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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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마음에 두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었다. 선인장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한 아이. 저 아이는 그토록 아파하면서 왜 선인장을 놓지 못하고 저토록 간절하게 껴안고 있는 것일까. 선인장 가시가 찔려서 아프다면 그냥 놓아버리면 될 것을 왜 저렇게 꼭 안고만 있는 것일가. 왠지 모르게 그 아이가 나같이 생각되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었다. 그런 그 아이의 사진이 기억속에서 흐려지고 있었다.

 

어디서 나온 사진인지도 몰랐는데 이번에 사진을 검색하면서 어디서 나온 그림인지 알게 되었다. 허헤윤 작가의 선인장 아이. 실제로 책이 있는 줄도 처음 알았다. 한권의 책으로 인해서 다른 책을 알게 되는 것은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재미다.

[ 선인장 아이 : 출처 : http://www.cyworld.com/nunmulsponge ]

 

항상 가시를 세우고 살아야 하는 고슴도치는 날카롭고 날이 선 사람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결코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는 않는 것이다. 정작 우리는 고슴도치의 입장에서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고슴도치가 실제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이라고 얘기를 할 것인가. 자신은 그렇게 살아야 하는 운명일 뿐 실제로는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고 말을 할 것인가.

여기 고슴도치 한마리가 있다. 별다른 이름도 없는 그냥 고슴도치이다. 그는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친구를 만나고 싶은 그는 파티를 열까 하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한다. [모두 우리집에 초대하고 싶어.]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마디를 덧붙인다. [하지만 안 와도 괜찮아.] 이 편지를 받는 다른 동물들은 고슴도치의 이 편지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초대에 응해서 방문을 해야겠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안와도 괜찮다니 그냥 잊어버리고 말까.

받는 사람들은 가볍게 생각하지 몰라도 정작 고슴도치에게는 인생을 건 아주 죵요한 문제가 되어 가고 있었다. 일단 편지를 써놓고도 보내지 못했다. 혼자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 "아직은 아니야." 하면서 그냥 넣어놓고 말아버린다. 그의 선택은 어떠할까. 결국 그는 편지를 보낼까 아니면 그냥 넣어둔채로 친구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말아버릴까.

소심하고 겁이 많다. 그것이 이 고슴도치의 성격을 대표하는 단어이기도 하겠다. 아니 거기다 하나 더, 상상을 좋아하고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레 부정적인 입장이 되어 버리고 비관적인 생각을 한다. 우유부단하기까지 하다. 이럴까가 저럴까 고민하다가 결국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현실에 묻혀 버리고 만다. 결단력이 부족하다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고슴도치는 그만큼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상황을 살펴주며 그들이 최대한 불편하지 않게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고슴도치의 조금은 나약한 모습들이 어느 정도는 나아보이지 않을까. 

당분간 누워 있을 생각이었다. 여기서 일어나면 또다시 생각을 할 거야. 그리고 생각을 하면 또다시 망설일 거고. 항상 그런 식이었어.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내게는 가시보다 망설임이 더 많을거야. 망설임은 보이지 않아서 다행이야. 아니지... 보일지도 몰라. 나 말고 모두 다 볼 수  있을 거야.(33p)

어찌나 나 같은지 고슴도치의 마음이 절로 이해되어서 나도나도 하면서 맞장구를 칠 뻔 했다. 지난 주말 가방을 하나 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이 보고 고민하고 재고 망설였는지 꼬박 하루를 다 보내버렸다. 약간의 결정장애도 있음이 분명하다. 나는. 몇가지를 골라두고서도 여전히 망설이는 나를 보면서 주위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해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는 옛날 노래 가사가 아니어도 나는 나를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나 또한 고슴도치가 아닐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그는 손에서 가시를 하나 뽑아내고 꾹 참더니 이렇게 심한 고통도 편안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고슴도치는 편안한 고통 같은 건 한번도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왕풍뎅이는 모든 것이, 심지어 슬픔이나 절망조차도 편안할 수 있다고 했다. (150-1p)

