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저 잘 살고 있나요? - 충분히 빛나고 있는 당신을 위한 일상 묵상
전대진 지음 / 넥서스CROSS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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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또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명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나님께 묻고 동행해야 한다는 말씀을 수도 없이 들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말씀이 기도가 되는 기도보다는 지복을 구하는 기도가 익숙한데다, 내가 먼저 행동하고 말씀을 끼워맞추는 데 탁월하다보니 영성은 쇠퇴하고, 종교심만 충만해지는 게 당연했다. 


이 책은 조금이나마 이런 갈증을 해소하는 데 일조를 한다.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을 통해 자신을 읽어나가는 방식을, 짧은 글과 묵상을 통해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말씀은 저자 안에서 살아 그를 바꾸어 나가고 변화시키며 때로는 격려한다. 말씀이 흘러들어 자연스럽게 정화시키며 성장시키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응답을 듣게 되고,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게 된다. 


말씀을 곱씹어 나를 비추는 여정 없이, 무언가를 끊임없이 간구하느라 바빴던 신앙 생활에 경각심을 주는 일침이다.

내가 상처받을 것을 각오하고 사랑하니 사랑 받은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된다. 이렇게 영혼을 세우는 방법을 배운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는 잠언 말씀. 딱 맞다.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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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정신 2025-03-2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성경의 창조는 천동설입니다.
지구를 창조하지도 않고, 태양과 별, 달을 창조했다고 합니다

4일차, 태양과 별, 달을 만듦
(지구를 창조하지도 않고,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과 별, 달을 창조했다는 것은, 지구를 우주중심으로 보는, 천동설 창조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미친 천동설 창조를 말하는 유대조상 샘족부족장 야훼를, 십계명3조를 위반하며, 유일신이라며 숫자 ‘하나’로 바꾸고, 이 숫자 ‘하나’에 ‘님’자를 붙여 부름니다.

숫자 ‘하나’가 창조주라는 것은 미친 주장입니다
(천주교에서도 ‘천주님’으로 부르다가, 1980년대부터, 개신교를 본 받아, 숫자 ‘하나’님의 표준말이라며, 숫자 ‘하느’님으로 이름을 바꾸어 부르고 있다. 개신교와 천주교에서는, 십계명3조를 위반하면서, 숫자 ‘하나’를 창조주라 말하고, 숫자 ‘하나’를 숭배하고 있다)

왜? 이름을 바꾸어 부를 까요? 한민족 지존이신 홍익인간 하느님과 착각을 유도하여, ‘사기’를 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런 미친 행위는 민족 정체성을 훼손하는 민족 배반행위일 뿐입니다.
[출처] 홍익인간 하느님, 성경 하나님 예수는 누구인가?|작성자 한민족정신을 되찾자
 
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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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고, 그 거룩함에 놀라 가슴이 데인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진기하고 화려한 볼 것들이 많아지면서, 활자도 덩달아 기교가 더 늘다 보니 읽기에 탐닉하면 할수록 더 허기가 지기 마련이었는데, 선생님의 단정한 문장들은 그 자체가 힘이 있어 가벼이 날리지 않는다. 


일본 땅,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채 해방 후 우리 나라로 넘어왔으나 빈한한 까닭에, 가족들은 또 뿔뿔이 헤어질 수 밖에 없었고, 선생님은 평생을 괴롭힌 결핵 탓에 시골 교회의 종지기로 헌신하신다. 


불행이 상식이던 시대를 살아오시면서 겪은 아픔과 슬픔을, 꾹꾹 눌러 쓴 문장들을 읽고 있으면 소소한 불평과 불만은 감히 입 밖으로 낼 수가 없다. 단순히 선생님이 겪은 아픔이 너무 크니 지금 마주하는 삶의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다는 식의 일차원적인 논리 때문이 아니다. 


