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미래 - 편견과 한계가 사라지는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라
신미남 지음 / 다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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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커리어 체인지는 두려움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역량과 력이 탄탄하게 준비된 사람에게는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고 더 큰 전으로 이끌 반가운 기회가 될 것이다.  

미래는 분명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본 적 없는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미래에 대비하기 위한 무기는 국가도, 사회도, 부모도,직장도 아닌 오직 나 자신임을 억하길 바란다. (135 P)

- 성공한 여자가 독한 것일까 독해져야만 성공하는 것일까.

 

[여자의 독서]에 이어서 [여자의 미래]까지. 다산북스에서는 여자 시리즈를 기획한 듯 하다. 그만큼 여자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여자의~' 를 붙여야할만큼 아직까지도 여자라는 존재가 비교대상이 되기도 한다는 뜻일게다.

저자는 우리가 흔히 볼수 있는 그런 스타일의 여자가 아니다. 그저 평범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여자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공과대학생이었고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으나 미국에 가서 공부를 했다. 그것뿐이면 그녀의 능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박사과정을 하면서 아이를 낳고 키웠다. 미국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편안하게 보낼수도 있었겠지만 창업을 하며 스스로 개발에 도전했고 이제는 합병을 거쳐서 사장 자리에 있다.

여자라는 존재는 어렸을때는 그저 남학생, 여학생으로만 나뉘겠지만 자라면서부터는 확실하게 입지가 바뀐다. 결혼을 하면 더욱 그러하다.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며느리인 것이다. 남자 또한 누군가의 남편이며 아빠이며 사위이겠지만 그 위치는 또한 극렬하게 차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있어서 엄마의 존재를 생각해보면 더욱 잘 알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그녀는 자손이 많은 집에 맏며느리였다. 당연히 제사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스스로 해냈다. 일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완벽할수는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는 그런 여자이고 싶었던 것이겠다. 자신이 맡은 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저 평탄하게만 살아왔다고 할수 있을지 몰라도 그녀가 해온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누구나 할수있는 그런 일은 아니다.

그만큼 그녀는 '독한 여자'라고도 할수 있다. 여자가 일에서 성공을 하려면 독해져야만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비단 여자뿐 아니라 남자 또한 성공을 하려면 한번쯤은 독해지지 않고서는 절대 이루지 못할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 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누구나 한번쯤은 독할 필요가 있다고 저자 또한 설명하고 있다.(168P)

그러나 원형탈모까지 일어날 정도로 힘들었다는 그녀의 글을 보면서, 울면서 그녀를 잡는 아이들 떠어놓는 독한 엄마가 되어야했다는 것을 보면서 다른 여자들은 다른 엄마들은 약간의 자괴감을 가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일하는 엄마가 되고 싶었다는 그녀. 

모든 엄마들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엄마들 또한 일을 하고 싶을 것이다. '경력단절녀'라는 말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실제로 그런 환경에서 단절을 선택할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있었을 것이다. 일하는 엄마가 무조건 최고인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마가 아이들을 키울수 없을 때 엄달들은 대안책을 생각해닌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이모님'이다. 저자 또한 이 선택밖에 없었다. 아이들을 잘 돌봐줄수 있고 아이들과 잘 맞으면서도 자신들의 가정에 잘 지낼수 있는 이모님을 만났고 아이들이 '큰이모'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었기에 그녀 는 이 모든 일을 해낼수 가 있었을 것이다. 조부모와 부모 다음으로 아이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큰 이모님의 존재. 

