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크록(Ray Kroc)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와 특별한 관계가 있는 기업을 대면 누구인지 대번에 알 수 있다.

바로 맥도날드다. 레이 크록은 세계적 패스트푸드 업체인 맥도날드의 창업자다.

 

 

 



 

전 세계 패스트푸드 시장은 현재 두 기업이 지배하고 있다. 하나는 KFC이고, 또 하나는 레이 크록이 창업한 맥도날드다. 1954년 이미 52세였던 레이 크록은 패스트푸드점을 개업하기로 결심했다. 30년 동안 세일즈맨으로 일한 그는 미 전역 열일곱 개 주를 돌며 수많은 식당에 가보았고, 그러면서 패스트푸드점 경영 노하우를 발견했다. 그는 직접 패스트푸드점을 열면 세일즈맨일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것으로 직감했다. 그는 외식업으로 성공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 저렴한 가격과 깔끔하고 위생적인 서비스를 꼽았다. 또한 생활리듬이 빨라지는 시대에는 일반 식당보다 패스트푸드점이 낫다고 판단했다.

 

레이 크록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는 외식업의 특징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찾아낸 것이다. 마침내 그는 캘리포니아 주에 햄버거와 밀크셰이크를 파는 식당을 개업했다. 그의 식당은 대성공이었고 몇 년 만에 크게 유명해졌다.

 

 

 

 



 

 

창업 후 고속 성장을 지속하던 맥도날드의 매출액이 1961년 적자로 돌아섰다. 게다가 규모는 어마어마하게 컸다. 레이 크록은 면밀한 조사를 거쳐 원인을 찾아냈다. 각 부서의 관리자들이 나태하고 비효율적으로 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안락한 가죽의자에 앉아 직원에게 지시만 내렸다. 각 부서는 계획을 세웠지만, 한 번도 제대로 이행한 적이 없었다. 곳곳에서 낭비가 발생하고 있는데도 모두 못 본 척 했다. 바로 그것이 승승장구하던 맥도날드를 적자 기업으로 만든 원인이었다.

 

레이 크록은 결국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부서 관리자들이 사용하는 의자 등받이를 모두 톱으로 자른 것이다. 임원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심지어 몇몇 임원은 대놓고 “미친 사장!”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레이 크록은 굴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이 바라던 결과를 얻었다. 회사 임원들이 사무실에서 나와 직접 매장을 돌며 관리하고 문제점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기업 전체에 만연했던 ‘낭비’는 효과적으로 해결됐고, 매출액도 예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물론이고 더 큰 폭으로 증가했다.

 

 

 



 

 

1963년 맥도날드의 모든 매장 앞에 ‘햄버거 1억 개 판매 달성’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고, 그로부터 5년 후에는 미국 전역의 맥도날드 매장이 1천 개를 돌파했다. 그 후 40여 년 동안 맥도날드는 미국 시장을 넘어 전 세계 114개국에 진출했다. 그리고 미국 패스트푸드 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50년 넘도록 고속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지만 창업자 레이 크록이 세운 경영이념, 즉 “고객의 시간을 절약해주는 패스트푸드점이 성공한다. 남의 시간을 1분 낭비할 때마다 나의 수익이 1달러씩 준다”는 신념은 지금도 변함없이 맥도날드의 가장 중요한 원칙이자 진리다.

 

 

 





-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확장형 시대’에는 누구든 과감하게 뛰어들기만 해도 고수익이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판재 한 장을 팔면 30위안은 고사하고 1위안도 남지 않는다. 이렇게 큰 변화가 나타난 원인은 ‘확장형 시대’가 끝나고 ‘집약형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확장형 시대’가 지나가고 ‘집약형 시대’로 들어선 지금 기업들은 어떻게 수익을 창출하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해답은 절약에 있다. 절약은 기업에 활력을 불어넣고 창의력을 향상시키는 비결이다. 절약이야말로 기업이 ‘집약형 시대’에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요건이다. (중략)

 

 

때는 바야흐로 집약형 시대로 접어들었다. 확장형 시대에 성장한 기업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의 경영전략을 계속 유지하는 기업은 머지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확장형 전략에 주력하는 기업은 서둘러 집약형으로 전환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집약형 기업으로 전환할 수 있을까?

 

첫째, 생산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새로운 방식을 적극 받아들이지 않고 과거 방식만 고집하면 살아남기 어렵다. 생산기술을 개선하고 관리의 효율성을 높임으로써 품질이 좋아지고 생산 방식이 더 효과적으로 변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인 생산수준이 올라가고 제품이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다. 제품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만으로 모든 게 끝나는 과거 방식으로는 집약형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는 제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집약형 시대에는 소비자들에게 인정받는 기업만이 계속 발전할 수 있다.