열여섯 소년이 이미 2번의 전쟁을 겪을 정도로 격동의 세월을 보내면서 생애 내내 산문으로 써내려간  활자들을 추적하다 보면 우리의 현재 삶의 양식과 행동, 사고 방식이 어떻게 핍절되고  굴곡지게 되었는지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거기에는 모멸감, 힐난 대신 안타까움, 긍휼의 마음이 드리워져 있다. 


그 마음은 꽃들이며 풀들, 벌레며, 나무들,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시선으로 확장되며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바른 삶에 대한 희구, 불행에 대한 긍휼, 하나님을 향한 대담한 사랑은 시로, 동화로, 작은 삽화들로 채워져 마음을 정화시킨다. 


선생님은 산업화, 독재 정치, 통일과 적대 등에 대한 소신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데, 빌뱅이 언덕에서 겪은 삶의 경험, 주변에 대한 관찰 등을 통해 자신만의 사상을 구체화한다. 


소박하지만 정직한 마음, 몸의 연약함을 딛고 영혼의 소성까지 치받는 사고의 힘은, 선생님이 가르치는 기독교인으로 사는 삶의 자세와 태도를 각성시킨다. 나를 넘어서서 우리까지, 인간을 넘어서서 자연 만물까지 확대하는 사유의 너비는, 쉽게 가늠할 수가 없다. 

나와 직접 간접으로 관계해 온 이웃들의 실망과 기쁨. 내가 그들에게 받은 실망만큼 나도 그들에게 실망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내 주위는 항시 조용하다. 아니, 조용한 것 같다. 그러나 소리없이 흐느끼는 영혼들의 울음소리로 내 귓전은 조용하지가 않다. 착각도 환청도 아닌 그 소리 때문에 나는 신경과민에 빠져 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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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스 1 : 하나님의 시공간 -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원리 카이로스 1
고성준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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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배우고 읽으면서, 큰 맥락에서 어떤 도식처럼 큰 틀을 알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던 터에, 지인의 추천으로 <카이로스>를 읽게 되면서 내 오랜 갈망은 일 순간 해소되었다. 수학을 전공하신 목사님은 놀랍게도 수학의 원리를 설명하듯 고린도전서를 바탕으로, 선명하게 하나님의 세계, 영적 원리를 가르치신다. 


자연 세계의 원리를 배우고 익히듯, 영적 세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적용해야 하며,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로운 용어와 명확한 개념을 통해, 진부하고 모호해 보이던 경험을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체험으로 되살려내야 한다는 목사님의 의지는 책 전반에 걸쳐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다. 


먼저 이 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영원한 것과 유한한 것, 본체와 그림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한다. 보이는 세계는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형으로, 믿음의 기도로 실체인 영적인 세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을 덧붙인다. 


한편 인간은 이 두 세계에 낀 존재로 영, 혼, 육을 가진 존재다. 즉 본능을 가진 육적인 존재이며, 지, 정, 의를 갖춘 혼의 존재로 육과 혼은 보이는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 반면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직관, 양심, 말씀, 믿음을 통해서 영적인 세계와 교통할 수 있다. 


하나님은 인간을 영, 혼, 육의 순서로 지배와 통제를 받도록 창조의 질서를 부여했지만,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하면서 이 질서가 붕괴된다. 그러므로, 육적, 혼적, 영적인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건강한 영은, 순종, 평안, 확신, 감사, 충만한 기쁨, 인도하심에 민감, 희생과 섬김, 성령의 열매, 능력을 특징으로 한다. 


이어서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루어지는 영적 원리를 소개하는데, 영은 하나 되게 하고, 믿는 것이며, 육이 약해야 영적인 삶을 살 수 있다. 또 영은 갈망이며, 도덕과 윤리의 기준은 영에 속하는 것이고 ,시기와 분쟁은 육에 속한 것으로 영은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인다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우리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이라고 강조한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두 세계, 즉 보이는 세계는 물리적 시공간, 즉 크로노스의 시공간이며 보이지 않는 세계는 영적인 시공간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인데,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의 시공간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들어올 수 있다. 믿음으로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열리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된다고 설명한다. 


