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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찬호께이.미스터 펫 지음, 강초아 옮김 / 알마 / 201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화려한 표지. 이것이 진정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는 본문을 읽어야만 알 수있다. 사보텐- 일본어로 선인장을 의미하는 단어. 표지를 자세히 보다보면 이것이 선인장을 가까이 들여다본 모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선인장. 이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을 읽고 싶어진데는 아무래도 찬호께이의 영향이 제법 크다. 공동 저자인 미스터펫은 낯선 이름이니 말이다. 찬호께이. [13,68]로 대박을 쳤던 작가다. 나중에야 그의 작품을 읽어보고 이런 대단한 작가가 있었다니 하면서 이름을 기억했고 그 이후로 나온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읽고서는 약간 실망을 했지만 그 작품이 첫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되면 그마저도 이해할 수 있다.
이번작품은 독특하게도 두 명의 작가가 두 개의 챕터를 번갈아가면서 쓰고 있다. 어떤 순서로 썼을까. 한 작가가 앞이야기를 쓰면 그것을 보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이어서 풀어갔을까 아니면 처음부터 두명의 작가가 모여서 이런 방향으로 쓰자 하고 결정을 내린 후 시작했을까. 그림 작가와 글을 쓰는 작가가 협업을 하는 경우는 종종 보지만 이런 경우는 드물어서 그들의 작업과정에 대해서 더욱 궁금증을 가지게 된다.
프롤로그 - 짧은 글을 이해하려고 들지마라. 그 모든 궁금증은 이 책을 읽은 후 에필로그까지 읽고 나면 알게 될 것이다. 끝가지 다 읽은 후 다시 한번 프롤로그를 읽기 위해서 앞으로 돌아와야만 하는 책. 그것이 바로 이 책, [스텝]이다. 제목은 알파벳 이니셜로 이루어져 있다. 네개의 에피소드 제목의 앞글자를 따서 S.T.E.P. 각 알파벳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볼 일이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프로그램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야기. '사보타주'라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 처음 시행된 형량평가제도. 일종의 가상 시나리오라고 생각하면 빠르다. 재소자들의 각 특성을 입력하고 프로그램을 가동해서 그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 다른 범죄를 저지를지 조용히 살아갈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것이 세계로 퍼져나갔고 일본이 열번째로 그 제도를 도입했다. 열번째 사보타주 프로그램을 도입한 나라. 말 그대로 SABO TEN - 사보텐 즉 선인장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것이다. 일본에서도 미국에서만큼 이 프로그램이 잘 활용되어서 범죄를 줄일수가 있을까.
현실세계는 그대로 둔 채 가상 속에서 그 사람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것, 시나리오 상으로만 존재할뿐 전혀 현실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럴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모든 제도에는 허점이 있는 법, 이 마저도 큰 비극을 낳고 만다.
어떻게 돌려도 한가지 결과만을 유추해내는 프로그램. 사건을 저지를 남자는 이미 감옥을 나온 상태이고 그가 저지를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모든 시나리오를 알고 있는 한 남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이 직접 이 모든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고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그 범죄자를 처리하고 끔찍한 사건이 일어날 기회를 없애고자 한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이룰수가 있을까.
'무한원숭이정의' (283p)이라는 것을 아는가? 원숭이 앞에 타자기를 놓아두고 무한정으로 치게 하면 언젠가는 원숭이가 문자조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제한이 없다면 언젠가는 결국 그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다. 시나리오 프로그램이 있다. 이것을 무한정으로 돌린다면 언젠가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나올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라는 존재는 기계화시킬 수 없다. 감정이라는 것이 잇고 그것이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측정불가능한 것이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것을 조건화 시켜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생각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닐까. 결과가 좋든 나쁘던 간에 말이다. 전세계로 퍼져 나간 이 프로그램들은 얼마만큼의 혁신적인 성과를 거두면서 실행되었을까.
에스코트, 머니퓰레이트, 가상인물, 스레드, 하위루트 등 컴퓨터에서 사용되는 전문적 용어가 꽤 많이 나오는 편이지만 어느 정도 컴퓨터 시스템을 안다면 전혀 지장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일반적인 스릴러나 추리소설이라 생각하고 읽었지만 찬호께이의 새로운 면을 보게 되는 작품이기도 하며 미스터펫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작가를 알게되는 책이기도 하다.
홍콩과 대만작가가 만들어 낸 일본이야기. 왜 그들이 1회와 2회, 시마다 소지 작품상을 휩슬어 갔는지 아주 잘 이해할만하다. 이런 조합이라면 다음번에 또 공동의 작품을 만든다해도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