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를 바탕으로
델핀 드 비강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자살한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그려내는 [내 어머니의 모든 것], 노숙자 소녀와 천재소녀의 우정을 그린 [길위의 소녀]에 이어서 그녀의 세번째 작품을 읽는다. [실화를 바탕으로] 라는 제목의 이 책은 언뜩 보면 진짜 자전적인 이야기를 그려내는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의 직업이 작가이고 이름이 작가 이름과 같아서 더 그럴수도 있겠다. 이런 구성을 한국작품에서 본 적이 있다. 그 작품과 비교했을때 이 작품은 얼마나 다를까.

 

그저 평범해 보이는 두 여자의 우정을 그린 작품이라 생각했다. 큰 착각이고 오산이었다. 이야기가 전개되어감에 따라 약간은 '미저리'적인 분위기를 자아냄과 동시에 무언가 숨겨진 이야기가 있는 듯도 보이고 마지막 40페이지를 남겨 놓은 지점에 이르러서는 내가 이때까지 읽은 것은 누구의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멍하니 있게 되었다. 분명 같은 작가의 세 작품을 읽었는데도 불구하고 저마다의 느낌이 너무나도 달라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 델핀. 그녀는 우연히 L이라는 존재를 만나서 우정을 나누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다 컸고 남자친구는 따로 있으며 딱히 자신이 꼭 챙겨줘야 할 일이 없는 그녀는 책을 써야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글을 쓰기가 힘들어진다. 펜을 잡을 수 없을 뿐더러 컴퓨터의 자판조차도 치기 힘들어진 것이다.

 

그 사실은 단지 그녀와 L 만이 알 뿐. L은 그녀의 일을 대신 처리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쓸 일이 많지 않아 보이지만 작게는 메일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서 작가라면 더욱 많은 쓸 일들이 있을 것이다. 대필작가인 L은 아무런 조건 없이 델핀을 도와주게 되는데 그녀가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소설 즉 픽션을 쓰는 델핀에게 L은 실제적인 이야기를 쓰라고 조언한다. 소설은 단지 만들어 낸 이야기임에 틀림없는데 그녀는 왜 이토록 현실성을 고집하는 것일까. 현실적인 것이 바탕에 깔려있지 않은 이야기는 허무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렇게 사실성을 주장하는 그녀는 델핀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기는 한 것일까.

 

책에 나오는 인생이 진짜인지 아닌지, 그게 그렇게 중요해?

그래, 중요해. 그게 사실인 게 중요해.(88p)

 

소설가들이 이야기를 구상할 때 어떤 식으로 할까. 주위에서 어떤 소재를 채택하거나 에피소드들을 발견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허구적인 이야기를 덧붙여 낼까 아니면 머리속에서 밑도 끝도 없는 상상을 하게 될까. 아무리 허구적인 이야기라 할지라도 이야기를 쓰다보면 한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상상력에는 제한이 있으므로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현실적인 이야기가 들어갈 것이고 자신을 비롯한 친구들이나 가족들 조차도 등장인물이 되기도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몰라도 당사자들은 알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네 인물들은 인생과 관계가 있어야 해.(117p) L이 주장하는 것처럼 극중의 인물들은 작가의 인생과 관계가 있기 마련이다.그것은 아마도 현실이 훨씬 더 멀리 갈 배짱이 있기 때이겠지.(301p) 라고 이야기했던 누군가의 말을 빌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사실이다.

 

다리를 다치게 된 델핀. 그 자리에 우연히 있었던 L. 그녀는 움직이기 어려운 델핀을 돌봐주기로 하고 그녀들은 델핀의 남자친구 집으로 이동을 해서 그곳에서 살아가게 된다. 델핀은 L이 들려주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 대해서 알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글을 쓸수가 없는 그녀는 핸드폰을 이용해서 지신이 들었던 그녀의 이야기들을 녹음을 한다.

 

하나씩 녹음을 하다보니 쪽지가 필요해지고 그것을 계기로 한동안 쓰지 못했던 그녀의 손이 움직이고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녀는 기뻐라하며 L에게 알리기보다는 숨긴다. 그녀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을 허락을 받지 않아서일까, 그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껄끄러워서였을까. 그녀가 이 모든 이야기를 숨기는 것은 언제까지일까.

