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실, 주희>로 2017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박민정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괜찮은 사람> 강화길 작가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인터뷰 원문은 문학동네 94호에 실렸습니다. 





  열아홉 살 때의 일이다. 서울의 어떤 백일장에 참가했다 돌아오던 내 손에 무언가 들려 있었다. 아쉽게도 상장은 아니었고, 전년도 수상자들의 작품을 묶은 책이었다. 나는 그 작품집을 꽤 오랫동안 보관했다. 좋아하는 작품이 하나 있었기 때문이다. 「봄밤의 나그네」라는 소설로 장원은 아니었고 3등상을 받은 작품이었다. 나는 그 소설을 여러 번 읽었다. 심사평에 따르면 제법 괜찮은 작품이었고, 내 관점으로 말하면 정말 좋은 소설이었다. 이야기는 이렇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그곳에는 그네를 타는 소녀가 있다. ‘나’는 아이가 부럽고, 마음이 조금 아프다. 왜냐하면 ‘나’는 다리가 불편하기 때문이다. ‘나’의 아빠는 집을 나갔는데, ‘나’는 그것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외롭고 힘들다. 이야기의 말미, ‘나’는 소녀를 데리러 온 나그네를 본다. 그가 소녀를 업어주는 장면을 ‘나’는 뚫어지게 본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발 일어나기를 바랐던, 간절히 원하며 몰래 간직해왔던 ‘나’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소녀는 ‘나’ 자신이다. 봄밤, ‘나’는 아빠의 등에 얼굴을 고요히 묻는다. 이 글은 박민정에 관한 것이므로, 「봄밤의 나그네」를 쓴 작가가 누구인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재미있는 건 내가 그 사실을 아주 오랫동안 몰랐다는 것이다. 어느 시점엔가 나는 그 책을 잃어버렸고 다시는 읽지 못했다. 당시에는 작가 이름을 기억했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조차도 잊어버렸다. 나이도 이름도 그 무엇도 기억하지 못했다. 



  박민정의 집 작업실에는 책상과 노트북만 있다. 그녀는 장비에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스탠드도 잘 쓰지 않는다. 그나마 돈을 써서 구한 장비가 헬로 키티 키보드다.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카페를 많이 전전했다. 카페 생활은 나쁘지 않았지만, 그 시기가 길다보니 지겨워졌다. 그리고 월세를 허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제는 그냥 집에서 글을 쓴다. 그래도 나름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는 있다. 설명하자면, 그녀의 노트북에는 어디선가 구해온 ‘보안’이라는 글자 스티커가 붙어 있다. 책상 위에는 펜들이 빽빽하게 꽂혀 있는 연필꽂이가 있고, 샛노란 튤립 한 송이가 담긴 꽃병이 있으며 벽에는 메모지와 그 밖의 이런저런 것들이 잔뜩 붙어 있다. 그리고 책상 아래에는 발을 올려놓을 수 있는 상자 두 개가 있는데, 감귤 상자와 사과 상자다. 최근에 패브릭을 얹어서 약간 꾸미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냥 과일 상자다. 그녀와 절친한 천희란 작가는 그 상자들 덕에 박민정 작가가 힘을 얻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두 상자에는 그녀가 대학 시절 모은 시즌 베스트 작품들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지성의 상자라고 명명한 쪽에는 발제문들이 들어 있고, 감성의 상자에는 시와 소설들이 들어 있다. 다시 읽는 것도 아니고 그럴 생각도 없기에 꺼내 보는 일도 없지만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단 한 편도 버리지 않고 모두 갖고 있었다. 하지만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어쩔 수 없이 정리해야만 했기에, 그 시절 정말 좋아했던 작품들만 남겨뒀다.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움직였던 작품들을 간직한 공간에서,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쓴다. 그건 그녀가 원래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성격―그녀는 초등학교 오학년 때 일본인 친구와 펜팔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받은 스티커를 아까워서 손도 못 대다가 이제 겨우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친구들의 작품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고, 천희란 작가 말대로 그 상자들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는다는 걸 조금은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주술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그녀는 내게 프랑스 자수를 배운 솜씨로 부두 인형을 만들어주겠다고 했다. 그건 나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저주를 내릴 수 있는 인형인데, 내가 언니 그건 좀 언피시하다고, 나를 괴롭히는 기운을 대신 받아주는 인형을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언니는 그게 왜 언피시한 거냐고 반문하면서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다. 



  「세실, 주희」는 하나의 문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방인은 필연적으로 진보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2012년이었다. 당시 그녀는 문화 연구를 전공하는 대학원생이었다. 출처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는 어디선가 이 문장을 읽었고 옳다고 생각했다. 자국에서 극우적인 사람도 외국에 나가면 소수자의 위치에 처할 수밖에 없으니까. 정치적 약자는 선택의 결과물이 아니라는 것. 그녀는 이 문장이 불어나는 걸 느꼈고, 소설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의 구상은 지금의 결과물과는 달랐다. 원래는 힙합 음악이 좋아서 일본에 간 한국인이 아베 정권에 반대하는 집회에 참여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정치에 아무 관심이 없고, 오직 사적인 이유로 외국에 간 화자가 외국인 신분으로 일본의 반정부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 그 위험함과 혼란스러움이 박민정의 머릿속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2012년에 바로 쓰지 않은 이유는 당시 작업중인 다른 소설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고, 구상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구상에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 틈틈이 메모를 해뒀다가 주기적으로 정리해가면서 구조를 짠다. 그 과정에서 정보도 수집하고, 설정을 구체화시키거나 바꾸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혔다 싶으면 작업을 시작하는데, 이 작품은 그 시기를 만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중간에 설정을 바꿔야 했던 것이다. 그 이유를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외국에서의 삶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렇다면 그녀가 알고 있는 건 무엇이었을까. 그건,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을 지켜보는 삶이었다. 그것도 소외된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소설은 그렇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어떤 정치적 관심도 없는 일본인 세실이 주희라는 한국인과 함께 수요 집회에 휩쓸리게 되는 이야기로. 

그러나 박민정은 이십대 초반의 일본인 여자애가 한국에 올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워킹 홀리데이? 유학? 어학연수? 굳이 한국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긴 고민 끝에 그녀는 세실에게 강렬한 동기 하나를 부여한다. 그리고 주희는 세실의 이 동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좋아하는 연예인 하나 때문에 타국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아가는 삶. 고작 유노윤호 하나 때문이라니.’ 

  이 소설의 설정이 과장이 아니라는 건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실제로 이 나라의 문화 산업은 그렇게 굴러가니까. 어처구니없고 의미 없어 보이지만, 지극히 당연하고 확고한 이유로. 아마 주희의 반응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큼이나, 세실의 동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박민정의 경우는 세실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해도, 그런 선택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편에 속했다. 그것은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엄청나게 많은 아이돌의 데뷔와 해체를 신물나게 봐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동방신기 때문에 한국에 온 일본인 여성과 가까이 지낸 친구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유를 찾자면 얼마든지 더 있었다. 그녀는 중국인 유학생이 늘어나던 시기에 대학원을 다녔고, 대만 유학생에게 과외를 해준 경험도 있었다. 그리고 박민정 작가는 ‘일제’를 좋아하는 외국인이기도 했는데, 특히 일본 특유의 레이스 장식과 색조 화장품을 정말 사랑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세실과 주희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세실을 소설 속으로 불러와 주희를 만나게 했을 뿐, 그 외의 것들은 모두 알 수 없는 영역에 있었다.   

