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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무기 - 이응준 이설집
이응준 지음 / 비채 / 2017년 1월
평점 :
한 사람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그와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다. 그마저도 여의치 않다면 그가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이응준 작가의 생각과 그에 관한 것들을 조금이라도 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이 [영혼의 무기]를 읽는 시간이다.
그는 토토라는 아주 사랑을 주었던 강아지가 있으며 시인 함성호와 꽤 두터운 친분을 자랑하고 있고 중도성의 정치성향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격을 표현한 말이 있어서 인용해 본다. 낙관과 비관이 이상한 비율로 뒤섞인, 허무주의에 입각한 독실한 탐미주의자? (330p) 이보다 더 완벽한 표현은 없는 듯 하다. 누구보다도 자신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이다.
제목과 표지에서 비슷한 느낌의 책을 비교해보게 된다. 하루키의 [잡문집]이다. 같은 빨간색 계열의 표지. 잡문집과 이설집. 약간은 다른 뉘앙스이지만 글의 성격면에서 볼 때는 비슷한 면이 많다. 자신이 관심있는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포함해서 시상식에서 했던 말 또는 기사들을 비롯해서 여러가지 잡다한 글들을 묶어 놓은 것이 잡문집이라면 이설집은 오래전 자신이 썼던 글들부터 최근까지 썼던 글들 - 정치에 관한 자신의 생각도 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쓴 글도 있으며 어느 한 작가의 작품에 관한 글도 있다 - 을 인터뷰를 포함해서 모아 편집했다. 이만하면 상당히 비슷한 성격의 책이 아닌가.
이응준이라는 이름이 낯선가?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내 연애의 모든 것]이라는 표지가 이쁜 책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 책은 나중에 드라마로 만들어지기도 해서 더욱 인상에 남아있다. 작가의 다른 책은 보지 못했었는데 꽤 많은 책을 그동안 써 왔다는 것을 이번에야 알게 되었다. 남녀주인공 모두를 정치가로 삼아서 굉장히 독특한 케이스다라고 생각했는데 작가의 성향이 이번 책에서도 그대로 묻어 나오는 듯 하다.
작가는 스무살, 시인으로서 등단했고 그 이후 소설가로써 다시 등단한 독특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만큼 시와 소설을 자유자재로 구사할수 있다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사실 시인으로써의 그는 잘 모른다. 내가 읽은 책은 그의 소설이었고 그러므로 전혀 알 수 없는 그의 시의 세계지만 그가 시에 관해 표현한 글을 읽고 있자니 왜 시를 읽는 것이 만만치 않은 작업인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시는 쓰기도 어렵지만 읽는 것도 만만한 예술이 아니라는 말이다. 시의 눈은 아흔 아홉 번 얻었다가도 백 번 실명하기가 쉽상이다. 아직 미학적 기준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어제와는 전혀 다른 멍청한 소리를 시에 대해 늘어놓기도 하는 까닭이 그래서이다. (238p)
특히 그의 이설집을 읽고나니 찾아봐야 할 책이 생겼다. 신경숙의 책와 김수영 평전이다. 자신이 직접 비교해 본 후 자신의 의견을 가감없이 필력했던 그의 기고.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 너무도 궁금해서 직접 검색을 해서 찾아봐야만 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 이미 어떤 사건인지 잘 알고는 있으나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고 문장을 세세히 비교해 본 적은 없어서 궁금했다. 그러다보니 작가가 의도하지 않았던 의도했던 간에 나는 그 작가의 작품이 궁금해졌다.
기고를 하고 난 후 오로지 아웃사이더 작가로서 묵묵히 살아가겠다.(401p) 라고 말했던 그의 일간지 인터뷰 기사를 보는 순간 그 '아웃사이더'라는 표현이 어쩌면 작가의 실제의 모습과도 가장 비슷한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그를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한 권의 책이 더 눈에 들어오는 데 만약 좋아하는 책 꼭 한권을 저승까지 챙겨가야 하는 게 극락왕생의 필수조건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김수영 전집2?>>를 고를 것이다.(278p) 라고 말한 그의 문장에서 나는 김수영이라는 사람이 대체 누구길래 그의 작품도 아닌 평전을 꼽았을까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었다. '2'라는 숫자로 보아서 분명 1권도 있다는 소리같인데 1권을 아닌 2권을 고른 작가의 선택기준은 무엇이었을까 이 또한 궁금치 않을수 없다. 알려면 직접 읽어봐야 한다.
본문에서는 자신이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 또는 아직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 관한 글들도 많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었던 한 사람에 관한 글이 인상적이었는데 작가도 알고 나도 개인적으로 알았던 사람이라서 더욱 반갑게 글을 읽었다. 엄홍길 산악인에 가려서 사람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산악인 박영석.
