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하엘 벨커 외,『종교개혁, 유럽의 역사를 바꾸다』, 김재진 외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7(10).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에 대한 물음은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논쟁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필립 폰 헤센은 1529년 마부르크에서─1526년 시작된 야고보서 논쟁 이후─루터파와 츠빙글리파 사이에서 중도(中道)의 길을 모색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양자를 화해시키려는 시도에서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1536년의 <비텐베르크 협약>(부처와 멜란히톤)이 바로 그것이다. 이 협약으로 개신교는 일치에 이르게 된다.(31쪽)
→ 성만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에 대한 물음은 루터교회와 개혁교회 논쟁에서 가장 중심적인 주제가 되었다. 필립 폰 헤센은 1529년 마르부르크에서─1526년 시작된, 논박 문서를 통해 수행된 논쟁 이후─루터파와 츠빙글리파 사이에서 중도(中道)를 모색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양자를 화해시키려는 시도에서 중요한 발전이 이루어졌다. 1536년의 <비텐베르크 협약>(부처와 멜란히톤)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1973년의 로이엔베르크 협약으로 개신교는 비로소 일치에 이르게 된다.
독일어 원문: Der Streit über die Gegenwart Christi im Abendmahl wurde zu einem Zentralkonflikt zwischen Lutheranern und Reformierten. Philipp von Hessen suchte in Marburg 1529 (nach einer über Streitschriften geführten Debatte, die 1526 begann) eine „Mittelstraße zwischen Lutherischen und Zwinglischen‟, was allerdings scheiterte. Ein wichtiger Schritt auf diesem Weg war die Wittenberger Konkordie von 1536 (Bucer und Melanchthon). Aber erst der Leuenberger Konkordie von 1973 gelang die innerprotestantische Einigung.
• nach einer über Streitschriften geführten Debatte, die 1526 begann
= 1526년 시작된, 논박 문서를 통해 수행된 논쟁 이후
• 참고로, 루터와 칼슈타트 사이의 야고보서 논쟁 = 1519/1520년
• 아울러 빠진 부분을 보완하고, 지명과 단어를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