  박민정은 구상에 시간 투자를 많이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메모를 더 많이 한다. 작업에 들어가면 동기만으로 알 수 없는 것, 흐릿한 골격만으로는 정리할 수 없는 것들이 소설 내부에서 부딪히며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낯선 나라의 이방인이 뜻도 모르는 집회에 참여하게 되는 소설을 쓰려 한다는 건 알았지만, 오키나와 출신으로 “할머니는 지금 야스쿠니 신사에 있습니다”라고 천진하게 말하는 세실이 명동 한복판에서 수요 집회를 마주했을 때의 부딪힘이 어떤 것이 될지는 몰랐다. 그리고 박민정은 집회의 성격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기에, 주희의 설정에 대해서도 쉽게 넘어갈 수 없었다.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불리는 광장, 그러나 그곳에는 분명 여성 혐오적 요소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포르노 사이트에 신상이 올라간 여성이 광장에 등장한다면? 나아가 이 두 사람이 함께 나란히 서 있게 된다면? 그녀는 의문과 고민을 좇아 계속 메모했다. 세실의 가계도를 그렸고, 주희의 신상을 만들었고, 사진과 영상을 정리했고, 썼던 문장을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플롯이 구체화되면서 메모의 양도 계속 늘어났다. 그러면서 이 소설은 작가가 여전히 동의하고 있고, 그래서 이야기를 출발시킬 수 있었던 “이방인은 필연적으로 진보 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라는 문장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백합의 간호사. 위안부 이미지를 소비하는 방식. 포르노. 외국인. 광장. 집회. 화장품. 아이돌. 그 익숙하고 흔한 현상. 그러나 기괴하고 변태적인 충돌. 

  그러니까 세실, 주희로.



  언니와 나는 2012년에 처음 만났다. 그녀가 「세실, 주희」를 구상하던 그해 말이다. 나는 그때 등단했는데, 어느 술자리에 놀러갔다 그녀를 만났다. 이후 우리는 몇 번 연락을 주고받다가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서 만나 점심을 먹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계속 친하게 지낸 것 같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그뒤로 몇 년간 안 만났다. 연락도 안 했다. 그녀가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를 출간한 후 내게 보내주기도 했고, 그 소설집이 너무 좋았던 내가 여기저기 말하고 다니기도 했고, 언니가 내 소설을 좋아했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물을 때도 있었지만,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밥을 먹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랬다. 그때 우리가 왜 그랬느냐 하면, 그냥 간단히 말하면 감정적으로 너무 메말라 있어서, 돈이 없어서, 이곳에서 친구를 만든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심스러워서, 가끔은 살아 있는 것조차 버거워서, 서로에게 다가갈 겨를이 없어서 그랬다. 우리의 이십대는 그랬다. 

  박민정은 「세실, 주희」에서 처음으로 작가로서 그녀의 나이보다 한참 어린 인물들을 만들었다. 세실, 주희는 91년생, 93년생이다. 얼마 전 그녀는 어떤 독자의 ‘그 나이대의 여성으로서 「세실, 주희」에 공감이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서 안심했고, 매우 감사했다. 그녀의 나이와 떨어진 세대의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었는데, 자연스러웠다는 뜻이었으니까. 동시에 기묘했다. 왜냐하면, 이 이야기를 그녀 또래를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썼어도 비슷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친구들, 삼십대 여성들은 이십대 초반과 다를 바 없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삶은 의미화되지 못한 것들 투성이였다. 내게도 여전히 불안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너무 불안하다. 

  아마 그건 내가 뭔가를 해냈고, 앞으로도 뭔가를 해내리라는 느낌을 받기가 힘들기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이것조차 조금은 사치스런 말이다. 그냥 온전한 성인으로, 사람 구실을 하며 살고 싶은데 그게 너무 힘겹다. 타인과의 관계는 그래서 특히나 어렵다.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과연 이곳에서 누군가와 무언가를 제대로 나눌 수 있는 사람으로 살게 될지 자신이 없다. 혼자 서 있는 이들에게 다가갈 자격이 있는지 계속 되묻게 된다. 내가 세실과 주희에게 도움은 고사하고 언캐니한 존재로 남지 않을 수나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결국은 이 모든 태도가 다 변명 같은데, 그래서 이걸 극복하는 게 가능하긴 할까 싶고, 힘에 부친다. 그래서 나는 몇 년 전 어느 밤, 언니가 내게 다시 연락해온 것이 어쩌면 굉장히 용기 있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즈음인데, 그녀는 추모 집회에 갔다가 교보문고에 들러 내 소설을 읽었다고 했다. 언니는 그때를 돌이키며 “결국 참지 못해” 연락했다고 농담했다. 나는 그게 정확한 표현 같다고 느낀다. 이십대와 다름없는 삼십대를 맞이하고, 써왔던 것을 계속 쓰고, 긴장하고, 부유하지 않기 위해 부유하면서 그 모든 걸 계속 견디다보면, 두 번밖에 만나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여전히 이곳에 남아 있는 걸 목격한다면, 더는 지켜보기만 할 수는 없다. 참을 수 없어진다. 



  「아내들의 학교」도 그랬다. 이 소설을 쓰기 전까지 박민정은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첫 소설집인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를 묶는 동안에도 그랬고, 출간한 직후에도 한동안 그랬다. 그건 글쓰기에 대한 믿음과는 다른 문제였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글을 썼고, 백일장에 나갔다 하면 상을 타오는 아이였다. 엄마는 그런 민정이에게 책을 엄청 사줬고, 학교에 제출하지 않고 혼자 쓰고 간직하는 일기장을 사줬고, 글쓰는 노트, 만화 그리는 노트도 사줬다. 그녀는 존 어빙, 나보코프, 이사벨 아옌데를 좋아했고, 그들에게서 무언가를 하나씩 배웠다. 대학 때 심취했던 박상륭에게서도. 

  다만 그녀는 ‘문학적’이라는 말에는 의심을 품었다. 스물한 살 때, 개인적인 고민으로 휴학한 채 집에 틀어박혔던 그녀는 문득 자신의 상황을 문학적으로 사유하고 있다고 느꼈다. 아마 오랫동안 글을 써왔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 식으로 사물을 바라보는 훈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녀는 화가 났다. 타인의 잘못으로 상처를 받은 순간에 왜 자신을 대상화해서 바라봐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그건 뭔가 잘못된 방식이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학대하는 대신 지금까지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그녀가 좋아했던 작가들의 작품에 여성 혐오적 성향이 짙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이제껏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 그것을 문학적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혼란을 느꼈다. 이후 그녀는 자기 자신과 ‘문학적’인 어떤 것들이 부딪치는 순간을 계속 경험했고, 그건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만드는 동시에 어떤 제한을 경험하게 했다.  

  이렇게 쓸 수밖에 없어서 쓰는 것인데, 이것을 문학적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녀에게 소설쓰기는 인정투쟁이 아니었지만, 계속 쓰기 위해서는 어쨌든 평가라는 것이 필요했고, 만일 자신이 평가를 받을 수 없는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러웠다. 그녀는 좋은 작품을 쓰면 언젠가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으리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자신하지는 못했다. 내가 쓰는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과연 그게 가능할까. 

  이런 식의 부딪힘은 그녀의 삶에 끊임없이 파문을 던지곤 했다. 그녀는 강남 8학군에서 나고 자랐지만 친구들에 비해 가난했다. 친구들은 백화점에서 망설임 없이 옷을 샀지만, 그녀는 그들과 떡볶이를 먹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부자 동네에서 가난한 집 아이로 성장한다는 것. 그 감각이 그녀의 마음 안에 또렷하게 남았다. 공부가 하고 싶어서 문화 연구로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그곳에서 소설가가 왜 문화 연구를 하냐는 말을 무수히 들었고, 문단에서는 문화 연구를 하면서 왜 소설을 쓰냐는 말을 들었다. 고등학교에 출강하면서는 자신이 선생님들 세대에 가까운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가깝지도 않다는 걸 알았다. 일상에서 글쓰기의 영역까지, 첫 책을 묶는 오 년 내내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겪었다. 무력했고 고독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의심한 건, 문학을 둘러싼 어떤 상황들이었지 글쓰기 자체는 아니었으니까. 고립된 시간이 길어진 만큼, 그녀는 참을 수 없는 순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내가 쓰고 싶은 방식대로 쓰고 싶다는 욕망. 실제로 그렇다. 그건 사실 참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시의성이나 응답이나, 해석할 여지나 예술적 의미, 정치적 올바름 같은 건 사실 소설과 아무 관계 없다. 소설의 특성은 온전히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순간에 만들어진다. 그 순간에 작가는 자유롭다. 설사 이 이후에 다시 무력하고 고독하고 변명뿐인 삶으로 돌아갈지라도, 상관없다. 그 순간에 아직 살아 있고,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낀다. 박민정은 「아내들의 학교」를 그렇게 썼다. 



