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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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이다. 현실적이다. 세부적이다. 역사적이다. 이 모든 단어를 다 포함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책이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단편집을 먼저 읽었다. 짧게 이어지는 이야기의 뒤에 적힌 그녀의 후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짧게 끝나도 길게 생각되는 이야기의 여운이 남았다. 장편은 어떨지 궁금했다.

 

이 장편. 역시 단편보다 훨씬 좋다. 아니 그 속에 빠져들고 말았다. 판타지 ,sf이런 장르를 즐겨하지 않는 나조차도 빠져들만큼 매혹적인 이야기에 한동안 빠져들었다. 그럴수 밖에 없었다. 분명 이 이야기는 현실에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묘사가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이런 설정이 현재에도 지속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타임슬립'이라는 이 흔해빠진 모티브를 쓰면서도 전혀 진부하지 않다. 오히려 새로운 느낌이 든다. 어떻게 이 작가는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가 있었던 것일까. 이야기가 사실적인데는 아마도 주인공과 작가의 동일함이 가장 큰 특징일것 같다. 이십대의 흑인작가. 그녀는 백인 남편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그렇게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설정이다. 물론 부모나 친지의 반대가 있었을지라도 법에 위촉되는 행동도 아니다.

 

따로 살던 그들이 막 새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로 다음날이 그녀의 생일이었다. 딱히 뭐 크게 준비하지 않은 그들은 그냥 짐을 풀며 이야기를 하고 있던 찰나였다. 그녀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것은. 현기증이 나며 땅이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던 그녀는 어느샌가 자신도 모르는 곳에 와 있다. 바로 앞에는 강이 있고 거기에 어떤 한 아이가 떠내려 가고 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 생각도 하기 전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아이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강에 뛰어든다. 아이를 구해온다. 숨을 수지 않는다. 인공호흡을 하고 심장 압박을 해서 겨우 아이를 살려낸다. 백인 아이다. 아이의 부모는 그녀를 생명의 은인으로 보기는 커녕 아이를 그녀의 손에서 거칠게 뺏는다. 여기는 도대체 어디인가. 그리고 이 아이는 누구이며 나는 어디에 와 있는 것인가.

 

그녀는 그곳에서 있으면서 자신이 노예해방 이전 흑인들은 주인의 소유로만 여겨지던 시대에 와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는 왜 이곳에 온 것이며 다시 현재로 되돌아 갈 방법은 없는 것인가. 주인공의 흑인 설정은 노예해방 이전. 이러면 사람들은 대부분 다 노예의 입장에서 부당함을 주장하고 인권을 주장할 것이다. 그녀 또한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구해준 아이의 집에 머무르면서 튀는 법 없이 다른 노예들과 어울려서 그들의 일을 도와주고 자신이 구한 아이를 보면서 지냈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며 말이다.

 

한번의 타임슬립이 아니라 조건부 타임슬립으로 인해서 그녀는 현재와 그 시대를 번갈아 가면서 존재하게 된다. 그곳에서 머무는 시간은 길지만 이곳에서의 시간은 아주 짧다. 얼마 지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녀는 계속 왔다 갔다 하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있는 동안 그녀가 느낀 부당함은 무엇일까. 그녀도 도망을 치려다 잡혀오고 채찍을 맞고 다른 노예들처럼 밭에서도 일을 한다.

 

이게 미국이 배경이라서 그렇지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도 양반과 종이 있었고 종은 양반의 소유였으며 누구에게 줄 수 있는 존재였고 팔 수 있는 존재였다. 노예들처럼 그들을 직접적으로 사고파는 전문 중계인만 없었을 뿐이지 우리나라도 종을 부리는 개념은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을 통해서 노예해방이 일어났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분철폐가 일어나면서 누구나 공평한 권리를 누릴 기회를 얻게 되었다. 노예해방이 일어난 이후로 제도는 없어졌지만 그들의 노동력이 필요해서 남부지방에서는 한동안 계속 그런 상태가 계속되었다. 우리나라는 어떠했을까. 양반들이 볼 때는 아주 가관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제만 하더라도 마님 하던 사람들이 자기한테 하대를 하니 말이다.

