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몰트만,몰트만 자서전, 이신건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1(8).

 

410쪽 각주 6:

 

Fr. Rosenzweig, Der Stein der Erlösung, Heidelberg 1954. 3. Buch, 192-194.

 

Fr. Rosenzweig, Der Stern der Erlösung, Heidelberg 1954. 3. Buch, 192-194.

 

독일어 책 이름을 바로잡았다.

 

Stein =

 

Ster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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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몰트만 자서전, 이신건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1(8).

 

1968성 금요일에 베를린에서는 학생 지도자이자 블로흐의 친구였던 루디 두츠케(Rudi Dutschke)총에 맞아 죽었다.(228)

 

1968성 금요일 전날에 베를린에서는 학생 지도자이자 블로흐의 친구였던 루디 두취케(Rudi Dutschke)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독일어 원문: In Berlin wurde am Karfreitag 1968 Rudi Dutschke, Studentenführer und Freund Blochs, angeschossen.

 

저자 오류와 인명, 번역을 바로잡았다.

 

 

두취케 피격일 = 19684111968년 성 금요일 = 1968412

 

Rudi Dutschke = 루디 두취케(1940-1979)

 

in Berlin wurde [...] Rudi Dutschke, [...] angeschossen

 

= 베를린에서 루디 두취케는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

 

독일 위키피디아, ‘루디 두취케를 볼 것:


https://de.wikipedia.org/wiki/Rudi_Dutsch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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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몰트만 자서전, 이신건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1(8).

 

1963/64년에 나는 부퍼탈과 본에서 나의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을 강의했다. [...] 하지만 이로써 나는 부퍼탈 신학대학에서 강의 의무의 한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빌헬름 니젤은 자신은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을 강의하고 나는 신학의 역사만을 강의할 것을 권면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이런 언급은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이미 본 대학으로 와 달라는 청빙서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내가 종교개혁자들의 영역에서 밀려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니젤은 나를 여전히 잘 대해 주었다.(110)

 

1963/64년에 나는 부퍼탈과 본에서 동시에 나의희망의 신학(Theologie der Hoffnung)을 강의했다. [...] 하지만 이로써 나는 부퍼탈 신학대학에서 강의 분야의 경계를 넘어서게 되었다. 빌헬름 니젤은 부퍼탈에서 개혁 신학을 책임지고 강의할 사람은 자신이니, 나는 신학의 역사만을 강의해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그 시점에 이런 언급은 불필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이미 본 대학으로 와 달라는 청빙서를 주머니에 넣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니젤은 내가 개혁 신학을 제대로 체화하지 못한다고 여겼지만, 니젤은 나를 여전히 잘 대해 주었다.

 

독일어 원문: 1963/64 trug ich dann meine Theologie der Hoffnung in Wuppertal und zugleich in Bonn vor. [...] Aber damit stieß ich über die Grenze meines Lehrauftrags in Wuppertal hinaus: Wilhelm Niesel ermahnte mich, er sei hier der Vertreter für die reformierte Theologie, ich solle mich auf die Theologiegeschichte beschränken. Dieser Hinweis war zu dem Zeitpunkt aber nicht mehr nötig, ich hatte schon die Berufung in der Tasche. Niesel blieb mir gleichwohl wohlgesonnen, auch wenn ich ihm nicht astrein aus reformiertem Holz geschnitzt erschien.

 

번역을 바로잡았다.

 

auch wenn ich ihm nicht astrein aus reformiertem Holz geschnitzt erschien

 

= 내가 개혁적 나무로 완벽하게 조각되지 않았다고 그에게 보였음에도

 

 

astrein = 완벽한, 빈틈없는

 

et. aus Holz schnitzen = 목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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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몰트만 자서전, 이신건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1(8).

 

내가 적은 보수를 받고 배고픈 목사후보생으로 살아갈 때, 야수들이 밭을 헤집고 간 다음에는 농부들이 종종 문 앞에 와서 뭔가를 놓고 갔다. 내가 월급을 받는 목사로 안수를 받은 후로는 그런 일이 갑자기 없어졌다.(92)

 

내가 적은 보수를 받고 배고픈 목사후보생으로 살아갈 때, 농가에서 도축을 한 다음에는 농부들이 종종 문 앞에 와서 뭔가를 놓고 갔다. 내가 사례비를 받는 목사로 안수를 받은 후로는 그런 일이 갑자기 없어졌다.

 

독일어 원문: Solange ich ein hungriger Vikar mit geringem Gehalt war, kamen die Bauern oft an unsere Tür und brachten etwas vorbei, wenn auf ihren Höfen geschlachtet worden war. Das hörte schlagartig auf, nachdem ich zum besoldeten Pfarrer ordiniert wurde.

 

번역을 바로잡았다.

 

wenn auf ihren Höfen geschlachtet worden war

 

= 농가에서 도축을 할 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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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르겐 몰트만,몰트만 자서전, 이신건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1(8).

 

그곳에는 떡갈나무, 자작나무와 온갖 덤불이 우거진 나지막한 둔덕이 있었는데, 이 둔덕은 6년마다 대충 다듬어졌다.(13)

 

그곳에는 개암나무, 자작나무와 온갖 덤불이 우거진 나지막한 둔덕이 있었는데, 이 둔덕은 7년마다 대충 다듬어졌다.

 

독일어 원문: Das sind niedrige Erdwälle, mit Haseln, Birken und allerlei Gestrüpp bewachsen, die alle sieben Jahre »geknickt«, also grob gerodet wurden.

 

숫자와 단어를 바로잡았다.

 

alle sieben Jahre = 7년마다

 

Hasel = 개암나무

 

떡갈나무 = E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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