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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굿바이 동물원 / 강태식 / 한겨레출판 (2012)

 

웹툰을 그리 즐겨보진 않지만 어쩌다보니 챙겨보게 됐던, <해치지 않아>라는 웹툰이 있습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로 유명한 hun이라는 작가의 최근작인데 오늘 이야기할 <굿바이 동물원>을 처음 접하는 순간, 이 웹툰이 어쩔 수 없이 떠올랐습니다. 결론부터 미리 말씀드리면, 이 두 작품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굿바이 동물원>의 소개글을 읽었을 때는 '어? <해치지 않아>랑 비슷한데?'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동물원이라는 배경, 동물의 탈을 쓴 인간들이 동물 행세를 하며 관람객들을 유혹한다는 설정,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루저들이 동물인간 혹은 인간동물이 되어 이 동물원으로 모여든다는 컨셉까지. 어떠세요? 이렇게만 이야기하니 정말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그러나 다행히도 이 두 작품이 같은 지점은 여기까지였습니다. 매체가 다른 만큼 그 기획시기를 떠나 두 작품의 작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참고하거나 의식했을 가능성 또한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공통점은 어디까지나 우연의 일치인 듯 합니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일테지요. <굿바이 동물원>을 읽으며 저는 이러한 짐작을 점차 확신으로 바꿀 수 있었습니다. 말씀드린 웹툰과는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입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굿바이 동물원>은 리얼리티에서 출발하지만, 결코 리얼리티에 기반하고 있지 않으며 최종적으로는 리얼리티로부터 자유하는 작품이었습니다. 현실을 이야기하지만, 그 현실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았고 결국에는 바로 그렇기에 훨씬 더 현실적일 수 있었던 이야기였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린다고 해놓고, 말이 어렵네요. 진짜를 이야기하기 위해 가짜를 선택한다.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사실을 무시한다. 이것도 영 모호하군요. 어쩔 수 없네요. 그냥 현실을 에둘러 이야기하는 우화라고 해두자구요.

 

인간이 동물의 탈을 쓰고 철창 안으로 들어가 동물 노릇을 한다.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진짜 동물은 절대 지을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절대 해낼 수 없는 묘기를 부리는 인간동물. 그렇게 동물원은 돈을 벌고, 동물노릇을 하는 인간도 돈을 법니다. 이 정도로 터무니없는 설정이면 자연스레 우리는 이러한 '뻥을 친' 작가가 어떻게 그럴듯한 개연성으로 수습해낼 것인지 기대하게 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굿바이 동물원>의 작가는 그러한 논리적 설명 따위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어떻게 동물의 미세한 신경과 조직을 조정해 진짜 동물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표정을 지고 몸을 움직이는지...이 책을 끝까지 다 읽어도 우리는 결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각박하고 고단한 동물원의 삶을 못 이겨 아프리카로 날아간 인간동물이 사파리에서 다른 진짜동물들과 섞여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는 후반부의 설정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한 지에 대한 설명은 단 한줄도 쓰여있지 않습니다.

 

이쯤에서 저는 새삼스럽게도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소설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랬습니다. 저는 어느땐가부터 소설은 현실을 반영하지만 결코 현실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는 당연한 원칙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연성이란 이야기 안에서의 완결성을 뜻하는 것이지, 실재하는 사실관계의 과학적 증명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또한 어느 순간부터 망각하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이야기 매체 혹은 같은 소설이라도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 같은 장르소설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이야기의 문법 자체를 저도 모르게 너무나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적용했던 것은 아닌지. 그렇게 최소한의 상상력도 발휘하지 못한 채 정형화된 이야기 문법 안에 갇혔있었던 것은 아닌지.

 

<굿바이 동물원>을 읽는 내내 저는 이러한 반성 아닌 반성을 하고,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얻으며 이야기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해놓고, 정작 '진짜 이야기'를 만나니 이걸 어찌 읽어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당황했던 것이지요. 중요한 것은 동물탈을 쓴 인간을 어찌 몰라볼 수 있느냐가 아니고 인간이 동물탈을 쓰고 동물행세를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이유라는 걸...전자가 이해되지 않아도 후자가 이해된다면 그게 바로 이야기라는 것을...깨닫게 해준 소설...<굿바이 동물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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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녁,

찬 기운에 잠을 깨다.

