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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마이어는 <아메리칸 러스트>라는 한 편의 소설로 미국 문학계을 이끌 신예라는 찬사를 얻었습니다. 젊은 작가가 단 하나의 작품으로 존 스타인벡, 헤밍웨이, 데니스 루헤인, 코맥 메카시 등의 대작가의 이름과 견주어지는 건 그리 흔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70년대 미국 공장지대. 그 회색빛 풍경 속 흐릿한 구원의 빛을 그려낸 필립 마이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는 올 출판사에서 전해주셨습니다.

  

 
  데뷔작 《아메리칸 러스트American Rust》로 출간과 동시에 2009년 미국 문단과 대중을 단번에 사로잡은 신예 필립 마이어.《로드》 이후 미국에서 발표된 최고의 소설”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단 한 편의 소설로 이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코맥 매카시와 비견되는 영예를 안은 이 작가는, 첫 소설의 성공으로 분주한 중에도 편집부와 서면으로 진행된 인터뷰에 성실하고도 친절하게 응해주었다. 데뷔작으로는 드물게 인간과 세계에 대한 끈질긴 탐구와 묵직한 통찰력을 강렬한 내러티브 속에 녹여낸 주목해야 할 신인 필립 마이어. 자신의 진중한 소설처럼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 | 올 기획편집팀 황경하, 번역 | 황근하)

 
 

 


서면으로나마 만나서 반갑다. 《아메리칸 러스트》를 한국에 소개하게 되어 기쁘다. 곧 출간될 한국판 《아메리칸 러스트》의 첫 번째 독자로서 당신의 소설을 매우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소설은 미국 문단과 대중의 큰 주목을 받았을 뿐 아니라 한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에 소개되면서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받았다. 기분이 어떤가? 당신의 데뷔작이 이러한 주목을 받을 줄 예상했나?

운이 무척 좋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또한 그런 호평들에 대해서는 빨리 잊어버리는 게 좋은 것 같다. 글 쓰는 사람은 좋은 평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글 쓰는 게 좋아서 글을 써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한 번도 책을 낸 적이 없는 것처럼, 혹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처럼 쓰려고 노력 중이다. 내게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늘 확인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이 책은 지금 미국에서 유행하는 종류의 소설들과는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주목을 전혀 못 받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좋게 받아들여진 것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책에 내 모든 능력을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가 인생에서 한 모든 것들은 불가능하다고,
혹은 무모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작가로 등단하기까지의 이력이 독특하다. 고교 중퇴자 신분으로 코넬대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 중개인이 되었다가 작가로 전향했다. 먼저, 고등학교를 그만둔 이유와,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다.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줄 때, 그러니까 사회가 기대하는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내 자신의 본성에 진실한 것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 지금 내가 하는 것이, 사회가 나에게 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인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지만, 늘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내 직감을 믿으려고 하는 편이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중퇴하고도 (몇 번의 시도 끝에) 아이비리그의 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월스트리트에서 매우 높은 연봉의 직장을 다녔으면서도 미련 없이 나올 수 있었다. 나는 내 직감을 아주 굳게 믿고, 늘 그것을 따른다. 큰 결정을 할 때는 다른 이들의 조언을 구하지만, 그들이 뭔가가 불가능하다거나 무모하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따르지는 않는다. 어찌 보면 내가 인생에서 한 모든 것들은 불가능하다고, 혹은 무모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것들이다.
 

 


경제적인 안정이 보장된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를 결심하면서 망설이지는 않았는가? 가령, 중개인을 계속 하면서 글쓰기를 시도할 수도 있었을 텐데. 게다가 《아메리칸 러스트》를 오랜 기간 준비했다고 들었다. 그동안 경제적, 심리적 어려움은 없었는가? 오랜 기간 응답이 없다보면 글쓰기에 대한 믿음이 흔들렸을 법도 한데.

어떤 일에 시간과 감정적 에너지를 쏟으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최고치로 할 수는 없다. 글쓰기에 전적으로 전념하지 않았다면 《아메리칸 러스트》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경제적 난관은 정말로 많이 겪었다. 우리 집은 전혀 부유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모든 예술가들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처음에는 예술을 위해 굶어야 하는 시간이 있다. 시간도, 돈도 충분해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을 보낸 볼티모어의 공장 지역을 모델로 해서 이 소설을 썼다고 들었다. 지금까지의 삶에는 여러 다양한 경험과 기억들이 존재할 텐데, 특별히 그 시절의 경험과 기억을 당신의 첫 소설에 반영한 이유는 무엇인지?

