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성에서의 하루 문학과지성 시인선 515
김선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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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념하는 감정과 겉도는 시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걸까

[목성에서의 하루](문학과지성사) - 김선재


ㅁ 정말 많은 책들을 구매했으면서도, 시집은 처음 사보았다. 시집이란 걸 산다는 생각자체를 하지 못했다. 시는 그냥 저냥 볼 수 있었으니까. 마치 음악처럼 요즘 앨범 사는 사람은 적지만 앨범안에 든 음악을 골라 듣는 상황과 같다. 그래서 시집은 그렇게 잘 팔리지도 않는 것 같고, 일반 대중들도 잘 사진 않는다.


ㅁ 시집을 사게 된 건 정이경의 [시의 문장들]이란 책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엔 시의 몇몇 구절만 보는 게 무척 감칠만 나는 일이라는 걸 몰랐다. 108개의 구문을 보면서, 뒤에서부턴 보고싶은 시들을 표시해뒀다가 찾아보았다. 시를 찾다보니까 몇몇 작가님들을 알게 되었고, 서점에 가서 시집 책장을 둘러보았다. 마음에 드는 세 권 중에서 일단은 두 권, 그 중 한 권이 [목성에서의 하루]였다.


ㅁ 제목부터, '뭔소리야'라는 생각이 드는 조금 신비스러운 제목이다. 목성에서의 하루를 보낸다면 과연 어떤 기분일까. 어떤 삶일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읽다가 안 사실이었지만 시집의 제목이라기 보단 시집에 든 시 하나의 제목이었다. 새삼 하나의 큰 주제 안에 들어간 시라는 느낌이 깨져서 뭔가 좀 서글퍼졌다. 어쩐지 뭔가 이해가 가질 않더라니;; 시를 하나씩 읽어보았다. 책을 덮고 나서 든 생각은 '이게 뭐야...'였다.


ㅁ 좋은 게 좋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나와 맞지 않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책마다 저자의 특징이 있고, 장점이 있을테니까. 그런데, [목성에서의 하루]는 사실 잘 모르겠다. 내 눈에 안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시'라는 문학을 읽지 못하는 것인지 그조차도 모르겠다. 읽는 내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그래서 뭘 말하고 있는건지 깨닫지 못했다. 어떤 걸 말하는 것 같다가도 끝에서 오묘해지고, 그러다가 결국 무슨 소린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시가 읽히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시가 그런 분야인가. 내가 그런걸 모르고 있는걸까. 도저히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너무 급하게 읽은 건가 싶어서 천천히도 읽어보고, 하나하나 음미하며 읽어보기도 했는데, 결국 알 방법이 없었다. 다행히도 어떤 시구만이 좋았던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덕분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시라는 작품을 잘 모르겠다.


가슴에 손을 얹으면 할 수 없는 말들이 있고

무름을 꿇으면 해야 할 말들이 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오늘은 내가

나를 지울래요

<우리는 누군가가 되어> 中

ㅁ 뭔가 체념한 듯한 말투는 저 문장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시가 그런 느낌이었다. 아니면 내가 읽는 동안 체념하는 상태여서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는데, 다만 느낌만이 남아서 시 구절에 떠도는 느낌. 그냥 시는 원래 그런 걸까.


오각형은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 우리는 사각형이 되도록 하자

<평면 위에서> 中

ㅁ 오각형이니 사각형이니, 앞뒤를 본다면 뜬금없을지도 모를 저 구절도, 그냥 스스로 낮게 들어가는 기분이 드는 건 비슷한 이유인 듯 했다. 원은 애초에 굴러가는 사람이고 오각형은 각마저 약간 둥근 상태니까 각이 확실한 사각형이 되는 건 조금은 조용하게, 그리고 낮게 살고 싶은 걸까. 그런 생각에 도달한다. 그게 무슨 이유에서, 그리고 어떤 내용에서 시작된 생각인지 모른 채 그냥 그저 그런 마음으로 시를 읽었다.