누군가는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그녀의 결론은 하나였다. 아이들이 크기까지 약 10년, 자신이 일을 계속했을때는 40년. 그 비교를 했을때 지금의 비용은 충분히 감당해낼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의 선택은 지금으로 본다면 성공으로 보이지만 누군가의 가치기준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저마다의 성공의 느낌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적절히 섞으면서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 저자의 글은 잘 읽힌다. 그러면서 현재의 상황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 앞으로의 미래는 누구에에게나 똑같이 다가온다. 남자에게나 여자에게나 똑같이 다가올 미래지만 그 둘의 차이만큼이나 미래를 준비하는 내용도 달라야 할 것이다. 여자라면, 엄마라면 한번쯤은 읽어보고 자신의 과거를, 자신의 미래를 살펴볼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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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잠 재의 꿈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0
기리노 나쓰오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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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난 경쟁지를 제칠 수 있다면 뭐든 할거야.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아.(317P)

주는대로 받아쓴다면 기자라 자칭할 자격은 없다.(176 ​P)

제목이 주는 의미가 애매해서 지금까지 미뤄왔던 책이었다. 작가의 [아임소리마마]를 읽었지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 또 미뤄오기도 했었다. 한 작품만으로 작가를 다 평가하기란 무리라는 것을 [잘린머리에게 물어봐]에 이어 이번 책까지 두번째 느끼고 있다. 이제까지 미뤄둔 내 자신에게 괘씸함을 느꼈다. 그만큼 재미나게 읽히는 책이다.

[미드나잇저널]과 마찬가지로 사건은 일어나지만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사나 경찰이 주인공이 아니라 이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가 주인공이다. 기자가 프로파일러의 역할을 하며 범죄자 추정이며 용의자까지 다 밝혀내고 있다. 매일 사건을 대하는 일간지 기자와는 다르게 주간지 기자인데 그래서 조금은 더 느긋하게 사건을 바라보는 것도 있겠다.

무라노젠조, 무라젠이라 불리는 주간지 기자. 그는 지하철을 타고가다 폭탄사고를 당한다. 그야말로 특종거리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계속적으로 언급이 되는 폭탄협박범의 소행이라 생각하고 이번에야말로 그의 흔적을 제대로 잡았다고 생각하며 사건 취재를 맡게 된다.

경찰과 일간지 기자와의 사이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캐가며 사건에 접근하는 무라젠. 일간지 기자들은 아무래도 주간지 기자들을 기자로 생각지 않는 경향이 없잖아 있다. 일단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경찰도 마찬가지다. 자극적인 소재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이면 무엇이든 파고드는 주간지의 특성상 그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싶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의 일이니 최선을 다할수밖에.

온갖 루트를 통해 사건을 조사하던 그에게 또다른 임무가 떨어진다. 자신의 조카 찾기. 집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형의 전화를 받고 자신이 동생처럼 키운 조카를 찾으러 나선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조카와 또 한명의 여고생까지 구출 아닌 구출을 해서 나오게 되는데 이 또한 사건이 되어 버린다. 용의자로 몰려버린 그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1.폭탄협박범을 찾아야 한다. 그는 계속 협박을 해오고 있으며 알려진 연예인에게 협박장을 보냈다. 기차를 타고가다 시간이 되면 바깥으로 돈을 던지라는 그 협박이 실제로 가능한 것인가. 그 시점에 그 부근에 경찰들을 깔아놓고 돈다발을 가지러 가는 사람을 체포하면 끝일텐데 이런 불가능한 일을 믿고 또 진을 펼치는 경찰들은 바보인가.

2.자신의 집에서 하루 재워준 여고생이 시체로 발견되었다. 그의 집에서 마지막으로 있었으니 그가 용의자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 그러나 그는 결코 그녀를 죽이지 않았다. 모든 알리바이를 총동원해서 그녀의 행방을 찾아야한다. 불행한 가정에서 살아온 그녀, 그녀의 삶은 어떠했을까. 그녀를 죽인 사람은 누굴까.

3.그의 집에서 죽은 여고생과 같은 모델회사에 있었던 다른 여고생의 죽음. 그저 자살로 무마되고 넘어갔지만 같은 회사 같은 모델 번호만 다른 약통. 무언가 연결된 냄새가 난다. 무라젠은 이 사건까지도 파헤치게 된다. 과연 그녀의 죽음속에 숨겨진 진실은 무엇일까.