 

둘째, 기업 구조가 개선돼야 한다. 기업의 구조 개선은 단순히 과거의 생산방식을 바꾸고, 생산설비를 신형으로 교체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기업문화를 세우고 앞선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한편,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기술과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포함한다.

 

셋째, 직원들의 자질이 높아져야 한다. 집약형 시대에는 인간중심적인 발전전략이 필요하다. 직원 개개인이 회사의 진정한 주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정신적이고 기술적으로 완전한 변화가 가능하다. 경영진은 직원이 변해야 기업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직원 교육에 힘써야 한다. 물론 직원 교육에도 효율성이 중요하다. 최소의 시간과 물자로 직원들을 신속하게 변화시켜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구조전환에 막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 
 









-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프랑스 작가 알퐁스 도데의 소설 《마지막 수업》은 1873년 발표된 이래 전 세계 수많은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큰 호평을 받았다. 《마지막 수업》은 프랑스의 알자스 지방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프랑스어로 하는 마지막 수업이라고 말한다. 프랑스가 전쟁에 패하자 알자스 지방의 프랑스어 수업을 금지하고 대신 독일어를 가르치게 한 것이다.

 

이 소설만 보면 알자스 지방이 본래 프랑스 영토이고 독일이 그것을 빼앗은 침략자처럼 보이지만, 사실 알자스-로렌 지역은 중세 이래로 줄곧 독일어 사용 지역에 속했다. 현재도 알자스 지방 사람들은 독일어와 매우 유사한 알레만어를 유지하고 있다. 아마 훗날 프랑스가 알자스-로렌 지방을 되찾았을 때도 《마지막 수업》과 비슷한 장면이 또 다시 연출되었을 것이다. 더 이상 독일어를 배울 수 없게 된 학생들이 비통한 심정으로 독일어 선생님과 작별하는 뒤바뀐 상황으로 말이다.

 

독일과 프랑스는 영토소유권을 놓고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렀는데, 그 중 양국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했던 지역이 바로 알자스-로렌 지방이다. 이 두 지역에 프랑스와 독일의 역사적 은원 관계가 농축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0년전쟁(1618~1648년)이 끝나고 체결된 베스트팔렌조약에 따라 패전한 독일은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랑스의 소유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하지만 1870년 프로이센과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고 프랑스가 패배하면서 알자스-로렌 지방이 다시 독일에 귀속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알자스-로렌 지방의 시련은 계속되었다. 1919년 베르사유조약으로 다시 프랑스로 귀속되었다가 1940년에 히틀러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었으며, 1945년에 프랑스가 두 지역에 대한 주권을 회복해 현재에 이르렀다. 지금 이 지역은 뫼즈, 모젤, 뫼르트에모젤, 보주 네 주로 나뉘어 있다.

 

독일과 프랑스는 왜 그토록 알자스-로렌 지방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걸까?

알자스-로렌 지방을 사이에 두고 왜 그토록 분쟁이 끊이지 않은 걸까?


 

 



 

알자스와 로렌은 유럽의 젖줄인 라인 강의 서쪽 기슭에 위치한다. 프랑스가 이곳을 점령하면 라인 강과 아르덴 고원이 프랑스 동쪽을 방어하는 천혜의 장벽이 될 뿐 아니라 라인 강을 관통하는 독일의 교통로를 단절시켜 전략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독일의 입장에서는 알자스와 로렌을 점령하면 라인 강을 통해 직접 대서양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그런데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자 이 두 지역에 지리적 가치 외에 더욱 중요한 가치가 더해졌다. 바로 풍부한 석탄 자원이 매장되어 있고 석탄과 관련된 산업이 이미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프랑스든 독일이든 이 두 지역을 확보할 경우 경제적으로 큰 도약을 이룰 수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두 나라 중에서도 프랑스에게 더 절실하게 필요했다. 본토에도 석탄 자원이 풍부한 독일로서는 이곳을 잃는 것이 다리 한 쪽을 잃는 것과 같지만, 석탄 등 천연자원이 넉넉지 못한 프랑스로서는 이 지역을 빼앗기면 경제 전체의 성장이 둔화돼 새의 날개가 잘려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업혁명 이후 이 두 지역은 독일과 프랑스의 존망 자체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가치를 가지게 되었고, 실제로도 양국의 흥망성쇠가 이 지역을 얻었는지 여부에 의해 좌우되었다.


 

  - 저탄소의 음모(거우홍양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이노버스 박현우 대표)

 

 

2005년 4월, 복학한 첫해 글로벌기업 HP에서 주최한 ‘HP글로벌체험단’ 공모전에 참여했다. HP의 글로벌 마케팅을 위한 전략을 제안하면, 그 중 6개 팀을 선정해 MS, IBM, HP본사 등 세계적인 글로벌기업들을 탐방하는 기회를 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었다. 당시 나는 이미 현업에서 마케팅 전략제안에 대한 다수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에 경험이 적은 다른 대학생들과의 경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솔직히 현업경험이 거의 없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최종 6개 팀 안에 드는 일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문에 나는 시작 전부터 이미 이긴 게임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출발했다.