 

따스하게만 보이던 두 여자간의 우정이야기는 왠지 모르게 미나토 가나에의 [경우]를 생각나게 했다. 질투로 얽힌 친구사이.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중에서 가장 약하게 느껴지는 책이었지만 묘하게도 두 여자가 등장하는 책 표지 또한 비슷한 느낌이다. 델핀을 대신해서 강연까지 갔다온 그녀가 델핀에게 바라는 것은 정말 무엇이었을까. 현실을 주장하던 그녀의 속내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L의 말을 듣고 현실과 겨루기(293p)를 시작한 델핀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그녀들만 알고 있었던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나면서 알 수 없는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이것은 [크로우걸]을 읽으면서 느꼈던 그런 감정 아니었던가. 델핀과 L. 그녀들은 어떤 존재이였던 것이지?

 

때때로 혹시 누가 당신 몸을 차지하고 들어앉은 게 아닐까 자문할 때가 있어.(2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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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중절 - 어떤 역사 로맨스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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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임신중절. 낙태라는 한자어로 쓰이기도 하는 이 단어는 아이를 가졌지만 어떠한 이유로 아이를 낳을 수 없어서 아이를 지우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다. 어느 순간부터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볼 것이냐에 따라 이 임신중절에 관한 문제는 살인과도 연결이 되어지는데 그런 이유로 나라별로 임신중절에 관한 법이 저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으로 되어 있으며 정당한 이유가 있을때만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제목만으로도 한없이 무겁게 느껴지는 '임신중절'이라는 책은 단순히 이 행위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의 인생에 슬며시 끼어들어서 그가 어떻게 이런 행위를 하게 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고 그러므로 인해서 이 행위 자체만으로 책의 전체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소재도 독특하고 배경도 독특한 작가만의 독특함이 살아있는 책이다.

 

도서관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이곳이 좋다. 도서관은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곳이 아니다. 24시간내내 언제든, 사람들이 원고를 가지고 오면 받아서 보관을 하는, 출간되지 못한 원고들의 보관소이다. 나이에 구분없이 어떤 책이라도 자신이 쓴 글을 가져오면 이름과 제목을 적고 자신이 원하는 곳에다 두면 그것으로 끝이다.

 

궁금해진다. 이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왜 이런 것을 모으는지 말이다. 이 도서관에 관한 설명은 그것 뿐 어떤 다른 이유도 주어지지 않는다. 도서관은 책들이 넘치는 것을 대비해 지하저장공간이 따로 있다. 그곳을 관리하는 포스터는 가끔씩 나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어느날 밤 자신이 쓴 책을 가져온 바이다를 만난다.

 

자신의 몸에 관한 책을 썼다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몸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날부터 친해지게 되고 나의 여자친구가 된다. 이쯤 되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알게 된다. 그렇다. 바이다는 아이를 가졌고 아직 어리고 준비가 되지않은 그들은 임신중절을 하기로 계획하고 포스터에게 도움을 구한다.

 

'바이다'라는 존재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자. 그녀는 어딜 가나 남자들의 주목을 받는 몸을 가졌다. 남자들은 한번만 봐도 그녀에게 홀리기 일쑤이며 그것은 나이가 많던 적던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녀를 보고 지나가다 사고를 내는 것은 예사로 있는 일이며 어떤 예쁜 여자가 있더라도 바이다 옆에만 가면 흔한 말로 '오징어'로 변한다.

 

그녀가 얼마나 이쁘길래 그럴까. 이쁘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몸매를 부각시킨다. 그녀는 그것을 싫어하고 신경을 쓴다. 나는 그녀가 아주 좋은 몸을 가졌다는 것을 안다. 사람들이 그녀를 쳐다보는 것도 안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개의치는 않는 듯 하다. 작가는 바이다를 왜 이런 존재로 만들었을까. 그냥 평범한 여자가 아닌 뛰어난 여자로 만든 이유는 평범한 '나'라는 존재에 상응하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책이라는 비행기를 타고 영원의 페이지를 날아다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78p)고 한 나의 이야기는 어쩌면 도서관에 갇혀 버린 나의 인생을 나타내는 것일수도 있다. 포스터가 주장하듯이 말이다. 나는 도서관에서 돈도 받지 않고 일절 밖에 나오지도 않았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오직 그 곳에서만 박혀서 살아왔다. 그것도 삼년동안 말이다.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었던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아무리 언제 누가 원고를 가지고 올지 모른다고 해도 가끔씩은 나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들이 매일같이 줄을 지어서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분명 시간은 아주 많았을텐데 그 나머지 시간에 나는 무엇을 하고 지낸걸까. 혹시 거기 있는 책들을 읽었으려나.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온 원고들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시간을 보낸 것은 아닐까. 한참을 책에 빠져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는 현실이고 시간이 몇년씩이나 지나버렸다는 그런 이야기가 비단 이야기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중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결국은 도서관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살아온 나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도서관에서 행복함을 추구하던 나. 여자친구의 수술로 인해서 삼년만에 밖에 나오게 된 나. 그리고 하루동안의 일탈이 불러온 바뀌어 버린 나의 생활. 나는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가게 될까? 임신중절을 계기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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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단처럼 검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3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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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now White Trilogy. 백설공주 삼부작 시리즈. 작가는 처음부터 3부작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썼을까 아니면 글을 적고 난 이후에 출간하는 과정에서 3부작으로 나누어지게 된 것일까. 3부작이라고 해도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 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해서 그녀가 벌이는 일이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다.