아픈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비단 사람이 아닌 식물이나 동물조차도 아픔이라는 것건 싫어하지 않을까. 아픈 것이 싫어서 무엇보다도 병원이라는 장소를 가장 싫어하는 나인데, 심리적인 아픔이나 육체적인 아픔 모두 다 싫어하는 나인데 왕풍뎅이는 이런 나를 보고 말하기라도 하듯이 '편안한 아픔'도 있다고 말을 하고 있다.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펺편한 아픔이 존재한다는 것일까. 어떻게 편안한 고통이 존재한다는 것일까. 왕풍뎅이는 자신이 고슴도치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의 가시마저도 참고 견뎔낼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아닐까. 가족이라 할지라도 모든 점을 다 좋아할수는 없으니 안 좋은 점들까지도 자신이 비록 힘들지라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닐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라는 범위가 얼마나 적용될 수 있는지 다시 한번 고려를 해봐야 할 것이다. 가족이라는 관계 속에서도 여러 관계가 있으니 말이다. 부모 자식도 있고 부부도 있다. 어느 선까지 우리는 이해하고 참고 견딜 수 있을까. 물론 친구관계도 포함할 수 있겠다.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은 점이 있다고 관계를 단절할 수는 없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고슴도치의 생각을 통해서 가지각색의 동물들이 등장을 한다. 아주 작은 곤충들부터 바다에 사는 동물이나 숲속에 사는 동물들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동물의 출현으로 인해서 잠시 당황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다양한 동믈둘을 통해서 우리는 또한 다양한 사람들의 인간유형을 비유해 볼 수도 있겠다.

결국 고슴도치의 소원은 하나일 것이다. 친구들이 와서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 그러나 망설이다 보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모두 주위에 있고 언제나 그의 편이 되어 줄 것이며 언제나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일 것이다.

망설이는 것은 이제 그만. 상상도 이제 그만,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상상하며 겁을 내지는 말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해 주면 누구라고도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 관계 아니었던가. 고슴도치의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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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토리움의 음반가게
김정범 지음 / 비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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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가게. 아날로그적인 느낌이 물씬 드는 느낌의 단어다. 예전만 하더라도 음반가게에 가야지만 음반을 사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음원이라느 이름하에 간단히 다운을 받으면 된다.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LP판부터 테이프, 씨디, 엠피3,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요소를 접해본 바에 의하면 무엇이 더 좋고 나쁘다고 말할수는 없을 듯 하다.

 

장단점은 어떠한 곳에나 존재하므로. 그러나 지금은 재생할 수 있는 기계조차 남아있지 않은 엘피판이나 테이프들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아날로그적인 인간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저자와 나는 비슷한 나이대이다. 그래서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조금 더 잘 이해가 되는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에 즐겨보곤 했었던 외화들. 맥가이버, 에어울프, 에이특공대, 불블문특급, 전격Z작전(51p). 지금은 방에 가만히 앉아서도 세계 모든 곳의 드라마를 볼 수 있고 우니라나 드라마 또한 해외로 수출되는 상황이지만 어렸을 땐 왜 그렇게도 다른 나라의 특히 미국의 드라마들이 재미났는지.

 

저자가 언급한 드라마들 외에도 쥐를 먹는 장면으로 유명했던 브이도 있었고 천재소년 두기, 베벌리힐즈 아이들 같은 드라마들과 내가 좋아했었던 제너럴 하스피틀도 있었다지. 오래된 추억들을 끄집어 내어 생각하는 걸 보니 역시 나이가 든 축에 속하는 것이다. 나는. 슬프게도.

 

경영학과 재학중에 경연대회를 통해서 뮤지션이라는 직업을 시작닿하게 된 저자는 외국에서 본격적인 음악가로써의 공부를 하게 된다. 음악이라는 것을 배우고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게 여겨질수도 있겠지만 시험방법은 궁금했다. 악기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직접 연주를 함으로써 보여준다고 하지만 작곡을 하는 경우는 어떤 시험을 보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서 채점이 되는지가 궁금했는데 그의 사진 한 장을 통해서 모든 의문이 풀렸다. 재즈 작곡 수업에 제출한 과제물은 학생이 작성한 악보와 녹음된 시디를 공식 봉투에 제출하면 채점을 한단다.

 

지역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들을 모아서 펴낸 이 책은 여러 음악을 소개해주고 있다. 대부분이 팝음악들이고 우리나라의 음악은 몇 곡 없어서 아쉽기는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음악을 더 많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모르는 노래를 접해볼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자신이 속해 있는 푸디토리움의 음악과 푸딩의 음악도 소개하고 있어서 그의 음악이 낯선 나같은 사람에게 소개해주는 통로가 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중에 하나는 글렌메데이로스의  Nothing's gonna change my love for you이다. 그의 노래라고는 딱 하나만 알던 나에게 not me라는 새로운 노래를 알게 해 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같은 가수의 새로운 노래를 알아가는 것도 재미나는 일 아닌가. 

