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물 고개 비룡소 전래동화 9
소중애 글, 오정택 그림 / 비룡소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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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옛날 옛날 한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이렇게 시작하던 이야기를 할머니로부터 듣고 싶어서 졸랐던 기억이 난다. 최대한 자연의 리듬을 그대로 따르던 농촌생활은 해가 지면 이른 저녁을 먹고 곧 불을 끄고 자리에 눕는 생활이라서 어둠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꽃이 피기 일쑤였다. 할머니께 이야기를 청하면 할머니는 어서 자라고 두어 번 거절을 하시지만 꼭 ‘옛날 옛날 한 옛날에’ 하며 마치 노랫가락같은 특유의 음률을 만들어내며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로 그런 구수한 구전의 리듬을 작가가 최대한 살리고자 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어머니가 뭐라고 말을 해도 “이예”라고 하는 착한 총각의 대답도 읽을수록 재미있는 하나의 리듬이 된다. 총각이 어디를 가든지 가져가는 주먹밥도 리듬이 된다.

  나무하러 가는 총각 지게 다리에는 보리 주먹밥이 대롱대롱
  (...) 총각의 괭이자루에는 주먹밥이 대롱대롱

  노모와 총각만 등장하며 재미난 리듬 속에서 총각의 효심을 강조하던 이야기는 갑자기 총각이 고갯마루에서 단물샘을 발견하면서 달라진다. 단물장사가 잘되어 돈을 벌게 된 총각이 돈 계산하고 그 돈으로 무엇을 할까 궁리하느라 도무지 노모의 봉양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의 리듬도 초기의 느긋한 리듬과 달리 조금도 급박해진다. 결국 총각은 단물에 더욱 욕심을 부려 단물샘을 쾅쾅 파게 되지만 단물샘이 말라버린다. 단물 팔 일이 없어진 총각은 노모에게 돌아간다. 허망한 결말이지만 효심을 강조하고 허황된 욕심을 경계하는 교훈을 주면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아이들의 예쁜 동화책을 보면서 예쁜 책이 많아서 참 부럽다는 생각을 하지만, 책이 없는 대신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옛이야기에 대한 간절한 갈증이 없다는 점에서는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이 책은 외형에도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옛 이야기의 분위기를 살리고자 한지 분위기가 나는 미황색의 내지를 사용했으며 우리의 민화등에서 볼 수 있는 전통문양을 이용한 판화그림을 차용해서 우리 정서를 반영하고자 했다. 두고 두고 펼쳐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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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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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능수능란한 아름다운 짜깁기이자 재치있는 패러디에 가깝다. '말아먹은' 한 편의 영화를 끝으로 영원히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된 신용불량자이며 백수인 오감독이 이 글의 주인공이며 나래이터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아는 영화가 많아서 중심인물들을 수시로 영화 속 세계로 슬그머니 차원을 이동시키고, 주인공으로 하여금 존경하는 작가 헤밍웨이의 낡은 전집을 백수생활 내내 읽게 하면서, 자신이 아는 모든 영화와 헤밍웨이의 소설들을 뒤죽박죽 섞어서 독특한 자신만의 작품을 한땀한땀 기워 펼쳐보인다.
  월세를 낼 돈도 없어서 칠순 노모의 집으로 얹혀 살러 들어가는 주인공은 비참하게도 마흔 아홉의 나이다. 더 한심하게도 쉰 두살의 나이에 이미 엄마집에 얹혀산 지 오래인 형이 있어서 좁은 빌라에서의 생활은 곤혼스럽기 짝이 없다. 그 곤혹스러운 상황에 이혼을 하고 딸까지 데리고 들어온 여동생이 합해지면서 좁은 빌라는 흡사 세상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쉼터이거나 재활훈련장처럼 여겨진다.
  쉰 두살의 백수형이 건넌방에서 방귀끼는 소리가 들리고, 여동생의 소변보는 소리까지 다 들리는 좁은 빌라에서 어찌할 수 없이 서로의 영역에 마구 파고들고 몸을 비비고 살게되면서 주인공은 자신이 형에 대해, 여동생에 대해, 그리고 심지어는 엄마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삼남매는 어린 자식들을 세상에 내보내기 위해 해먹이던 어머니의 옛 음식들을 다시 먹으며 세상으로 돌아갈 힘들을 비축한다. 이런 비장한 재활의 노력이 진지하게 서술되지 않는 것이 이 책의 재미있는 구성이다. 형제는 조카의 간식을 뺏어먹고, 조카의 용돈을 가로채며 비굴하면서 그저 편한대로 행동하는 백수의 삶을 어머니가 챙겨먹이는 기름진 음식들을 먹으며 누린다. 그러는 가운데 작가가 스스로 말하듯이 막장드라마처럼 출생의 비밀이 끼어들고, 어머니의 불륜사실이 밝혀지고, 여동생의 어두운 과거도 드러난다.
  삼류 영화처럼 미용실 아가씨를 두고 두 형제가 로맨스 경쟁을 벌이고, 어설픈 느와르영화처럼 별이 다섯이나 되는 형이 불법업소의 바지사장 노릇을 하다가 멋진 한방을 날리고 많은 돈과 함께 해외로 잠적한다.