 

지금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해야 할 것 같다.만약 타임슬립이 일어나서 내가 그 시대에 떨어진다면 어떠할까. 아니 그 시대가 아니라 만약 일제치하 속으로, 독립운동이 일어났던 때로 돌아간다면 어떠할까. 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열사들처럼 당당하게 독립을 외칠 수 있을까. 사물은 자기 자리에 있어야만 잘 쓰이는 법이고 버려지지 않는 법이다. 사람도 그렇지 않을까. 자신의 자리에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작가는 타임슬립이라는 장치를 통해서 그 당시 미국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흑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주면서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내려고 한 모습이 보인다.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떨까. 꽤 의미있는 영화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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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차일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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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기에 앞서 작가에 대한 소개를 하고 넘어가야 한다. 이 책만큼은 그래야만 할 것같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을때는 그냥 내가 아는 작가와 알지 못했던 작가 두가지로 구분하고 넘어가지만 이작가에 대한 소개는 반드시 필요하다. 미국에서도 드문 흑인 여성 SF 작가, 상업적으로뿐만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녀였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세상에 남녀의 구별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 작가들도 뛰어난 문학을 쓰는 사람들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당시만 하더라도 문학세계에서, 그것도 남자 작가들만 있는 SF세계에서 그녀의 데뷔는 전혀 뜻밖이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뛰어난 문체와 작품들까지. 그 당시의 사람들뿐 아니라 지금의 사람들 또한 당연히 놀랍게 받아들였을 듯 하다.

 

원제는 블러드 차일드와 다른 이야기들였다. 그것을 가장 앞에 있는 단편의 제목을 따서 이 책 제목을 붙인 것인데 그만큼 이 작품이 강렬하다. 그냥 일반 sf장르인가 싶다가도 사실적이면서 잔인한 묘사에 단편속에서 장편의 스릴러를 보는듯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트가토이는 그의 몸을 열었다. 그의 몸은 첫번째 절개에 경련을 일으켰다.(32p)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멈칫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순간 이 장면이 연상이 되며 한번도 본 적 없었던 영화의 장면을 스스로 상상이라는것을 통해서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연상은 다음 장면까지 이어지면서 섬짓함이 온 몸으로 전해 흘러내렸다.

 

트가토이가 첫번째 유충을 찾아냈다. 통통했고, 로마스의 피로 안팎이 시뻘갰다. 안팎으로 말이다.(32p) 이 문장을 읽으면서 정글의 법칙을 생각했다. 그들이 나무속에서 찾아내었더 벌레들. 통통한 애벌레들, 꿈틀거리던 애벌레들. 그것을 집어 입으로 가지고 가던 그 손들, 그 입들. 잔인함을 증폭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정글속에서는 그 속에서는 그렇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럼으로 인해서 먹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단지 내가 유충이라는 것을 보았던 장면이 그것뿐이기에 자동적으로 연상이 된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 대가의 작품속에서는 그냥 일반 유충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이들이었다. 유충이 아이들로 변환하는 것이다. 대가의 상상력이란 정말 일반 사람인 나로써는 좇아가기도 버겁다. 그녀가 남긴 이 소설을 통해서 그녀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겁고 힘이 들어 전력으로 백미터 달리기를 한 사람마냥 헐떡거려야 했다. 그렇게 심장을 붙들고 읽어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가 이 단편들에 대한 각각의 후기를 적어 두었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상상을 망칠 염려가 없어서 서문보다는 후기가 더  좋다는 그녀. 그녀가 원한대로 나는 작품을 읽고 이후 후기를 읽었다. 그녀가 어떤 생각으로 또 어떤 느낌으로 어떤 상황에서 이 가품을 썼다는 것을 보니 더욱 이해가 잘 되었다. 친절한 도슨트가 옆에서 하나하나 해설을 해주어서 작품에 대한 시각이 달리 보이는 느낌이랄까.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가 맥락없이 끊기는 느낌이 드는 엔딩들 때문이었는데 친절한 작가의 후기로 인해서 단편을 읽는 재미가 들었다. 역시 단편은 후기와 함께 읽어야 제맛이 드나보다.

 

특히 집중이 되었던 것은 '말과 소리'라는 단편이었다. 워낙 말로써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보니 수업이 없는 날은 말을 하지 않고 지낼  때가 많다. 책을 읽을때도 음악을 틀어놓기보다는 아무런 소음이 없는 조용한 환경에서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 것을 조건으로 삼았을까. 여기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을 하면 어떻게 된다는 소릴도 없는데 다들 말을 하지 않고 말을 하는 법을 잃어버린채 지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들이 말을 하지 않게 된 이유는 나와 있지 않다. 그리고 말을 할 수 있으면서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말을 아예 할 수 없는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지 않다. 주인공은 마지막에야 겨우 한마디를 한다. 어떤 말일까.