 

영화음악을 하는 저자는 다른 영화음악가들에게 대해서도 소개를 해주고 있다. 특히 '티파니에서 아침을'이라는 영화는 봤고 '문리버'라는 노래도 무진장 좋아하지만 정작 그 작곡가가 헨리 멘시시라는 것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절대 몰랐을 사실이다. 하나 더, 저자가 영화 허삼관의 영화음악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음악을 좋아하지만 책을 읽을때는 조용한 상태에서, 그야말로 쥐죽은 상태에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것이 책을 읽은 것과 비슷하다고 적어 놓은 글을 읽으니 고개를 끄덕이게도 된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다독과 정독. 두가지의 읽는 방법을 음악에다 비유할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말이다. 많이 읽느냐 세세히 읽느냐는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이다.

 

저자도 또한 많은 음악을 들었지만 하나의 음악을 자세히 들으니 새로운 면이 보인다고 했다.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책을 읽고 또 읽고 다시 세세히 읽는다면 처음 그냥 읽었었을때는 지나갔었던 면을 새롭게 볼수도 있을 것이다.

 

한 아티스트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장하고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쩌면 음악 팬의 가장 큰 즐거움일 수도 있다.(256p)는 소속사 사장의 말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처음에 만든 음악과 시간이 지난 음악과의 차이점을 누구보다도 자신이 더 잘 알것이다. 작가들의 데뷔작과 성공을 준 히트작이 다른 것을 보듯이 말이다.

 

푸디토리움의 음악을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음원이나 음반으로 듣기보다는 실제로 공연장에 가서 듣고픈 마음이 들었다. 무대가 따로 있지 않고 딱히 정자세로 반듯이 앉아서 들어야 하는 그런 음악회가 아닌 그들의 음악을 살아있는 채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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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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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응준 작가의 생각과 그에 관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영혼의 무기]를 읽는 시간이다.

 

그는 토토라는 아주 사랑을 주었던 강아지가 있으며 시인 함성호와 꽤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고 있고 중도성의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격을 표현한 말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낙관과 비관이 이상한 비율로 뒤섞인, 허무주의에 입각한 독실한 탐미주의자? (330p) 이보다 더 완벽한 표현은 없는 듯 하다. 누구보다도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제목과 표지에서 비슷한 느낌의 책을 비교해보게 된다. 하루키의 [잡문집]이다. 같은 빨간색 계열의 표지. 잡문집과 이설집. 약간은 다른 뉘앙스이지만 글의 성격면에서 볼 때는 비슷한 면이 많다. 자신이 관심있는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포함해서 시상식에서 했던 말 또는 기사들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잡다한 글들을 묶어 놓은 것이 잡문집이라면 이설집은 오래전 자신이 썼던 글들부터  최근까지 썼던 글들 - 정치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글도 있으며 어느 한 작가의 작품에 관한 글도 있다 -  을 인터뷰를 포함해서 모아 편집했다. 이만하면 상당히 비슷한 성격의 책이 아닌가. 

 

이응준이라는 이름이 낯선가?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표지가 이쁜 책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책은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해서 더욱 인상에 남아있다. 작가의 다른 책은 보지 못했었는데 꽤 많은 책을 그동안 써 왔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남녀주인공 모두를 정치가로 삼아서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다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성향이 이번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 나오는 듯 하다.

 

작가는 스무살, 시인으로서 등단했고 그 이후 소설가로써 다시 등단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시와 소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다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사실 시인으로써의 그는 잘 모른다. 내가 읽은 책은 그의 소설이었고 그러므로 전혀 알 수 없는 그의 시의 세계지만 그가 시에 관해 표현한 글을 읽고 있자니 왜 시를 읽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시는 쓰기도 어렵지만 읽는 것도 만만한 예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의 눈은 아흔 아홉 번 얻었다가도 백 번 실명하기가 쉽상이다. 아직 미학적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멍청한 소리를 시에 대해 늘어놓기도 하는 까닭이 그래서이다. (238p)

