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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목욕탕
나카노 료타 지음, 소은선 옮김 / 엔케이컨텐츠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동네 한 가운데 높다랗게 솟은 굴뚝. 그곳에서 연기가 솔솔나는 것을 보며 목욕합니다 라고 밖에 내놓은 간판을 보고 들어가 돈을 내밀면 여자는 분홍색, 남자는 파란색 종이조각을 준다. 그것을 들고 들어가 통에 넣고 옷을 벗고 문을 열고 탕에 들어간다. 옷을 벗는 순간은 늘 추웠고 가능하면 빨리 안개구름처럼 몽실한 수증기가 가득한 탕으로 들어가고 싶어했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체중계에 올라가기. 커다랗고 동그란 머리가 달린 체중계. 올라면 바늘이 휙휙 돌아가던 그 체중계는 요즘은 보기도 힘들어졌다. 아프다며 징징거리는 아이들의 목소리 뒤로 탕에 들어가서 몸을 불리라는 엄마들의 메마른 목소리가 뒤섞여나온다.
무어 그리 나올거라고 힘을 주어가면 빡빡 밀어댔는지 하나같이 목욕탕에서 나오면 너무 밀어서 새빨개진 몸뚱이를 자랑하곤 했었고 락커 앞에 있는 넓은 평상에 앉아 베지밀이나 바나나 우유 같은 것을 하나씩 먹으며 옷을 입었다. 추운 겨울 새벽 집에 돌아오면 머리카락이 다 얼어 고드름이 되어 있었고 조심스레 목도리를 뒤집어 쓰고 왔던 기억이 아직도 머리속에는 선명하다.
'목욕탕'이라는 이름은 점점 잊혀져 가는 것 같다. 대신 찜질방이라는 이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짬잘방에는 목욕탕도 있지만 목욕만 따로 하는 곳은 잘 없다. 수지타산이 맞지 않기 때문이리라. 우리나라 사정은 그런데 일본의 사정은 어떨까. 일본은 몇번 갔었어도 동네 목욕탕은 가본 적이 없다.
온천은 가 본적이 있고 호텔에서 운영하는 온천도 가 보았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목욕탕이리라. 샤워보다는 몸을 덥히는 용도로 사용되곤 하는 욕조 목욕을 즐겨하는 일본인들이니까 아직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기 한 동네목욕탕이 있다. 행복목욕탕. 후지산이 그려진 그림을 바탕으로 한 목욕탕. 매일같이 굴뚝에서 솟아나는 연기를 보며 행복을 다짐하던 후타바. 보일러로 물을 덥혀서 내놓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이곳에서는 아직도 나무를 이용해서 물을 덥힌다.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지만 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물이 훨씬 더 부드럽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가. 나무로 물을 덥히면 그 물이 더 따스할까. 페목재를 이용한다고 해도 삼림자원이 점점 줄어가는 이 세대에 너무 사치스러운 것은 아닐까, 다른 대처 방안이라도 마련은 해둔 것일까 하고 온갖 걱정을 다하고 있다. 남의 일이야 하면서도 말이다.
항상 연기가 올라오던 목욕탕은 주인이 사라졌다는 것을 계기로 일년째 연기가 올라오지 않고 있다. 아예 폐업은 아닌 것 같고 무슨 사연이 이 목욕탕에는 있는 것일까. 이 가족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엄마와 아빠 그리고 딸 하나. 단란했던 가족이었다. 아빠가 그렇게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아무 말도 없이 그저 그렇게 나가서 찾을 수 없는 그는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느라고 일년째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매일 아침 엄마가 안고 깨워서 밥을 먹여서 학교 보내는 아이. 처음에 아이를 깨우고 머리모양을 매일 다르게 묶어주고 하는 것을 보았을 때 초등학생일거라고 생가했다. 요즘은 중학생만 되도 아무도 자신의 머리를 엄마에게 맡기지 않으니 말이다. 알고보니 고등학생 딸.
우리나라 고등학생중에 아침마다 가만히 앉아서 엄마가 묶어주는 머리모양을 하고 학교에 가는 아이가 있나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거기다 스포츠브라라니. 작가는 딸의 나이를 너무 높게 잡았거나 아니면 딸이 왕따를 당할 수 밖에 없는 형태를 만들어놓앗았다. 아무리 착한 딸이고 엄마의 마음을 알아주는 딸이라 해도 말이다.
그런 점을 그냥 넘겨버린다면 충분히 감동적이고 충분히 아름답고 충분히 행복하며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다. 생각보다 막장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이미 신문에 났었던 영화 리뷰 기사로 접했다. 그래서 어떤 요소들이 숨어 있는지 궁금했다.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될지도 알고 싶었고 그래서 더욱 흥미롭게 읽혔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인연은 어디서 올지 모르는 것이 아닌가. 때로는 그런 인연들이 모여서 더 큰 사회를 만들어 가기도 하는 법고. 여러 관계들이 모여서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이 또 새로운 생활을 만들어 간다. 이 행복목욕탕이 아직도 존재했으면 하고 바라본다. 그들의 행복이 이 목욕탕을 통해서 영원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목욕탕으로 인해서 그 마을 자체가 모두 행복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