 

앞의 이야기를 안 읽고 다음 이이야기를 읽는다고 해도 별 지장없지만 이와 읽을 것이라면 차례대로 1권부터 읽기를 권장한다. 시간 순서대로 서술되어 있는 이야기라 그렇게 읽어주어야지만 그 맛을 제대로 느낄수가 있을 것이다. 루미키라는 주인공의 심정변화까지도,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까지도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읕테니 말이다.

 

피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겼던 첫 이야기. 큰 액수의 돈을 학교에서 발견하고 그 이후 벌어지는 사건을 좇아서 끊임없이 날고 뛰었다. 아직 어린 십대의 소녀가 맞닥뜨리기에는 너무 힘든 면도 있지 않았나 했지만 마음을 돌리러 멀리 프라하로 떠난 여행지에서도 그녀는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그것도 개인적인 사건이다. 그저 무시하고 지나쳤으면 충분히 자신과 관계가 없는 일이었을텐데 그녀는 무언가 자신을 이끌어가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그 사건에 연유되었고 결국은 자신이 구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었다.

 

이방인. 한 소녀가 여행지에서 자국민을 구해내는 사건은 주요 일간지나 방송에서 영웅으로 묘사하기에 충분한 일이 아니었던가. 누구도 믿지 않고 아무에게도 띄고 싶지 않았던 루미키의 일상은 전 세계에 알려졌다. 비단 그 나라 뿐 아니라 자신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도 떠들석하다. 루미키는 일약 스타가 되어 버렸다.

 

앞의 이야기와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은 하나 루미키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삼프사. 그와 함께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 온기를 나눌수 있다. 살아있음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낄수 잇다. 그러나 그뿐 함께 있을때만 느낄 수 있는 친구다. 루미키에는 함께 있어도, 함께 있지 않아도 느껴지는 친구가 있다. 블레이즈. 그와 헤어졌지만 여전히 그녀는 그를 그리워한다.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겨도 여전히 머리속에서는 그의 모습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제 그가 돌아왔다. 루미키의 사랑에는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쯤이었다. 그녀에게 이상한 쪽지가 날아든 것은.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끈질기게 따라붙는 쪽지들.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는 스토커가 붙은 것이다. 당연히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얌전하게 있어준다면 좋겠지만 스토커는 루미키의 과거의 일을 바탕으로 해서 그녀를 어르고 달래며 협박한다. 그녀에게는 어떤 잊혀진 과거가 있는 것일까. 머리속에서 지워졌던 사실은 무엇인가. 사실에 가까이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늦겨울의 진한 붉은 피를 시작으로 해서 한여름, 눈처럼 순결함을 주장하던 하얀 거짓말, 크리스마스를 앞둔 시점의 흑단처럼 짙고 짙은 지워지지 않은 진한 사실. 일년을 나누어 구성된 이야기는 루미키의 마지막 학기 연극무대를 마침점으로 삼았다. 십대소녀이지만 어딘가 어설퍼보이지 않고 작은 규모이긴 해도 촘촘한 사건 구성으로 인해서 더욱 읽는 재미를 주었던 백설공주 삼부작.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의 변주곡을 들려줄게 될까.