196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야기는 도어버튼만 누르고 문을 닫으면 잠긴다는 것이 최신식이라고 하는 등 지금과는 너무나도 많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수사방식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기자들이 접근할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러니 지금과 비슷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들이 사건현장에 가도 어느정도까지만 알수 있고 경찰이 공표하는 것 외에는 알아낼수 있는 방법이 잘 없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그 주인공들도 나와 같은 입장이라는데 동조를 하며 공감을 하고 같은 입장에서 더욱 빠져들어 읽게 된다. 지극히 읽는 재미를 몽창 안겨다 주는 이야기. 그때나 지금이나 사건유형이 비슷한 것에는 참담함을 금할수 없지만 말이다. 왜 사람은, 악은 변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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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게 물어봐 - The Gorgon's Look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0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비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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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라도 작가의 작품을 읽어서 다행.

 

미안합니다, 작가님. 그동안 외면했어요. 단지 [녹스머신]  딱 한권의 책으로 당신을 판단했어요. 어려울 줄 알았죠. 재미없을 줄 알았죠. 이때까지 그래서 작가이름만으로 외면한 작품들도 좀 있어요. 이 책 한권으로 그동안의 모든 오해가 다 풀려서 다행이에요. 정통추리는 이렇게도 재미난 것을 모르고 살았었네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주인공의 이름과 동일시 한다는 것은 장단점이 있다. 일단은 동일시 함으로 이해서 독자들이 좀더 몰입해서 읽을수가 있게 된다. 자신이 주인공인냥 직접 현장에 뛰어 들어서 직접 체험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너무 주관적인 입장이다보니 객관적인 면이 도외시 되는 경향 또한 있다.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서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좀 더 넓은 의미의 전능한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없어서 보이는 단면이 좁아진다는 것이다. 꼭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고깔대작전'과 같다. 실제로는 넓은 세상이 있지만 그것을 보지 못하고 고깔속의 작은 동그라미로만 보는 것이다. 당연히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다. 미쓰다신조의 작가시리즈는 '나'라는 일인칭시점을 사용하고 있다. 작가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직업 또한 작가로 등장을 한다.

이 책에서는 그것과 약간 다르다. 작가가 좋아하는 엘러리퀸의 이미지를 그대로 땄다. 엘러리퀸 또한 작가 이름과 등장인물이 같고 이 책 또한 그러하지만 미쓰다신조의 시리즈와는 다르게 '나'라는 대명사를 사용하기보다는 린타로라는 이름을 사용해서 약간은 객관성를 띄는 것처럼 보인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직업 역시 작가이다. 그러면서 아버지인 경찰의 임무를 도와주는 탐정이기도 하다.

탐정이기는 해도 일단 전문가가 아니므로 인해서 생기는 문제점들이 속속 보인다. 무언가 허술하고 빠뜨리는 부분이 자꾸 생기며 그로 인해 피해가 발생을 한다. 단순하게 그저 실수로 넘기기에는 조금 큰 피해이다. 물론 작가는 그것을 노리고 주인공을 배치한 것도 있을것이다. 뒤편에 실어 놓은 작가 인터뷰를 보면 더욱 잘 알수 있다.

홈즈같은 천제 탐정이 아니어서 생길수 있는 문제들은 일반독자들이 읽으면서 자신 또한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음을 느끼며 동감하게 된다. 앞서 말한 작가와 주인공이 동일시 되었을때의 장점에 속한다. 그러나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된다. 분명 보고 지나가야 할 것도 빠뜨리고 오히려 독자들이 챙겨서 '너, 이런거 잊어버렸어.' 하고 챙겨줄 정도면 조금 심각하긴 하다. 그런 약한 부분이 있는 것이 작가가 노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유명조각가가 병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한다. 그 조각가의 동생은 알려진 번역가다. 장례식이 끝난후 그는 개인적으로 추리소설 작가인 노리즈키 린타로를 만나기를청한다. 경찰에도 알릴수 없는 그 집안의 문제는 무엇일까. 오래전 자신의 아내를 대상으로 '모녀상'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던 그가 자신의 딸을 모델로 삼아서 그와 똑같이, 자세만 조금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남겼다는 조각을 보니 머리부분만 잘렸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완전히 만들어진 조각상에서 누군가가 목을 베어 간 것이다. 생각할수록 기이하다. 누군가 앞으로 이러한 일이 생길 것을 예언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작품의 주인공인 딸의 목숨 또한 위험한 것이 아닐까. 그들은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린타로를 이용해서 누가 이 작품의 머리를 가져갔을지 알아내기를 원한다.