  나는 종종 「봄밤의 나그네」를 생각했다. 나는 좋아하는 책을 여러 번 읽는 편인데, 항상 그러는 건 아니고 사는 게 힘들다 싶을 때 그렇게 한다. 그런 순간에는 신간을 읽는 것보다 좋아하는 책을 다시 보는 게 편하다. 어느 시점까지는 그 소설도 목록에 있었다. 책을 잃어버려 다시는 읽을 수 없게 된 이후부터는 그냥 기억을 했다. 정확하게 떠올릴 수는 없었지만,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책을 반복해 읽거나 기억하는 행위 자체가 내게는 일종의 부두 인형이 아니었던가 싶다. 그러니까 나는 이미 인형을 갖고 있었던 셈이고, 그 소설은 아주 오래된 천조각 중 하나였다. 

  언니가 내게 연락을 다시 한 이후 우리는 가끔 만났고 통화했고, 서로의 시상식에도 갔고, 각자의 책이 나오던 즈음 축하 파티도 했다. 그런 사이가 됐다. 그러다가, 이번 겨울이 시작되던 무렵일 것이다. 그날도 언니와 카톡으로 수다를 떨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쩌다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다. 언니가 그 백일장에서 상을 탄 적이 있다는 말을 했다. 나는 반가워했다. 그리고 말했다. 어쩌면 내가 수상작품집에서 언니 작품을 읽었을 수도 있겠다고. 동시에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 소설을 떠올렸다. 나는 계속 말했다. 내가 굉장히 좋아한 작품이 있었고, 그래서 안부가 궁금한 작가가 한 명 있었다고. 그래? 언니는 그렇게 반문하고는 아직도 그 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뒤 잠시 사라졌다. 나는 또 말했다. 지금도 그 작가를 생각한다고. 잘 지내고 있을지 궁금하다고. 오랜 세월, 나는 혼자라고 느낀 적이 많았다. 어린 시절, 만일 작가가 되면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고, 그래서 더는 외롭지 않게 되리라 믿기도 했다. 내 또래의 누군가가 외로움에 관한 이야기를 썼고, 이 세상에 그 사람이 여전히 글을 쓰며 살고 있으리라는 사실은 이후 또 오랜 세월 내게 위로가 됐다. 정말로 그랬다. 그래서 나는 계속 말했다. 샤워를 할 때, 밥을 먹을 때, 비가 내릴 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느닷없이 그 사람을 생각할 때가 있다고. 아직도 글을 쓸까. 소설을 쓰고 있을까.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 순간, 언니가 책을 들고 돌아왔다. 나는 언니 소설의 제목이 뭐냐고 물었다. 박민정 작가가 대답했다. 응, ‘봄밤의 나그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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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xc1030 2018-04-01 00:38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나 그 백일장에 그해 전해 모두 참여했던 것 같아요.
저는 박민정 작가님이 봄밤의 나그네라는 작품으로 3등을 수상했을 때, 한 학년 아래였었어요. 함께 나란히 백일장에 참여했던 것 같아요. 너무나도 강렬한 이야기였다고 기억하고 있는 작품인데, 흐릿하게 다리가 아픈 아이가 떠올랐고 가끔 저도 이유를 잘 모르겠는데 그 작품이 떠오르는 날들이 더러 있어요. 이 글을 읽고나니 시간이란 것이 아주 훌쩍 거슬러 올라 열일곱, 그 즈음으로 저를 데리고 가는 것 같아서 벅차오르네요. 박민정, 나그네, 라는 두 단어만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 이야기가 봄밤의 나그네였다니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 잘 보았습니다. 혹시나, 제가 쓴 댓글을 그럴리 없겠지만 박민정 작가가 보게 된다면 함께 여러 번 백일장에 참여했던 동생이자 적극적인 독자로 요즘 언니의 소설을 읽는 것이 제겐 너무도 벅찬 일이며 기대하는 일이라고 전하고 싶어요. 항상 서점에서 혹은 이렇게 인터넷 서점 포털 사이트에서 박민정이란 이름만 봐도 흐뭇하다고요. 언니, 저 수선이에요. 제가 고3이었던 시절, 언니 학교로 찾아가 만난 날이 우리가 얼굴을 마주한 마지막 날이어었던 것 같아요.
전 언니의 소식을 새로운 책으로, 또 수상 소식으로 들어요.
십대, 그 즈음부터 지금까지도 늘 치열하게 이야기를 써가는 당신을 멀리서 한 명의 적극적인 독자로서 응원합니다.
 


오늘의 작가상 수상, 조남주 X 알라딘 (Q&A)





출간 이후 독자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특히 2017년 봄 즈음부터 이 책에 대해 더 많은 사람이 얘기하기 시작했는데요, 소설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는 장면은 흔치 않은 풍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빈틈이 많은 소설입니다. 결말도 분명하지가 않고 강하게 주장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다 써놓고도 왠지 완성한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런데 책이 나오고 소설 위에 독자 분들의 경험, 분노, 의견, 주장들이 쌓이고 쌓여서 다른 무언가가 ‘되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역시 많이 생각하고 깨닫고 배우게 되었고요.





수많은 기사 및 자료를 기반으로 한 서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최근 가장 주목하신 사건, 혹은 기사가 있었다면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특정한 한 사건 보다는 성범죄에 대한 관대한 처분들이 눈에 띄어 찾아보고 있습니다. 반성했다, 합의했다, 술을 마셨다, 등의 정상참작 사유는 진부할 정도더군요. 고등학생들의 진술서가 증거능력이 없다며 성희롱 교사를 다시 교단에 세우기도 했고, 몰카범의 휴대폰을 시민들이 빼앗아 제출했지만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증거로 인정되지 않기도 했어요. 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여중생들에 관한 소설을 준비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02년생 (16세입니다) 이지현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3-5권 정도 목록을 받을 수 있을까요?


『나에 관한 연구』 소녀들의 몸과 성과 생각에 대한 솔직한 책. 공감하며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거예요.

『우리 엄마는 왜』 엄마를 이해해 달라거나 말 좀 잘 들으라는 게 아니라, 그냥, 엄마들은 이렇다고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곧 헬조선에서 이십 대를 맞을 청소년들이 낙오자도 괴물도 되지 않으면 좋겠어요.

『너에겐 노조가 필요해』 어른들은 왜 ‘남의 돈 벌기가 얼마나 힘든지’만 가르치고 ‘일 한 만큼 대우 받아야 한다’는 걸 가르치지 않을까요?




















도서 출간 이후 많은 독자를 만나셨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의 반응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을까요?


독자와의 만남에 따님과 어머님이 같이 오셨는데, 두 분이 얼마나 다른 생각을 하셨을까, 서로 어떤 얘기를 나누셨을까 궁금했고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계속 ‘지영이 언니’라고 칭하면서 언니의 증상이 없어지고 다시 하고 싶은 말을 못하게 되면 또 다른 마음의 병이 생길 것 같다고, 실제 인물에 대해 말하듯 진심으로 걱정하신 독자 분도 기억이 나고요.





김지영 씨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여러모로 고맙고요(^^). 여전히 저는 김지영 씨가 진짜 어디선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른여섯 살이 되었겠구나, 올 연말에는 유치원 추첨에 가야겠구나, 둘째 출산 압박을 받고 있겠구나…… 하지만 여유도 생기고 요령도 생기고 어쩌면 방법을 찾았을 지도 모르겠다, 혼자 안도하기도 합니다.