ㅁ 시집을 마저 읽고, 서평을 쓰려고 앉아있는 순간에도 어떤 이야기로 리뷰를 써야할지 몰랐다. 시집을 구매하는 것 자체가 일단 처음인 일이라, 이 모든 게 처음이라 어색했다. 막상 글을 쓰다보니 술술 쓸 수 있었는데, 그 맥락과 문장들이 과연 올바른지 생각해보면 햇갈린다. 하지만 따로 수정을 하고 싶진 않다. 그 이상한 느낌조자 내가 시를 읽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표현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글을 읽고나면 얼마나 부끄러울지 생각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니까. 이런 두서없는 글도 하나의 표현으로 기록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장 서글픈 느낌이 들었던 구절로 끝내려고 한다.


우리들은 점점 흐려진다. 흐르는 빛과 지나가는 안개와 돌아오는 길이 그런것처럼. 눈물이 차오를 때마다 낯선 길들이 이어진다. 흐려지며 흐릿한 것을 말하고 낯설어지며 낯선 길을 간다. 검은 물빛을 지나고 낡은 거미줄을 지나고 주저앉는 각자의 지붕들을 견디는 텅 빈 도심쪽으로, 무심하게 내일 쪽으로.


<전날의 산책> 中

p.s. 책과는 별개로 시를 사서 보는 건 어쩌면 좋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책과는 다르게 시는 한 작품 한 작품씩 읽어야 하나보다. 그렇게 읽어도 와닿지 않는 게 있는데, 시집을 사서 보려면 그냥 두고 하루에 한두편씩 읽는게 그나마 가장 시를 감상하는 방법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시집을 '한줄의 문장'처럼 하루에 조금씩 읽도록 해야겠다. 지금 사둔 모든 시집들도...

숲이 흔들리면 바람이 된다
바람이 된 숲으로 들어가면
낯선 바람 없이도
기다릴 줄 알게 된다

아무것도
아무려나
어떻게든

나무를 열고 들어간다

열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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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왼손잡이 (세계문학전집 022)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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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진짜' 러시아인을 만나다.

ebook : [왼손잡이](문학동네) - 니콜라이 레스코프


ㅁ 고전, 러시아에선 좀 유명하다고 하는데, 사실 내가 확인할 방법은 없고, 어쨌건 우리나라에선 덜 유명한 그런 작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단편집, [왼손잡이]다. 실제로 왼손잡이라는 장편은 아니고 레스코프가 쓴 3개의 작품을 한 데 묶은 단편소설집인 셈이다. 그 중 가장 처음에 있는 단편이 바로 [왼손잡이], 그리고 뒤에 단편 하나와 중편 하나, [분장예술가]와 [봉인된 천사]가 실려있다. 