카이로스의 시공간에는 하나님의 능력, 의미, 기쁨과 행복, 도덕과 윤리-즉 거룩함, 성령의 열매가 존재한다. 이러한 하늘 문을 열기 위해서는 갈망하는 기도, 거룩함-인격적 거룩으로 순종하는 것, 믿음이 필요하며, 카이로스의 시공간이 크로노스의 시공간을 들어오면, 하나님의 임재, 약속과 사명의 하나님 말씀, 위로와 격려, 인도하심, 거룩함, 보호하심, 승리, 자유와 해방, 치유와 기적이 나타난다. 


영이 움직일 때 믿음, 평강, 긍휼과 사랑, 소망, 순종, 긍정적인 생각이 나타나며 육이 움직일 때는 두려움, 불안과 염려, 분노와 미움, 후회, 불순종, 부정적인 생각이 나타난다고 직언한다. 


수학의 공식이나 원리가 문제를 명확하게 짚어내고 나아갈 방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 주듯, 이 책은 명징한 구성과 전개를 통해 하나님의 세계에 대해 바른 이해를 돕고, 영적인 삶을 향해 나아가거나 현재의 영적 좌표를 평가할 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느낌이다.  

하나님과의 인카운터는 늘 황홀하고 신비했다. 이 땅의 논리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경험들이 나를 흥분시켰다. 분명 우주를 창조하신 질서의 하나님이시라면, 영적 세계에도 질서가 있을 텐데 그것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힐끗힐끗 엿보았던 카이로스의 시공간은 경이롭고 황홀했다. 시간의 흐름도 멈춘 것 같고, 경험되는 공간도 전혀 달랐다.와우, 사람들을 이곳으로 초대했으면 좋겠다.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었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옷장처럼, 옷장의 문을 열면 새로운 세계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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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새롭게 읽기 - 예수님의 마지막 일곱 말씀에서 배우는 기독교 핵심
권해생 지음 / 두란노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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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무엇보다 '십자가'일 수 밖에 없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시므로, 우리가 용서를 받았고, 예수님께서 다시 부활하시므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니 영생을 살 수 있게 된, 그야말로 복음의 상징. 그런데, 여기에서 더 나가가 십자가의 더 깊고 풍성한 뜻은 무엇일까. 이 책은 제목처럼 십자가를 다시, 새롭게 읽게 한다. 


저자는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 앞서 십자가형의 의미를 탐색한다. 십자가형은 로마법에 따르면 가장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운 형벌이면서, 동시에 유대법에 따르면 나무에 달린 저주받은 자의 형벌을 뜻한다.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형벌인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에게 사랑이며, 구원일 수 있는가.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곱 마디 말씀, 즉 가상칠언을 뒤쫓으며 저자는 십자가가 품은 넓고 풍성한 일곱 가지의 뜻을 온전하게 드러낸다. 


먼저 십자가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임마누엘의 의미는, 흔히 알려진 것처럼 단순히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뜻을 넘어서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버린 사건을 함축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부분은 예수님이 줄곧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시다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이라고 부르시는데, 이것은 하나님과 분리되는 고통을 표현하는 것으로, 예수님의 버림받으신 울부짖음은 역설적으로 우리를 버리지 않고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외침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한 바울은 감옥에 가고, 사람들에게 버림받으며, 죽음의 위기에 처했을 때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붙들고 복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밝힌다. 


저자에 따르면, 십자가의 두 번째 의미는 '희년'을 의미한다. 십자가는 죄 용서를 통해 죄인인 우리에게 자유를 주지만, 그것을 넘어서 희년의 십자가까지 나아간다고 주장한다. '용서하다'의 헬라어 '아피에미'는 자유롭게 하다, 해방시키다, 떠나다를 뜻하는데, 이는 죽은 나사로를 향하여 예수님이 명하시는 '다니게 하라', 즉 '자유롭게 다니게 하라'는 뜻으로 책임과 형벌로부터 자유롭게 하라는 의미를 지닌다. 한편 '희년'은 '아페시스'로 이 역시 '자유', '해방'이란 뜻이다. 안식년의 안식년인 희년은 50년 째 되는 해 7월 10일, 즉 대속죄일에 땅을 돌려주고, 종을 풀어주었다. 죄를 용서하는 대속죄일에 죄, 신분, 물질로부터의 자유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십자가는 우리를 속박하는 것들로부터의 자유, 즉 원 상태로의 회복을 가능하게 한다. 