누구든지 내면에는 어떤 식으로든 꼭 그 시기에 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이것이 만족스러운 대답이 될는지 모르겠는데, 《아메리칸 러스트》는 내가 내 인생의 이 시점에서 말했어야 하는 이야기였다. 물론 내게는 《아메리칸 러스트》에서 한 이야기 말고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그저 지금이 그 이야기를 하기에 알맞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물론 이 책은 과거 산업도시 볼티모어에서 보낸 내 어린 시절을 부분적으로 활용했지만, 그 외에 훨씬 더 많은 부분은 전적으로 내가 만들어낸 것이다. 
 


 

   
 

사람에게는 혐오할 점보다 존경할 점이 더 많다.

 
   


 
데뷔작에서 다룬 주제들이 꽤 묵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미국 산업의 붕괴와 아메리칸 드림의 몰락,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의 선택, 정의(justice)에 대한 정의(definition) 등등. 당신이 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사람은 아주 큰 어려움에 처했을 때조차도 큰 관용과 선함, 희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인물들이 자기가 갖고 있던 사고방식이나 도덕, 즉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직면하게 되며, 옳고 그름에 대한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그 결정에 따라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나는,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사회적으로 그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통해, 옳고 그름에 대한 생각들을 파헤쳐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도덕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그리고 우리가 자기 자신이나 사회, 혹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궁극적으로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기를 바랐다. 
 

 


책의 도입부에 인용된 키르케고르와 카뮈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둘 다 실존주의 철학자로 알려져 있고, 특히 키르케고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신(神)에게에서 찾은 철학자 중 하나인데, 특별히 그 인용구들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그 두 인용문이 이 책의 바탕이 되는 철학을 잘 요약해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키르케고르는 무척 종교적인 사람이었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그의 인용문은 전체 맥락에서 빼내서 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 모두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인간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 존경, 연민(compassion)과 같은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고 본다. 칼 융은 그것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부른 것으로 안다. 나로서는 그것을 무엇이라 이름 하든 중요치 않지만,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카뮈의 인용문은 내가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신념 몇 가지를 잘 말해준다. 우선 첫째, 사람에게는 혐오할 점보다 존경할 점이 더 많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오직 가장 힘든 상황에서만 가장 훌륭한 인간성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쉬울 때, 위험에 내걸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위험에 처했을 때, 생명이 위협받을 때도 인간은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커다란 연민과 자기희생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이, 이것이 이 책의 중심 메시지다.

   
 

겁쟁이가 되지 마라.

 
   

 



여섯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두 도덕적 딜레마에 처하는 설정이 굉장히 흥미롭다.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인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내려야만 하는 선택은 어찌 보면 인간의 본성에 가장 가까울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직접 그러한 상황에 처해보지 않고서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절박한 상황인데, 그래서인지 등장인물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고, 그게 이 소설의 매력으로 보인다. 소설에서만큼은 아니더라도 뭔가 어려운 선택을 해야만 할 때 당신이 기준으로 삼는 것이 있는가?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자신의 직감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무엇이 옳은지를 안다. 그러나 가끔은, 옳은 선택이란 가장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려운 선택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자주, 우리에게 전혀 선택권이 없다는 듯 행동한다. 가장 어려운 선택을 하고 싶지가 않기 때문이다. 내 삶의 주요 원칙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겁쟁이가 되지 마라.’ 중요한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마다, 내 선택과 기호가 얼마만큼 두려움에서 나온 것인지를 가늠해본다. 실패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들어맞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 다른 이들이 뭐라고 생각할까에 대한 두려움 등 말이다. 주로 감정적 두려움, 혹은 지적인 두려움을 말한 것이지만, 때로는 육체적 두려움도 해당된다. 누구나 두려워한다. 그건 인간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에 어떻게 직면하는가, 그 두려움에 얼마나 솔직한가 하는 것이 다른 결과를 낳는다.  

 



육체적인 면에서는 거의 노력이 필요 없는 청년 포와 천재소년이라 불리며 남들보다 월등한 두뇌를 갖고 있는 아이작은 인간의 육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이 분리되어 극대화된 모습 같다. 둘의 뛰어난 특징들을 조합하면 거의 완벽한 한 인간의 모습이 될 것도 같다. 읽으면서 왠지 작가 자신에게 아이작과 포의 특징이 모두 들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들었다. 주요 인물들이 어느 정도는 자기 자신의 성격에서 나온 것인가? 캐릭터들은 어떻게 구상했는지 궁금하다.

포와 아이작은 물론 내 성격의 두 측면이다. 나는 매우 지적인 면이 있지만(내가 전업 작가라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매우 육체적인 면도 있다. 나는 외딴 들판 같은 곳으로 가서 며칠이고 몇 주고 혼자 지내는 걸 좋아한다. 내가 먹을 것을 소총으로 직접 사냥하기도 한다. 스스로를 물리적으로 밀어붙여서, 내가 어느 정도까지 그 상황을 다룰 수 있는지를 보는 걸 좋아한다.
자기가 쓰고 있는 인물과 비슷한 면을 자기 자신 안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만 하는 것 같다. 그 유사성을 활용하는 것이다. 그 인물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작가가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 특징이나 습관이 될 수도 있다. 영화배우들도 이와 매우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들은 인물을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가 써낸 인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지만 말이다. 작가란 인물을 창조해내는 사람이다. 각 인물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일종의 비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독자는 각 인물에 자기만의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내 의견을 덧붙이면 그들의 판단에 방해가 될 수 있다. 
  