ㅁ 읽기 전부터 목차를 보고 제일 궁금했던 건 '그 세 편의 이야기가 왜 이 한 권에 묶였는지' 였다. 딱히 공통점이 있는걸까. 그런 생각을 해보았지만, 사실 단편들이 묶이는데 별 이유가 있었나 싶기도 했다. [바깥은 여름]도 그랬고, [말하자면 좋은사람]도 그랬고, 약간 전체적인 느낌? 묘사?는 비슷하지만, 소설 속 사건들과 이야기의 전개는 그냥 다르다. 굳이 공통점을 뽑는다면 바로 그 느낌. 책을 읽으면서 갖는 책에 대한, 단편을 쓴 작가에 대한 일관된 감정이 공통점이겠다.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하나의 감정축에 놓여있었기 때문에 묶여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ㅁ 레스코프의 [왼손잡이]도 읽는 내내 든 감정축이 있었다. '익살스러움'과 '러시아인'이다. 첫 번째는 세 작품 모두 잘 스며들어있었다. 잉국이란 표현이나, 아니면 각 주인공, 인물들의 말투에서도 약간 콩트에서 나올법한(그것도 아주 오래된 콩트) 말투였다. 지금 시대엔 그게 그렇게 익살스럽지 않을 지도 모르겠다. 전혀 지금의 코드와는 맞지 않기 때문인데, 당시 시대에 책이 발간되었다면, 확실히 익살스러움으로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마치 현대시대에서 유머집을 보는 기분이랄까. 거기에 유머를 가미한 시대반영적인 이야기. 이게 바로 두 번째 감정축이다. '러시아인'이라 표현할 수 있는 건, 바로 당시 러시아(제정러시아)에 살았던 백성들의 이야기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이건 요즘 러시아사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책에 관한 이야기를 찾다 보니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의 장인정신을 표현한 [왼손잡이], 종교미술적 영감과 신성함을 드러낸 [봉인된 천사], 마지막으로 농노제의 잔혹함을 표현한 [분장예술가]. 이 모든 게 바로 당시 러시아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ㅁ 처음 읽은 고전 소설이었다. 고전의 기준이 옛날 소설이면서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의 시대에서도 끊임없이 읽히는 책이라고 한다면, [왼손잡이] 역시 그 조건을 만족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러시아 백성에 관한 '역사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를 구성하는 방식이 있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그 상태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하며,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은 정보를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왼손잡이] 역시 하나의 역사책으로서, 당시 시대에 비판적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며, 동시에 안쓰러움과 뛰어난 정신, 가령 기계화와 대비되는 장인정신 같은 영혼을 회상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단 점에서 바로 '고전'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ㅁ 마지막으로 [왼손잡이]가 러시아의 소설이다. 사실 러시아에 대해 우리는 약간 생소하다. 소련이란 이데올로기적인 문제도 있었고, 가깝지만 약간은 먼, 그리고 아시아라고 하기엔 조금 애매한 유럽의 나라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문학이 꽤나 화려한 편인데, 그만큼 생소한 나라여서 러시아 자체를 살펴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 첫 관심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불러읽으킬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난 러시아 문학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쉽고도, 러시아를 친근하게 대할 수 있는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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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오늘의 젊은 작가 19
구병모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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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붕괴가 개인주의자에게 확고한 신념으로 자리잡지 않기 바라며

[네 이웃의 식탁](믿음사) - 구병모


ㅁ "꿈미래실험공동주택 입주를 환영합니다." 로 시작하는 뒷표지는 마치 요즘 한창 주택문제로 시끄러울 시대에 쉐어하우스의 이미지를 보는 기분이었다. 별 거 하지도 않은 채 환영한다는 저 문구만 보더라도, 그리고 그게 공동주택이란 말에서부터 벌써 피곤함을 느낀다면, 우린 이미 그 실체를 몸소 느끼고 있는 것이리라. 제목에서처럼 '견고한 식탁'만큼 그들의 '피곤함'은 반대로 엄청 크게 느껴졌다. 그런 소설이었다. 그 피곤함을 극적으로 표현된 소설. 구병모 작가님의 [네 이웃의 식탁]이다.


   ㅁ 책을 처음 읽을 땐 [네 이웃의 식탁]이란 제목인 dining table of your neighbor 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덮었는데 보인 제목이 문득 you가 아니라 네 '쌍의' 이웃을 말하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4쌍의 가족들이 등장한다.) 어느 쪽이든, 둘 다 의미는 맞는 것 같다. (의도는 후자가 더 맞는 듯...) 너의 이웃의 식탁이라고 하던, 네 쌍의 이웃들의 식탁이라고 하던,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곳에 놓인 식탁인 점은 똑같다. 그래서 그 견고한 식탁이 시작과 끝을 맺는 역할이었다. 견고함. 공동체의 견고함을 의미한다. 

 

   마치 '최후의 만찬'이란 그림에 나온 식탁을 상상했다. 물론 종교적 의미를 둘째치고, 여러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는 그 공간이 난 그렇게나 불편해보였다. 그래서 이 식탁도 그런 점에서 부담이었다. 거기에 그렇게나 견고하고 넓고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으니 말 다했다. 그만큼 붕괴되는 공동체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들어난 것일테니...