특히 그의 이설집을 읽고나니 찾아봐야 할 책이 생겼다. 신경숙의 책와 김수영 평전이다. 자신이 직접 비교해 본 후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필력했던 그의 기고.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너무도 궁금해서 직접 검색을 해서 찾아봐야만 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미 어떤 사건인지 잘 알고는 있으나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문장을 세세히 비교해 본 적은 없어서 궁금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간에 나는 그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기고를 하고 난 후 오로지 아웃사이더 작가로서 묵묵히 살아가겠다.(401p) 라고 말했던 그의 일간지 인터뷰 기사를 보는 순간 그 '아웃사이더'라는 표현이 어쩌면 작가의 실제의 모습과도 가장 비슷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한 권의 책이 더 눈에 들어오는 데 만약 좋아하는 책 꼭 한권을 저승까지 챙겨가야 하는 게 극락왕생의 필수조건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수영 전집2?>>를 고를 것이다.(278p) 라고 말한 그의 문장에서 나는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그의 작품도 아닌 평전을 꼽았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라는 숫자로 보아서 분명 1권도 있다는 소리같인데 1권을 아닌 2권을 고른 작가의 선택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 또한 궁금치 않을수 없다. 알려면 직접 읽어봐야 한다.

 

본문에서는 자신이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또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글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한 사람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도 알고 나도 개인적으로 알았던 사람이라서 더욱 반갑게 글을 읽었다. 엄홍길 산악인에 가려서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산악인 박영석.

 

 내가 아는 목사님의 동생분이시라 외국 생활을 할때 몇번 뵙고 도움을 받았다. 워낙 한국에 잘 계시지 않는 분이어서 한국에 와서는 뵙지 못했었는데 어느날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허망해했던 기억이 났다. 장례식엔 엄마가 대신 다녀오셨는데 작가가 아는 그분의 이야기를 읽으니 더욱 반가왔다. 아는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 마냥 말이다.

 

또한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강아지 토토에 관한 글들은 한 챕터를 할애해서 '토토는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붙여서 따로 편집을 할만큼 애정을 보이고 있다. 책의 제일 앞에 있는 글자도 역시 '토토에게'이다. 작가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자 식구이자 동반자임에 분명했던 토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 글들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이 보여 토토는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행복했겠구나를 더욱 느끼게 만든다. 지금은 다른 강아지를 입양해서 잘 데리고 살고 있겠지. 아마도.

 

토토뿐 아니라 또 한 챕터에 오롯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시인 함성호씨'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다. 작가가 그와 만나면서 있었던 일, 그와 통화하면서 느꼈던 일, 또는 그를 생각하면서 적었던 글들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아옹다옹 거리고 때로는 든든한 형처럼 의지할 곳도 되어 주는 시인 함성호. 나는 함성호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나에게 시란 분명 어려운 부분에 틀림없지만 왠지 이렇게 알아온 '함성호'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친숙해져버려(이응준 작가 덕분에) 만약 함성호의 시인의 시를 읽게 된다면 좀 더 가깝게 읽혀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특히 작가가 처음 함성호 작가를 만났을 때를 묘사해 놓은 장면이 인상적이다. 왠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전생을 표현해 놓은 듯 한 묘사가 아닌가. 작가의 글솜씨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한시간 쯤 뒤 기골이 장대한 함성호가 골목 어귀에 들어찬 어둠을 뚫고 노변 파라솔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 정면으로 저벅저벅 걸어올 때 언뜻 나는 그가 현대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고구려 무사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337p)

'책은 친구다!'라는 나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작가의 책에 관한 표현은 정말 다양했다. 정말 끝도 없이 나올 것만 같은 '책은 ~다'. [책과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글에서 그는 끊임없이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책을 비유했다. 책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물건이다. 책은 나무다. 책은 반도체다. 책은 물이다. 책은 베개다. 그러면서 요즘 영화에서는 책을 무기로도 쓰고 있다고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그의 책은 영혼의 무기라는 제목이 아니어도 실제로 무기로 쓸 수 있을만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다. 책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체인 것이다. 비록 손에 잡히는 유기체이기는 하나 말이다.