 


여섯 캐릭터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인물이 있는가? 많은 평론가들이 경찰서장인 버드 해리스를 매력적인 인물로 꼽았는데, 당신은 어떤가?

글을 쓰면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계속 변했다. 각각의 면에서 여섯 인물을 모두 사랑한다. 어떤 이들은 경찰서장 버드 해리스를 좋아한다. 하지만 포를 가장 좋아하는 이들도 있고, 또 그레이스가 가장 좋다는 이들도 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좋아한 인물은 아이작이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지적인 인물일 것이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에서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는,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고, 사람들과 따로 노는 인물 말이다. 우리로 하여금 바보가 되는 기분이 되게끔 만드는. 그러나 내가 볼 때 아이작은 이 책에서 가장 자기에게 깨어 있는 인물이다. 또한 가장 무거운 감정적 무게를 감당하고 있는 인물이다. 책 말미에서 그의 변화는 의도한 것인 동시에 완성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는 비단 자기 친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선이라는 추상적 관념 자체를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한다. 선한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관념을 위해서 말이다. 한편 마지막 부분에서 포의 영웅적인 행위는 그의 내면 깊은 곳에서 나온 것이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잘 모르고 있다. 
 

 


《아메리칸 러스트》를 쓰기 위해 많은 사전 조사를 했다고 들었다. 경제 성장의 그늘에 가려진 몰락한 도시 부엘이 허구의 공간임에도 미국뿐 아니라 그 어디에도 있을 법한 현실적 공간이라는 평을 받은 것은 이러한 사전 작업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글을 쓰면서 어떤 식으로 사전 조사를 했는지 궁금하다.

이 책을 쓰면서 엄청나게 많은 것을 조사했다. 몬 밸리의 철강노동자들 및 주민들과 수십 편의 공식적인 인터뷰를 했고, 철강산업 전문가, 사제와 목사, 경찰관, 치안판사 들과도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한 인터뷰는 수백 개 정도 된다. 아이작이 이 책에서, 적어도 몬 밸리 이내 지역에서 다니는 길들은 거의 모두 나도 직접 걸어 다녔다. 아이작이 한 것처럼 석탄 기차에 뛰어올라서 승차해보기도 했다. 길을 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바에도 갔고, 사람들에게 맥주를 사면서 그들에 대해서, 그리고 시간이 지나며 몬 밸리가 어떻게 변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곳의 구석구석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해두려고 했다. 
 

 


 여러 매체에 소개된 글을 보면 당신은 글을 쓰는 데 매우 꼼꼼한 것 같다. 플롯을 표로 만들거나 쓰인 단어의 숫자를 세기도 한다던데, 진짜인가? 글쓰기 스타일이 궁금하다.

  글을 쓰는 데 내가 매우 꼼꼼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중요한 것들은 대부분 우리의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는 날마다 단어 수를 세서 신중하게 일지를 쓴다. 또한 커다란 종이들을 벽 전체에 붙여놓고, 그 위 여기저기에 글을 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이런 게 필요할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에게는 도움이 된다. 한 권의 장편소설을 진행해나간다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이다. 순전히 내 머릿속에만 있는 여섯 인물들의 관점이 교차하는 복잡한 구조의 소설을 쓸 때라면 더욱 그러하다. 이따금씩 어떤 인물에 대한 아이디어가 불현듯 떠오르는데, 그런 것을 적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벽 전체에 종이를 붙여놓은 것이다.
나의 글 쓰는 방식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많이 쓴다’이다. 내 하루 전체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글 쓰는 시간이 내 정신이 가장 힘이 있는 시간이다. 그때, 그러니까 정신이 가장 깨어 있는 시간에 나는 꼭 책상에 앉아 있는다. 이 훈련에 있어서는 정말로 엄격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침에 일어났을 때 가장 잘 써진다고 하는데, 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났을 때, 다른 이와 한 마디도 대화를 섞지 않은 상태로 책상에 앉아 있는 것을 좋아한다. 해가 뜨기 전, 세상이 아직 조용할 때라면 더 좋다. 새들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때 말이다. 새들이 잠에서 깨어나 지저귀기 시작하는 때가 내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글쓰기가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글을 잘 쓰기는 정말로 어렵다.