   ㅁ 이미 앞에서 거의 설명을 다한 기분이지만, 간단한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정부에서 추구한 실험적인 공동주택에 입주하는 부부들의 이야기다. 하나둘 입주하는 부부들 간에 공동체를 꾸려나간다. 그 공동체는 겉보기에 잘 돌아가는 기분이지만, 나름 각자의 입장에서, 특히 아내들의 입장에서 전개해나간다. 그렇게 여러 사건들이 휘말리고, 동시에 어긋난 사람들의 감정이 터지고 폭발하면서, 완전히 비틀어진다. 그렇게 삐걱삐걱 굴러가던 공동체는 당연하게 무너지고, 사람들 간의 감정도 회복 불능의 상태가 되어 결국 모든 게 부서진 채 끝이 난다. 마치 공동체는 그 자체로 해악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건가 그런 생각이 들정도로 무섭게 붕괴된다.


   물론 '공동체=악'을 말하려는 게 아닐 것이다. 다만, 삐걱거리는 공동체의 현실태를 보여주는 정도로 이해하는 게 옮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읽다보면, 왜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지 않고, 주변에 관심을 갖지 않으며, 개인주의적 삶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길 정도다. 그게 의도가 아닌데 말이다. 제발 그렇게 해석이 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느끼는 것도 사람이니까. 그리고 읽는 내내 내가 피곤한 것도 사람이니까.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리에서 생뚱맞은 표정으로 좌중을 둘러보면 요진 혼자 비협조적이고 정 없는 이가 될 판이었고 ...(중략) ... 객관적으로 정말 별것 아닌 일인데도 요진은 자신이 고작 선의를 드러내고 보장받기 위한 선후 관계에 집착하는 예민함의 결정체가 된 듯한 느낌이었다.

p. 50

   그렇다. 무리에 있으면 누구나 고민하고 '어 그러죠. 괜찮아요.' 그런 말로 넘기는 상황. 눈치보며 할 말 다하지 못하는 게 관계인 셈이다. 읽는 내내 그런 순간이 나올 때마다 숨이 턱 막힌다. 할 말 하고 살자! 라고 주장해봐야 실제로 무리 내에서 그런 말 쉽게 하는 사람 한 번도 못 봤다. 그렇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관계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이자, 동시에 그런 생활에 피곤함을 느끼는 사회적 동물. 바로 사람이니까. 사회적으로 살아가야 하니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찜찜함을 느끼는 게,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너만 그런 것도 아닌데 말이다. 적절한 표현이 책에도 나온다.


홍단희가 이렇게 까지 말하는데 요진은 뭐라고 토를 달 수가 없어서 어색한 미소로 대답을 때웠다. 자신의 마음은 어딘가 용납되지 않는데 이미 형성된 분위기가 그 용납되지 않음을 용납하지 않을 때, 이럴 때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일은 화제 전황 정도였다.

p.127


ㅁ 책을 덮고 나면, '역시 공동체는...'라거나 '역시 1+1=2가 아니라 0에 가깝구나.' 라는 회의적 시각을 갖는다. 반면 [네 이웃의 식탁]을 읽고 좀 더 바람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다만 공동체의 모습이 이런 면만 있진 않을 것이라고, 읽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물론 공동체 이전에 사람들도 중요하고, 적절한 만남과 혼자만의 시간 보장도 필요한 부분일 것이다. 어쨌건 공동체의 붕괴가 개인주의를 빙자한 이기주의로 나아가지 않길 바라는 바. 겸사겸사 이렇게 글을 남겨본다. 나 역시 공동체의 양면을 동시에 인지하고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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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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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이었는데, 지금은 겨울이 되어간다.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 김애란


ㅁ 일단 뭣보다, 역시 기대는 크면 안되는 걸 또 깨닫아버린 책이다. 과유불급이라고, 역시 기대도 적당해야 읽는 데 기분 좋고 신난다. 과하면 뭐든 좋은 경우가 없다. [바깥은 여름]이란 책이 엄청 인기가 많기도 했고, 소설가들이 뽑은 1위 책이었던 걸로 기억해서 참 기대를 많이 했다. 읽는 날들이 밀리면서 기대는 마치 눈덩이 굴리듯 커져가더니, 읽는 날이 되니 이미 거대한 산이 되었다. 결국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 채 책의 끝을 덮고 말았다. 


