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안인희 옮김, 창비, 2021(6).
그곳은 아주 넓진 않아도 깊이 자리 잡은 중간 크기의 공원이었는데 느릅나무, 단풍나무, 플라터너스 나무 들과 꼬불꼬불한 산책로, 그리고 빽빽하게 우거진 아직 어린 전나무숲이 있고 여기저기 벤치들도 많았다.(16)
→ 그곳은 아주 넓진 않아도 울창한 중간 크기의 공원이었는데 느릅나무, 단풍나무, 플라터너스 나무 들과 꼬불꼬불한 산책로, 그리고 빽빽하게 우거진 아직 어린 전나무숲이 있고 여기저기 벤치들도 많았다.
독일어 원문: Es war ein mäßig großer Park, nicht sehr breit, aber tief, mit stattlichen Ulmen, Ahornen und Platanen, gewundenen Spazierwegen, einem jungen Tannendickicht und vielen Ruhebänken.
• 번역을 바로잡았다.
• tief = 여기서는, ‘울창한’
안인희 선생님께!
어제 금요일 <한겨레>에 실린 신간 소개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번역을 훑어보았습니다.
번역문을 읽는데, “깊이 자리 잡은”이라는 표현이 제겐 이상했습니다.
제 어감에 “깊이 자리 잡은”이라는 표현은 구체적인 공간이 제시된 후에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1) 그 도시 북쪽 산속에 깊이 자리 잡은 사찰은 누구나 찾는 명소이다.
예2) 그녀의 마음 깊이 자리 잡은 그리움은 어찌할 수 없었다.
독일어 원문을 살펴보니, ‘tief’를 ‘깊이 자리 잡은’으로 옮기셨더군요. 하지만 독일어 원문 앞뒤에는 선생님과 같이 독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간이 없습니다.
여기서 ‘tief’는 상대적 공간의 의미가 아니라 절대적인 숲의 양태를 덧붙여 표현하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tief’를 그냥 흔히 쓰는 ‘깊은’이라는 뜻으로 읽고, 바로 번역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한 단어에도 민감하고 까다롭게 구는 선생님의 번역문을 읽고 싶습니다.
2021. 6. 5.
박진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