 

눈처럼 하얗게 깔려진 배경에 피처럼 강렬하게 붉은 이야기를 내뿜었던 이야기는 흑단처럼 까만 색으로 마지막을 물들였다. 마치 연극이 끝난후 까만 장막이 내려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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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처럼 희다 스노우화이트 트릴로지 2
살라 시무카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평점 :
절판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호주, 뉴질랜드, 아프리카의 스릴러에 이어서 이제는 핀란드의 스릴러다. 이미 [피처럼 붉다] http://blog.naver.com/noon472/220545793938라는 전작을 통해서 선을 보여진 적 있는 살라시무카의 두번째 이야기. 그저 조용히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사람은 루미키였지만 좇고 쫓기는 상황으로 인해서 그렇게 되어 버리지 못하는 운명이 되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어떨까.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녀는 학교 생활을 하고 있고 집에서는 독립을 해서 혼자 살고 있다. 사랑하는 블레이즈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떠나고 지금은 오직 혼자. 그런 그녀는 지금 여행중. 핀란드가 배경이 아니라 루미키가 여행하고 있는 프라하가 배경이 된다. 약간은 어두운 느낌을 주는 동유럽. 그곳에서도 프라하. 작품 상에서는 자주 언급되는 도시가 아니라서 더욱 관심이 가는 공간적 배경이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을 적어 더욱 가보고 싶은 느낌을 준다. 여행 소개가 아닌 책에서 여행가고 싶다는 느낌을 받게되는 건 아마 실제로 여행이 고파서일지도 모르겠다. 루미키가 탔던 페트르진 언덕에 있는 케이블에 끌려 급경사를 오르는 기동차, 푸니쿨라르도 타보고 싶다. 루미키는 세상에서 가장 웃긴 발음이라고 했던가. 푸니쿨라르. 자꾸 되뇌어보게 되는 발음이다.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자 떠난 여행에서 루미키는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누군가 자꾸 마주치는 것. 이상한 일이다 생각될 무렵 그 여자는 다가와 조용히 한마디를 건넨다. '내가 네 언니야.' 익숙하지 않은 스웨덴어로 건네지는 한마디. 루미키는 외동이었는데 자기 나라도 아닌 여행지에서 자신의 언니라 주장하는 사람을 만난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까.

 

누구도 믿지 마라. 그것이 루미키의 좌우명이었다.(135p) 원래 성격도 그랬지만  전편의 일을 겪은 후 그 누구도 믿지 않게 된 루미키. 그녀 또한 그냥 무시하고 지나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냥 미친 여자가 한 말쯤 치부해 버리고 자신의 갈길을 갔으면 좋았을지도 모를일이이다. 그러나 그녀는 왠지 모르게 그녀의 페이스에 말려 들어 다시 만날 계획을 잡고 또 다시 그녀를 만나게 된다. 그녀는 정말 자신의 언니가 맞을까. 머리속에서 언니가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자꾸 되살아난다.

 

가족. 피로 연결된 관계.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던가. 아무래도 남보다는 가족이 더 소중하게 여겨지지 않을까. 피에 이은 눈. '언니'라고 주장하는 여자가 소개해준 그들의 가족. 그들은 깨끗함을 강조하고 있다. 환경이 눈처럼 하얗고 깨끗해야 인간의 정신 또한 신성해질 수 있어.(155p) 눈처럼 하얗고 맑은 정신을 주장하는 그들. 그들은 정말 언니의 가족이 맞을까. 언니의 가족이라면 루미키에도 가족이 될까.

 

이 소설과 비슷한 가족같은 관계를 그린 책들이 있다. [통곡],[유다의 별],[사건치미교1960],[재림]. 이 책들과 [눈처럼 희다]사이에는 다른 듯 닮은 듯한 소재가 등장을 한다. 깨끗함을 주장하는 가족관계. 비슷한 소재로 다양하게 변주된 이야기를  읽는 새로운 즐거움.

누쿠이 도쿠로 통곡 http://blog.naver.com/noon472/220470316720 

도진기 유다의 별 http://blog.naver.com/noon472/220099996245

문병욱 사건치미교1960 http://blog.naver.com/noon472/220630673165 

안치우의 재림 ​http://blog.naver.com/noon472/220179852425 

 

 

거짓말은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는 진실이 됩니다. 그녀는 거짓말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 이야기의 끝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 말입니다.(10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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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모중석 스릴러 클럽 40
프레드 바르가스 지음, 양영란 옮김 / 비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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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심판],[트라이던트]를 통해서 한국의 스릴러 독자들에게 프랑스 스릴러란 이런 것이다. 하고 제 맛을 보여준 작가 프레드 바르가스. 첫 작품때는 조금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퍽퍽함이 존재했으나 [트라이던트]를 통해 보여준 스릴은 이미 스릴러에 익숙한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다. 이제 작가는 새로운 도전장을 던진다. 이미 알고 있는 아담스베르그 형사 시리즈가 아닌 전혀 다른 시리즈다.

