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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박연선 지음 / 놀 / 2016년 7월
평점 :
다들 나만 남겨두고 떠난겨? 말도 안된다. 내가 비록 삼수생이기는 하나 그래도 나도 친구들도 있고 내 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말이지. 이 시골에 나만 두고 다들 몰래 몰래 가버린 것이다. 공중파도 겨우 잡히는 곳이며 핸드폰 기지국은 없는지 아예 쓸 생각을 말아야 한다. 즉 핸드폰=시계라는 공식이 성립되는 순간이다.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게 일상인 나, 무순,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이후 할머니 곁에 남겨졌다. 돈 오십만원과 함께 당분간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쪽지와 더불어 말이다. 가족들은 혼자 남겨진 할머니가 심히 걱정이 되긴 했나보다. 그렇다고 날 남겨두면 어떡하라는겨.
'무순아, 잠시만 할머니 잘 부탁한다.' 그 옆에 5만원 짜리 10장.
진짜 열받는 건 '할머니 잘 부탁한다' 뒤에 붙은 하트 뿅뿅!
하트가 말이 돼,하트가?
첩첩산중 산골짝에 딸을 버려두고 가면서 하트가 그려집디까? 아빠!(20p)
할아버지의 죽음 이후에도 할머니는 겉으로는 멀쩡하시다. 시간 맞춰 드라마도 따박따박 보시고 농사일을 하시러 아침 꼭두새벽부터 들로 산으로 쏘다니신다. 그러면서 나한테 지청구를 날리시는 것도 잊지 않는다. 어쩌라고~ 나는 지금 여기 있는 이 상황마저 답답할 뿐이다.
우연히 내 손에 들어온 어렸을 때 노트. 내가 쓴 거다. 휙휙 넘기다보니 어렵쇼! 무슨 보물지도 같이 생긴게 있다. 그렇다면 당연 모험을 떠나줘야 하는 것이다. 할머니의 잔소리도 피할겸 농사일도 피할겸 지도를 손에 들고 나는 길을 떠난다. 내가 찾는 그 보물은 과연 무엇일까. 그 당시에 할머니의 은비녀라도 몰래 숨겨놓았을까.
열심히 보물을 찾으러 떠났지만 길은 순탄치 않다. 우여곡절 끝에 오래전에 묻어준 듯한 박스를 하나 찾긴 했지만 보물은 커녕 오래된 이빨 하나와 손으로 만든 목각인형 그리고 배지하나. 이게 뭐람. 실망을 거듭한 나머지 나는 그냥 묻어두기로 결심을 한다. 그러나 조각품이 맘이 걸린다. 그냥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대번에 버렸을테지만 손으로 하나하나 정성들여 만든 것같은 그 작품은 쉽게 버릴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원래 있던 자리에 조용히 묻으러 왔던 나는 우연히 그곳에 있던 한 중학생 아이와 마주치고 그것을 계기로 인해서 한 사건에 같이 휘말리고 만다. 십오년전에 이 마을에 있었던 사건. 잔치로 인해서 온 동네 어른들이 여행을 가서 마을이 텅 빈틈에 소녀 네명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둘은 같은 나이였지만 하나는 더 큰 아이였고 마지막 꼬마까지 같은 동네 살다뿐이지 서로 연관성도 전혀 없는 아이들 네 명이 한날에 어떻게 동시에 없어져질 수 있었던 것일까.
경찰들도 오랜 시간을 두고 추적을 하고 수사를 했지만 난항에 빠져버리고 만 사건. 그 사건피해자 중의 한 명이었던 아이, 그 집에 양자로 들어온 아이가 바로 이 중학생 꼬마녀석, 창희다. 경찰도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을 중학생과 삼수생이 풀어나간다는 설정도 황당하지만 그 모든 사건의 배후가 알려지고 나면 아무런 연결점이 없는 내용에 더욱 씁쓸해져 버리고 만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솔직히만 말했다면 이렇게 큰 사건으로 발전을 할 리도 없었고 각 가정이 더욱 큰 고통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 아닌가. 더군다나 가장 큰 사건이 그 오랜시간 동안 묻혀져 있었으니 그동안 다른 피해자가 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아 하나.
깔깔대고 웃지만 마지막에 실상이 다 밝혀지고 나면 사건의 심각성에 다시 한번 몸서리 치게 되는 이야기. 보통 코지 미스터리라고 하면 사회성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사회성이 아주 강하게 물밑에 남겨져 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마지막에 실상을 밝혀주니 더욱더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된다. 믿을 사람 하나 없네. 무순이가 그렇게 말하지나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