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왜냐하면 한계를 벗어난 무제한적이고 무한한 시간이란 바로 하나님 없는 시간이며, 그것의 뒷면에는 하나님 없는 시간을 소유하려는 인간이 전혀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이것은 어떤 혼란스런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인간이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를 말할 수 있는 것, 곧 우리는 언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스스로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490-491)

 

왜냐하면 한계를 벗어난 무제한적이고 무한한 시간이란 바로 하나님 없는 시간이며, 그것의 뒷면에는 하나님 없는 시간을 소유하려는 인간이 전혀 시간을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놓여 있다. 이것은 어떤 쉬지 못하는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그것은 인간이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 를 말할 수 있는 것, 곧 우리는 언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스스로 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어 원문: Denn die entschränkte, die grenzlose, die unendliche Zeit ist ja eben die gottlose Zeit, deren Kehrseite darin besteht, daß der Mensch, der die Zeit ohne gott haben will, überhaupt keine Zeit mehr hat ­ und das wird sich in einer Rastlosigkeit auswirken, aber auch darin, daß er nicht »gerade zu dem Ja sagen (kann), wozu man ... nur mit Gott Ja sagen kann: daß wir einmal nicht mehr sein ... werden.«

 

Rastlosigkeit = 쉬지 못함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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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유한성의 운명을 찬양하는 대신 두 주먹을 쥐고 위협하려고 했다(/2, 622). 그러나 인간의 시간적인 제약성이 짐이 되는 것은, 그가 하나님 아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기쁘고 겸손하게 인간으로서 즉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대신,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그래서 영원히 존재하려고 할 때다(/2, 622).(491-492)

 

[...]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유한성의 운명을 찬양하는 대신 두 주먹을 쥐고 위협하려고 했다(/2, 622). 그러나 인간의 시간적인 제약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 아래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기쁘고 겸손하게 인간으로서 즉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대신, 하나님이 되려고 하고 그래서 영원히 존재하려고 할 때다(/2, 649).

 

독일어 원문: [...] der[=Prometheus] dem Schicksal seiner Endlichkeit, »statt es zu besingen, mit der Faust zu drohen« unternimmt (/2, 622). Doch gegen seine zeitliche Befristung wäre »nur dann Beschwerde zu erheben, wenn der Mensch durchaus Gott und also ewig sein wollte, statt unter Gott und mit Gott fröhlich und bescheiden nun eben Mensch und also zeitlich zu sein« (649).

 

Beschwerde gegen A erhehen

 

= A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다

 

• 문장과 출전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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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그렇게 이해되는 어떤 신은 인간에게 그 신을 피하여 앞서 말한 하나님 없는 시간 안으로 도피하는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다. 그 인간은 그때 프로메테우스를 불러내게 되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유한성의 운명을 찬양하는 대신 두 주먹을 쥐고 위협하려고 했다(/2, 622).(491)

 

그렇게 이해되는 어떤 신은 인간에게 그 신을 피하여 앞서 말한 하나님 없는 시간 안으로 도피하는 정당성을 부여할 뿐이다. 그 신은 그때 프로메테우스를 불러내게 되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의 유한성의 운명을 찬양하는 대신 두 주먹을 쥐고 위협하려고 했다(/2, 622).

 

독일어 원문: Ein so verstandener Gott gäbe den Mesnchen nur Recht, vor ihm auszuweichen in jene gottlose Zeit. Er riefe dann Prometheus hervor, der dem Schicksal seiner Endlichkeit, »statt es zu besingen, mit der Faust zu drohen« unternimmt (/2, 622).

 

er[=ein so verstandener Gott] riefe dann Prometheus hervor

 

= 그 신은 그때 프로메테우스를 불러내게 될 것이다

 

주어를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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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우리의 시간적인 삶의 제약을 의미했던 암벽들은 그분의 은혜에 의해 피조된 삶의 공간을 보호하고 막아주는 성벽으로 변화하며, 이 세상의 삶은어머니의 품에 놓인 아기처럼영원의 품속에 포괄된다”(/1, 703;/2, 690).(494)

 

우리의 시간적인 삶의 제약을 의미했던 암벽들은 그분의 은혜에 의해 피조된 삶의 공간을 보호하고 막아주는 성벽으로 변화하며(683), 이 세상의 삶은어머니의 품에 놓인 아기처럼영원의 품속에 포괄된다”(/1, 703;/2, 690).

 

독일어 원문: Durch seine Gnade werden die »Felswände«, die die Schranken des zeitlichen Lebens an sich für uns bedeuten müßten, zu »schützenden und bergenden Mauern« des geschöpflichen Lebensraums (683), wird das irdische Leben ­ »wie ein Kind in Mutterarmen« ­ »eingebettet in seine Ewigkeit« (/1, 703;/2, 690).

 

빠진 출전을 보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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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버하르트 부쉬,위대한 열정, 박성규 옮김, 새물결플러스, 2017(2).

 

죽음은, 우리와 사실상 그렇게 만나듯이”, 바로 성서가 죽음을 그렇게 증언하듯이, “우리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표징이고, 하나님의 선하신 행동이다(/2, 724f.). 나아가 죽음은 마지막 원수”(고전15:26).(495)

 

죽음은, 우리와 사실상 그렇게 만나듯이”, 바로 성서가 죽음을 그렇게 증언하듯이, “우리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표징이고, 하나님의 선하신 행동이 아니라(/2, 724f.) “마지막 원수”(고전15:26).

 

독일어 원문: Der Tod, wie er uns »faktisch begegnet«, wie ihn gerade das biblische Zeugnis sieht, ist »das Zeichen des Gerichtes Gottes über uns« ­ keine Wohltat (/2, 724f.), sondern »der letzte Feind« (1. Kor. 15,26).

 

keine Wohltat (/2, 724f.), sondern »der letzte Feind«

 

= 선행이 아니라 마지막 원수

 

문장을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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