 
   



많은 이들이 당신의 타고난 스토리텔링 능력과 천재성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당신의 글쓰기 방식을 보면 굉장한 노력가인 것 같다. 글쓰기에 있어 당신은 주로 영감의 힘을 믿는 편인가, 땀의 대가를 믿는 편인가?

가장 좋은 글, 가장 좋은 생각은 잠재의식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글을 쓰는 많은 시간 동안, 트랜스 상태와 같은 명상적인 상태에 들어가고자 한다. 자신의 잠재의식에 자신을 열어놓는 것, 더 높은 단계의 정보에 자신을 열어놓는 것이다. 그런 부분은 영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글쓰기의 95퍼센트는 땀이다. 그것은 힘든 일이고, 끝이 없는 일이다. 글쓰기가 당신이 세상에서 해야만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아닌 이상, 글을 잘 쓰기는 정말로 어렵다. 재능을 가진 사람은 수천, 아니 수백만 명이 있을 수 있지만, 그들 모두가 전업 작가가 되겠다는 헌신이나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다. 당신은 고등학교에서는 재능 있는 축구 선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직업 축구선수가 되는 유일한 길은 그것에 당신 인생을 바치는 것이다. 수천수만 시간을 연습에 쏟는 것이다. 글쓰기도 무척 비슷하다. 타고난 재능이 상당 정도 있어야만 하지만, 결국 직업의식과 헌신이 있어야 작가로 성공할 수 있다. 내 경우, 습작으로 두 편의 장편을 쓰고서야 《아메리칸 러스트》를 쓸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 괜찮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이 될 때까지 10년을 연습한 것이다. 그러고서 그걸 끝내기까지 3년 반이 걸린 것이고. 
 

 


 많은 평론가들이 《아메리칸 러스트》를 존 스타인벡, 어니스트 헤밍웨이, 코맥 매카시 등과 비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제임스 조이스와 윌리엄 포크너다. 문학이 사람 의식의 내면으로 들어가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무척 관심이 많다.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물론 헤밍웨이와 스타인벡, 코맥 매카시도 존경한다. 그들이 쓴 것을 거의 다 읽었다. 그러나 가장 많이 되풀이해 읽은 책은 조이스와 포크너의 책이다. 《율리시스》, 《8월의 빛》, 《음향과 분노》 같은 책들 말이다.  
 

 


 

 

 

 

 

 

 

 

 

다음 장편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작품인지 귀띔해줄 수 있는가?

물론이다. 19세기와 20세기, 21세기에 걸친, 텍사스의 한 축산업 및 석유산업 집안의 부흥에 관한 이야기다. 내가 《아메리칸 러스트》에서 묘사한 쇠락하고 있는 부분과는 반대로, 미국에서 아직 부상하고 있는 부분이다.  
 

 


《아메리칸 러스트》에는 한국과 관련된 이야기가 두어 군데 나온다.(비록 선박 산업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의 현실과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한국에 대한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지는 않을 듯한데, 한국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되었고,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미국은 매우 힘이 세지만, 또한 매우 고립된 나라다. 이 책에서 내가 한국에 대해 언급한 부분은―선박산업에 관한 것을 포함해―몬 밸리 사람들에게서 들은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인상이었던 모양이다.
한국은 미국인의 상상력 속에서 꽤 주목을 받는 위치에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남북 분단, 1950년대의 전쟁, 계속되는 남한 내 미군의 주둔, 북한 및 핵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문제들이 큰 이유일 것이다. 예를 들어 미군에서 복무한 내 삼촌은 한국에서도 2년간 복무했다. 미국의 한국인 인구는 상당히 많고, 그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단결이 잘되고, 직장이나 대학 같은 데서도 성취도가 높다. 이미 독일인이나 아일랜드인이 그러한 것처럼, 한국인도 더는 타민족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그저 이 나라의 한 정규 구성원이다. 적어도 주변인인 내가 보기에는 그러하다.
그 이외에, 미국인 대부분이 한국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대체로 정형화된 것이다. 근면하고,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들이라는 것. 좋은 정형화이지만, 그래도 역시 정형화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한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계속해서 구입한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적어도 한국의 일부와 꽤 지속적으로 접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바를 말하자면 이 정도다. 긍정적이지만, 많이 알지는 못한다.  

 



당신의 행로와 작가 등단은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괜찮은 모델이라 생각된다. 한국에도 소설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쓰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다. 앞서도 말했듯, 직업 작가가 되는 것은 여러 면에서, 직업 운동선수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오랜 시간, 전적인 헌신으로 연습해야 하고, 온 힘을 다해 써야 한다. 비단 재능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재능은 시작점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작품을 처음 접하게 될 한국의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달라.