 

이불을 끌어올리는데,

따뜻하다.

 

따뜻함, 그리웠던.

 

 

 

 

안 그러면 아비규환 / 마이클 셰이본 外 / 톨 (2012)

 

유명짜한 작가들의 '이야기 기부' 정도 되려나?

각자들의 취향에 맞는 이야길 골라 읽는 재미,

친한 작가의 뜻밖의 면모를 발견하는 쾌감,

궁금했던 작가의 진가를 확인하는 기쁨...

그렇게 부디 수준의 편차없이 고루 공들인 작품들이기를.

 

 

 

 

메타트로폴리스 / 존 스칼지 外 / 책세상 (2012)

 

<안 그러면 아비규환>이 추리와 판타지였다면, 이번에는 SF의 향연이 펼쳐진다.

<노인의 전쟁>을 워낙 재밌게 읽은 터라,

존 스칼지의 철학과 재미를 고루 갖춘 상상력이 어떻게 빛을 발할지 기대가 크다.

물론 그가 직접 선정해 함께 작업했다는 다른 작가들의 이야기들도 마찬가지.

 

 

 

탐정영화 / 아비코 다케마루 / 포레 (2012)

 

이야기 속 이야기.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등장인물들의 욕망에 따라,

그들의 실제 인생도, 이야기 속 이야기의 내용도 함께 변해간다.

이런 식의 메타픽션은 언제나 흥미롭다.

특히나 이야기가 넘쳐나는 요즘 세상에선 더더욱 그러하다.

이야기는 현실을 반영하고, 현실은 어느덧 이야기를 모방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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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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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스치는 바람 1,2 (전2권) / 이정명 / 은행나무 (2012)

동주 / 구효서 / 자음과 모음 (2011)

 

얼마전 구효서의 '동주'를 읽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자면 저는 구효서의 팬입니다. '열렬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제법 '충실한' 팬 정도는 됩니다. 시작은 홍상수 감독의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이었을 겁니다. 이제 막 영화를 좋아하기 시작한 무렵이었던 터라 영화 한편을 보고나면 그와 관련된 모든 기사며 인터뷰, 평론 등을 부지런히 찾아읽곤 했었지요. 그러던 차에 저는 이 영화의 원작이 따로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바로, 구효서라는 낯선 작가가 쓴 '낯선 여름'이라는 짧은 장편소설이었습니다. 큰 기대를 안고 저는 득달같이 책을 찾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영화와는 참 많이 다른 분위기며 이야기에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내 저는 영화와는 달리 온기어린 담백함을 간직한 원작에 빠져들고 말았습니다. 인간 본연의 이기적인 욕망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냉소 가득한 홍상수의 영화보다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고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놓지않는 구효서의 소설이 더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요.

그날 이후로 저는 구효서의 작품들을 꾸준히 찾아 읽었고, 신작이 나올 때마다 '득달같이'는 아니더라도 너무 늦지는 않게 꼬박꼬박 구해 읽곤 했습니다. 특별함보다는 꾸준함을 무기로 하는 작가답게 그 품질은 대부분 균일했지만 아무래도 눈에 띄는 작품이 그리 많지는 않았습니다. 차분하고 소소한 일상이나 하잘것없이 평범한 인생들을 아주 클래식한 구조와 문법으로 형상화해내는 그의 문체는 시간이 지나도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그를 좋아하는 이유였으니까요.

 

그러던 구효서에게 변화가 느껴진 건 '동주' 직전에 낸 장편 '랩소디 인 베를린'이었습니다. 최근의 단편들에서 기록되지 못한 소중한 사람들의 삶을 되살려내는데 공을 들이며 변화를 향한 단초를 드러내긴 했지만, 이러한 '기록되지 못한 소중한 삶'들을 향한 관심을 현재화해 의미를 부여하고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을 꿰함으로써 우리의 내일을 제시하려는 욕심까지 내보인 건 바로 이 '랩소디 인 베를린'이 처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쉽게 말씀드리자면 그렇게 구효서는 파편화된 개인의 미시사를 그려내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그러한 개인들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거대한 역사적 사건들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며 거시적인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특히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은 다른 시대 다른 인물들의 삶을 나열하다가 거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개로 하나로 묶어내는 솜씨는 이제 구효서가 대가의 경지에 이르기 직전이구나, 라는 찬탄이 일 정도로 단단하고 정교했습니다.