ㅁ 김애란의 소설 [바깥은 여름]은 아마 가장 최신 작품으로 알고 있다. [두근두근 내인생]으로 유명하신데, 물론 난 유명한 책은 읽지 않기 때문에 역시나 읽어보지 않았다.(하지만 읽어봐야겠다.) 결국 이 책이 김애란작가님의 첫 책인 셈이다. 총 7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는데, 사실 왜 [바깥은 여름]인지 아직도 알지 못했다. 곰곰히 되새겨보고 다시 내용을 훑어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모르겠다. 왜 '바깥은 여름'이었을까.


ㅁ 문득 뒷표지의 문장이 눈에 박혔다.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아마 이것이었겠구나. 안에 등장한 모든 인물들이 바로 이 기분이었구나. 스쳐간 이야기들의 주인공들을 생각했다. <입동>의 미진이도, <노찬성과 에반>의 찬성도, <건너편>의 도화도, 그리고 뒤에 있는 모든 인물들에게, 세상은 겨울이었고, 바깥은 여름인 시간의 간격을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문장에서부터 마치 아련한, 그러나 조금 차가운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글에서 어떤 '쓸쓸하단' 느낌을 표현해낸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그리고 끝에 쓸쓸함이 팡! 하고 터질 때, 별 다른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닌데, 그 때 깨지는 쓸쓸한 얼음조각들이 가슴에 박혔다. 쓸쓸하고 차갑던 감정들이 바깥은 여름과 대조되고 있었다.


ㅁ 7편 중에서 첫 편(<입동>)과 마지막 편(<어디로 가고 싶은 건가요>), 그리고 세번째 편(<건너편>)은 정말 읽는 내내 아리는 가슴을 붙잡았어야 했다. 세 개의 이야기가 모두 전혀 다른 이야기인데도, 느껴지는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끝에 딱! 하고 깨지는 무언가가 있다. 다른 편은 몰라도 이 세 편은 누구나 꼭 읽음으로써 느껴봐야할 감정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날, 그 시간, 그곳에선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게 아니라,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

p.266

그리고 조금 특이한 건 4번째 편(<침묵의 미래>)이었다. 이건 정말 나중에 있을 법한 이야기다. 여기서 약간 장강명 작가님의 느낌을 받았다. 묘하게 SF적인 느낌이 가미되었달까. 침묵의 미래라는 제목처럼 조금은 심오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서 느껴지는 묘한 느낌이 있다.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언어의 생애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ㅁ 전체적으로 슬프다. 슬픔이 큰 강이 되고 주변의 내천들이 스며드는 구조다. 특히 시작과 끝 작품이 압권이며, 슬픔을 극대화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감정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게 생활에도 영향을 미쳤고, 책을 읽는 기간동안 나 스스로 우울해져, 가라앉은 채로 살았다. 그러다 보니 세상이 참 슬퍼보였고, 거기에 높은 하늘과 맑은 날씨가 한층 더 강하게 벅차오름을 강요했다.


ㅁ 책 하나가 사람을 이렇게 바꾸기도 한다. 새삼 감정에 파묻힌 기분이었다. 아래 말처럼 책을 덮고 어디로 가야할지, 어쩔줄 몰라 두리번 거리는 내가 있었다.


