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 박흥식 옮김, 홍성사, 2017(2).

 

그렇다고 해서 15531019일 오전 8시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미하엘 슈티펠Michael Stifel처럼 세상의 종말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몽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217-218)

 

그렇다고 해서 1533 1019일 오전 8시에 예수가 재림할 것이라고 예언했던 미하엘 슈티펠Michael Stifel처럼 세상의 종말을 정확히 예측하기 위한 몽상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독일어 원문: Zwar beteiligte er sich nicht an Fantastereien zur exakten Berechnung des Endes der Welt, wie etwa Michael Stifel, der die Wiederkunft Christi auf den 19. Oktober 1533, acht Uhr morgens vorausgesagt hatte.

 

연도를 바로잡았다.

 

 

참고 사이트:

 

https://de.wikipedia.org/wiki/Michael_Sti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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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 박흥식 옮김, 홍성사, 2017(2).

 

182

 

독일어, 즉 잠자고 있는 이 거인을 깨워 풀어 놓은 사람이 바로 루터였다. 마치 모든 은행 환전소에서 보듯 스콜라적인 무의미한 말의 향연을 끝내버린 사람도 바로 루터였다. 그는 종교개혁을 통해 민족 구성원 전부의 사고와 감정을 고양시켰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언어철학Sprachphilosophie에서 마르틴 루터에 대하여

 

독일어, 즉 잠자고 있는 이 거인을 깨워 풀어 놓은 사람이 바로 루터였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그 상들처럼, 스콜라적인 단어 행상(行商)을 쏟아버린 사람도 바로 루터였다. 그는 종교개혁을 통해 민족 구성원 전부의 사고와 감정을 고양시켰다.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언어철학관점에서 마르틴 루터에 대하여

 

독일어 원문: Er ist’s, der die deutsche Sprache, einen schlafenden Riesen, aufgeweckt und losgebunden. Er ist’s, der die scholastische Wortkrämerei, wie jene Wechsel[er]tische, verschüttet; er hat durch seine Reformation eine ganze Nation zum Denken und Gefühl erhoben.


Johann Gottfried Herder über Martin Luther in seiner Sprachphilosophie

 


저자의 인용 오류를 수정하고, 번역을 바로잡았다.

 

Sprachphilosophie = 헤르더의 저서가 아님.

 

위 인용문의 출처:

 

Johann Gottfried Herder: Über die neuere Deutsche Literatur. Fragmente, in: Herders Sämmtliche Werke, hrsg. von Bernhard Suphan, Bd. 1, Berlin: Weidmann 1877, 357-531: 372.

 

wie jene Wechsel[er]tische

 

= 신약성경 <요한복음> 2:13-17을 볼 것:

 

 

헤르더참고 사이트:

 

https://de.wikipedia.org/wiki/Johann_Gottfried_Her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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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트-야코부스 디터리히,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 박흥식 옮김, 홍성사, 2017(2).

 

그리고 ‘Erdenkloß’(흙덩이)‘Nächstenliebe’(이웃사랑), ‘kleing-

läubig’(의구심이 많은)‘friedfertig’(화평케 하는) 등을 비롯하여 새로이 창안된 여러 인공적인 조어(造語)들도 루터의 작품이다.(180)

 

그리고 ‘Erdenkloß’(흙덩이)‘Nächstenliebe’(이웃사랑), ‘klein-

gläubig’(의구심이 많은)‘friedfertig’(화평케 하는) 등을 비롯하여 새로이 창안된 여러 인공적인 조어(造語)들도 루터의 작품이다.

 

독일어 원문: Kunstworte, sprachliche Neuschöpfungen wie »Erdenkloß« und

»Nächstenliebe«, »kleingläubig«, oder »friedfertig« und viele andere gehen auf ihn zurück.

 

독일어 분철을 바로잡았다.

 

 

kleingläubig의 분철 가능, 2가지

 

klein-gläubig

 

kleingläu-big

 

 

분철 가능성은 사전Worttrennung을 볼 것:

 

https://www.dwds.de/wb/kleingl%C3%A4u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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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마르틴 바르트,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홍지훈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5(9).

 

노예의지론의 설명은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신학의 배타적 불변화사들(particulae exclusivae)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통해 영적 시련을 겪는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그들에게로 돌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해도 된다. ‘오직 성서는 신앙인에게는 사변이 아니다. ‘오직 은총은 행위가 아니다. ‘오직 믿음은 인간의 사변적 판단과 고유의 능력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숨어계신 하나님이 아니다.(312)

 

노예의지론의 설명은 그런 점에서 종교개혁 신학의 오직 명제들(particulae exclusivae)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숨어계심을 통해 영적 시련을 겪는 그리스도인은 계속해서 오직 명제들로 돌아가야 하고 또 그렇게 해도 된다. ‘오직 성서는 신앙인에게는 사변이 아니다. ‘오직 은총은 행위가 아니다. ‘오직 믿음은 인간의 사변적 판단과 고유의 능력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숨어계신 하나님이 아니다.

 

독일어 원문: Die Ausführung von »De servo arbitrio« stehen insofern in unmittelbarem Zusammenhang mit den »particulae exclusivae« der reformatorischen Theologie. Zu ihnen soll und darf der durch die Verborgenheit Gottes angefochtene Christenmensch immer wieder zurückkehren »Allein die Heilige Schrift« soll für den Glaubenden gelten, nicht die Spekulation, »allein die Gnade«, nicht die Werk, »allein der Glaube«, nicht das spekulative Urteil und die eigene Kapazität des Menschen, »allein Christus« und nicht ein »verborgener Gott«!

 

번역을 바로잡았다.

 

particulae exclusivae = Ausschließlichkeitssätze = 배제 공리(公理)

 

= ‘오직 성서’ + ‘오직 은총’ + ‘오직 믿음’ + ‘오직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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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발트 바이어, 마르틴 루터의 신학, 정병식 옮김, 공감마을, 2023(초판 2).

 

그래서 루터는 그 선원들은 두려워서 각각 자기의 신을 불렀다라는 요나서 15절에 대해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지만”, ‘하나의 특정한 하나님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이다.(193)

 

하지만 그 추구는 항상 실패한다. 그래서 루터는 그 선원들은 두려워서 각각 자기의 신을 불렀다라는 요나서 15절에 대해 정곡을 찌르며 말했다. “배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지만”, ‘확실한 하나님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나님을 확실히 알게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직무이다.

 

독일어 원문: [Die Vernunft greift], aber immer daneben, so dass Luther (zu Jona 1,5: »Und die Schiffsleute fürchteten sich und schrien, ein jeder zu seinem Gott«) pointiert formulieren kann, »dass diese Leute im Schiffe alle von Gott wissen«, »aber keinen gewissen Gott« haben. Gottes gewiss zu machen, ist das Amt Jesu Christi.

 

빠진 곳을 보완하고, 번역을 바로잡았다.

 

[die Vernunft greift], aber immer daneben

 

= 이성은 하지만 언제나 표적에서 빗나가게 붙잡는다

 

Gottes gewiss zu machen

 

= 하나님을 확신하게 만드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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