또 십자가는 익히 알려진 대로, '구원'을 의미한다. 내가 구원받기 위해 내가 믿은 것 같지만, 나를 구원하시려는 예수님의 열심, 그 은혜로 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자리다. 


동시에 십자가는 믿음을 위한 십자가다. 저자는 십자가는 구약의 예언,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상징하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을 다시 아버지로 부르시면서, 전능하시며 사랑이신 하나님의 성품을 믿어 영혼을 맡기셨다고, 독자들에게 다시 확인시킨다. 십자가는 하나님께 맡기는 믿음을 표현한다. 


나아가 십자가는 새로운 가족을 위한 십자가이기도 하다. 혈육으로 맺어진 관계를 뛰어넘어 십자가가 창조하는, 성령이 낳은 새로운 가족 관계가 성립된다. 예수님은 십자가 안에서 어머니와 제자가 새로운 가족이 되도록 선언하셨다. 


여섯 번 째 십자가의 의미는 '목마름의 해소'를 나타낸다. 목마름은 육체적, 관계적, 영적인 고통으로 심판을 의미하지만, 성령을 통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생명을 얻기에,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영원한 생수의 근원이다. 


마지막으로 새창조를 위한 십자가를 나타낸다. 예수님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셨고, 우리는 그로 인해 새로운 존재, 새로운 성품, 새로운 꿈을 갖게 된다. 


십자가가 단순한 악세서리 장식으로 취급되는 요즘,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기꺼이 가장 비참한 모습으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신 역설의 표징, 다시 겸허한 마음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되새겨본다. 

십자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버림받으신 곳이다. 십자가는 희년을 위해 예수님이 우리 죄를 책임지신 곳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열심이다. 십자가는 자신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시는 예수님의 믿음의 모범이 나타난 곳이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새로운 가족이 시작된 곳이다. 십자가는 우리의 목마름을 해소하시려는 예수님의 목마름이다. 십자가는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예수님의 목표가 달성된 곳이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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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고민입니다 - 일상의 고민을 절반으로 줄이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힘
하지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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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복잡해질 수록 고민은 늘어가지만, 정작 왜 고민을 하며, 고민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이 없던 터에, 감정과 뇌과학을 적용하여 고민의 프로세스를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고민에 대처하는 방식을 안내하니, 출간이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민이 이루어지고 있는 주요 맥락이라 할 수 있는 감정과 뇌과학의 특성을 설명하고, 실제 고민이 생겼을 때 성숙하게 대처하는 방법, 그리고 고민의 결과와 마주하며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 설명한다. 


