는 불의의 사고 같은 것을 겪었을 때 그것을 신이 주신 시련이고 그것이 결국 신의 은총이자 사랑이라고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신에 대한 믿음을 더욱 공고히 한 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 말이다.


‘지선아 사랑해’를 보면 정말 끔찍한 화상 사고를 당한 지선양은 사고가 있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도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녀의 그런 말이 진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속적 행복과 세속적 행복의 상실로 인한 큰 깨달음...큰 깨달음은 없더라도 세속적으로 행복하게, 그러나 깨달음의 큰 방향은 벗어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좋겠지만 세속적 행복의 상실로 인한 깨달음 이후에 두 개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어떠할 지...참 어려운 문제 같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던지는 물음 ‘나의 생은 과연 가치 있는 그 무엇일까?’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는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네.’라는 말은 간단하지만 참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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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3-08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의 물음에 저도 망설여지네요..지선이처럼 깨달음에 행복을 느낄수 있는 자는 현명하고 지혜롭고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아는 자임에 분명해요.
살면서 저는 그 경지에 언제쯤 도달하려는지..
늘상 욕심때문에 또 무너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외로운 발바닥 2007-03-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그러한 경지에 이르기는 쉽지 않겠지요. 그래도 배꽃님처럼 욕심때문에 또 무너진다는 인식을 하고 노력하시는 것만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
매일 한 발자국씩이라도 그 경지에 가까이 다가가시길...
 
남쪽으로 튀어! 1 오늘의 일본문학 3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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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일본 소설이라고 해봐야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 몇 개와 냉정과 열정사이, 요시모토 바나나 소설 한 두 권 정도 읽은 정도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제껏 읽었던 일본소설들은 읽고 나서도 무언가 허무한 느낌이 들었고 항상 무기력한 듯한 주인공들과도  그다지 동질감을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일본소설이 일본 소설의 극히 한정된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러한 선입견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남쪽으로 튀어를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원인의 절반 정도는 강렬한 표지 디자인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상당한 압박을 주는 표지에 만화책처럼 이쁜 디자인에 반하여 알라딘에서 리뷰를 몇 개 훑어 보고는 평이 상당히 좋은 편이라 충동적으로 책을 사서 읽게 된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12살 짜리 초등학교 6학년생 지로다. 어른인 내가 읽기에 어린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겠거니라고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어른인 작가가 어찌 그리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잘 되살려서 정말로 어린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가는지 놀랍기만 하다.


화자인 지로에게는 골칫덩이인 아버지가 있다. 키가 185센티미터의 기골이 장대한 지로의 아버지 우에하라는 소위 ‘반골기질’이 농후한 문제 어른(?)이다. 과거 공산당의 한 분파인 혁공당에서 과격한 행동대장으로 이름을 날렸던 지로의 아버지는 공무원만 보면 으르렁거리고 국가의 행동 하나하나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학교교육 마저도 국가가 체제에 순응하는 국민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국민연금을 독촉하러 온 직원에게 국민이기를 거부하겠다고 호통을 친다.


표지 디자인의 주인공이기도 한 지로의 아버지는 한 가족으로 같이 살기에는 하루하루가 피곤하겠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일말의 진실이 숨겨져 있다. 때로는 지극히 극단적인 그의 행동에 짜증이 날 법도 하지만 당당하게 국가 권력이나 기업가에 맞서는 그의 행동에서 독자들은 차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지로 아버지의 억지스럽지만 통쾌한 행동을 읽으면서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너무나도 당당하게 국가권력이나 기업가(소시민들이 원망하면서도 감히 현실에서는 맞서기 어려운)와 맞서며 그들을 압도적인 기세와 논리로 제압해 버린다는 것이다. 덩치에서부터 상대가 안되는 기업과 결탁한 정치인을 기로 압도해버린다든지 분파적 대립에 몰각된 채 남을 이용만 하려는 공산당원을 머리 위로 들어 집어던지는 장면은 너무나도 통쾌하다. 중요한 것은 지로 아버지가 그토록 당당할 수 있는 이유다. 억지스럽고 지나치게 자기만의 원칙에 집착하여 구시대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의 원칙에 대하여 말 뿐 아니라 행동으로서도 충실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시민적 삶마저 뒤로 한 채 국가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이기인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남쪽의 외딴 섬으로 튀어 소유관념에 구애받지 않고 공동체적 삶을 살았고 조그만 불의라도 묵인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하며 패배할지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의지는 꺾이지 않기에(자기 의지로 끌려나가지 않겠다는 의미로 땅바닥에 엎드려 여러사람에게 들려 끌려나가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누구를 상대하더라도 떳떳하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것이다.


지로 아버지 우에하라를 보면서, 그리고 남쪽 섬으로 이사한 뒤 아버지에 대한 지로의 감정이 조금씩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우에하라처럼 극단적인 방법을 통하지는 않더라도 나중에 반드시 자식 앞에 떳떳한(특히 말과 행동의 일치가 중요할 것 같다.)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2살짜리 소년의 눈으로 소설은 진행되지만 이 소설에는 정말로 다양한 이야기와 생각할 거리가 담겨져 있다. 도시에서 초등학생으로서 지로가 겪는 다양한 일들을 그린 1권을 읽으면서 학창시절을 떠올려 볼 수 있었고, 남쪽 섬에서의 생활을 그린 2권을 읽으면서는 정말 원시적이고도 소박한 자연 그대로의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유쾌하다. 도서관 같은 곳에서 읽는다면 키득키득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고 애써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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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넷 2007-02-24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미있게 봤어요.^^

치유 2007-02-25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책 읽는 분들은 모두 괜찮다고 하더군요..^^&

외로운 발바닥 2007-02-2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평가가 좋아서 보게 되었지만 정말 재미있고 유익하게 봤답니다.

짱꿀라 2007-02-27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쪽으로 튀어 너무 재미있게 읽은 소설입니다. 역시 오쿠다 히데오의 강력한 힘이 뒷받침 된 작품이었다고 할까요.

외로운 발바닥 2007-02-28 16: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산타님/ 저도 정말 낄낄거리고 또 감동하면서 보았습니다. 청소년이 읽기에도 좋은 책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