 

마지막에 자전적인 에세이를 두편 구성해 두었다. 그녀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에세이 두편. 이 에세이를 읽음으로 인해서 나는 이 작가의 생각을 그리고 그녀가 자라온 환경을 이해했다. 그녀가 작품을 쓰게 된 배경을 알 수 있었다. sf라는 장르가 복잡하고 복잡하고 또 복잡해서 그다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장르였다. 얼만전 읽었던 스티븐 킹의 소설도 미루고 미루고 또 미루다 읽었던 작품이었다. 그의 작품 또한 내게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지만 옥타비아 버틀러 그녀의 작품 또한 이 장르에 대해서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다르게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했던가. 같은 장르라 하더라도 새로운 장르처럼 보이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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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조건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0
사사키 조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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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관의 피]가 2009년에 나온지 6년만에 합본으로 작년 다시 개정판이 나왔다. 그리고 딱 1년후 [경관의 조건]이 나왔다. 현실상에서는 그 정도의 시간이지만 이 책 속에서는 9년이 흘렀다. 삼대가 경찰이라는 가업 아닌 가업을 이어오는 가즈야. 그는 인질을 대신해서 들어간 아버지가 죽는 것을 보았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아버지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경찰이 된 그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다른 길을 걷게 된다. '대부님'이라 부르며 자신이 따르던 상관. 단 둘밖에 없는 팀에서 그는 자신의 상관인 가가야를 고발한다. 그 이후로 그는 재판을 거듭하면서 결국은 무죄로 풀려나지만 여러 사건끝에 결국은 경찰을 그만두게 된다. 그 이후로 9년. 가즈야는 어떤 상태이고 가가야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면서 지냈을까.

 

일본의 추리, 스릴러, 미스터리는 여러가지 장르가 있다. 사사키조는 그중에서도 경찰소설에 있어서는 정말 탁월하다.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일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전직 경찰인가 의심해볼만큼 자세한 내부 묘사가 더욱 현실감과 사실감을 준다. 전작도 그렇지만 이 번작품 또한 그러하다. 경찰 내부의 긴장과 갈등, 각 과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다툼과 이권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바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도 중요하지만 내부의 사건들이 더 혼란스러운 요지경 속이다. 하나의 사건을 두고 다른 과가 충동해서 유혈사태를 만들어 내고 경관의 순직이 이어지기도 하고 한 사건을 두고 자신들이 먼저 해결을 하려고 덤벼들다가 충돌을 일으키키도 한다. 물론 서로 사전조율을 통해서 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당장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렇게 만만히 넘어가지지가 않는다.

 

긴장감과 스릴의 연속이지만 특히 중반부쯤 자신이 추적하는 사람을 미행하는 장면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언젠가 보았던 [감시자들]이라는 영화에서 미행하는 씬을 보듯이 일방적으로 목표가 앞에 있고 뒤만 쫓아가는 방식이 아니라 그 목표가 중간에 서면 뒤따르던 미행은 그냥 지나치고 다른 미행이 번갈아가면서 붙는 식이기도 했다다가 한바퀴 돌아서 다시 붙기도 하고 휴대폰을 통해서 위치확인을 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방면으로 미행을 하는 장면은 속도감과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겠다.

 

한 사건에 경찰 1과와 5과가 충동하고 경관 한명이 죽고 그 죽인 범인은 여전히 종적을 알 수 없다. 민간인이 죽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경찰이라는 조직내에서 경찰이 죽는 것은, 그것도 조직원에게 총을 맞아서 죽는 일은 절대 그냥 넘길 수 없는 사건이다. 미국 드라마에서도 경찰의 죽음은 특히 예민하게 그려지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것은 아마도 어려운 일, 힘든 일을 함께 하는 그들에게 연결되어 있는 끈끈한 의리이면서 정이면서 사랑일 것이다. 남들은 이해할수 없는 더욱 진한 보이지 않는 선 말이다. 그들은 반드시 그를 잡아야만 한다.

 

일본내의 범죄조직은 약, 즉 각성제 시장과도 연결되어 있다. 어느정도 안정되어 흐르던 것이 다른 한 신생조직의 개입으로 인해서 흐름이 바뀌었고 그것을 알아냈던 경찰의 s, 즉 스파이 또한 죽음을 당한채로 발견된다. 경찰들은 자신의 동료에 대한 복수와 더불어서 이 시건을 흔들고 있는 범인을 잡고 그들의 조직을 일망타진 할 수 있을까.