내가 아는 목사님의 동생분이시라 외국 생활을 할때 몇번 뵙고 도움을 받았다. 워낙 한국에 잘 계시지 않는 분이어서 한국에 와서는 뵙지 못했었는데 어느날 실종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허망해했던 기억이 났다. 장례식엔 엄마가 대신 다녀오셨는데 작가가 아는 그분의 이야기를 읽으니 더욱 반가왔다. 아는 사람을 길에서 우연히 만난 것 마냥 말이다.
또한 자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강아지 토토에 관한 글들은 한 챕터를 할애해서 '토토는 생각한다'라는 제목을 붙여서 따로 편집을 할만큼 애정을 보이고 있다. 책의 제일 앞에 있는 글자도 역시 '토토에게'이다. 작가에게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자 식구이자 동반자임에 분명했던 토토.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이 글들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이 보여 토토는 사랑을 많이 받았겠구나, 행복했겠구나를 더욱 느끼게 만든다. 지금은 다른 강아지를 입양해서 잘 데리고 살고 있겠지. 아마도.
토토뿐 아니라 또 한 챕터에 오롯이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시인 함성호씨'라는 제목이 붙은 챕터다. 작가가 그와 만나면서 있었던 일, 그와 통화하면서 느꼈던 일, 또는 그를 생각하면서 적었던 글들이다. 때로는 친구처럼 아옹다옹 거리고 때로는 든든한 형처럼 의지할 곳도 되어 주는 시인 함성호. 나는 함성호라는 이름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나에게 시란 분명 어려운 부분에 틀림없지만 왠지 이렇게 알아온 '함성호'라는 이름은 너무나도 친숙해져버려(이응준 작가 덕분에) 만약 함성호의 시인의 시를 읽게 된다면 좀 더 가깝게 읽혀지지 않을까 하는 느낌도 든다. 특히 작가가 처음 함성호 작가를 만났을 때를 묘사해 놓은 장면이 인상적이다. 왠지 최근 종영한 드라마 '도깨비'의 전생을 표현해 놓은 듯 한 묘사가 아닌가. 작가의 글솜씨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한시간 쯤 뒤 기골이 장대한 함성호가 골목 어귀에 들어찬 어둠을 뚫고 노변 파라솔에 멍하니 앉아 있는 내 정면으로 저벅저벅 걸어올 때 언뜻 나는 그가 현대인으로 옷을 갈아입은 고구려 무사라는 착각에 빠져들었다. (337p)
'책은 친구다!'라는 나의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작가의 책에 관한 표현은 정말 다양했다. 정말 끝도 없이 나올 것만 같은 '책은 ~다'. [책과 혁명]이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글에서 그는 끊임없이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책을 비유했다. 책은 다양한 얼굴을 가진 물건이다. 책은 나무다. 책은 반도체다. 책은 물이다. 책은 베개다. 그러면서 요즘 영화에서는 책을 무기로도 쓰고 있다고도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그의 책은 영혼의 무기라는 제목이 아니어도 실제로 무기로 쓸 수 있을만한 무게를 자랑하고 있다. 책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다양한 무기체인 것이다. 비록 손에 잡히는 유기체이기는 하나 말이다.
또한 사람이 혼자 있지 못해서 외롭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자가 강자다. 라고 주장하면서 책을 읽으면 혼자 있을 수 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사람만이 책을 읽을 수 있다. (138p)라는 말을 하고 있다. 현대사회의 가장 문제점 중 하나가 외로움이라는 것 아닐까. 누구도 곁에 없고 혼자 죽는다고 해서 고독사라는 말이 붙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 고독사는 고독해서 외로워서 죽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싶은가. 책을 읽어라. 책은 당신에게 훌륭하고 좋은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나는 작가의 이 글을 읽으면서 백번이고 천번이고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말판 신문에는 책코너가 따로 나온다. 새로 나온 책을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주말에서는 김훈 작가의 신간이 실렸다. 사야겠다라는 마음을 먹고 기사를 읽는 순간 편집자 레터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많이 읽어본 글귀다. 영혼의 무기를 읽다가 잠시 멈췄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글을 쓸 당시 기자는 나와 같은 책을 읽고 있었던 것이다.
왠지 모를 반가움에 다시 한번 더 정성을 들여 찬찬히 기사를 읽게 된다. '흰 옷에 떨어진 피보다 선명한 중도'라는 제목이 눈에 계속 들어온다. 내가 느끼는 작가는 보수와 진보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한다. 그는 중도를 지키고자 하나 그 중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다. 글로써 자신의 정치색을 드러내는 작가도 많지만 그의 경우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지금 누가 뭐라고 비웃듯 훗날의 나는 정말로 희극을 쓸 것이다.(426p)라고 말했던 그의 말처럼 언젠가는 쓸 그의 희극을 읽고 싶어진다. 누구보다도 시니컬한, 그러면서도 중도성향의 무심한 허무주의자의 모습을 담고 있는, 그러면서도 절대 놓치지 않는 약간은 블랙코미디적인 희극이 나오지 않을까.
예외없음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사형수다.(689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