질문자 : 알라딘 한국소설 담당 MD 김효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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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서서


소설가 조남주







84년생 한국 여성으로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관통당해 버렸다. 책을 읽은 25000여 명의 공통 경험일 가능성이 높지만, 화살 따위가 아니라 전차포에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건 내 이야기야, 숨이 차서 중얼거렸고 언젠가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장편 위주로 활동하는, 출판사 모임엔 잘 나오지 않는 신비스러운 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만나게 된다 해도 먼 훗날일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래서 편집부에서 ‘쓰는 존재’에 조남주 작가를 초대해 주겠다고 했을 때 덥석 반기고 말았다. 지읒 자쯤에서 예스를 외쳤던 것 같다. 

조남주 작가는 신도림에서 10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신도림역을 지나 구로역으로 살짝 치우쳐, 아파트 단지와 상가 사이에서 만났다. 문득 앞서 출간된 『고마네치를 위하여』에서 옛 신도림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던 부분이 생각났다. 아직 빌딩들이 서기 전, 연탄 공장 풍경이 눈에 그린 듯했다. 


“결혼하고 나서 2년 정도만 다른 동네에서 살았고, 여기서 10년째예요. 예전 이 부근에 대해 썼던 부분은,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서 들었어요. 토박이들이 많아요. 저쪽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를 또 저쪽에서 다녔고, 저기는 연탄 공장이었고, 나지막한 동네에서 제일 높았던 건물은 대성학원이었고…… 매일 이야기해 주세요. 그땐 다른 높은 건물이 없어서 안양천에 물 흘러가는 것도 다 보였대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시각적인 건 서울 사진 자료집에서 찾아봤어요.”




실감이 굉장해서 당연히 작가 본인의 경험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설가들에겐 매번 속고 마는데 속아도 기분이 좋다. 매일 만나는 이들에게서, 작은 열매 따듯이 이야기를 채집했을 것 같아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쓰는 작업은 어디서 하는지 궁금했다. 


“단골 없이 이 근처의 카페들을 떠돌아요. 익숙해지면 자꾸 딴짓을 하는 성격이라, 매번 다른 곳에 가려고 해요. 집에 있으면 집안일을 해서 집에서는 안 쓰려고 노력하고요. 일단 세탁기 돌려 놓고 글을 쓰자, 해도 세탁기 돌리는 과정조차 사실 단순하지 않잖아요. 그 앞에 여러 단계가 있는 거 해 본 사람은 알죠. 그래서 아침에 딸을 데려다 줄 때 같이 나와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려니 떨렸다. 2010년대 한국 문학의 흐름에 뚜렷한 분절을 만든, 앞으로도 끝없이 사랑받을 스테디셀러를 쓴,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가 앞에 앉아 있었다. 문득 작가 본인은 조금 얼떨떨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중쇄를 처음 찍어 봤거든요. 『귀를 기울이면』은 중쇄를 찍지 못했고,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얼마 전에 세종도서로 선정이 되면서 그 수량만큼 찍긴 했는데 약간 다르잖아요.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이 처음 중쇄되었을 때 중쇄를 찍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굉장히 기뻤어요. 신기했고요. 그런데 벌써 11쇄네요. 한 쇄에 조금도 찍고 한꺼번에 많이도 찍고 했는데 편집부에서 알려 주실 때마다 놀라요.”




『82년생 김지영』이 충격적으로 좋은 소설인 이유는, 다루는 주제도 주제지만 그 주제를 바라보는 방식 때문이다. 그동안 유사한 주제를 은근하게 녹여 내고 드러낸 작품들은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똑바로 마주 봐 준 적은 이때까지 없었다. 결코 단단한 결심 없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집필 초기부터 정면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했다.


“네, 처음부터 정면을 생각했어요. 2015년에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접하고 이제 그래도 될 것 같다고 판단했거든요. 전에는 혼자만 생각하고 바깥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겉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어요. 말하고 연대하는 게 가능해졌어요.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쓴다 해도 심한 거부 반응이 돌아온다거나,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아?’라고 하지 않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판단했어요.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적인 은유 없는, 어쩌면 대놓고 멋없게 말하는 소설인지도 몰라요. 멋있게, 아름답게 쓰지는 못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전하고 싶었어요.”




만약 조남주 작가가 곡선으로 에둘렀더라면, 수많은 독자들이 이렇게까지 관통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선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작가의 답을 들으며 안도했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투고할 계획이었기에 곧바로 독자 분들을 염두에 두지는 못했어요. 딱 한 명의 독자, 저 자신만 염두에 두었어요. 독자인 스스로가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을 동시대의 독자들이 알아보았다는 게 너무나 멋진 일이다. 거의 어떤 현상에 가깝게 알아보았다. 봄꽃이 개화하기 직전에 내린 비처럼 타이밍이 맞아 들어갔다. 심지어 국회에서도 읽히고 있다고 한다.


“제 책을, 어떤 결정권을 가진 분들이 읽으신다니……. 그동안 정책들이 나올 때마다 전문가들이 왜 이렇게 현실을 모르나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직접 가서 이야기할 기회 같은 건 웬만해서는 주어지지 않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당사자인 제가 지금 한국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소설의 방식으로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된 이후로도 국책 기관의 실수는 끊이지 않았다. 모두를 경악케 한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여성지도’에서 보건사회연구원의 ‘고학력 여성 하향 선택 결혼 유도 정책화’ 발언까지 여성들이 상처받고 분개할 만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조남주 작가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국책 기관에서 그런 황당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건, 문제를 인지하는 지점부터 어긋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해요. 저는 교육을 비교적 동등하게 받은 80년대 생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성인기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한 아이의 엄마나 누군가를 돌보는 존재로 상정하지 않고 자기 삶을 계속 꿈꾸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이 여성들이 지금 맞닥뜨린 주제가 출산과 육아지요. 돌봄 노동의 착취적인 면을 꿰뚫어 보게 된 80년대 여성들에게 자꾸 미봉책을 들이밀며 아이를 뽑아내려 하니까 사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닐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80년대 생들의 부모 세대가 나이가 들어 간병이 필요한 시기가 올 거예요.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안에 닥쳐오겠죠. 그때 간병인 수요를 여성들이 책임져 줄 거라고 사회가 기대해도, 과연 출산과 육아를 원치 않았던 이들이 노인 돌봄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까요? 출산율처럼 딱 떨어지는 수치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분명 다른 문제들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돌봄 노동, 가사 노동을 지금처럼 여성을 갈아 넣어서 하는 사회는 버티지 못할 거예요. 경제 안에서 보이지 않는, 따져지지 않는 비용을 여성들에게 지우고 사회를 유지하던 사고방식부터 끊어 내야 해요. 지금부터라도 돌봄을 공공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이슈들이 터질 때 얼마나 심각해질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나면 또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될 테고, 부양해 줄 다음 세대가 없는 노인으로서 맞닥뜨릴 고민들이 기다리고 있겠죠.”




마음이 아득해지는, 그러나 아마 그렇게 되리라 동의할 수밖에 없는 예측이었다. 조남주 작가의 말이 마치 지진 예측기의 진동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말하면서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생각하다’였다. 아마도 작가의 소설은 한 줄기 생각에서 뻗어나가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디어가 소설로 확장되는 방향마다 풍부한 데이터를 쌓아 형태를 갖추어 가는데, 그 밸런스가 굉장히 독특하다. 자료를 어마어마하게 끌어안으면서도 충분히 녹이고 흡수해 소설의 공기를 잃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것 같아서 비결을 물었다.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의 데이터를 축적해 두는 편이긴 해요. 이번 책 같은 경우는 특히나 무언가가 참 잘 맞아떨어졌어요.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쓰기 시작한 게 2015년인데, 자료가 때맞춰 폭발적으로 쏟아졌거든요. 물론 그 전에도 2013년 《한겨레 21》의 「전업주부의 종말」 같은 특집 기사를 모아 두긴 했어요. 일과 가정 사이에서 여성의 역할에 오래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재작년, 작년 들어 저의 관심사와 사회 보편의 관심사가 겹쳐진 것 같아요.”