한국 독자 여러분, 만나서 반갑습니다. 《아메리칸 러스트》를 번역 출간해준 사피엔스21에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저에게는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을 읽을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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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의 한 노천카페. 한적한 미술관 앞에서 신경숙 작가를 만났습니다. 신경숙 작가는 밝고, 쾌활하고 소탈한 모습이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힘있는 음성이었고,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대로 다정한 눈빛을 지녔습니다. 작가 개인의 매력이 전달되도록, 가능한 문장을 덜 다듬고, 최대한 입말을 살려 기록해 봅니다. 끊임없이 울리며 소통을 갈구하는 전화벨에 응답하듯, 신경숙 작가가 풀어놓은 다정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반가운 얼굴, 신경숙 
 

오랜만에 뵙습니다. 연재 이후 책으로 만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는데,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안부를 여쭙고 싶습니다.

12월 19일 연재가 끝났는데, 겨울 동안 내내 작품을 퇴고하는 게 주 일이었어요. 연재할 때 아침시간이어서, 써놓고 차마 연재 못했던 것들이 많았어요. 더 구체적인, 실물감을 주고 싶어 탈고를 오래 했어요. 없는 내용도 많아지고, 연재했던 것을 빼기도 하고, 그러면서 지냈어요. 사실 책은 3월 쯤, 이른 봄에 내고 싶었는데, 그때까지 작업이 안 끝났어요. 이 원고를 자꾸 더 갖고 있고 싶었어요. 퇴고된 원고를 네 번쯤 넘겼었어요. 에디터들이 애 많이 썼어요. 책이 나오는 순간까지 교정을 계속 했어요.

이쯤에서 다시 기억해보는 어.나.벨 작가의 말 : 이 작품은 육 개월 동안 연재된 원고를 초고 삼아 지난겨울 동안 다시 썼다. 겨울만이 아니다. 봄과 이 초여름 사이…… 아니, 방금 전까지도 계속 쓰고 있었다. 아무래도 인쇄되기 직전까지도 쓰고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책이 나온 후에도. 어째 나는 십 년 후…… 이십 년 후에도 계속 이 작품을 쓰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http://blog.aladin.co.kr/somewhere )
 

원고를 많이 고쳤는데, 연재할 때 덧글 달던 분들이 필사를 했다고 그래요. 그 분들은 비교하며 보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 끝나고 나면 좀 작별의 시간이 필요한데, 끝내고서도 연재가 끝났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지금도 계속 하는 느낌이야. 서재에서도 나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지…. 6개월이 지났는데 그분들이 계속 와요. 그래서 특별히 애착이 있었죠. 뭐라고 부르죠? 연재 덧글러들을? 글을 너무 잘 쓰시고, 독자들? 그래서… 참 좋았어요. 나도 좋고. 처음에는 약간 처음하는 일이라, 조금….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하기도 하고 걱정도 했는데, 나중에는 응원도 받고. 그리고 또 연재하는 동안 참 사회적으로 나쁜 일들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그 공간에서 같이 애도하고. 그랬죠. 덧글러들 이름은 다 외워요. 지금도. 주은맘,리진, 콩쥐맘. 맘이 많았어요. (웃음) 연, 혜연, 미망… (다시 웃음) 리더수. 원주. 그리고 강산무진님, 혜지니(노바디), 진세삼촌, 용민이횽, 하늘을 가진넘, 한여름씨, 바람꽃, 파랑새, 종달새, 빛나는…. (다시 웃음)

 






여기저기서 많이 대답하신 얘기일 텐데, 한번 더 여쭤볼게요. 엄마 이후 ‘청춘’을, 그것도 아프지만 푸른 청춘을 소재로 삼으셨습니다. 이미 여러 번 이야기 된 주제지만 청춘을, 그것도 이 시점에 소재로 택하신 이유를 다시 한 번 듣고 싶습니다.

꼭 이 시점이라 택한 건 아니에요. <엄마> 나오기 전에, 연재를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책을 내고, 연재를 시작하자고. 항상 마음 속에 네 작품 정도가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이 어떤 작품이 되는지를 보통 항아리로 비교를 해요. 항아리가 넷 정도 있으면 조금씩 이야기를 채워가다 보면 꽉 찬 항아리가 나오겠죠. 그럼 그 꽉 찬 항아리가 다음 작품이 되는 거구요. 연재 시작하기로 하고, 제주도에 은둔을 하려고 갔었어요. 그때 작품을 시작하려고 하는데, 두 이야기가 쌍둥이처럼 붙어 갖고 계속 따라다녔어요. 그러다 이 이야기가 이겼지. 

