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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의 미술관 (책 + 명화향수 체험 키트)
노인호 지음 / 라고디자인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빵이 구워지는 냄새, 막 깍은 잔디의 초록한 냄새, 갓 뽑은 커피의 구수함, 설탕을 녹였을때의 달달함, 그리고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새 책의 종이냄새. 내가 좋아하는 냄새들이다. 안타깝게도 이중에 인공적인 향은 포함되지 않는다. 어떤 이는 자신만의 향수를 지정해두고 꼭 쓰고는 해서 자신만의 향을 만들어 낸다는데 자연적인 향이 아닌 향을 맡았을때 바로 재채기가 나곤 하는 나로써는 향수는 쥐약인 셈이다.
시간이 날 때면 미술관에 가서 어슬렁거리는 것을 좋아했다. 딱미 미술에 조예가 깊어서 보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작품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평안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의도라던가 그림에 숨겨진 의미 같은것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내 느낌이 가는대로 그림을 보면서 이해를 하는 것이다.
그림과 향. 전혀 상관없을 것만 같은 두가지를 연결한다면 어떨까. 향수매거진 사업을 접고 잠시 방황하던 시절 떠난 미국에서 모네의 그림을 보다가 초록내음을 느낀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과 향을 접목시켰다. 그림을 보면서 그에 맞는 향을 맡아보는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그야말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바탕으로 저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그림 설명방법을 만들었고 그것을 책으로 내었다. 자신이 향수를 만드는 일을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생각지 못했던 획기적인 방법, 그것은 불현듯 다가오는 법이다. 자신이 일상적인 일을 하는 동안에 말이다.
다섯개의 샘플 향수가 포함되어 있는 이 책은 향수의 숫자에 맞게 모두 5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자존, 고독, 혁신, 본질, 그리고 일상. 다섯가지의 주제에 맞는 그림을 선택하고 그 그림들에 맞는 향을 부록으로 넣어둔 것이다. 각 챕터를 읽는 동안 향을 느껴도 좋겠고 향수 이름에 맞는 명화들을 볼때만 따로 느껴도 좋겠다. 구성되어 있는 다섯개의 향의 이름은 꿈, 별이 빛나는 밤에, 수련,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이다. 책에 실린 작품들을 볼때 하나씩 흠향해도 좋겠고 실제로 이 그림을 볼 기회가 있을 때 직접 들고 간다면 더욱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미리 조금씩 향을 맡아 보니 시중의 있는 향수와는 조금씩 다른 향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꿈'이라는 그림에 맞는 향은 만다린 오렌지, 레몬, 베티버에다가 화이트 머스크향을 섞었다. 향수가 한가지로만 이루어지지 않않듯이 이 그림에 맞는 향 또한 한가지가 아니라 그림에 어울릴듯한 향들을 선택해서 적당한 비율로 섞어 놓은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별이 빛나는 밤에'의 향이 그야말로 멋졌다. 일랑일랑과 핑크페퍼, 파출리로 이루어진 단순한 조합이지만 약간의 시원한 듯하면서도 푸르름이 느껴지면서도 어두움을 가져다 주는 것이 어둠을 나타내는 네이비 컬러와 밝음을 나타내는 노란빛이 소용돌이쳐 흐르는 그림을 연상케 했다.
고요함이 감도는 밤의 향기.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윽한 향의 시작.
하지만 무게감 있는 밤의 향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미세한 잔향은 아주 부드럽습니다.
오묘한 느낌의 밝은 향기를 포착해 내셨나요?
마치 이 작품속의 화려한 노란 별빛과 같이 밝고 영롱한 느낌입니다.(53p)
여름에 모네의 그림을 디지탈화 시켜놓은 전시회를 갔다 온 적이 있어서 아쉬웠다. 이 책이 그때 나왔다면 모네의 그림들을 보면서 이 향을 맡아볼 수 있었을텐데 하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시실 가득히 사방으로 둘러싼 그림들. 특히 입체화 시켜서 물살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주어서 살아있는 수련의 모습을 영상화시킨 작품을 보면서 이 향을 맡았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누구나 한번쯤은 본듯한 명화들이라서 더욱 부담없이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가 익히 언급했듯이 이 책은 그림에 관한 자세한 설명을 써놓지는 않았다. 책의 두께는 두껍지 않고 무게는 무겁지 않지만 그에 덧씌워진 향들로 인해서 충분히 무게감이 느껴지는 한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