하지만 데이터 축적이 끝이 아닐 듯해서, 약간 더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음, 시사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로 오래 일하기도 해서 아무래도 자료를 찾고 보고 그중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선별해 내는 것에 익숙한 편이긴 해요. 예를 들어, 주부들의 취업 자료를 백분율로 찾아보고 싶으면 통계청에 들어가 봐야겠다, 또 이것과 관련해서 논평과 분석을 찾아보고 싶으면 보건사회연구원에 들어가 봐야겠다…… 하는 식으로요. 데이터와 보도 자료의 언어를 낯설어하지 않아서 소설에 잘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탄탄한 구조에 더해서 작품들에 조남주 작가만의 아주 세밀하고 질감 넘치는 기억이 입혀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이런 게 어떻게 다 기억나지?’ 싶을 정도였다.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 아닐까 싶었고, 유년기나 청소년기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가까운 시기의 기억은 자주 잊어요. 일상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요.(웃음) 그런데 이상하게 어렸을 때의 기억은, 오래된 기억들은 생생한 편이에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 사람들한테 우리 어렸을 때 그런 거 있었잖아, 그런 학용품이 유행했었잖아, 그런 놀이 하면서 놀았잖아…… 제가 말하면 다들 놀라더라고요.” 


조남주 작가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11월생이에요. 이제 딸을 키우면서 느끼는데 마흔 무렵의 1년, 2년은 별 차이 없는 것에 비해 아이들의 6개월, 10개월은 상당히 큰 차이더라고요. 그러니 어린 저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나 늦된, 늦될 수밖에 없는 아이였구나 싶어요. 저는 놀림을 받거나 누가 속이거나 해도 당하는지 모를 정도로 맹한 아이였어요.(웃음) 청소년기에 스스로의 그런 점을 인지하고 나서는 약간 관찰자처럼 변했던 듯해요. 무덤덤한 관찰자요. 또래들은 예민하고 감정 폭이 크고 자주 격해지고 그러는 데 비해 무덤덤했어요. 주변 친구들도 무덤덤했고요. 결속력 있는 무리 속에서 극적인 감정싸움을 하거나 하는 일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보통 그 나이 때 서로 친밀해지다가 서운해하고 크게 싸우고 그러잖아요. 저랑 제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폭발하는 청소년은 아니었어요. 그보단 폭발하는 쪽을 지켜보는 무리 중의 하나였지요. 아직도 그때의 친구들과 만나요. 여전히 참 다들 무덤덤해요. 여럿이 약속을 잡고 누가 못 오게 되어도 ‘으응, 뭐 못 오는 거지.’ 하고 만나고. 바빠지면 해를 넘기거나 뛰어넘어 만나게 되어도 ‘으응, 만났구나.’ 하고요.”  




대학 시절과 사회에 발을 처음 딛었던 시기도 궁금했다. 그래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여대를 다녔어요. 대학 때 특별히 여성주의 동아리를 하거나 여성학 과목을 듣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들었던 사회학 수업들만 생각해 봐도 가족 사회학, 문화 사회학 안에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들이 계셨어요. 그렇게 배운 것도 배운 것이지만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녔다는 점이 남성에 대응되지 않는 별개의,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서의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후 사회생활, 결혼 생활 하면서 부조화를 느끼게 되지만요.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혼란스러웠어요. 지금 저 피디가 작가들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단순히 직위의 문제인가? 그런데 피디는 대다수 남성이고 작가는 또 대다수 여성인데? 판단이 잘 서지 않았어요. 일단 너무 바쁘고 그 한가운데 당장 던져진 상태였으니까요. 가부장제 안에 원치 않게 뛰어든 셈이었죠. 결혼 생활도, 저는 외가 친가 모두 전라남도 저 끝이라 서울 사는 저희가 자주 가지도 못했고 친척들이 결속력이 강하지 않았거든요. 시댁 명절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남자들은 따뜻한 방에서 제대로 된 밥 먹고, 그 일을 했던 여자들은 난방이 안 되는 마루에서 대충 먹는 그런 상황을 처음 겪었어요.” 




시사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에서 소설가로의 변신은 무척 반가운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그 중간쯤에 논픽션 작가가 있지 않은가? 그 단계를 건너뛰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사회학 전공이지만 국어국문학도 부전공했는데 그때 창작 수업을 듣긴 했어요. 줄곧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했고 방송 작가 일을 할 때는 소설을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아이 낳고 24시간 아이를 보고 있을 때 소설 생각이 났어요. 아이 낳기 열흘 전까지 일했고, 곧바로 복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건이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글을 쓰고 제 생각을 정리하고 외부에 표현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아무 자료도 없이 방송에 관련된 글을 쓸 수는 없었고, 드라마나 영화 각본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소설은 제가 읽은 그대로 흉내 내어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첫 장편을 써서 공모전에 보냈는데, 보내 놓고도 결과를 찾아보지 않았어요. 설마 언급이 될 줄은 몰랐던 거죠. 몇 달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보고 심사평에 언급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아, 그럼 내가 쓰는 게 소설이 맞긴 맞구나, 확인한 거예요. 그래서 이게 내 직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걸 계속 해 봐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논픽션은…… 음, 기회가 되고 준비가 된다면 취재하고 공부해서 쓰는 논픽션은 써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저 자신에 대해 쓰는 에세이는 못 쓸 것 같아요.(웃음) 그건 못 하겠어요.” 




조남주 작가가 그즈음 읽었던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왜 태교를 미야베 미유키로 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고도 말해 주었다. 첫 소설이 바로 최종심에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데, 어쩌면 소설을 쓰기 전에도 소설가였는지 모르겠다. 출간된 순서는 반대지만 『고마네치를 위하여』가 첫 작품이었고, 『귀를 기울이면』이 두 번째 작품이었다. 두 책 사이엔 다소 긴 공백기가 있고 말이다.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을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투고하고, 눈 밝은 편집부에서 책을 멋지게 만들어 낸 건 기쁜 일이지만 미묘하게 공백기가 신경 쓰인다. 문학 출판계에서 조남주 작가를 더 일찍 주목했어야 하지 않았나? 문장, 분위기, 주제에 접근하는 각도가 기존과 달라서 미처 보지 못했나? 이토록 근사한 걸 쓰는 작가를 먼저 발견해야 하는데 그런 활기가 떨어진 건 아닐까?


“첫 책으로 장편소설상을 받고 이후 단편을 딱 한 편 발표했어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첫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의 5, 6년을 생각할 때 두 번째 책이 늦게 나왔다기보다는 첫 책이 빨리 나온 거라고 봐요. 제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보다 빨리요. 『고마네치를 위하여』를 고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당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설정을 고쳐야 했는데 그때는 고칠 수가 없었어요.”