그는 경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즉 아버지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이 사건을 풀어낼 수 있을까. 이 조각상의 모델인 딸은 무사할까. 정통 추리소설의 형태를 그대로 따라가기에 무리없이 읽으면서도 흥미를 잃지 않고 순수하게 주인공을 따라서 사건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쉽게 풀어나가면서도 부분적인 면면을 놓치지 않는다. 단 하나의 사건이지만 잘 연결해서 지루하지 않게 구성해두었고 마지막에 나타나는 사건의 결과 또한 생각지 못했기에 더욱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다리는 약간의 틈만 남긴 채 모으고 있었다. 양 무릎은 각도를 달리 해서, 왼쪽 다리는 앞 쪽 바닥을 딛고 있고, 오른쪽 다리는 반쯤 뒤로 빼서 발끝을 세우고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와 장딴지의 라인은 예각을 이루고 있었고, 화살촉처럼  꽉 죈 발끝 라인은 움직임이 없는 포즈에 악센트를 주고 있었다. (123p)

장마다 이어지는 루돌프 비트코어의 [조각의 제작과정과 원리]를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조각을 어떻게 만드는지 전혀 모르고 지나갔을테니 말이다. 루브르에서 많은 조각상들을 본 것이 기억난다. 그들은 눈을 감고 있었던가 뜨고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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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의 기록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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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는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좋은 남자를 잡아서 그 사람과 꼭 닮은 아이를 낳고 셋이서 행복하게 사는 꿈을 꿨어. 이게 그렇게 거창한 꿈이야? 지극히 평범한,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꿈이잖아. (284p)

이 이야기는 사건이 일어나고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형식이다. 사건에 대해서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한다. 객관적인 시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마다 주관적인 관점으로 그 사건이 일어난 집이 평상시는 어떠했는지, 그날은 어떠했는지 자신들이 목격한 그날의 광경은 어떠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것을 모두 합해서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고 사건을 정리해야 하는 것은 온전히  책을 읽는 독자의 몫이다.

 

여러 사람을 인터뷰해서 그들의 말을 통해서 무언가 어긋나는 점을 찾고 그 틈새를 파고 들어서 범인을 찾아내는 그런 방법이다. 나카마치 신의 [모방살의]에서도 보면 사건이 일어나고 그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 다큐작가가 직접 사람들을 만나서 인터뷰하는 장면이 실려 있기도 하며 [러버소울]에서도 비슷한 편집을 볼 수 있다. 

 

하룻밤에 한 가족이 모두 죽임을 당한다. 엄마와 아빠와 아들 그리고 딸까지. 가장 편안해야 할 장소인 집에서 일어난 이 살인사건의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다. 도대체 누가, 왜. 무슨 이유로 이 가족을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었을까. 일가족 살인사건은 [무통]에서도 나타난다. 자주 쓰이는 소재는 아니지만 아주 격렬한 환경을 만들기에 제격인 셈이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에게 증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으로 미루어 분명 원한 관계에 엃힌 사건일 것이다.

 

하지만 평범한 가족이다. 아버지가 돈을 잘 번다는 것을 제외하면 엄마는 주부인데다 아이들은 어리다. 한적하기까지 한 외곽 지역. 옆집에 누가 가까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흔히 도시에서 일어나는 층간살인이나 다른 싸움이 일어날 것도 없다. 사건은 미궁에 빠져버리고 인터뷰가 시작된다. 

