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요한에게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결코 유대교의 율법에 매인 것이 아니다.(νόμος가 빠져 있다.)(900)

 

요한에게 행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영접한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결코 유대교의 율법에 매인 것이 아니다.(νόμος가 빠져 있다.)

 

독일어 원문: Die Werke ergeben sich für Johannes als natürliche Folge aus dem empfangenen Heilswerk Jesu Christi, an keiner Stelle werden sie an das jüdische Gesetz gebunden (νόμος fehlt!).

 

빠진 단어를 보완하고, 번역을 바로잡았다.

 

aus dem empfangenen Heilswerk Jesu Christi

 

= 예수 그리스도의 영접된 구원 사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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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예언자는 교회가 스스로를 이방 세계와 분명하게 구분하라고 요구한다. 심판은 행위 이후에 일어나기 때문이다.(참조. 2:23, 20:12-13)(900)

 

예언자는 교회가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어, 이방 세계와 분명하게 구분하라고 요구한다. 심판은 행위에 따라 일어나기 때문이다.(참조. 2:23, 20:12-13)

 

독일어 원문: [...] der Seher fordert eine klare Abgrenzung von der heidnischen Welt, die sich in den Werken der Gemeinde zeigen muss, denn das Gericht ergeht nach den Werken (vgl. Offb 2, 23; 20, 12 f).

 

번역을 바로잡았다.

 

die[=Abgrenzung] sich in den Werken der Gemeinde zeigen muss

 

= 구분은 교회의 행위들 가운데 드러나야 한다

 

denn das Gericht ergeht nach den Werken

 

= 왜냐하면 심판은 행위들에 따라 행해진다

 

 

아래, 예증(例證) 구절을 볼 것:

 

요한계시록 2: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

 

요한계시록 20:12-13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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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어린양의 죽음으로 세워진 미래 구원의 현재성은 이미 하늘의 영역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 세상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에서 관철되기 시작했다는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의 특징이다.(899)

 

어린양의 죽음으로 세워진 미래 구원의 현재성은 요한이 이미 하늘의 영역에서 완성된 것으로 보았던 것이 세상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현재 안에서 관철되기 시작했다는 요한계시록의 종말론의 특징이다.

 

독일어 원문: Die im Tod des Lammes begründete Gegenwärtigkeit des zukünftigen Heils prägt die Eschatologie der Offb, in der Gegenwart beginnt sich trotz des Widerstandes der Welt durchzusetzen, was Johannes im himmlischen Bereich schon als vollendet schauen darf.

 

누락 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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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896, 각주 91

 

R. Heiligenthal, Wer waren die ‚Nikolaiten‘?, ZNW 82 (1991), 133-137은 니골라당은 교부들의 반이단 문헌들에서 단지 영지주의자들로 이해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R. Heiligenthal, Wer waren die ‚Nikolaiten‘?, ZNW 82 (1991), 133-137은 니골라당은 교부들의 반이단 문헌들에서 결코 영지주의자들로만 이해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독일어 원문: R. Heiligenthal, Wer waren die ‚Nikolaiten‘?, ZNW 82 (1991), 133-137, weist darauf hin, dass die ‚Nikolaiten‘ in der antihäretischen Literatur der Kirchenväter keineswegs nur als Gnostiker verstanden wurden.

 

큰따옴표의 위치와 번역을 바로잡았다.

 

 

아래, ‘keineswegs nur als’의 예문을 참고할 것:

 

Hermann Weber macht klar, dass die DDR, die fast so lange existierte wie das deutsche Kaiserreich, keineswegs nur als Nebenprodukt des Kalten Krieges angesehen werden darf.

 

Dabei sollten breite, über das Englische hinausgehende Sprachenkenntnisse keineswegs nur als Zusatzqualifikation für den Eintritt ins Berufsleben gesehen we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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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슈넬레, 신약정경개론, 김문경·문병구·임진수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24(초판 2).

 

895, 각주 89

 

참조. U. B. Müller, Zur frühchristlichen Theologiegeschichte (5를 보라.), 17-21. Die von M. Karrer, Johannesoffenbarung als Brief, 201f.

 

참조. U. B. Müller, Zur frühchristlichen Theologiegeschichte (5를 보라.), 17-21. 이 해석 노선에 대하여, 카러가 표명한 회의적 견해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M. Karrer, Johannesoffenbarung als Brief, 201f.)

 

독일어 원문: Vgl. U. B. Müller, Zur frühchristlichen Theologiegeschichte (s. o. 5), 17-21. Die von M. Karrer, Johannesoffenbarung als Brief, 201f, geäußerte Skepsis gegenüber dieser Auslegungslinie vermag ich nicht zu teilen.

 

누락을 보완하고, 번역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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