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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평점 :
그렇지만 가을이 깊어지고 숲의 나무들이 완전히 잎새를 떨구면,
파우더를 뿌린 것 같이 하얀 아사마 산 표면이 다시 뚜렷이 보인다.(34p)
처음 비행기를 타고 도착한 곳은 뉴질랜드 공항이었다. 높은 건물들로 막혀있는 하늘이 아니라 탁트인, 360도 어디를 둘러봐도 하늘뿐인 경험을 처음 했다. 하늘만 봐도 하루가 금방 가는 시절이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 살고있는 아파트와는 다르게 오밀조밀 아기자기한 집들이 모여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친구네를 가도, 이웃집을 가도 다들 다른 집의 모습이 처음 가는 집은 구경하느라 바빴다. 그런 구경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저마다 특색있는 집들. 내부도 다 달라서 어느집을 가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시 획일화된 아파트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가끔씩은 그냥 일반적인 집이 그리울때가 있다. 좁은 나라에 여러 사람이 모여살기 위해서 지어졌던 아파트는 평수에 따라서 자신이 가진 자산의 일종이 되었고 집이란 안전하고 편리하게 살면 된다는 신념하에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요즘은 자신이 직접 설계해서 집을 짓는 경우도 많아지긴 했다. 신문에서 가끔씩 특이한 건축물을 볼 때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Architetecture, 건축을 소재로 한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가 될까. 소수의 인원으로 꾸려진 설계사무소. 노미야 선생님을 중심으로해서 돌아가는 일터.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신입, 사카니시. 여름을 맞이해서 별장으로 떠나서 일이 진행된다. 다른 때와는 다르게 도서관 경합에 참여하게 된 사무소. 여름동안 도서관 설계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요즘만 해도 컴퓨터가 발달하고 프로그램도 많아져서 훨씬 더 자세하고 편하게 설계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야기속에서는 아침마다 사각거리며 연필을 깍고 제대로 된 설계사가 되기 위해서 수십개의 동일한 줄을 긋는 연습을 하는 듯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풍부하게 드러난다. 몇 안되는 직원들끼리 여름별장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일을 하는 모습 또한 그러하다. 지금 사람들에게 그런 식으로 일을 하라고 시켰다간 다 도망가지 않을까.
설계와 건축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인간관계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요소가 아주 다분하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사랑이야기 또한 양념으로써 충분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건축이란 단지 겉모습이나 내부설계만 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노미야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도서관을 설계하면서 그 속에 들어가는 책꽂이의 형태와 재질까지도 생각했고 책상이나 의자까지도 꼼꼼하게 정하고 배치를 하고 그것을 미니어처로 만드는 모습에서 정말 이 사람이라면 내가 살고 싶어하는 집을 지어달라고 맡겨도 되겠다는 안심이 들었다. 자신이 지어주었던 집에 대한 보수까지도 챙기는 모습에서는 더욱더 말이다.
건축에는 사용에 견디는 사용 가능 햇수가 있다. 보기만 하는 작품과 달리,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고, 사용하고 조금씩 상하게 하기 때문이다.(389p) 작품이야 그냥 바라만 보면 된다. 하지만 건축이라는 것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이 된다. 그러니 더욱 튼튼하고 보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간과하지 않은 노미야 선생님의 센스가 대단하다 싶다. 이야기속이 아닌 실제 세상에서도 이런 설계가가 있다면 더욱 좋을텐데 말이다.
신입사원인 사키니시를 통해서 처음 일을 맡게 된 두려움과 활기참, 그리고 신선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앟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 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 것이다.(215p) 선생님이 맡기신 일을 잘하기 위한 사카니시의 감정을 이런 비유로 설명해 놓고 있다. 너무나도 확실히 공감할수 있는 비유가 아닌가. 주어진 일을 새 노에, 일의 시작을 노젓기에 비유하다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일단 올라탔으니 신나게 그리고 열심히 저어야 할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물속으로 가라앉고 말 것이다. 사카니시는 자신이 이 조직속에서 어떻게 잘 스며들 수 있는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경합은 이미 담합이 되어 있어서 자신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한 선생님이 직접 참여한 도서관. 노미야건축설계사무소는 경합에서 이길 수 있을까. 이겨서 그들이 만들어 내는 도서관은 어떤 모습일까. 스톡홀름 도서관을 참고로 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는 그들만의 도서관은 어떤 모양일까. 궁금해진다.
신문에서 연재되고 있는 기사중에 도서관을 취재해 놓은 기사가 있었다. 제주도의 도서관부터 가까운데 있는 도서관까지 저마다 자신만의 특징을 오롯이 담은 도서관들이 전국각지에 흩어져 있었다. 우리도 이런 멋진 도서관이 잇다고 자랑하고 싶다.
잠잠하니 그리고 담담하니 서술되어 있는 그 여름의 별장이 떠오르는 듯한 한 권의 이야기다. 산들 바람이 부는 짙은 숲속에 들어가서 해먹이라도 걸어놓고 여운을 즐기면서 자연속에서 읽어준다면 이야기 속에서 추구하는 작가의 마음이 더욱 공감할수 있지 않을까. 여름은 오래 그곳에, 그리고 이 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