 

각성제는그 자체로도 위험하지만 [몽환화]에서도 보듯이 그로 인해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으로 돌변해서 아무 사건이나 저지르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전염병도 아닌데 점점 늘어만 가는 것도 문제가 된다. 국민들이 환각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은 어떻게 해서든지 각성제 시장을 문을 닫게 만들어야 한다. 점조직으로 퍼져 있는 그들의 조직을 경찰은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것인가.

 

9년 전 가즈야의 고발로 경찰생활을 그만둔 가가야는 경찰청의 요청에 의해서 돌아오게 되는데 그의 활약상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경관의 피와 경관의 조건. 비슷한 결말을 가지고 있어서 살짝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가즈야는 한층 더 자신의 입지를 되돌아 볼수 있지 않았을까. 가즈야는 아직 젊다. 이것이 사사키조의 다른 경관시리즈를 기대하게 되는 이유다. 가즈야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경찰이야기가 나오길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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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를 세 번 맨 오쿠바
유채림 지음 / 새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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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을 매고 또 매고 또 매고... 죽을려고 결심을 하고 또 실행에 옮기고 성공하지 못하고. 이 사람은 대체 어떤 억울함이 있어서 그런걸까. 오쿠바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약간은 일본소설처럼 생긴 표지와 제목이 궁금증을 더해간다. 한국작가가 쓴 책이면서도 오쿠바라는 이름을 앞세운건 왜일까.

 

오쿠바는 일본어로 어금니를 의미한다. 치과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별명이라 할 수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 이름으로 불렸던 주인공은 정작 자신의 이름보다는 오쿠바라는 이름이 더 편하다. 일제치하에서 공부를 했던 그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죽을뻔한 위험도 넘기고 마루바닥에 숨어서까지 전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했다.

 

치과 한편에 암실까지 만들어주둘 정도로 사진을 사랑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그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다. 종교에 빠진 어머니가 자신을 두고 목사가 되라고 했을때도 그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어머니는 열성적으로 교회에 다녔다. 자신 또한 함께 다니긴 했지만 청소년기의 또래들을 만나기 위해 다닌 것 뿐, 또한 자신이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어서 나간 것 뿐 제대로 믿음이라는 것은 가져보지 못했다.

 

첫사랑과 결혼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는 신학교에 다니면서 우연히 베풀었던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사진관을 운영했다. 사진관은 2호, 3호점을 낼 만큼 성황리에 잘 운영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닥친 시련은 무엇일까. 큰 아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살던 그가 왜 아동강간살인마가 된 것일까. 그는 과연 잔인한 살인마였을까 아니면 무의식중에 그런일을 한 것일까 아니면 그가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듯이 그는 단지 좋지 않은 시기에, 좋지 않은 장소에서 사건에 휘말린 것뿐일까.

 

같은 사건을 요즘 경찰들이 맡았다면 어떤 결론이 났을가. 예전과는 다르게 과학이 발달했고 장비가 발달했으니 오쿠바의 혈액형과 사건에서 발견된 음모의 혈액형이 다르다는 것을 바탕으로 그는 무죄로 풀려나지 않았을까. 아니 유전자 감식을 해서 그 동네에 살고 있는 누구와 맞느지 대칭 검사를 하면 금새 범인을 잡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80년대 당시에는 무조건 실적만 올리면 되는 줄 알았다. 가장 강압적인 수사가 많이 나올 떄였다. 증거가 있고 그 증거를 분석해서 범인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일단 아무나 혐의가 가는 사람을 잡아다 놓고 증거를 가져다 맞추어서 그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는 방식이었다. 범인이 아닌 무고한 사람들은 부인을 한다. 그런 때는 고문이 제격이다. 가혹한 고문으로 인해서 끝까지 죄를 부인하고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도 간간히 예전 사건들이 터져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물론 그 당시의 경찰들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사건을 해결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윗선에서는 말도 안되는 짧은 시간내에 범인을 잡아오라고 하고 자신들은 할수 없이 그에 맞추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아,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수 있지 않은가. 역지사지라고 자신이 그 상황에 빠져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면 그런 일은 없었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 책에서는 변호사가 그렇게 노력해도 구하지 못했던 두 사람의 사건이 나온다. 하나는 오쿠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전에 벌어졌던 사건이다. 그 사건 또한 분명 무죄이고 그 사람은 무고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내었고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했다고 불게 만들었고 결국은 그 사람을 이 세상에서 격리시키고야 말았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본인이 알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이 억울함을 어디에 호소할 것인가. 그래서 오쿠바는 목을 매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자신이 저지른 죄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달라고 말이다. 그의 목맴은 성공했을까 아니 그가 목이 매도록 외쳤던 무죄 소식은 들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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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변호사 고진 시리즈 5
도진기 지음 / 황금가지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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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사랑한다면 솔직하자.' 재고 따지고 우뮤부단하게 굴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안다면 그대로 돌진하라는 것이다. 한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주인공이 왜 인기가 있는지 아는가.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솔직해서다. 일단 자신이 좋아한다고 마음이 정해지면 그대로 표현하고 말한다. 숨긱는 것 없이, 돌리는 것 없이, 밀당도 하지 않고 말이다. 그게 가장 바른 접근법이다. 자칫하다가는 자신의 인생뿐 아니라 남의 인생까지도 망칠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 책처럼 말이다.