 

인터뷰들이 바뀔 때마다 누군가의 독백이 흘러 나온다. '오빠' 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었는지,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오빠가 얼마나 큰 힘이 되어 주었는지, 그래서 오빠한테 고마와하는 그런 내용으로 연결되는 편지글 같은 형식을 띈 글. 이 글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남들처럼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나도. 지금 내 나이의 평범함이라고 하면 보통 결혼을 해서 남편이 있고 아이들을 키우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어디서 아줌마라 불리어도 하나 이상할 것 없는 그런 나이. 앞에서 언급한 것이 평범함이라고 한다면 나 또한 평범하지 않은 일상을 살고 있다. 나는 그 평범함이 부러운가. 때로는 그 평범함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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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연령 60세 사와무라 씨 댁은 이제 개를 키우지 않는다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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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와 결혼과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수짱은 내 얘기 같아서 반갑다는 여성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시리즈다. 거기에 고무되지 않고 이번에는 누나를 가진 남동생의 입장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내 누나 시리즈를 통해서 남동생들의 공감을 얻었던 마스다 미리는 좀더 범위를 넓혀서 가족이야기를 그려내었다. 나이 든 노부모와 과년한 딸 하나가 있는 사와무라씨 댁이다.

 

나이가 들면 독립하는것이 당연했던 서양에서도 생활비과 집값때문에 독립을 하지 않고 부모님 집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진다고 한다. '캥거루족'이라는 말이 괜히 붙는 것이 아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듯 하다. 부모은 는 혼자 있는 딸이 걱정이 되이서 언제나 대화끝에는 나이가 들었다며결혼을 하라고 성화지만 정작 이 딸, 히토미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급하지 않다. 이미 40줄에 들어섰음에도 말이다.

 

마스다미리의 모든 만화들은 다 좋아하지만 특별히 이 사와무라씨 댁에 공감을 하는것은 우리집과 똑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부모님과 나이 든 딸. 약간의 나이를 더하면 우리집과 똑같은 구성이고 이 집에서 벌어지는 일들 또한 우리집에서 벌어지는 일과도 비슷하다.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나이가 들어서 퇴직을 하신 사와무라 시로씨는 채육관에 다니시면서 운동을 하신다. 울 아빠는 아직까지도 일을 하시며 운동도 꾸준히 하신다. 시로씨는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어하신다. 컴퓨터를 해볼까 했더니 히토미가 반대를 한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컴을 붙들고 있는데 집에까지 와서 붙들고 싶지 않다는 아주 이기적인 이유이다. 요리를 해볼까 했더니 엄마인 노리에씨가 머뭇거린다. 정리까지 깨끗하게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결국 시로씨는 삐쳐서 그냥 내가 할수 있는 잠을 청하신다. 나이가 들면 더 잘 삐친다. 특히 남자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는 듯 하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거나 하면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해진다. 약간은 자기 보호적인 반응일수도 있겠다. 젊은 날에는 무엇이나 할수 있었는데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에서 반대하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수로 있겠다. 우리 아빠만 그런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내심 웃음이 지어지는 한편 아빠의 마음을 조금은 더 살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모든것을 다 잘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사회에서 일을 하고 자신의 위치가 있고 친구들을 만나고 어느정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있다는 이유로 어리광을 피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분명 부모와 함께 영원히 살수 없다! 라는 것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 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히토미 또한 그러하다. 엄마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등의 말씀을 하시지만 히토미는 그런 생각 자체가 싫은것이다. 닥친다면 어쩔수없이 해야하겠지만 미리부터 준비하고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직은 말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분명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실 때면 외면하고 싶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커서 히토미에게 극한 공감을 하고 만다.

 

사와무라씨 댁의 네번째 가족 이름은 '치비'였다. 지금은 더이상 함께 할수 없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족수는 줄어든다. 슬프게도. 누구에게나 사람이든 반려동물이든 지금은 함께할 수 없는 그런 가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단순히 가장 뒤에 몇장 포함되어 있을 뿐이지만 제목을 통해서 그 이야기가 가장 중요함을 나타내고 있는 이야기. 그들은 떠나버린 자신들의 가족이었던 치비를 위해서 아마 더이상 개를 키우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내 이야기가 같아서 너무나도 공감하며 내 가족, 내부모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이야기. 사와무라 씨 댁. 부모님인 시로씨와 노리에씨가 조금은 더 오래도록 히토미와 함께 있기를 바라본다. 그래야만 나 또한 조금이라도 더 오래도록 부모님과 함께 할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보통의 매일이 조금이라도 오래도록 이어지는 것, 그것이 진짜 행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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