오래전 소설을 마쳤는데도 가끔은 이들이 여전히 갈 곳 모르는 얼굴로 어딘가를 돌아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p. 269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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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 문장들 - 굳은 마음을 말랑하게 하는 시인의 말들 문장 시리즈
김이경 지음 / 유유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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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하고 간결함 속 마음을 꿰뚫는 문장들

[시의 문장들](유유) - 김이경


   ㅁ 어릴 적 중학교 때, 시를 쓴 잠깐의 기간이 있었다. 사실 그 때 무슨 시를 쓴 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확실한 건 시를 잘 써서 상도 받았고, 교육청의 어떤 시 영재프로그램에 참석했단 기억이 남아있을 뿐이다. 물론 수업을 가진 않았다. 겁나 재미없어서 말이다. 시와 전혀 관계없는 전공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지금 돌아보면 그 때 시를 열심히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내가 어떤 시를 쓴 건지 모르는 상태에서, 난 그 이후로 시를 가까이 두지 않았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오늘이 되었고, 난 다시 '시' 앞에 섰다. 책 [시의 문장들]을 옆구리에 끼고서 이 글을 쓴다.


   ㅁ 시는 참 묘한 존재다. 그리고 언어가 있는 어디에든 존재하고, 감성과 이성 그 중간쯤에 놓은 존재다. 시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실존한 이래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게 아닐까. 잘 보면, 시가 없던 시기는 없었다. 고대 그리스부터, 지금까지 시는 계속 남아 있었고, 고대 이전에도 분명 있었을 것이라 (근거 없지만) 확신한다. 시는 그런 존재니까. 언어가 있었다면, 시는 무척 자연스레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만든다기 보단 시는 그 자체로 '발생'하는 것이리라. 쓰다보니 시는 문득 만드는 게 아니라, 느끼면서 발생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ㅁ 그래서 시는 그리 대단한 글이라고 말할 순 없다. 그냥 그 자체로 발생했던 거니까. 마치 우리가 항상 하는 말과 다름없다. 다만 시를 언어를 통해 글로 쓰는 것과 그냥 느낌만을 간직하는 것의 차이다. [시의 문장들]이란 책을 처음 봤을 때, 꼭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그 느낌을 느끼기 위해 빌려 읽는 것으론 그대로 받아드릴 수 없으니까. 간직하고 느낌을 몸에 스며들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무리해서 책을 구매, 읽기 시작했다.

전반적인 내용을 특별하지 않다. 작가님이 읽은 좋은 시 구절들을 뽑아 한 쪽 면에 쓰고 반대편 면에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싣는다. 그 내용은 1페이지 정도인데, 단 3줄인 내용도 있고, 좀 긴 부분도 있다. 이런건 사실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느낌대로,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야도 아마 에세이라 되어 있다. 그렇게 모인 108개의 시 구절은, 각기 제 존재를 뽑내며, 페이지마다 조심스레 놓여 있다. 저마다 다른 모습과 느낌을 내뿜으며 그렇게 한 책에 담겨 있다.


   ㅁ 작가의 말에서도 언급한 부분이 있다. 시의 문장들 역시 시의 일부를 가져오는 거라 시 자체의 모든 느낌을 가져올 수 없었다. 확실히 그런 부분은 아쉬운 편인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아니겠는가. 시를 다 가져오면 그게 시집이지, 시 문장의 책은 아니니까. 그래서 시집을 사게 만든다. 시의 한 문장이 시집을 사게 만들정도로 크게 오는 경우가 있다. 그 때의 감정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다. 느껴봐야 아는 매력. 그게 시다. 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매력을 갖는다. 그리고 슬며시 읽는 독자에게 던진다.


   ㅁ 그렇게 시에 한 번 다가갔다. 아니 다시 다가간다. 무려 8년이상 멀리했던 시에 다시 가까워졌다. 그 때 놔버렸던, 그리고 멀어진 시를 마주하고 보니,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그 땐 왜 잡지 못했을까. 그 때 잡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기회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시' 앞에 서서 이번엔 놓치 않길 기도한다. 이게 [시의 문장들] 덕분이다. 그 어릴 시절 시 쓴 나를 회상하며, 오랜 친구를 맞이하듯 시를 내 인생에 한 자리에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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