 

등장인물 또한 색다르다. 형사가 주인공이 아니라 전직형사를 필두로 한 일반인들이다. 그것도 학자들. 학자들인 무슨 추리를 하고 무슨 범인을 좇는다고 하겠지만 이웃의 실종을 토대로 한 그들 4인방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일반인의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작가는 여기에 더하여 독특한 작명센스까지 발휘하고 있다. 드라마 작가 중에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주인공들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있듯이 프레드 바르가스는 복음서 저자들이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어렵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성경을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금세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신약성경의 가장 처음에 등장하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저자 마태, 마가, 누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것이다. 마티아스. 마르크 그리고 뤼시앵이다.

 

그들은 모두 학자들인데 전문분야도 상이하다. 마티아스는 선사시대에, 마르크는 중세시대에 그리고 뤼시앵은 1차 세계대전에 빠져있다. 모두들 전문적인 공부를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지식을 쓸 곳은 전혀 없다. 뤼시앵 정도만 학교에 가끔 강연을 할 뿐 그들은 그냥 머리에 지식만 가득찬 무일푼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사건에 휘말리면 어떻게 될까.

 

벌써 나흘이나 지났군. 내일 아침엔 마태복음이 르게넥한테 전화를 해야 할 거야. 오늘 저녁에 전화로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연습시켜야지. 나무와 구덩이, 정부, 행방불명된 본부인. 이 정도면 르게넥이 움직일거야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올테지.(98p)

 

살 곳을 찾아서 방황을 하던 마르크는 다 허물어져 가는 집 값이 조금은 쌀 법한 곳을 고르지만 그나마도 자신의 힘에는 벅차다. 자신과 대부 방두슬레가 둘이서 감당하기에는 힘들다고 생각한 그는 마티아스와 뤼시앵까지 끌여들여 3층집을 수리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이웃집- 뤼시앵의 말을 빌면- 서부전선에는 왕년의 소프라노가 살고 있다.

 

지금은 은퇴한 소피아. 그녀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정원에 심겨진 나무 한 그루를 보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그녀에게 무관심한 남편은 그냥 팬이 보낸 선물이려니 하고 말아버리지만 무언가 찜찜한 소피아는 자신들의 옆집에 이사오는 복음서 3인방에게 나무를 파 볼 것을 돈을 주고 부탁을 한다.

 

그렇게 친해진 이웃들은 동부전선의 쥘리에트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함께 밥을 먹기도 하며 정을 나누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녀가 사라진다. 남편은 어딘가 여행이라도 갔다고 하는데 그녀와 친했던 쥘리에트는 그 말을 믿지 못하고 의심을 하기 시작한다. 무언가 감을 잡은 전직형사 방두슬레. 그의 지도하에 복음서 삼인방은 전진하여 공격태세에 이르게 된다. 정말 소피아는 여행을 간 것일까 아니면 자발적으로 사라진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일까.

 

원제인 '죽은 자들이여, 일어나라'는 제목보다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라는 새로운 제목이 훨씬 더 서정적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조심하라. 당신의 정원 나무 아래 무엇이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를 일이다. 그 밑을 파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말 신기한 캐릭터로 말미암아 읽는 재미까지 더해주는 프레드 바르가스 작품. 원래는 아담스베레그 형사 시리즈를 기다렸지만 왠지 모르게 복음서 삼인방에게 빠져버렸다. 그들이 다음번에도 어떤 사건에 휘말릴 수 있을까. 제발 그래주기를 소망한다.

 

더하기 : 이 이야기의 시대적 배경은 언제일까. 돈이 없어 전화를 설치하지 못한 것이나 화장실이 집 밖에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서 1980년때쯤이라고 이해했다. 그런데 뒤에서 자료조사를 하면서 등장한 노트북과 스캐너. 이것은 아무리 발달한 나라인 프랑스라고 해도 80년대에 보기엔 무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적어도 90년 후반으로 넘어와야 하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그때 핸드폰도 없었을까? 정말 궁금해지는 시대 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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