 

또한 사람이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롭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자가 강자다. 라고 주장하면서 책을 읽으면 혼자 있을 수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138p)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문제점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는 것 아닐까. 누구도 곁에 없고 혼자 죽는다고 해서 고독사라는 말이 붙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고독사는 고독해서 외로워서 죽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싶은가. 책을 읽어라. 책은 당신에게 훌륭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작가의 이 글을 읽으면서 백번이고 천번이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판 신문에는 책코너가 따로 나온다.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말에서는 김훈 작가의 신간이 실렸다. 사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기사를 읽는 순간 편집자 레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글귀다. 영혼의 무기를 읽다가 잠시 멈췄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글을 쓸 당시 기자는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다시 한번 더 정성을 들여 찬찬히 기사를 읽게 된다. '흰 옷에 떨어진 피보다 선명한 중도'라는 제목이 눈에 계속 들어온다. 내가 느끼는 작가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한다. 그는 중도를 지키고자 하나 그 중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글로써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작가도 많지만 그의 경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누가 뭐라고 비웃듯 훗날의 나는 정말로 희극을 쓸 것이다.(426p)라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언젠가는 쓸 그의 희극을 읽고 싶어진다. 누구보다도 시니컬한, 그러면서도 중도성향의 무심한 허무주의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러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는 약간은 블랙코미디적인 희극이 나오지 않을까.

 

예외없음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형수다.(6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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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시선 - 합본개정판 모중석 스릴러 클럽 2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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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던 당신의 삶 역시 인생도 언제든 갈가리 찢길 수도 있다. 배를 가르면 쏟아져 나오는 내장처럼 언제든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다. 때로는 헝클어진 인생이 스르르 풀릴 때도 있다. 느슨해진 올이 풀리고 솔기가 툭 뜯겨나간다. 이 모든 변화는 아주 느리게 시작된다. 쉽게 알아챌 수 없을만큼.(25p)

수감중인 죄수, 그리고 그를 면회하러 온 검사보. 평범한 두 아이의 엄마인  한 여자. 그리고 실종된 남편. 이웃집 남자의 시선을 즐기는 한 여자. 각자의 인생을 살던 사람들은 묘한 곳에서 기이하게도 엮여든다. 단 한번의 시선, 단 하나의 사건. 그 모든 사건은 이 모든 사람들과 관계가 있다. 아무 관계도 없었던 곳에서 폭격을 맞아버린 나비효과처럼 말이다.

 

번역자는 할런 코벤 소설의 인기를 세가지로 크게 나누어 놓았다. 가독성. 쉴새없이 읽혀 나간다. 이 흐름을 타버린다면 단번에 마지막 페이지까지 달려버릴수도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후킹. 독자를 조종한다. 끌어당긴다. 절대 한번 잡은 독자를 놓아줄 생각이 없다. 잘못 걸려든 낚시대의 생선들처럼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호감가는 캐릭터. 평범한 이웃을 등장시켜서 동질감을 주고 있다.

 

세가지의 요소는 이 책에도 여지없이 적중하고 있다. 합본으로 인해서 더욱 두툼해진 책은 확실히 스릴러라는 이런 것이다!를 보여주기로 하는 듯이 내쳐 스피디하게 전개된다. 몇번의 반전을 거듭하면서 네가 생각한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를 뒤틀기라도 하는듯이 교묘하게 나의 손길을 피해버린다. 더군다나 꽤 많은 등장인물이 나오지만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 놓음으로 헷갈리거나 다시 찾아봐야 할 여지도 주지 않는다. 역시 할런코벤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대가의 솜씨다.

 

그저 보통인 어느날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현상하려고 맡겼을 뿐이고 단지 사진을 찾았을 뿐이다.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는 그가 좀 마음이 들지 않기는 했지만 그저 찾아온 사진을 보면서 그때 당시를 즐겁게 회상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 하나. 그녀가 찍지 않은 사진이 그 속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다섯명의 남자와 여자. 그중 한 명의 얼굴에는 엑스 표시가 되어 있다. 다소 낡은듯한 사진. 분명 자신이 찍은 것은 아니고 자신이 현상을 부탁한 것도 아닌 사진. 그녀는 사진을 자세히 쳐다보다 한 남자를 보며 남편의 옛모습이 아닌가 의심을 한다. 그 사진은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 속에 둔 것이며 그녀는 이 사진으로 어떤 사건을 맞이하게 될까.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일상적인 행동을 하지만 그녀가 올려둔 오래된 사진 한 장에 인상이 변한다. 분명 무언가 있다. 숨겨진 무언가. 그녀는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만 전화 한통을 받은 남편은 그녀에게 아무런 전갈을 남기지 않고 그 밤에 차를 타고 나가버린다. 그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고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남편, 그녀는 이제 서서히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인간은 계획을 세우고, 신은 비웃는다.(223p)