고민의 프로세스와 관련하여, 먼저 많은 고민을 만들어내고, 또 불필요한 고민을 배태하는 감정을 다룬다. 감정과 관련된 주요 문제로는, 강박으로 치달아 정보만 축적하는 자기 신뢰의 결여, 불안, 낮은 자존감, 우울, 모든 문제를 심리적으로 접근하는 심리화, 현상 유지의 추구 및 문제의 회피, 나쁜 기억, 반추, 집단에 숨어 방관하면서 다른 사람이 고민을 대신하도록 위임하거나 집단에서의 배척과 소외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평판에만 관심을 두는 것 등을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뇌의 특성을 고민과 연관지어 탐색한다. 뇌는 선택 과정에 이를 때 빠른 판단과 반응을 담당하는 변연계와 신중한 분석을 통해 대처하도록 하는 대뇌 피질의 투 트랙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변연계가 우선권을 갖고 이후 그 결과에 따라 결정하도록 셋팅이 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변연계는 동물적 본성을 앞세워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원시뇌-뇌간과 변연계-에 놓여있고, 낯선 상황에서는 원시뇌가 먼저 작동하기에, 고민이 시작되면 원시뇌부터 우선적으로 활동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또 뇌가 처리할 수 있는 문제의 한계는 이미 정해져 있으며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명확하게 평가할 수 있는 메타인지를 발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나를 객관화하면서 고민에 접근해야 한다고 안내한다. 뇌가 피로하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다거나 배고픔은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도록 하며 의지력이 약해지는 자아고갈의 상태에서도 고민을 진중하게 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더불어 고민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보를 의식절으로 처리해서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차례로 처리하게 하는 작업 기억을 높여야 하며, 욕망이 고민의 방향 및 속도 등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도 설명한다. 뇌는 모호함과 불분명함을 싫어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생각을 최대한 단순히 하려는 휴리스틱을 창조하는 한편 인간에게는 집단 논리에 순응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고, 직관적인 판단이 행동화되어 습관이 되므로 기존의 세팅을 고집해서는 안된다는 주의점도 일러준다. 


고민이 생겼을 때 유의하여 할 사항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4가지 기본 원칙을 지키도록 권고한다. 고민할 이유 자체를 줄일 것,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순서를 정할 것, 고민할 때 사용되는 에너지의 효율성을 높이고 고민에 필요한 마음의 공간을 확보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구체적인 전략으로는 먼저  감정과 인지, 우선 순위, 마음의 자산 등을 점검하면서 고민의 위치를 점검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뇌는 일종의 하드디스크처럼 정해진 용량이 있으므로 고민을 처리할 뇌 용량을 확보할 것, 처음부터 고민할 이유를 없앨 수 있도록 루틴을 만들 것, 고민을 덩어리로 재분류하고 맥락과 이야기로 엮어 단순화할 것, 큰 고민거리는 잘게 쪼갤 것, 고통과 견디어내야 할 불편을 구분할 것, 고민의 우선 순위를 정할 것, 큰 그림을 보면서 생각할 것, 때로는 그냥 지켜만 볼 것, 당장 해결하지 않아도 좋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 고민이 있을 때 청소나 샤워처럼 행동 모드로 바꿀 것, 최선을 찾기보다는 최악을 피할 것, 너무 먼 미래를 생각하지 말 것, 일단 결정하면 뒤돌아보지 말 것, 자신의 감정 패턴을 알아 감정의 방파제를 세울 것, 관계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지 말 것, 타협할 수 없는 최소한의 원칙을 만들 것, 결정과 책임을 오로지 나의 일로 여길 것, 가치와 의미를 생각할 것, 욕망의 한계선을 그을 것, 의지가 약하다는 말을 흘려들을 것, 그리고 배고픔, 통증, 수면 부족, 촉박한 시간, 금전적 압박 등을 체크하면서 자아의 고갈을 막을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고민의 과정이 옳았다면 결과는 2차적인 일로 여기고, 운의 영역을 인정하면서 고민이 없는 시간은 없지만, 그래도 고민 없이 산다고 믿으면 고민을 잘 하는 것이라고 격려한다. 


정신과 전문의로서의 전문성 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식견과 다양한 실험, 연구 사례가 더해져 읽을 거리가 풍성하다. 새로울 것도 없이 이미 다 아는 것 같지만, 돌이키면 생경할 정도로 잊고 있던 기본적인 원칙과 근거를 꼼꼼히 세워준다.  

고민의 정보 압박을 줄이고, 여유 공간을 만들고, 실패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길은 바로 이런 불확실한 세상과 통제 불가능성, 운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에서 온다. 잘 모르겠지만 방향은 이게 맞는 것 같아. 일단 해보지 뭐. 이 정도가 딱 맞다. 고민-결정-실행의 프로세서에서 가운데에 있는 결정의 앞과 뒤를 볼 때, 고민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지 않으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3대7 정도가 좋지 않을까? 서론이 너무 긴 책은 재미없지 않은가?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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