디아스포라. 전쟁이라는 참혹한 역사가 낳은 조국을 잃고 떠도는 '국제미아'들의 슬픈 여정을 여러 시대 여러 주인공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보여주는 이러한 방식은 최근작 '동주'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더군요. 작곡가 윤이상을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주인공을 내세웠지만 '랩소디 인 베를린'이 결코 윤이상의 이야기가 아니었듯이 '동주' 역시 시인 윤동주를 제목 삼았음에도 그의 모습은 쉬이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는 일종의 매개체로 기능하며 현재와 과거를 살고 있는 여러 인물들을 한곳으로 모여들게 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함으로써 오히려 더욱 더 윤동주의 존재감은 커져만 갔고, 윤동주의 흔적을 찾아 헤매는 등장인물들의 노력을 통해 그 조각들이 하나씩 하나씩 드러나는가 싶더니...마지막에 가서는 비로소 하나로 합쳐져 인간 윤동주의 위대한 면모가 완성되더군요. 현재를 살아가는 재일교포 3세인 주인공 김경식의 눈으로, 그리고 윤동주를 옆에서 지켜봤던...일본인이나 일본인일 수 없었던 일본인이 아니지만 일본인이어야만 했던 요코 혹은 이타츠 푸리 카라라 불리는 여인의 눈으로...말입니다.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은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동주'와 정반대 지점에 서 있기도 하고, 또한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기도 한 작품입니다. 윤동주를 살아있는 진짜 인물로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전자이고 그를 아끼며 동경하며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뀌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는 후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이 두 작품은 시인 윤동주를 다룬, 동전의 양면이면서 서로를 마주보는 거울 같은 이야기입니다. (조금 더 억지로 갖다붙이자면 전사와 후사처럼 볼수도 있는 작품이구요.)

 

이 소설은 '바람의 화원'과 '뿌리깊은 나무'를 쓴 작가의 작품답게 미스터리 추리소설의 익숙한 구조를 따라갑니다. 악독한 간수인 스기야마 도잔이 참혹한 시체로 발견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고, 풋내기 간수인 주인공 와타나베에게 이 의문의 살인사건이 맡겨지면서 스기야마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소설의 중심플롯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파헤치면 파헤칠수록 사건은 점점 더 미궁으로 빠져들고...유력한 용의자인줄 알았던 조선인 죄수 말고 진짜 진범은 따로 있는데...뭐 이런 식으로 이야기가 발전되는 것이지요.

이렇게만 말하면 '별을 스치는 바람'은 여느 추리소설들과 그다지 차별점도 없고 그렇다고 장르적 재미라는 측면에서도 특출나게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정명의 두 전작들이 그러했듯 정작 이 작품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따로 있습니다. 이러한 미스터리 구조가 실은 맥거핀에 가까운, 독자들을 끌어당기기 위한 미끼일 뿐이고 작가가 진짜 하고싶은 이야긴 따로 있다는 걸 알게되는 바로 그때, 우리는 이 이야기가 그저 만만한 추리소설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빛나는 지점이란 바로 '악독한 간수' 스기야마가 '교활한 죄수' 윤동주에 의해 자신의 인간적 혹은 감성적 면모를 각성하게 되고, 억압된 자아와 악몽같은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 비로소 영혼의 자유를 얻어가는 과정입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비로소 생명력을 얻으며 우리를 거부할 수 없는 윤동주의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이쯤되면 진짜 범인이 누구냐 라는 물음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도소라는 공간 안에서 절대 교감할 수 없는 죄수 윤동주와 간수 스기야마의 내밀한 소통과 그들만의 특수한 우정을 이어가는 모습이 훨씬 더 스릴 넘칩니다. 그들의 너무나 인간적인 '작당 모의'가 부디 발각되지 않기를 바라며 더욱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윤동주의 매력에 마음을 빼앗긴 것은 스기야마 뿐이 아닙니다. 이 소설의 화자이자 스기야마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수사관 와타나베 또한 이 사건의 중심에 조선인 죄수 윤동주가 있다는 걸 알게되고 난 이후부터는 스기야마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한없이 순수한 영혼과 그러한 순수함이 여과없이 반영된 그의 투명한 시(詩)들에 감화되어 살인사건 수사관이라는 '본분'을 망각하고 스기야마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해내려 하였으나 미처 완수하지 못한 윤동주를 보호하기 위한 싸움을 시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구효서의 '동주'와 이정명의 '별을 스치는 바람'이 같은 인물을 소재로 한 전혀 다른 소설이 아닌, 꼭 함께 읽음으로써 윤동주라는 인간, 윤동주라는 시인, 그리고 그의 빛나는 작품들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거울이자 동전의 양면 같은 소설이라고 말했던 이유인 것입니다.