단 한장의 사진이었다. 단 한장의 사진으로 평범했던 일상은 깨어졌고 단란한 가족은 더이상 없었으며 그녀는 정신없이 그를 찾아 헤맨다. 실종신고를 했지만 처음에는 단순 실종으로 받아들이는 경찰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범죄의 증거가 뚜렷이 남아 있지 않으면 사건으로 접수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그녀의 사건 또한 그렇게 된다. 겨우 그에게서 전화를 받지만 자신들만이 알수 있는 암호를 쓰면서 끊어버린 전화. 단순 실종이 아닌 사건이라는 것을 직감한 그녀지만 경찰들은 이 사건을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적인 형사나 경찰이 나서서 히어로처럼 멋지게 사건을 해결하지 않는다. 단순한 사건인듯 보였던 이야기는 점점 살을 덧붙여가며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간다. 처음에는 몇코로 시작했던 뜨개질이 점점 그 부피를 늘려가며 그 넓이를 늘려가는 것과 마찬가지 모양새가 된다. 어느정도 커진 상태에서 마무리가 되어 갈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단 시작했으면 끝을 보아야 할 것이다. 단 한 번의 시선을 책에 꽂았지만 당신은 이제 끝이 날 때까지 단 한번도 시선을 돌릴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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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도선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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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그래야만 했냐!"

영화대사가 아니다. 작가에게 하고픈 말이다. 꼭 그래야만 했습니까? 작가님. '나'의 인생은 꼭 그렇게 끝나야만 했느냐는 겁니다.

 

화장실에서 남들 모르게 나를 낳아야만 했던 십대의 나의 엄마. 그녀가 나를 기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이런 운명으로 살아야 한다고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남들과 다르게 시작된 나의 인생은 왠지 모르게 [시체읽는 남자]의 '자'의 인생과 오버랩 되어진다.

 

시체 읽는 남자

작가
안토니오 가리도
출판
레드스톤
발매
201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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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잘 되지 않았던 자의 인생. 그에게는 하나 남은 가족인 누이동생이 있었고 나에게는 그나마 아무도 없는 홀홀단신이니 오히려 내가 더 낫다고 해아하나. 꼬여도 그렇게 꼬일 수 없었던, 자신이 무언가를 해보려고 해도 주위 사람들에 의해서, 높은 관리들에 의해서 치이고 짓밣히기만 했던 자의 인생. '머피의 법칙'도 그보다 더할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의 인생이었지만 그런 그의 인생도 나만큼 불행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누가누가 더 불행한가 대결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러므로 생각해야 했다. 뜻하지 않은 분노가 나를 발견하기 전에 몸을 숨기듯이 재빠르게 눈동자의 빛을 끄고 어둡고 적막한 내 안으로 침잠해서 분노의 원인은 찬찬히 되짚어 보면서, 내가 그리는 나의 모습이 적확하게 손아귀에 잡힐 때까지 나는 나를 철저히 숨기고 있어야 했다.(12p)

아버지는 모르고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버려지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고아원에서 살면서 책만 읽는 조용한 아이였던 나는 초등학교때 나 자신도 모르고 있었던 감각을 익혀버리게 된다. 그렇게 소중하게 기르고 있었던 새가 친구에 의해 죽고 난 이후 감정이 폭발해서 친구를 때리기에 이른다.

 

그 때, 나는 궤적을 읽었다. 어떻게 주먹이 날아오는지 어떻게 피해야만 하는지 배운적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적으로 몸이 움직이고 발이 스탭을 밟고 손이 움직이고 주먹이 뻗어나갔던 것이다. 그런 독보적인 감각은 배운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원하지 않았던 방향인 일진의 세계로 접어들고 말아버린 나의 인생. 

 

나는 고개를 숙여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고 그와 동시에 오른쪽 어깨를 뒤로 뺀 뒤 허리를 중심으로 회전하듯 몸을 틀었다. 사선으로 휘어져 있던 상반신이 튕겨나가듯 회전했고 그 맨 앞쪽에 나의 주먹이 놓여 있었다.(55p)

재능과 노력이라는 면에서 봤을 때 무엇이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에디슨은 그렇게 말했었다.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에디슨은 노력의 비중을 높게 잡았지만 요즘 예술가들을 보면 타고난 재능이라고 하는 것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비단 예술가뿐 아니라 체육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운동을 한 경우라면 그 자녀가 유전자를 물려받아서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 아니었던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무언가로부터 피해서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자세가 무의식중에 자리잡고 있었던 아이임에 틀림없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라'고 했던 복싱계의 유명한 그 말을 그대로 따라서 행동하는 것이다. 의도하지 않아도 말이다. 그것은 노력하지 않았으므로 재능에 해당하는 것일까.