 

도진기라는 작가는 현직 판사인 자신의 직업때문에 더 유명하다. 물론 그의 이야기가 탄탄하고 재미가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있기도 하다. 고진, 이탁오, 진구라는 세 개의 캐릭터를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기도 한다. 한 명씩 주인공으로 배치하기도 하고 셋이 힘을 합쳐 다른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전문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충돌이나 다툼보다는 오히려 협조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성격의 차이 때문에 분란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셋이 모여 내는 시너지가 대단하기도 하다.

 

캐릭터중에 가장 좋아하는 것은 진구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고진 이야기다. 사실 고변호사 이야기는 도진기 작가의 작품 중에서 그렇게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약간은 시니컬하고 비웃는 듯이 보이는 그의 입모양이 생각나는 듯 하고 까칠한 성격에 삐적 마른 캐릭터가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나 할까. 나와 비슷한 류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변호사이긴 하지만 법정에서 변론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건을 쫓아다니고 법적인 조언을 해서 그 사건을 해결하는것에 더 익숙한 변호사이다. 그런 고진이 이번에는 법정에 섰다. 무슨 일일까.

 

법정드라마는 [검찰측죄인]이나 [파계재판]처럼 일본 소설에서도 보여지기는 하지만 가장 뛰어났던 것은 아무래도 존 그리샴의 소설들일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작가가 변호사여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글로 그려놓은 법정신을 따라 읽다보면 세부적인 묘사까지 하나하나 디테일하게 그려져서 실제로 법정에서 변호사의 변론을 듣는 것 같은 입체효과를 받을 수도 있다. 그 모습이 상상이 되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 작품보다도 초기작품인 [죽음의 시간]이라는 책에서의 변론들은 정말 법정신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겠다. 도진기 작가가 그려내는 법정신은 어떠할까.

 

어느날 고변호사에게 수임을 하러 온 의뢰인이 있다. 남편을 죽여 달라는 일이다. 당연히 그는 거절을 한다. 자신이 무슨 킬러도 아니고 그런 일을 해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건은 그 이후 벌어진다. 그녀가 남편을 죽인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것도 한국이 아닌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남편을 죽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남편을 죽이고 싶다는 의뢰를 했던 그녀. 누군가에게 부탁을 할 수가 없으니 자신이 직접 죽인 걸까. 그렇다 하더라도 한번도 법정에 서서 변론을 하지 않았던 고변호사가 그 사건을 맡아서 그녀의 무죄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편이 죽으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 것은 아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랑이라는 감정도 있지만 미움이라는 감정도 있고 부부사이의 일은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들도 가득가득 채워져 있다. 모르긴 해도 증오도 어느 정도는 채워져 있을지도 모른다. 알다가도 모를 것이 사람 마음이라고 했던가 부부사이도 마찬가지일것이다.

 

법정드라마이기때문에 큰 스릴감은 없다. 단지 하나의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변론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이 있을 뿐이다. 세세한 긴장감으로부터 커다란 긴장감까지 온갖 종류의 긴장감이 가득 채워진 한 권의 책이다. 사랑한다면 솔직하게 말하라. 법정 드라마가 가득한 책 한 권을 읽고 난 소감으로는 뜬금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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