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향수(밀란 쿤데라 전집 10),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14(23).

   

노스탈지

 

독일인들은 노스탈지라는 말을 그리스어 형태로는 거의 쓰지 않고, 대신 부재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뜻하는젠주크트(Sehnsuch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11)

 

독일인들은 노스탈지라는 말을 그리스어 형태로는 거의 쓰지 않고, 대신 부재하는 것에 대한 욕망을 뜻하는젠주흐트(Sehnsucht)’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독일어 발음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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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향수(밀란 쿤데라 전집 10),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14(23).

 

고등학생 조제프

 

여자 친구 여고생, 학교 의무 수업의 일환으로 일주일 동안, 반 친구들과 스키를 타러 가야 한다.

 

조제프의 반대, 절교 위협.

 

그녀가 그에게 말을 꺼내자마자 그가 말을 가로막았다. <생각을 바꿨니? 포기할 거지?> 그녀가 똑같은 말을 두 번째로 하기 시작했을 때, 발뒤꿈치로 돌아서서 그녀를 길 한가운데 남겨 두고 간 것은 바로 그였다.”(108, 문장부호 수정인용)

 

그녀가 그에게 말을 꺼내자마자 그가 말을 가로막았다. <생각을 바꿨니? 포기할 거지?> 그녀가 똑같은 말을 열 번째로 하기 시작했을 때, 발뒤꿈치로 돌아서서 그녀를 길 한가운데 남겨 두고 간 것은 바로 그였다.”

 

프랑스어 원문: la dixième fois = 열 번째

 

횟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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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향수(밀란 쿤데라 전집 10), 박성창 옮김, 민음사, 2014(23).

 

조제프와 그의 형

 

그의 형. 의대 2년차이던 그는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1948년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조만간 학업에 복귀해서 그의 아버지처럼 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는 어느 날 마지못해 공산당에 입당해서 1988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공산당의 마음에 들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70-71)

 

그의 형. 의대 2년차이던 그는 부르주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1948년 대학에서 추방되었다. 조만간 학업에 복귀해서 그의 아버지처럼 외과 의사가 되겠다는 희망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는 어느 날 마지못해 공산당에 입당해서 1989까지 남아 있을 정도로 공산당의 마음에 들고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프랑스어 원문: [...] il avait fini par entrer au parti où il était resté jussqu’en 1989.

 

연도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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귄터 그라스,암실 이야기, 장희창 옮김, 민음사, 2015(5).

 

파울헨

 

그때 나는 슈테글리츠의 카르슈타트에 살았던 내 친구 고트프리트와 물건 몇 개를 훔쳤어. 빗 하나, 손거울 하나, 그리고 자그마한 물건 하나였지. 하지만 백화점 경비가 현장에서 우리를 붙들었고 바로 경찰을 불렀어.”(215)

 

그때 나는 슈테글리츠의 카르슈타트 백화점에서 내 친구 고트프리트와 물건 몇 개를 훔쳤어. 빗 하나, 손거울 하나, 그리고 자그마한 물건 하나였지. 하지만 백화점 경비가 현장에서 우리를 붙들었고 바로 경찰을 불렀어.”

 

독일어 원문: Da hab ich mit meinem Freund Gottfried bei Karstadt in Steglitz paar Sachen geklaut, einen Kamm, einen Taschenspiegel und noch ne Kleinigkeit. [...]

 

bei Karstadt = 카르슈타트 백화점에서

 

카르슈타트 백화점 = 1881년 설립된 독일 백화점. 독일 전역에 약 80여 개 매장이 있다.

 

오류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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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 쿤데라,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밀란 쿤데라 전집 6), 이재룡 옮김, 민음사, 2013(37).

 

세계의 구조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의 불꽃에 사로잡혔다. 나는 히틀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곤 감격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가족 중 몇몇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던 히틀러의 사진에 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변태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11)

 

얼마 전 나는 기막힌 감정에 사로잡혔다. 나는 히틀러에 관한 책을 뒤적이다 사진 몇 장을 보곤 울컥했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 가족 중 몇몇은 나치 수용소에서 죽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이, 되돌아갈 수 없는 내 인생의 한 시절,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던 히틀러의 사진에 비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러한 히틀러와의 화해는 영원한 회귀란 없다는 데에 근거한 세계에 존재하는 고유하고 심각한 도덕적 도착(倒錯)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런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서되며, 따라서 모든 것이 냉소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어 원문: Il n’y a pas longtemps, je me suis surpris dans une sensation incroyable : en feuilletant un livre sur Hitler, j’étais ému devant certaines de ses photos ; [...]

Cette réconciliation avec Hitler trahit la profonde perversion morale inhérente à un monde fondé essentiellement sur l’inexistence du retour, car dans ce monde-là tout est d’avance pardonné et tout y est donc cyniquement per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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