 

'동주'는 제국주의자들의 비뚤어진 욕심의 발로인 전쟁으로 인해 희생된 영혼들과 현재에도 여전히 그로 인한 상처에 허덕이는 후손들이 역시 제국주의자들의 억압에 못이겨 쓸쓸하게 죽어간 윤동주라는 순수한 영혼과 그 영혼이 반영된 시(詩)들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치유받고 윤동주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이상향, 간도는 바로 자신의 마음 속에 있다는 깨닫기까지의 여정을 다룬 소설입니다.

그에 비해 '별을 스치는 바람'은 추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동주'가 끝내 흐릿하게 그 실체를  보여주지 않은 윤동주라는 인물을 살아있는 존재로 되살려내 보여줌으로써  좀 더 직접적이고 친근하게 윤동주와 그의 작품들이 전쟁과 폭력으로 인해 피폐해진 한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위무하고 치료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소설인 것입니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두 소설은 민족이나 사상이라는 틀 안에 결코 가둘 수 없는, 순수한 의미에서의 평화와 자유를 갈망한 인간 윤동주를 위한 레퀴엠이며, 정치적인 의미의 모국어가 아닌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 혹은 자연이라는 의미에서의 모국어를 지키려 애쓰던 시인 윤동주를 위한 오마주인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동주'를 읽은 분이라면 '별을 스치는 바람'을,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으신 분이라면 '동주'를 꼭 찾아 읽어보시길 권해봅니다. 내일은 마침 8월 15일, 윤동주가 미처 보지못한 바로 그날 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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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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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을 위하여 / 미나토 가나에 / 재인

 

'고백'을 읽고 '야행관람차'를 읽었습니다. '왕복서간'을 아직 읽지 못했으니, 이번이 세번째군요.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이번 'N을 위하여'를 읽고나니...이 작가, 참 일관성 있구나. 그리고 그 일관성을 헤치지 않는 선에서 제법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구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칭찬이냐구요? 물론 칭찬이지만, 극찬까진 아닐테지요.

자신의 색깔이 분명하고 그 색깔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보이려 노력한다. 무지개나 팔색조까지는 아니지만, 빨간색을 중심으로 때론 주황이었다가 때론 분홍이 되기도 하는 작가. 그러나 주황도 빨강에 가까운 주황이고 분홍 역시 너무 진해서 살짝 촌스럽고 부담스러운 분홍인 작가. 이 정도가 그를 세번째 만나면서 받게 된 인상입니다. '고백'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냉정하게 말해 이번 세번째가 거기서 가장 멀리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아쉽게도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초장부터 너무 김을 빼버렸네요.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커서 좋은 말이 쉽게 나오질 않는 모양입니다. 최근 읽은 어떤 소설보다 물 흐르듯 잘 읽혔고, 이야기의 초입에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금세 파악이 될 정도로 명확하고 심플하다는 장점이 분명했음에도 뭐가 그리 아쉽고 부족했던 것일까요?

 

N이 너무 많다

 

이 이야기는 제목 그 자체가 중의적이고, 얽히고 설킨 N들의 서로를 향한 감정들, 사랑들이 극을 이끌어가는 동력입니다. 의도는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N이 너무 많더군요. 모두가 N이다보니 모두가 모두에게 감정을 갖고 있더군요. 그렇다보니 행동 하나, 말 한마디에도 너무 여러가지 뜻이 담기게 되어 읽는 내내 솔직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이건 모두가 주인공인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깁니다. 주인공이 분명함에도 주인공이 아닌 인물에게까지 감정을 주는 것, 이것이 과연 새로운 시도일까요? 주인공이 아닌 인물들이 나머지 모든 인물들을 배려하고 걱정하며 오지랍넓게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는게 과연 매력적인 걸까요? 적어도 저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산만함을 너머 이해불가의 지경에까지 이를 정도였습니다. 대체 왜 저렇게까지 하는거지? 그 정도의 감정이 느껴지지도 전달되지도 않는데, 행동은 감정을 너머 주제넘게 과하다는 생각이 드니까 이야기 자체가 도통 공감이 가질 않았습니다.

