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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세 번째 이야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다이안 세터필드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0월
평점 :
책을 펼치는 순간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 오래된 책 냄새, 강렬하고도 건조한 향기가 밀려왔다.(43p)
그저 평범한 드라마일거라고 생각했다. 별 기대감없이 책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몰입해서 읽어버렸다. 마거릿이 게걸스럽게 책을 읽어버렸다고 했던가. 나 또한 작가의 책을 미친듯이 읽어내려갔다. 그냥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 드라마와 스릴러 호러와 고딕 장르까지 모든 장르가 총망라되어 있었다. 또한 번번히 언급되는 고전들의 제목을 보는 것은 더욱 큰 즐거움이었으며 [폭풍의 언덕]이나 [제인에어]들을 읽어봐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지 못한 책들의 제목이 나열될때면 적어두고 그 책들을 읽어본 이후 이 책을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헌책방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마거릿은 아빠의 일을 좋아했다. 아니 책을 좋아했다. 엄마는 그녀에 대한 별 관심이 없었고 책 자체를 좋아하지 않았으니 그녀는 온전히 그곳에서 모든 일을 맡아하고 아빠의 일을 도와주면서 자연스레 그곳이 집이 되어 버렸다. 그녀는 그냥 책을 읽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들을 단지 읽는 것 정도가 아니었다.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식욕은 줄어든 반면 책에 대한 갈증은 잦아들 줄 몰랐다. 내 직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29p)
그렇게 책을 먹어 치운 그녀가 작가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생각과는 다르게 그녀는 픽션을 쓰는 소설작가는 아니었다. 전기작가. 그것이 그녀가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방식이었다. 종이를 준비하고 연필을 깍으면서 글을 써내려가는 그녀는 죽은 사람들의 전기를 쓴다. 그런 그녀에게 유명한 작가 비다 윈터의 편지가 한통 도착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 살아있는 사람의 전기를 쓰지 않는 마거릿이었지만 정성스레 한글자씩 눌러쓴 그녀가 궁금해서 직접 방문을 해보기로 한다.
비다 윈터. 인터뷰를 할때마다 달라지는 그녀의 인생은 어느것이 진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마거릿조차도 그녀의 전기를 쓰는 것을 꺼려했을 것이다. 하지만 비다는 이제 솔직하게 말하겠다고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은 그녀의 인생은 담았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리도 복잡할수 있을까 싶을만큼 이야기는 여기저기 꼬임을 만들어 놓았고 그것만 보아도 그녀의 삶이 결코 평탄치 않았음을 알려준다.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른채 쌍둥이로 태어났던 그녀. 자신을 낳아준 엄마는 자신들을 돌보아주지 않았고 가정부의 손에서 자랐다고 했다. 애덜린과 에멀린. 아마도 똑같이 생겼을 쌍둥이 자매. 그녀들은 마을 곳곳을 다니면서 일을 만들어 내는 사고뭉치였다. 적어도 가정교사인 헤스터가 나타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가정교사가 온 후 그녀들의 삶은 조금씩 바뀌었다. '공부'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고 '규범'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며 조금씩 적응하는 듯이 보였지만 헤스터가 그녀들을 데리고 소위 말하는 '실험'이라는 걸 하면서 그녀들은 조금씩 이상해져만 갔다.'애덜린이 안개 속의 아이를 억압하는 게 에멀린 때문일까요?'(266p)
그것은 전부 헤스터와 의사의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학문적인 관심때문이었을까. 그들은 쌍둥이들을 나눠놓았고 그러므로 인해서 그녀들은 상반된 태도를 보였다. 떨어진 쌍둥이가 잘 살 수 있을가? 쌍둥이들은 무언가 모를 연결점이 있다고 흔히들 말한다. 아주 어렸을때 헤어진 쌍둥이가 오랜시간이 지난후 만나게 되는 것을 보면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비다 윈터의 어린시절을 쫓아가며 계속 생각한다. 애덜린과 에멀린. 비다 윈터는 어느 쪽 쌍둥이였을까 하고 말이다.
자신이 하지 않은 일들이 저질러져 있고 자신이 놓아둔 곳에서 물건이 제대로 있지 않고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눈길을 느낄때 사람들이 흔히 귀신이 있나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자신들을 끊임없이 쳐다보는 눈길. 그것은 정말 귀신일까 아니면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다른 사람이 이 있는 것일까.
비다 윈터의 추억을 더듬어 가는 여행은 지금의 마거릿의 행동과 겹쳐져서 일어난다. 윈터 여사가 이야기를 하면 그녀는 그것을 정리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나타나면 확인을 하러 간다. 윈터여사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녀가 마거릿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아서 코난 도일 소설집> '셜록 홈즈 시리즈' 하루에 두번, 열 페이지씩, 증상이 완화될 때까지.(447p)
비다 윈터의 어린시절을 쫓아가던 마거릿이 잠시동안 아팠을 떄 그녀를 돌봐준 의사가 내린 처방.
이런 처방이라면 조금 과용해도 좋다 싶을만큼 환영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