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플리체 (전집7:100, 105, 130)

 

Teplice

 

독일어 = Teplitz

 

체코 서북부의 온천도시.

프라하에서 북서쪽으로 9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위치.

 

762년 온천이 처음 발견.

1862, 온천 발견 1100년을 맞아 기념식과 기념비 제막식이 열림.

 

1945, 독일계 거주민 추방.

 

18세기와 19세기 유명한 요양지로, 유럽 전역에서 명사들 방문.

 

베토벤은 1811년과 1812년 이곳을 찾았고. 괴테는 1810년과 1812, 1813년에도 이곳에 머물렀다. 특히 1813년에는 베티나도 괴테와 같은 시기에 테플리체에 체류했다.

 

1812719, 여기에서 42살의 베토벤과 63살의 괴테가 처음으로 직접 만나 괴테의에그몬트에 곡을 부치는 일을 논의했다.

 

이 기간에 일어났던, 베티나 폰 아르님베토벤이 보낸 편지에 털어놓아 알게 된이 전하는 일화가 유명.

 

일화에 따르면, 1812723일 베토벤과 괴테는 궁전 공원을 산책하다 오스트리아 황제 가족과 그 일행을 마주치자, 베토벤과 괴테는 상반되는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 베토벤은 황비와 그 일행을 무시하는 듯한 행동을 했고, 괴테는 깍듯한 예의를 갖춰 대했다.

 

화가 칼 뢰링은 이 일화를 토대로 1887년 석판화테플리체의 우발적 사건을 그렸다.

 

아래 그림은 칼 뢰링의 석판화.                                                          (수정보완: 201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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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전집7:123)

 

Siegmund von Arnim

 

베티나와 아힘 폰 아르님의 둘째 아들.

프로이센 외교관.

   

Siegmund = ‘무적의 보호자’(siegreichter Schützer)라는 의미.

 

베티나는 1811년 아르님과 결혼, 7남매를 낳았다.

 

1. 프라이문트(1812-1863)

2. 지그문트(1813-1890)

3. 프리트문트(1815-1883)

4. 퀴네문트(1817-1835)

5. 막시밀리안네(1818-1894)

6. 아름가르트(1821-1880)

7. 오틸리에(1827-1889)

 

지그문트는 어머니 베티나와 많은 편지를 주고받았고, 이는 2012년 출판되었다.

 

다른 두 아들, 프라이문트와 프리트문트가 어머니와 교환한 서간집도 이 시리즈로 나왔다.

 

Du bist mir Vater und Bruder und Sohn : Bettine von Arnims Briefwechsel mit ihrem Sohn Freimund / hrsg. von Wolfgang Bunzel und Ulrike Landfester, 1999.

 

In allem einverstanden mit dir : Bettine von Arnims Briefwechsel mit ihrem Sohn Friedmund / hrsg. von Wolfgang Bunzel und Ulrike Landfester, 2001.

 

Da wir uns nun einmal nicht vertragen : Bettine von Arnims Briefwechsel mit ihrem Sohn Siegmund / hrsg. von Wolfgang Bunzel und Ulrike Landfester, 2012.

 

 

 

다음은 지그문트의 서간집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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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덕의 알레고리(전집7:514)

 

Allégorie des vices

 

이탈리아 화가, 코레지오본명: 안토니오 알레그리(Antonio Allegri)1531년 무렵 작품.

프랑스 루브르 미술관 소장.

 

악덕(惡德)

서양 기독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악덕 = 교만, 인색, 질투, 분노, 음욕, 탐욕, 나태.

칠죄종(七罪宗).

이는, 죄 그 자체일 뿐만 아니라 사람이 죄를 짓게 하는 원천. 그래서 죄원(罪源).

 

 

밀란 쿤데라:

 

코레지오의악덕의 알레고리에서는 모든 사람이 미소를 짓고 있다! 악을 표현하기 위해 화가는 미소로 용모를 일그러뜨리고 입이 벌어지게 하여, 얼굴들의 순수한 평정을 뒤흔들어 놓아야 했던 것이다. 이 그림에서 크게 웃는 유일한 인물은 한 어린아이다! 그러나 그 아이의 웃음은 초콜릿이나 기저귀 광고 속 어린아이들이 보여 주는 그런 행복한 웃음이 아니다. 그 그림 속 아이는 타락했기 때문에 웃는 것이다!”(514-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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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낙 (전집7:251)

 

Kanak/canaque

 

남태평양 뉴칼레도니아의 원주민.

 

카낙 = 사람이란 뜻의 kanaka에서 유래.

뉴칼레도니아 인구의 약 45%를 차지.

28개 부족 언어가 있음.

 

 

뉴칼레도니아

 

남태평양에서 파푸아뉴기니, 뉴질랜드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섬.

1774,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처음 발견.

1853,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령 선언.

1946, 식민지에서 프랑스 해외 영토로 편입.

현재, 프랑스 공화국의 일부, 동시에 특정 영역의 자치권 유지.

공용어 = 프랑스어

 

뉴칼레도니아의 위치는 다음 그림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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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그나츠 뎀프셔 (전집6:315-316)

 

Ignaz Anton Aloys Dembscher(1776-1838).

 

오스트리아 빈의 부호, 예술 후원자, 아마추어 첼로 연주자.

 

쿤데라는 베토벤의 테마 ‘Es muss sein’와 관련된 뎀프셔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쿤데라의 이야기와 다른, 음악사에 전해 오는 좀 더 자세한 사정은 이렇다.

 

 

1826321, 베토벤의 작품 현악4중주(작품번호 130)가 이그나츠 슈판치히(Ignaz Schuppanzigh)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이그나츠 뎀프셔는 이 초연을 보지 못했다.

 

대신 그는 떠벌리고 다녔다. 최상급 연주자들을 모으고, 친한 친구들을 초대해 언제든지 그 작품의 연주회를 자기가 단독으로 개최할 수 있다고. 또 베토벤에게 악보를 빌리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노라고.(실제로 베토벤은 이전에도 자신의 악보를 뎀프셔에게 빌려주곤 했다.)

 

이런 말이 베토벤의 귀에 들어갔고, 베토벤은 뎀프셔의 말에 화가 났다.

 

얼마 후 뎀프셔는 베토벤에게 문제의 악보를 빌리려고 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렇게 쉽게 뎀브셔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베토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 보고, 50굴덴의 대여료를 초연 지휘자 슈판치히에게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슈판치히의 단원이자 베토벤의 친한 친구인 칼 홀츠가 뎀프셔에게 베토벤의 말을 전하자, 뎀프셔는 한숨을 내쉬며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Wenn es sein muss)”이라고 대답했다.

 

뎀프셔의 말을 전해 들은 베토벤은, 뎀프셔의 말을 모티브 삼아, “꼭 그래야 해(Es muss sein)”라는 4중창 소품을 작곡해 응수했다.

 

(베토벤은 편지 대신에 또는 편지에 소품을 써서, 상대방의 말에 재치 있고 장난스럽게 답하는 버릇이 있었다.)

 

이때가 182681일이었고, 그 후 같은 해 10월 베토벤은 꼭 그래야 해(Es muss sein)”라는 이 테마를 현악4중주(작품번호 135) 4악장에 끼워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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