 

우리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여러 번의 예행연습을 했다. 연습을 반복할수록 나는 우리의두 번째 관문 통과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공모전 당일 우리는 잘 준비된 모습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했다. 나는 마치 고객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듯 심사관들 앞에서 프로페셔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후배도 준비한대로 최선을 다해 자신의 부분을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돌아와서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동안 나는 ‘성공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일주일 후 결과가 발표됐다. 이메일로 도착한 결과발표 메일을 열었을 때 나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본 이미지는 본문과 관련없음)

 

 

 

(중략)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예상치 못했던 HP 공모전의 결과 때문에 상당히 많은 충격을 받았다. 도저히 질 수 없는 게임에서 진 것이었다. 때문에 내가 엄청난 자신감으로 공모전에 참여했던 걸 알고 있던 친구들, 가족들에게 이 결과를 알리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나는 너무 나를 믿었던 것이다. HP공모전의 실패는 자만의 최후결과였다. 아마도 일주일동안은 심각한 스트레스와 고통 속에서 경솔하고 자만했다는 자책감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 때 나는 <실패파티>라는 제목의 짧은 글을 읽게 되었다.

 

 

 

나는 이글을 통해 실패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눈을 뜨게 됐다.

HP공모전의 실패는 너무도 자신만만하던 내게 너무 빠르지도 않은 너무 늦지도 않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의 실패경험이었다.

 

 

인투이트라는 회사는 의욕적으로 시장에 내놓았던 소프트웨어 제품이 실패로 돌아가자, 전 직원이 참석한 '실패 파티'를 열었다고 한다. 파티에서 이 회사 회장은 아래와 같이 말했다.

 

“실패작을 내놓은 것이 실패가 아니라,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실패입니다.”

 

나는 이글을 통해 실패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조금 눈을 뜨게 됐다. HP공모전의 실패는 너무도 자신만만하던 내게 너무 빠르지도 않은 너무 늦지도 않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의 실패경험이었다.

 

 

 

 



 

- 대한민국 20대, 일찍도전하라(박현우 지음)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는 세계의 많은 기업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그러나 위기가 실패와 쇠퇴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위기 후 경쟁력이 강화된 기업들도 적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을 견딜 수 있는 우수한 기업과 그렇지 못한 업체가 나뉘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금융위기 당시 도산한 기업 중 86퍼센트는 내부의 심각한 ‘소모’가 문을 닫게 된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내부적으로 이미 낭비가 심각한 기업들이었다는 점이다.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는 “기업이 활력을 잃고 침체되는 근본 원인은 내부의 낭비다. 여기에는 시간과 금전 뿐 아니라 인재와 자원 등의 낭비도 포함된다. 따라서 내부 낭비를 효과적으로 줄이지 못하는 기업은 파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잡스의 이 말에서 애플이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근본 원인 역시 절약정신에 있음을 알 수 있다.

 

 

 



 

1976년 4월 1일 만우절. 보통 사람들에게는 여느 해 만우절과 다를 바 없었지만 IT 분야에선 특별한 의미가 있다.

애플컴퓨터가 바로 이 날 탄생했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로날드 웨인의 동업으로 설립되었다. 회사 명칭을 애플로 정한 것은 잡스의 아이디어였다. 뉴턴이 나무 위에서 떨어지는 사과에 맞고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에 착안했다. 여기에는 하이테크 기업임을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한 입 베어 먹은 사과 모양의 로고 역시 첨단기술로 세계 최고 기업이 되겠다는 결심의 표현이다.

 

잡스가 애플을 프리미엄 제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적인 기술 덕분이기도 하지만 기업의 효과적 관리와 마케팅도 큰 역할을 했다.

애플의 가장 훌륭한 강점은 낭비하지 않는 절약정신이다.

 

애플이 갓 설립되었을 때 그는 회사 전체에 절약정신을 정착시키기 위해 낭비 근절을 강조했을 뿐 아니라 강도 높은 처벌 규정을 마련했다. 또 직원에서부터 고위 경영진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지킬 것을 요구했다. 절약정신은 애플이 오랫동안 활력을 잃지 않고 경영을 유지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다.

 

애플의 절약정신은 직원뿐 아니라 제품에도 반영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애플의 제품은 동급 경쟁상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기술 수준이 높은 것도 이유지만 그 외에도 소비자들의 시간을 절약해주기 때문이다. 애플의 노트북은 반응시간과 조작속도에서 타 제품에 비해 빠르다. 따라서 소비자들의 시간이 절약된다. 애플의 절약정신이 또 다른 방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 낭비를 이익으로 변화시키는 '디테일 경영'(왕중추 지음 허유영 옮김) 중에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