작가가 심상하게 말했는데, 마음을 빼앗긴 독자다 보니 ‘이제는 준비가 되었습니다.’처럼 들려서 두근거렸다. 그렇다면 차기작은 언제, 어떤 주제가 될지 힌트만 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차기작은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그 동안은 한 번도 청탁을 받거나, 미리 계약을 하거나 해서 쓴 적이 없다 보니 제가 쓰고 있는 소설의 독자는 언제나 저 자신이었거든요. 스스로 쓰고 싶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다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번 책이 나오고 앞의 두 책들보다 독자 분들의 반응이란 걸 볼 기회가 생기면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이 코너 제목이 ‘쓰는 존재’잖아요. 그 전에는 제가 쓰는 존재란 걸 거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메인 잡이든 세컨드 잡이든 소설이 저의 직업이란 생각을 못했어요. 사실 결과물이 경제적인 소득으로 이어져야 그런 게 확실해지잖아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게 취미인가? 아르바이트인가? 그런 정도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는 쓰는 사람으로서 저의 정체성을 고민해 봐야 할 듯해요. 요즘 독자 분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제 책의 독자를 상상해 본 적이 전에도 있긴 했지만, 그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렸거든요. 서점에서 표지가 예뻐서 책을 집어 든다거나,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거나 단순한 상상이었죠. 그러다가 독자 분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누게 되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과 경험과 생각들이 보였어요. 책을 읽는 순간도 순간이지만, 그 앞과 뒤에 연속되는 삶이 있잖아요. 제 안에서 독자의 모습이 전과는 달라졌어요. 이제 독자를 떠올리면 각자 자기 안의 균열과 파장을 지닌 생생한 누군가를 그릴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다가와 강렬한 공감을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한 사람을 바꾸는 결정적인 한 권의 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다만 책과 읽는 사람의 파장이 잘 맞아 들어갈 때, 균열의 섬세한 지점을 건드린다면 생각보다 여파가 클 수 있겠구나 무게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내 질문을 내가 쓸 거야’보다는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는 것을요. 앞으로도 책 읽는 사람들의 연약한 지점을 건드릴 수 있는 주제를 고르고 싶어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 하는 마음속의 목표 같은 게 생겼는지 물었다. 실루엣이라도.


“메인 잡이 작가인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어요. 지금은 메인 잡이 아이 엄마거든요. 다음, 아니, 다음다음 직업쯤이 작가인 것 같네요. 아이를 지금처럼 돌보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오면 육아가 두 번째 직업이 되고 그때 첫 번째 직업이 글을 쓰는, 소설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요.”




딸을 위해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다른 인터뷰에서 했던 적이 있다. 작가의 딸이 작가의 직업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이라, 이제 글도 읽고 책도 읽으니까요. 『82년생 김지영』을 거의 다 읽었어요. 제 책 중에 제일 얇고 글씨도 편했나 봐요. 그전에는 제가 자기를 재우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뭔가 쓴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뭔지 잘 몰랐을 거예요. 책이 한참 안 나오기도 했었고요. 엄마 뭐해, 하고 물으면 엄마는 뭔가를 써…… 대답했었어요. 이제 책으로 나왔으니까 엄마가 그때 쓴 게 이거였구나, 아는 거죠. 다 읽고 나서는 성 차별 다음으로 나쁜 건 나이 차별이라 하더라고요. 왜 자기가 일주일에 몇 번 일기를 써야 하는지 어른들이 정하냐고요.”(웃음) 




여성 예술가들이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기만 해도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일이 요 몇 년간 적지 않았다. 혹 『82년생 김지영』 때문에 공격을 받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었다.


“쓸 때는 많이 읽히리라 예상하지 않아서 두렵지 않았고, 쓰고 나서는 그렇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펼치는 분들은 소설 독자층이 아니란 걸 알게 되어서 괜찮았어요. 물론 인터넷 서점의 한 줄 평에 굉장히 거부감을 가지고 읽으셨구나, 추측할 수 있는 평 정도는 있었지만 그 범주를 넘어선 공격은 없었어요.”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고, 한층 더 소설 독자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역시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기질은 다르다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조남주 작가는 소설보다 인문 사회 분야 서적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좋게 읽은 책을 몇 권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 줬어요?』였어요. 중간에 덮지 않고 한 번에 죽 읽었을 정도예요. 그리고 여성주의 필자 분들이 함께 쓰신 책들이 다 좋았는데 특히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가 좋았어요. 미성년자 의제 강간법에 대한 장을 읽으며 젠더 이슈가 다른 모든 이슈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너무 자주 써서 퇴고할 때 거르고 빼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복잡한’이요. 복잡한 마음, 복잡한 표정, 복잡한 기분……(웃음) 글을 고치며 찾아보기 기능으로 찾으면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대체 왜 그렇게 그 표현을 반복해서 쓰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복잡한 문제를 간명하게 쓰는 작가라서가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복잡한 문제를 간명하게 쓰려면 복잡한 것을 복잡한 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그것에 뛰어나기에, 조남주 작가의 무의식에서 그 단어가 자꾸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도 모르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해서 전화번호도 땄다. 은하계의 나선 팔 저쪽에 있는 별을 좋아하듯이, 멀리서 좋아하다가 또 만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녹음기를 끄고 나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어째서일까?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서 일부러 점심을 천천히 먹고, 많이 웃었다. 아마 나는 평생 조남주 작가를 따라 읽게 될 것이다. 테이블 너머의 조남주 작가에게 소설을 읽는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맡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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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렵한 문장을 타고 다른 세상으로 날아 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 손보미에게 알라딘 독자가 물었습니다. 손보미 작가가 보내온 답변을 소개합니다.


이벤트 보기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62650





작가님이 힘들고 지쳤을 때 특별히 위로가 되는 책이 있었는지요? 그렇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올리버 색스의 『깨어남』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그냥 아무 장이나 펼쳐서 읽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도 하고 저도 모르게 경탄하거나 미소를 지을 때도 있습니다. 작년에는, 루이자 길더의 『얽힘의 시대』에 실린 「붕괴」라는 장을 읽고 갑자기 눈물을 쏟은 적이 있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감정이라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만, 그런 식으로 삶의 불가해성을 일깨어주는 책들이 저에게는 위로가 됩니다. 

 



저와 동년배의 작가라서 늘 관심 갖고 있는 작가님, 신작이 나와서 반가워요. 손보미 작가님은 작품의 제목을 어떻게 붙여주시나요? 궁금해요.

 

제목을 짓는 것은 사실 저도 무척 어려워하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제 데뷔작 「담요」의 원래 제목은 ‘담요의 죽음’이었고, 「폭우」는 원래 ‘중력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이 세상에 나올 뻔했습니다. 저는 단순한 제목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작품에서 떠오르는 가장 구체적이고 기억에 남는 단어들로 단순하게 제목을 짓는 걸 좋아합니다. 때때로 좀 촌스럽게 느껴지거나 유치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게 좋습니다. 

 



만약에 젊은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때도 작가의 길을 걸으실 건지 아니면 어떤 일을 하실 건지 궁금합니다.

 

작가를 하면서 가장 힘들다고 느낄 때는,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그만큼의 결과가 따라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아마, 제가 작가가 아닌 다른 일을 선택할 수 있다면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지, 사실은 잘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소설을 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이 쓰시는 소설들이 독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기를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잘 하지 않습니다. 그냥 저는 저의 이야기를 쓸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기를 원하는 것 자체가 너무 큰 욕심인 것 같아서요. 그렇지만, 누군가 제 소설을 읽고 단 한 장면, 혹은 단 하나의 문장에 잠시, 아주 잠시라도 멈춰 서준다면 만족할 것 같습니다. 

 



가장 좋아하는 ‘첫 문장‘은 무엇인가요?

 

가장 좋아하는 문장이나, 작가, 작품은 시시때때로 달라집니다. 세상에 너무 좋은 문장과 소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어떤 것의 경향이 있을 순 있을 겁니다. ‘첫 문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엔 너무 좋은 첫 문장이 많은데, 그중에서 제가 좋아하는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문장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의 첫 문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멕시코 만류가 흐르는 바다에서 조그만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노인은 지난 84일 동안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과학책이나 외국 영화 또는 외국 드라마도 많이 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감을 받은 책 이야기는 작가들에게 흔히 듣지만 영화나 드라마 이야기는 듣기 힘들어요. 손보미 작가에게 아이디어를 준 영화나 드라마는 어떤 건가요?