  태양 아래 더이상 새로운 이야기는 없다는 듯이 아니면 교양있는 독자라면 이 패러디를 눈치챌 것이고, 모른다면 그저 내 이야기로 알겠지 하는 듯이 작가는 아주 뻔뻔하게 수많은 영화와 소설들의 내용을 차용하고 비틀고 혼합하며 즐긴다. 이제 문학에도 팝아트적인 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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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터는 뭐든지 자기 멋대로야 비룡소의 그림동화 135
케빈 헹크스 지음, 이경혜 옮김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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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을 보면 무슨 내용의 책일지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 이 책의 안타까운 점이다. 제목을 보고 이 책은 아마도 어린이들의 생활습관 바로잡기 책 쯤으로 짐작했었다. '자기 멋대로'라는 표현이 주는 부정적 어감때문이다. 짐작은 빗나갔고, 간단히 말하자면 서로의 개성을 다 존중해주는, 아니 더 나아가서 서로의 개성마저도 모조리 흡수해서 좋아해버리는 체스터식 친구사귀기 이야기다.

  책의 초반부에는 체스터의 별난 '자기 멋대로'이야기들이 나열된다.:

          샌드위치는 언제나 세모꼴로 잘랐고,
          침대에서는 언제나 한쪽으로만 내려섰고,
          밖에 나갈 때면 반드시
          신발 끈 매듭을 두 겹으로 묶었지.


  체스터의 친구 윌슨도 마찬가지다. 둘은 '자기 멋대로'인 서로를 닮아서 두 친구는 항상 자전거를 같이 타고, 같이 책을 읽고 등등 누가 누구인지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행동을 하며 잘 지낸다.

  그러던 어느날 그 동네에 릴리가 이사를 온다. 릴리도 역시 '자기 멋대로'하는 아이였기에 책을 읽고 있던 나는 릴리로 인해 체스터와 윌슨에게 어떤 위기가 닥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어른의 생각이다. 릴리의 신기한 행동들에 관심을 가지던 두 친구는 릴리가 하는 '자기 멋대로'의 행동들을 모두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릴리도 두 친구들이 지금까지 공유해온 놀이들을 배운 것은 물론이다. 이제  체스터, 윌슨, 릴리 이렇게 세사람이 친구가 되어 또다른 공동의 문화를 다시 만들어간다.

  아이들이 가진 무방비적인 흡수력과 호기심을 잘 표현하면서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친구사귀기의 미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귀여운 생쥐 캐릭터로 표현되는 주인공들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모쪼록 아이들이 이 놀라운 긍정의 힘을 더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이 세 친구들에게는 그들의 '자기 멋대로'의 행동을 그 아이만의 특별함으로 바라봐주는 부모님들이 있다는 것도 기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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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그리는 페인트공 쪽빛문고 12
나시키 가호 지음, 데쿠네 이쿠 그림, 고향옥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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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상대의 마음을 읽어 상대가 주문하는 색보다도 더 마음에 드는 색을 칠해주는 페인트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페인트공으로 일하는 싱야는 주문한 색을 칠해주지만 늘 불평인 손님들때문에 몹시 어렵다. 그러다 싱야는 '불세의 페인트공'이었던 아버지의 묘비를 방문하기 위해 프랑스로 떠난다. 프랑스로 떠나는 배안에서 '위트릴로의 흰색'으로 배를 칠해달라는 싱야의 아버지를 안다는 신비의 여인을 만난다.:

  "그래요, 기쁨과 슬픔, 들뜬 기분과 쓸쓸한 기분, 분노와 포기의 감정이 모두 담긴 위트릴로의 흰색. 세상의 혼탁함도, 아름다움도, 덧없음도 모두 머금은 위트릴로의 흰색 말이에요."(p.24)

  아버지의 묘비는 찾지 못했지만 신비의 여인에게서 아버지의 붓을 전해받고 온 싱야는 그때부터 손님이 원하는 것보다도 더 손님의 마음에 드는 색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아버지의 붓을 머리맡에 두고 잠들면 그는 꿈 속에서 손님의 진짜 마음을 알 수 있는 장면들과 만나게 되고, 그것을 힌트로 자신만의 색을 창조하여 손님의 주문을 완수한다.

  외로움을 느끼는 아가씨에게는 활기를 주는 레몬옐로우 색으로, 현관문을 칠해달라는 손님에게는 행복한 추억이 스미는 색으로, 자유로워지고 싶은 영혼을 가진 이에게는 갈색에 가까운 빨강색을 테라스에 칠해준다.

  그렇게 몇십년이 지나고 싱야는 위트릴로의 흰색을 주문했던 여인의 방문을 받는다. 그 여인의 손을 잡고 싱야는 떠난다. 그것이 바로 이 생의 마지막이다.

  신비로운 전설같은 분위기를 띠는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떠한 교훈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지도 않으며, 어떠한 슬픔을 느끼라 강요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느껴야 한다고 숨긴 것도 없다. 진짜 이야기의 재미, 신비로움에 빠질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이야기만이 가진 매혹의 힘을 알게해주는 이야기이다.

  삽입된 일러스트들이 모두 빛바랜 벽화들처럼 신비롭고 오묘한 색채들을 띠고 있어 이야기의 신비감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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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속으로 비룡소의 그림동화 205
이수지 지음 / 비룡소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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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을 보면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은 때로는 나로 보이기도 하고 나를 닮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일찌기 신화 속의 나르시소스는 연못 속의 자신의 모습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를 만나기 위해 물 속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는다. 이솝우화 속의 욕심많은 개는 개울 속의 개가 가진 뼈다귀가 부러워 짖다가 뼈다귀를 떨어뜨리고 잃고 만다.

  이는 곧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거나 반대로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을 싫어하게 되는 인간의 각기 다른 심리를 잘 보여주는 예이다.

  거울이 주는 이러한 미묘한 순간들을 그림책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이 책이다. 그런데 그림만 있을 뿐 글이 없다. 글이 없다고 해서 이야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백에서 의미를 읽었던 우리 선조들처럼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읽는 이마다 읽을 때마다 갖가지 이야기를 상상해낼 수 있고 읽어낼 수 있다.:

  외로움에 웅크린 소녀가 문득 고개를 들고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존재에 깜짝 놀란다. 살며시 두 눈을 가리고 다시 살펴보는 소녀. 소녀는 새침한 척 해본다. 메롱 놀려보기도 한다. 뭐든지 따라하는 이 친구가 소녀는 맘에 들기 시작한다. 소녀는 보란 듯이 춤을 추기 시작한다. 그러자 거울 속의 친구도 신나게 춤을 춘다.

  그리고 거울의 마법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차갑고 하얗던 방안의 공기가 노란 빛으로 주황 빛으로 따뜻하게 피어난다. 따듯하고 밝은 기운이 일어나 방 전체에 퍼지며 마치 나비인 듯 나방인 듯 날기 시작한다. 소녀도 한마리 나비처럼 가뿐해진다. 
  문득 소녀는 거울 속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에 빠진다. 거울 속에서 다시 나와 춤을 추기 시작하는 소녀, 그러나 어느 순간 거울 속의 소녀가 자신과 조금 다르다는 것을 눈치챈다. 소녀는 갑자기 겁에 질린다. 그러자 소녀 앞의 거울은 무참히 산산조각나고 만다. 소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소녀는 다시 몸을 웅크린다.

  어린이들은 거울을 참 좋아한다. 어린이들이 거울 속의 모습이 자신인 것을 알게되는 나이가 언제일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거울 속의 모습이 나이던지, 나를 꼭 닮은 친구이던지 신기하고 황홀하기는 똑같을 것이다.

  책의 양면을 이용해서 거울과 거울을 바라보는 소녀 이미지를 구성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특히 거울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페이지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보면 볼수록 새록새록 좋아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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