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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눈물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16
전상국 지음 / 새움 / 2017년 12월
평점 :
교실에서의 집단 구타 사건. 한 명이 이른바 '짱'이 되어 그들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파벌. 대체 이것은 언제적 이야기인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도 보여주듯이 80년대 이야기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혹시 이것은 지금 현실의 학교의 세태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하고 다시 읽어보게 된다.
분명 '육십육 명'이라는 반의 인원수가 말해주고 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한반에 육십명이 넘어가던 때가. 그것도 고등학교에서 말이다. 지금은 한반에 많아봐야 삼십명 남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없는 학생들의 행동은 어떻게 보아야만 하는 건가.
1980년 작품. 지금은 2018년. 약 삼십년간의 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우상의 눈물>이라는 단편은 너무나도 현실적으로, 너무나도 현재적으로 읽힌다. 그것이 이 책이 주는 장점이다. 분명 7,8십년대에 쓰인 글임에도 전혀 괴리감이 없이 읽히는 것은 전상국이란 작가가 쓴 작품들이 주는 매력이다. 대한민국 스토리 DNA 시리즈 속에 작가의 책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관심이 갔던 것은 전상국 하면 당연히 따라붙는 <아베의 가족>이다. 사실 우상의 눈물보다는 아베의 가족이 더 눈에 익은데 어디서 보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언젠가 읽어본 듯 한것이 분명 학교 다닐때 국어시간에 본 작품들임에 틀림없다.
한 가족이 있다. 저들에게는 '아베'라는 형이자 오빠가 있다. 그러나 그 아베는 가족의 일원으로 끼지도 못한다. 조금은 아니 많이 모자란 그런데도 성욕만은 살아있는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다. 동생이고 남이고를 가리지 않고 여자면 덤벼든다. 하물며 엄마도 마찬가지다. 동물적인 감각밖에 남아있지 않은 아베. 당연 말도 할 줄 모르고 할줄 아는 말이라고는 그저 아베라고 중얼거리는 것뿐이다.
형제들이기는 해도 아베와 다른 형제들은 아버지가 다르다. 어린 아베를 불쌍히 여긴 남자가 그 아이를 극진히 보살펴줬고 시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던 엄마는 내쫓기다시피 그 남자와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그 남자가 바로 이들의 아버지다. 고모의 초청장으로 인해서 미국에 가게 된 그들은 바쁘게 짐을 꾸린다. 여권을 내고 비자 신청을 한다.
그러면서도 누구 하나 아베에 대해서 신경도 쓰지 않는다. 가족들은 미국까지 아베를 데리고는 가는 것일까 아니면 아베를 한국땅에 버려둔 채 자신들만 가는 것일까. 미국에 간지 4년만에 미국 군인으로 이 땅을 다시 밟게 된 진호. 그는 지금 이 한국에서 누군가를 찾으려 한다. 그가 찾으려 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9개의 단편들중 가장 긴 페이지를 할애하고있는 이 <아베의 가족>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차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비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나나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은 각자 자신의 몫이다.
한글로 된, 특히나 이런 작품을 읽는 것은 생각지 못했던 단어를 읽는 즐거움도 준다.
드디어 키작은 사내의 바짓가랑이가 데거덕거리기 시작했다.(187 p)
'데걱거리다'라는 말은 <동행>에서 가장 자주 많이 쓰이는 단어다. 물에 젖은 바지가 얼어붙어 나는 소리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 데걱거리다 라는 말은 '데걱데걱'처럼 두번 겹쳐서 사용이 되기도 한다. 평상시에 쓰지 않는 말이며 또한 이런 말이 있다는 것도 모르고 지낸다. 이런 문학작품 속에서 알지 못했던 한글 단어를 만나는 것은 책을 읽는 즐거움이며 책을 읽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자르면 자를수록 늘어나는 플라나리아를 소재로 한 <플라나리아>, 학창시절 학생들을 통하여서 그 당시의 시대상을 드러내주는 <우상의 눈물>, 동생과 형 두명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보여주는 <우리들의 날개>와 <침묵의 눈>, 조부모님의 유해를 가지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버지와 아들.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맥>, 어쩌다 보니 눈 덮인 겨울 밤 같은 길을 가게 된 두 남자의 이야기 <동행>,공중전화를 통해서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던 그 시절 한 사기 사건에 얽힌 <전야>,장애를 가진 아베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아베의 가족>.
마지막으로 한 집에 계속 들어오는 커다란 돌멩이들, 누가 무슨 심정으로 그 집에 계속 돈을 던지는 것일까. 평안도 사투리를 읽는 재미를 주는 <투석>까지 총 아홉편의 단편들이 주는 재미와 감동은 생각보다 크다. 학생들의 필독서이기도 할 전상국의 소설들, 이 이야기는 두고두고 읽어야 할 그런 작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