 

무척 많습니다만, 첫번째로 꼽는다면 jj 에이브럼스 감독의 <로스트>입니다. 어떤 특정한 영감을 받은 걸 넘어서서 과학이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게 만들어주었으며, 서사 속에서 수수께끼가 작동하는 방식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다른 하나만 더 꼽는다면 매튜 와이너의 <매드맨>입니다. 문학보다 훨씬 더 문학적인 장면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작품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온갖 감정과 인생을 가장 적절한 방식으로 담고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자기 자신을 믿는 것

 



작가님, 문득 계절에 대해 여쭙고 싶어졌어요. 작가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작가님은 어떤 계절을 좋아할지 궁금해지더라구요. 추측이 잘 되지 않았어요. 햇빛이 비치는 수영장의 물이 떠오르는 그런 여름이 떠올랐다가도 또 어느 때는 겨울이 떠올라요. 그게 궁금해요! 작가님의 소설을, 계절에 비유한다면, 어떤 계절에 비유할 수 있을지.

 

아, 이 질문이 뭔가 저의 마음을 푹 찔렀어요. 저는, 아마도 겨울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추운 건 정말 싫어하는데, 피부에 와닿는 차가운 공기와 코끝이 어는 느낌, 그리고 입김을 좋아합니다. 어디선가에서 잠들어 있던 저를 끄집어내주는 것 같은 감정을 느끼거든요. 

 



손보미 작가님이 쓴 글들 중에서 계속 되뇌이는 문장이 있으신지요? 혹은 가장 아끼고 보듬게 되는 문장이나 표현, 주인공도 궁금합니다. 그리고 다른 작가님의 글 중 탐이 났던 문장도 알고 싶어요. 

 

계속 되뇌는 문장은 거의 없는데, 제가 쓴 「임시교사」의 마지막 문장을 약간 좋아합니다. “잠들기 위해 눈을 감는 건, 생각보다는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편혜영 작가님의 「저녁의 구애」를 처음 읽었을 때, 마지막 부분에 마라토너가 뛰어오는 부분을 읽고 너무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지금도 가끔 그 장면을 아무 이유도 없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단편소설 「폭우」를 인상 깊게 읽은 독자입니다. 작가에게 기억이라는 두 글자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제게 기억은 그림자 같은 존재이며, 그 속살을 헤집어 보기가 두려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작가님에게는 또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네요. 앞으로도 건강 잘 챙기시고 멋진 소설로 만나뵙기를 바랍니다.^^

 

프리모 레비는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인간의 기억은 놀라운 도구인 동시에 속이기 쉬운 도구이다.” 저는 대개 많은 것을 잊어버리는 편입니다. 혹은 어떤 것을 제멋대로 잘못 기억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그런 잘못된 기억이 저에게 힘을 주고 위로가 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건, 저 자신이 얼마나 나약한 인간인지를 상기하게 되는 시간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독자님도 건강 잘 챙기시고, 멋진 소설들을 많이 만나시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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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확고한 세계를 선보이는 젊은 작가, 배명훈이 알라딘 독자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질문과 답변을 소개합니다.

오늘의 젊은 작가들 배명훈 편 :

http://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159522

 

 

 


예전과 비교할 때 SF소설의 지평이 조금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전히 문단에서는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어 생각하거나 바라보는 관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처럼 장르소설을 두고 ‘예술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몇몇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오롯한 순문학도 오롯한 장르문학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의 장르적 경계는 모호해지고 있고, 언젠가는 경계가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소설의 장르적 경계가 먼 미래에도 유지될 거라고 보시나요? 또 국내 문학계 내 순문학 vs. 장르문학을 나누어 생각하는 사고나 관점 변화가 어떤 방향(더 나은 쪽,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ID 뮯)

 

경계는 생각보다 오래 유지될 것 같습니다. “문단”은 균일한 조직체 같은 것은 아니고 경계가 모호한, 꽤 폭넓은 사람들의 활동영역을 가리키는데요, 그 안에는 상징권력이라고 하는 것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기능도 있고, 잡지나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을 겁니다. 이중 잡지에 단편소설을 발표할 지면을 주거나 장르소설을 책으로 내는 활동 측면에서는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발표된 글에 상을 줄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졌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단의 기능 중 창작활동이 일어나는 영역을 보면 경계가 약해지는 현상이 꽤 자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튼 상징권력 쪽은 변화하는 데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릴 거고요, 보통 권력은 투쟁해서 쟁취하는 거지 자연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현실이 소설 같고 소설이 더 현실 같은 요즘,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의 이야기가 아닌 더 넓고 더 큰 공간을 주 무대로 하여 소설을 쓰고 계신 것 같아요. 가상의 공간이 아닌 현실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쓰실 생각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ID 지키미)

 

추리소설도 꽤 연습을 했었고, 지금 쓰고 있는 소설 때문에 현실 공간을 공부를 좀 하기도 했고 한데, 지금 당장 현실을 무대로 한 추리소설을 쓰고 있지는 않네요. 자세히 보시면 제가 은근히 추리소설 쪽으로 연습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실 수도 있을 텐데, 네, 제 단편 지면들이 워낙 성격이 다양해서 다 챙겨보기가 어렵기는 합니다. 그래서 틈틈이 단편집을 내고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엘릭시르에서 나오는 <미스테리아>라는 잡지 창간호에 소설을 실은 적이 있는데, 그 시리즈는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그 잡지를 자세히 보시면 몇몇 SF 작가들이 그쪽에서 꽤 활약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을 겁니다. 논리적인 이야기여서 서로 통하는 거겠지요?


한국 배경으로 범죄소설류를 구상하다보면 턱 걸리는 데가 하나가 있는데요, 다른 나라 작가들도 하는 고민이겠지만, 사건이 밝혀진다고 이야기가 끝나는 게 아니더라고요.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이야기가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 보니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더 집어넣게 되는데, 그러면 말 그대로 이야기가 깔끔해지지 않아서 망설여지곤 합니다. 느와르나 하드보일드 느낌으로 가야 사회문제를 사실적으로 다룰 수 있을 텐데, 그쪽은 또 다른 이유에서 취향이 아니어서요.


어느 소설이나 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명료해지려면 추리소설의 배경도 결국 가상세계가 되고 마는 것 같습니다. 사실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그거 사실 작가 머릿속에 있던 범죄현장이고 트릭이고 단서거든요. 취사선택에 의한 가상세계인데, 그것도 쓰다 보면 이게 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저거 어차피 내가 방금 심은 단서잖아’ 하는 느낌이 들어서요.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도 평소 SF장르를 좋아해서 관련 책이나 영화 등을 찾아 읽고 보는 편인데 한국 SF는 자주 접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한국 SF라는 장르만의 매력이 있다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그리고 최근 SF의 범주에 관하여 사람들이 SNS에다가 쓴 글을 보았는데, 과학적 소재 못지않게 다른 분야(예를 들면 철학이나 내면 심리, 사회구조 같은)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도 SF라고 봐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이 갈리더라고요. 이에 대해서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또 작가님께서 소설가를 꿈꾸도록 하셨던 결정적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인물이 누구인지 여쭈어보고 싶네요! (ID 김남영)

 

안녕하세요, 김남영 님. 한국 SF의 매력은 역시 한국 작가가 쓴, 한국 사람이 등장하는 이야기라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건 꽤 의미 있는 지점인데, 당연한 말이겠지만 미국 SF는 미국인이 인류를 대표해서 고민하고 결정하고 행동하는 이야기거든요. 고전으로 갈수록 콕 집어서 미국이나 영국 국적의 백인 남자가 주인공인 이야기들이 많고요. 그런데 2017년의 관점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보면 위화감이 느껴지는 측면이 많답니다. 사실 좀 촌스러워 보이기도 하지요. 한국 작가가 쓴 SF에는 우리 이야기나 우리 관점이 담기게 되기 때문에, “기존 SF와는 달리 한국적인 삶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을 종종 듣게 되는데요, 이건 소소한 차이가 아니고 꽤 결정적인 기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특히 최근에 들어서요.