 

 



쌍둥이처럼 떠오른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였나요?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못 보게 된 사람이야기예요. 아마 십 년 전에한 인터뷰에도 나올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은 그 이야기가 나올는지도 모르겠어요. 오래 품고 있던 여러 이야기 중 어머니가 먼저 나왔고, 그 다음이 앞을 못 보게 된 사람 이야기고 그래요. 그런데 자꾸 밀리네요. 나는 과연 그 이야기를 쓸 수 있으려나. 언제? 그런 생각이 들기조차 하네요. 취재 때문에 앞 못 보는 아이들 다니는 학교 책 읽어주는 일도 몇 년 전에 했었고, 맹인 안내견 사육사들도 만나기도 했었고,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못 보게 된 어른이 계셨는데, 그 분 이야기도 많이 나눴었고 그랬거든요. 그 작품이 <엄마> 쓰기 전에부터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연재할 때 그 작품이 되지 않으려나 생각했는데. 이 작품(어.나.벨)이, 지가 끝까지 따라 붙더라구요. 그래서…. 시작했죠.

 


엄마를 얘기하는 작가 된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걸 벗어나고 싶었다는 생각도 했어요. 갑자기 쓴 작품은 아니에요. 후기에 있는 말을 그대로 하면, 20대를 통과해올 때 읽었던 작품들. 10대 후반, 20대 후반에 권유해서 찾거나 해서 읽었던 작품들 있잖아요. 헤세나 지드,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지와 사랑)>, <데미안> 등등…. 우리나라의 말로 쓰여진, 그런 젊은 청춘을 통과하며 읽는,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내가 찾았던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물론 있었겠지만, 그 당시를 통과하던 난 그런 작품을 못 찾고, 그렇게 그 시절이 지나왔어요.

내가 작가가 되어 활발하게 활동을 하던 때에, 90년대 때는 일본 작가들 소설을 많이 읽더라구요. 은근히 맘속으로, 한국어로 쓰여진 젊은이들이 등장하는 그런 작품을 생각해왔던 것 같아요. 르 끌레지오의 “모국어는 작가의 조국”이라는 말처럼, 나의 모국어로 된, 그런 작품이요. 언제나 어떤 시절을 통과해 나가면서… 통과한 후에도 옆에 두고 읽을 수 있는. 그런 청춘 소설. 그런 소설을 써봐야 하겠다.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이 작품 쓸 때 많이 투사가 됐어요. 여기에 많이, 거의 다 투사가 된 것 같아요. 오래 생각하던 작품이라 퇴고도 더 오래 걸린 것 같구요.

 



 



끝없이 울리는 청춘의 종소리, <어.나.벨> 
 


윤과 명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상실은, 분명 아프긴 해도 처절하거나 끔찍하다는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청춘의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청춘의 힘이란 어떤 것인지, 또 청춘은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듣고 싶습니다.

말이 청춘 소설이지. 어느 층을 겨낭한 동떨어진 소설은 아니에요. 글쎄… 좋은 소설, 훌륭한 소설이라고 내가 느꼈던 소설들, 예를 들면 <안나 카레리나>나 <적과 흑> 같은. 그 이야기 속에 시대가 담겨있고. 연애소설 성격을 띠기도 하면서, 어디에도 갇히지 않는 그런 성격을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물론 성장소설로 읽히는 부분도 있겠죠. 네 사람의 치열한 청춘을 통과해나가는 부분이 있으니.

내 생각은 그래요. 청춘은 모든 것을 가장 치열하게 생각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사회가 자기에게 던지는 질문에도 그렇고, 개인간에 만남, 사랑은 물론이구요. 거의 전 존재를 걸어서, 그것에 몰두하고 몰입하고. 그런 때가 청춘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걸 통과해오면서, 뭔가 그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기도 하고. 그쵸?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주변의 다른 어떤 사람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걸 알차게 밀어내주며, 앞으로 나아가기도 하구요. 이 소설에도 그 두 가지가 다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상실이라는 감정을 느낄 때 청춘 때처럼 늘 열렬하면 가슴이 터져 죽을 거야. 나를 떠나가고….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서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기면서 나이를 먹어가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어요. 20대, 30대를 통과하며 늘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언젠가”라는 말이 소설에도 중요하게 나오는데, 언젠가… 우리가 생각하고 견디고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뭔가를 바꿔놓을 것이다. 그런 꿈 같은 얘기를, 꿈이 아닌 그런 얘기를 누가 해줬으면 하는 마음이 강렬했던 것 같구요. 소설이나 책도 그래서 많이 더 읽게 됐던 것 같아요. 답을 찾아내려구요. 누군가가 혹은 어느 책이 “언젠가” 지금 이걸 통과해나가면 괜찮아진다. 이런 말 해주길 굉장히 바랐던 것 같애. 그런데 그걸 안 해줬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책도 아무 말도 안 해주니까, 그래서 대신 책을 더 읽고, 그때의 관계에 더 몰두했겠지.