 

사랑도 너무 많다

 

작가는 이 작품을 러브스토리로 생각하고 썼다고 하더군요. 이 역시 무슨 말인지 너무 잘 알겠지만, 앞서 말했듯 다양한 인물들이 다양한 인물 모두에게 빠짐없이 어떠한 감정을 갖고 있는데...그 중 과연 몇개나 사랑인 걸까요? 제가 보기엔 사랑이라 할 수 없는데. 그저 우정이고, 호감이며, 잘해야 뜨겁지 못한 사랑 언저리의 감정일 뿐인데 그들의 행동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해주기 힘든 것들을 서로에게 해주고들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그게 바로 사랑이 아니겠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아쉽게도 그렇게는 납득이 되질 않았습니다. 이 모든 게 사랑이라면, 아휴...힘들어서 어떻게 사나요? 모두를 사랑하고 모든 게 사랑이란 뜻인데, 그 감정과잉의 세상에서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이건 절대 일상이 아닌 겁니다. 아무리 허구라지만 이 정도로 감정과잉의 인물들이 모여 서로에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내뿜는 이야기라니요.

 

하나의 N을 향한 하나의 사랑

 

물론 이것이 바로 작가의 세계이고 색깔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먼저 읽은 '고백'이나 '야행관람차'는 그러한 과잉된 인물들의 과잉된 행동이 충분히 납득이 되었습니다. 그네들은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세상에 던져진 인물들이었으니까요. 그러나 'N을 위하여'가 속한 세계는 앞의 두 작품과는 분명 다릅니다.  의문의 살인사건을 중심에 두고 이 미스터리한 사건에 얽힌 인물들의 진술과 고백을 따라가며 그 퍼즐을 맞춰가는 구조이긴 하지만, 이들은 정상적인 세계에서 일상을 누리며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작가도 이들에 대한 감정묘사를 전편들에 비해 확실히 담담하고 차분하게 유지한 것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엔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게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한 명이 또 한명에게, 였으면 그들의 과한 감정이 충분히 이해됐을 겁니다. 그러나 한명이 나머지 모두에게 같은 크기의 감정들을 분출하다보니 이들은 대체 뭐지?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더군요. 속속 밝혀지는 그들의 범상치않은, 불행함을 넘어 참혹한 성장환경을 감안하더라도 이들의 애정결핍은 용인되는 지점 이상이었습니다. 그렇다보니 작가가 이들을 통해 원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작가가 주장하는 궁극의 사랑의 실체가 진짜 무엇인지...저는 아쉽게도 알 수 없었습니다. 왜 모두가 N이어야 했을까요? 하나의 N을 향한 S들의 사랑 혹은 하나의 N이 여러 S들에게 골고루 사랑을 주는 이야기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컸던 이야기, 'N을 위하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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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운 날들.

가을이 오려나 보다.

 

 

 

 

 

비행운 / 김애란 / 문학과지성사 (2012)

 

첫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도 좋았지만, 역시 김애란은 촘촘한 단편에서 더욱 빛난다.

젊은 우리들, 우리들의 젊은 날에 대한 그의 담담하지만 울림 깊은 외침에 귀기울여보자. 

 

 

 

메스커레이드 호텔 / 히가시노 게이고 / 현대문학 (2012)

 

대단하다.

일본 작가들의 지치지 않는 생산력.

그 중에서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꾸준함이라니.

걸작은 아니더라도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변함없이 유지하며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그의 이름값을 또 한번 믿어보자.

 

 

블러디 머더 / 줄리언 시먼스 / 을유문화사 (2012)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그러나 추리소설과 범죄소설의 모든 것이 이 책 안에 있다는 걸 알면서,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추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찌 읽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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