저도 종종 “과학소설 전문가”들이 과학소설의 “과학” 부분에는 자연과학이나 공학만이 아니라 사회과학이나 인문학도 포함이 된다는 이야기들을 보곤 하는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그런 글을 봤을 때 그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부분을 전혀 못 알아보는 걸 보면, 발언하는 사람들에게 그 말 자체는 일종의 레토릭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래도 실제로는 맞는 말이니까 마음껏 시도하시면 됩니다. 하드 SF라고 불리는, 자연과학이나 공학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이야기만 진정한 SF로 평가받는 경우가 종종 있기는 한데, 그런 의견에 대해 오랫동안 SF 분야에 종사해온 작가, 번역자 등등은 별로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모두가 하드 SF를 써야 할 이유는 전혀 없고, 그냥 광범위해진 SF 월드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정도면 적당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가 취미여서, 사실 작가가 되게 만든 책을 떠올리기가 불가능하답니다. 그냥 세종대왕님이 한글을 워낙 쉽게 만드셔서 이렇게 된 것 같기도 하네요.

 

 

 


‘예술과 중력 가속도‘ 등 이번 작품을 비롯하여 배명훈 작가님이 전작들(청혼, 첫숨) 등 다수의 글들이 SF적인 서사를 외피로 하고,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가 그 기저에 흐르는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SF적 서사를 위해서는 상상력과 과학기술적 지식이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이러한 점에서 사실 작가님의 학력 등의 배경이 막연히 이공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외교학 전공이시더라고요. 특별히 상상력을 개발하고 과학기술적 지식을 얻기 위해 하시는 작가님만의 노력(공부나 취미 등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만 해봅니다만…)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존재론적 철학 등 깊이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많은데, SF 서사에 이러한 의미를 담은 데에는 나름대로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ID 채윤파파)

 

SF적인 서사를 외피로, 존재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기저로 구분하실 필요는 없고요, SF가 원래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편이 진실에 가까울 것 같습니다. SF 서사에는 원래 존재론적 철학 등 깊이를 담고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최근에 제가 읽은 SF들만 따져도 전부 다 그런 것 같네요.


상상력은 어느 예술에나 필요하겠지만, SF에 어울리는 상상력이라는 것은 좀 있을 것 같고요, 과학기술에 관한 지식은, <과학동아>에 실리는 지식 정도면 차고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과학기술이 만들어낼 변화를 우리 생활에 연결시켜서 상상하는 능력 같은 건데, 앞뒤가 잘 맞게 논리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연습이 핵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고실험이 잘 돼 있어야겠죠.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 안에 독자가 들어갔을 때 별 거리낌 없이 몰입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자신의 작품 중에 다시 한 번 더 써보고 싶은, 그러니까 리메이크 해 보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 좋아하는 영화 작품이 있나요? (ID 신민경)

 

슬럼프를 극복하는 비법 같은 게 따로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고통스러울 따름인데, 그 기간을 넘기고 나면 왜 그렇게 고민했나 싶기도 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글이 막히는 것도 글쓰기의 정상적인 단계 중 하나이기도 한데요, 소설은 공식이 정해져 있는 상태에서 쓰는 형식의 글이 아니어서요, 장편을 쓰면 이런 고통을 좀 덜 겪게 되기는 합니다. 단편 열 편을 쓰면 그런 일을 열 번을 겪어야 하지만 같은 분량의 장편 하나를 쓰면 단편 기준 세 번 정도의 고통만 한 차례 겪으면 되거든요.


썼던 글 다시 쓰기는 잘 안 하지만, <청혼>은 단편이었던 걸 중편으로 완전히 다시 쓴 글입니다. 장편을 리메이크하고 싶지는 않고, 단편은 단행본에 묶이기 전에 대폭 수정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리메이크를 하게 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좋아하는 영화는 이것저것 많은데, <스타워즈> 최근 시리즈들을 보니까, 헉 소리가 나게 좋더군요. 그렇게 좋아하는지도 몰랐는데 말이죠.

 



연작소설 타워로 처음 접해 지금까지 쭉 SF 장르로 기억되는 작가님의 자리가 마련되어 좋습니다. 실상 10년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SF소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초현실이거나 비현실이거나, 그로 인해 쉽게 접하기도 어렵고, 접해도 빠져들기 어렵다)이 크게 달라지지도 않은 거 같고, 더군다나 한국작가의 SF라는 상투적으로 비춰질 만한 고정된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것 같은데(전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이렇게 질문을 하는걸 보니 제가 오히려 그런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건 아닌가 싶습니다.) 꾸준히 SF의 길을 걸어오시고 또 걸어가고 계시는 작가님이 말하는 SF의 재미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라는 조금은 추상적인 질문을 남겨봅니다. 트위터에서도 작가님의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독자와의 만남과 같은 행사도 알음알음 떠오르네요. 신작 소설로 다시금 작가님과 마주하는 자리를 가져봤으면 좋겠습니다. (ID 동심)

 

SF는 재미의 소스가 다양합니다. 칼 세이건의 <콘택트>라는 소설은 저한테는 앞부분이 엄청 지루했는데요, 전파천문학에 대한 설명이 그야말로 설명의 형식으로 잔뜩 들어있어서요, 과학자분들은 이 부분을 엄청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우주전쟁이나 모험 같은 부분을 좋아하고요, 요즘 제가 소설의 실용적인 기능이라고 주장하는 “소설에 담겨 있는 공기” 측면에서도 SF는 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 몰입했을 때, 읽다가 덮어둔 책을 다시 펴 들었을 때 기대하게 되는 공기라는 게 있잖아요. 몰입감이라고 할 수 있겠고. SF의 공기는 뭐랄까, 후덥지근한 날 에어컨이 켜져 있는 공간에 딱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잘 정돈된 공기, 혹은 “conditioned air” 같은 느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문명의 느낌, 좋은 의미의 합리성에서 오는 편안함,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SF적인 글감, 소재들은 주로 어디서 어떤 것을 보고, 혹은 어떤 생각에서 이어져 오는 편인가요? <안녕, 인공존재!>의 ‘조약‘에 신선한 충격을 받은 독자로서 궁금합니다. (ID 이예은)

 

글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몇 년 전에 SF 작가들이 단체로 과학자분들한테서 주입을 받아본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보니까 인위적인 주입은 잘 안 되는 것 같더라고요. 작가들 입장에서는 주입되는 내용보다는 강연을 하고 있는 과학자 자체를 구경하는 데서 더 많은 영감을 얻게 됐으니까요. 말하자면 잘 다듬어진 양질의 소재보다는 오히려 길에서 주운 게 더 가치가 있었던 셈인데, 창작자들은 다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내가 직접 골라서 주워 담아야 의미가 있는 거라, 거기에 해당되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귀찮지만 여행을 가거나, 번거롭지만 뭔가를 직접 해 보거나, 되도록 안 하고 싶지만 공부를 하거나.

 

 

 
배명훈 작가님은 글을 쓰실 때에 특이한 습관이 있으신가요? 글이 안 써질 때에 주로 하는 행동은? (ID 영감)

 

특이한 습관이 있을까요? 잠버릇 같은 거라 저 스스로는 자각을 못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글이 안 써지면, ‘이건 글쓰기의 정상적인 단계야’ 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괴로워하고요, 큰 창문이 있는 곳으로 일하는 장소를 옮겨 보기도 하고, ‘그래, 오늘은 카페에서 하는 거야’ 하고 짐을 챙겨서 나갔다가 ‘역시 일은 집에서 하는 거지’ 하면서 도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안 되면 놀아야겠죠. 죄책감이 충분히 쌓이면 인간의 창의성이 발현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카고 타자기>라는 드라마를 보다가 생각이 난 건데, 글이 안 써질 때 종이를 막 구겨서 바닥에 버리는 일 같은 것도 한번쯤 해 보고 싶었던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붙들고 있는 건 디지털 파일이라 던질 수가 없고…….
별다른 비법은 없지만, 아무튼 충분히 준비가 되어 있으면 결국은 쓸 수 있게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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