 

그것이 하늘이 내려준 재능이라는 것을 그때의 나는 아직 몰랐음에도 몸이 알아서 반응했다.(69p)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 학창시절을 거치고 성장과정을 겪으면서 어른이 되기까지의 일을 그린 이 소설은 어찌보면 성장소설의 장르로 보여진다. '나'라는 존재가 권투에 재능을 보이고 그 재능을 발견해 준 선생님에 의해서 키워지고 권투, 딱 하나만으로 성공을 하고 지역에서, 나라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유명해진다는 스토리는 성장소설 뿐 아니라 뻔히 보는 그런 드라마적인 요소를 구성하고 있는 한국소설인지로 모른다.

 

작가는 그런 뻔한 반열에서 피하고 싶었나 보다. 나라는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죽죽 올라가게만 그려대더니 하루아침에 추락시켜 버렸다. 차라리 아무것도 몰랐을 때의 내가 나은 법이다. 쓴맛, 단맛, 특히 뒤쪽에 이르러서 모든 종류의 달콤한 맛을 알아버린 이후의 쓴 맛은 훨씬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그 달콤함을 모르던 시절에 비해서 말이다.

 

하나둘씩 없어지는 것도 아닌, 하루아침에 벼락을 맞듯이 뒤통수를 맞아버리는 나의 인생은 어떻게 봉합해야 하는가. 그래도 아직 이십대이니 너의 운명은 창창하다고, 너의 담임이 너에게 해준 것처럼 너도 그렇게 다른 이들을 위해주면서 살아가라고 위로라도 해주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절망의 나락에 빠져서 사리 분별 못하고 인생을 포기해만 할 것인가.

 

 그러나 그 모든 게 잘못된 생각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평가에 흔들리는 내가 싫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이 그대하는 내가 될 수 없을까봐 두려웠던 거였다.(315p)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는 얼마나 다른가.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인생을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다 자신의 한번뿐인 인생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또한 자신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런 나의 존재는 이때까지 누굴 위해서 살아온 것일가. 자신이 짝사랑 하던 아라를, 아니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던 초등학교때의 친구들을, 그도 아니면 자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고 최고의 인생을 선물해 준 담임을 위해서? 그 누구를 위해서 나는 살아왔던 것일가. 이제라도 나는 나만의 인생을 새롭게 써내려 가야만 하지 않겠는가.

 

[소년시대]의 주인공은 네 계절을 지나고 한 해를 보내면서 사건을 겪었고 그로 인해서 조금은, 한뼘정도는 더 성장한 계기를 맞이했다. [스파링]의 나는 어려서부터 계속 사건의 연속이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던 원하지 않던 그 소용돌이 속에서 삶을 살아왔었다. 그렇다면 나의 성장은 어디까지 이루어진  것일까.

 

소년시대 1

작가
로버트 매캐먼
출판
검은숲
발매
201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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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속에서는 나는 아직 이십대이다. 아직 내 인생은 시작되지도 않은 것이다. 복싱에서 실제 형식을 취한 연습 경기를 '스파링'이라고 한다. 이제까지 나의 삶은 스파링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이제부터 스파링을 해만 하는 것인가. 상대가 누가 되었던 간에 스파링을 통해서 나는 나의 삶을 다시 정비할 것이다.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지금부터 시작하는  스파링에 달려있다.

 

표지의 '스파링'이라는 글자는 하늘을 연상시키는 파란색이다. 군데 군데 보이는 하얀색은 구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가장 맑고 쾌청한 날씨가 아니었던가. 우리는 언젠가 다가올 파란 하늘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감이 틀림없다. 도선우 작가는 아마도 '나'의 인생을 통해서 그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요, 작가님 뜻대로 하시옵소서"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정말 순수하게 나를 응원하는 사람들일 뿐이라고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마치 마녀의 솥에서 피어오르는 적색 기운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서 피어오르는 핏빛 독기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결국 어느 순간이든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33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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