그 시절 내가 받은 느낌들. 그때 마음속으로 일으키던 갈등들, 그런 것들을 치유해주고, 잡아주는 손의 역할을, 이걸 여기에 윤교수를 통해서 했어요. 누가 뭘 바꿔놓진 못하겠지만. 옆에 누군가 있다,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윤교수가 했던 말이 있어요. “모든 것엔 다 끝이 있지만, 하늘의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빛나고 있다. 단 하나의 별빛이 돼라.” 청춘에게 그 말을 해주고 싶어요.

음… 또 작품에서는 너무 교훈적으로 흐르는 것 같아서 퇴고하면서 지운 말인데, 30대 중반 지나고 했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들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래야, 그러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이 될 거예요. 사인을 할 때나, 기회가 있을 때 ‘꿈을 이루세요’라고 써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구요. 내가 많이 산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춘을 통과해 나오고 그래도 얼만큼 뒤를 돌아보는 나이가 된 지금의 느낌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게 꿈 가까이에 사는 거죠. 꿈을 이루게 되면. 설령 그 일 때문에 뭐가 잘못되고, 깨지고, 부서지고 그래도 그 실패가 더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애요. 아 이래서 잘 안 됐구나. 다음에는 이걸 이렇게 보완하고, 더 이렇게 해서, 이렇게.. 강건하게 해서, 다시 해봐야겠다. 이렇게 실패를 디딤돌로 삼게 되지만. 자기가 생존을 위해서 그다지 즐거움을 못 느끼거나, 할 수밖에 없어서 하는 일을 하다 실패하면, 그건 좌절을 주죠. 다신 딛고 일어날 힘을 안 줘요. 내가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하는 생각만 들고. 긴 인생을 놓고 볼 땐…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에요.

그러려면 청춘의 시간을 통과할 때 하고 싶은 일에 가까이 갈 수 있는 준비를 해야 되겠지. 여름방학이라든지 시간 날 때 있잖아요. 빈 시간들. 때론 그런 때에 ‘뭘 하지?’ 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준비를 위한 시간으로 썼으면 해요. ‘작가’가 되겠다고 합시다. 그 꿈에 가까이 가는 시간을 만들면, 그게 쌓이고 쌓여서, 가까이에 데려다 주지 않을까 해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가까이에서 생각하면서 살 수 있는, 그런 삶 쪽으로 데려다주지 않을까. 

 



그러려면 반드시 꿈이 있어야겠네요.

그렇죠. 그게 안타까운 거예요. 아이들에게 ‘뭘 하고 싶은데?’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하니까, 그 말을 들을 때, 걱정이 좀 돼요. 다른 것보다 그런 때 걱정이 돼. (꿈이 없는 게) 그 아이 개인 책임이 아니구, 우리의 모든 게, 어느 한 곳으로, 너무 한곳으로 가게 한 거지. 자기 재능이나, 내가 하고픈 일이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뭘 하면 즐겁게 느끼고. 충만함을 느끼는지, 이런 것들을 생각할 시간을 갖는 시절이 아니라. 대학을 가야 된다든지 이런 곳으로 가는 거죠. 새벽 두 시까지 공부를 하긴 하는데, 나는 어떤 존재인지. 뭘 하며 살면 좋겠다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시간은 거의 없는 것 같애. 자기도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게 안타깝고 그래요. 그래도 찾아내야죠. 중요한 문제라고 봐요. 인생의 질이 달라지니까요. 처음엔 모르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달라져요. 자기가 하고픈 일을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은 얼굴 표정이나 삶의 질이 달라요. 꿈 가까이에서 사는 사람이 더 많길 바라지만 현실은 아닌 사람이 더 많죠. 

 



선생님은 어떠셨나요?

그런 면에서 전 감사하게 생각해요. 누가 주입시켜 준 것도 아닌데, 꿈을 일찍 생각한 것 같아요. 작가가 되어야 되겠다. 책을 읽고 하며 은밀하게 생각했어요. 그게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까지, 계속… 글을 쓰게 하고. 새 작품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하고, 이런 것의 근원이 되어준 것 같애요. 어떤 지독한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나는 이 상황에서 나갈 거야, 글을 쓸 거거든. 이런 생각을 일찍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쁜 일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고, 아무것에나 자존심을 걸지 않아도 되었고,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청춘이 꿈을 꾸는 건 그들만의 기쁨이 아니고, 윗세대 같은, 우리들의 희망이기도 해요.

 



 




우리 서로의 크리스토프가 되자, 

서로의 전화벨이 되자 

 

제목처럼 작품 속에선 끊임없이 서로를 찾는 ‘전화벨’이 울립니다. 윤에게, 미루에게 반복해서 울리는 전화벨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그들이 전화를 받지 않을 때에도 울리고 있었던 전화벨은 서로에게 어떤 의미가 되었을는지 궁금합니다.

제목은요, 전화벨 소리가 계속 울리는, 그 말이 주는 느낌. “소통”의 의미로 쓴 거예요. 너 혼자 아니다. 내가 너 찾고 있어. 그리고 너도 나한테 오고 싶구나. 이런 뜻이 전달된다고 쓴 거예요. 일상의 전화벨이 아니고, 함축을 했어요. 윤과 미루가 계단 밑의 방에서 아주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도, 전화벨이 계속 울렸잖아요. 그건 ‘너희들만이 아니야. 누군가가 소통을 원하고 있어’ 이런 의미가 되기를 바랐어요. 그 소통이 절망을 줄지, 기쁨을 줄 지는 모르죠. 그래도… 나머지는 읽는 사람들의 상상의 여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구요.

이 소설에는 현대 문명기기가 일절 없어요. 전화만, 전화벨만. 그렇게 한 이유가 거기 있었어요. 명서한테도 모르는 사람이 새벽 사무실로 전화해서 누군가를 찾아달라고 얘기하잖아요. 명서는 그 얘기를 들어주고…. 수많은 타인들. 수많은 시간들이, 단절이 아니고 미세한 전화선처럼 연결이 되어있다는, 그런 뜻이 들어가길 바랐어요. 정윤이 전화를 받고, 한 청년이 지수 좀 만나게 해주세요 하며 우는 장면이 있어요. 윤이 지수라는 사람을 만나게 해줄 수는 없지만, 그 청년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해야만 하잖아요. 윤은 잘못 걸려온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되는 거죠. 그런 의미였어요. 들어주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이 사이에 전화벨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어디선가, 우리가 어딘지 모르는 곳이지만 미세하게 어떤 식으로든 동시대를 사는 한 연결이 되어 있다는 생각을 했으면… 했어요.

 





전화'라는 게 일방적인 소통수단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어떠한 간절함, 기대감, 두려움을 내포한 소통수단으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에게 첫 '전화', 첫 전화벨'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은 어떤 것인지, 실제 생활에서는 소통수단으로 주로 어떤 것을 사용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 우리는 개인전화가 아니고, 동네 이장집에, 전화가 한 대 있었어요. 내 전화는 아니었구요. 20대 통과할 때 우리는 광화문에서 만났는데, 만나면 헤어지기가 싫은 거예요. 그게 청춘인 것 같아요. 막 걸어 다니고, 차비도 없고, 선배도 돈이 없어 갖고. (웃음) 잠깐만 있어봐 하더니. 어디서 토큰을 꺼내는 거예요. 자기도 딱 천원짜리 하나 있었겠지? 그걸로 토큰을 사서 나눠주고… (웃음) 그렇게 온종일 백수의 시절이 있었어요. 자정이 거의 지나서 광화문에서 헤어지고, 집에 가서 잘 들어갔나? 또 전화하고. 그게 아침까지 이어지고… 전화를 생각하면 그게 가장 남아요. 아마 그때… 참… 고독하고 불안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전화선을 끈처럼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

내 친구가 해외를 가서 자주 체류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혼자 자취를 했어요. 2-3개월 나갔다 오곤 했는데, 없는 걸 알면서도 친구가 없는 빈방에 전화를 해보곤 했어요. 보고 싶고 해서요. 수화기를 귀에 대고 가만히 빈방에 울리는 벨소리를 듣곤 했죠. 지금처럼 메일로 보내고 할 때도 못 되었고, 편지나 받는데 연락도 안 되고 하니까, 빈방에 전화를 하게 되었어요. 그때 전화번호 몇 개가 강력하게 기억에 남아요. 그게 꼭… 사랑하는 사람끼리만 그런 게 아니고. 청춘 시절에는 친구와의 우정 사이에도 전화가 있었던 것 같아요. 잘못 걸려온 전화도 많았구요. 나한테 전화벨 소리는… 그런 의미로 와요.

 


소설을 읽고 있으면 마치 선생님의 학교생활이 상상이 되는 것 같은데요. 대학 시절, 선생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금합니다. 윤, 미루, 단, 명서 중에 자신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인물이 있으시다면 어떤 인물인지도요.

각기 네 사람 안에 어느 부분이… 각기 조금씩 들어있어요. 미루는 다는 아니지만 모델이 있어요. 그런 비슷한 친구가… 시를 굉장히 잘 쓰는 친구가 있었죠. (오래 침묵) 자주 만나고 그랬는데, 어느 날… 그… 한 몇 개월. 연락이 그렇게 안 되는 거예요. 언제부턴지… 그래가지고… 끊임없이 계속… 내가 알고 있는 그애네 집 번호로 계속, 전화한지 팔 개월만인가? 팔 개월 전에 잘못됐다는 얘기를 전해… 그랬어요.

작가 후기도 썼지만, 사랑 이야기를 썼는데 죽음 이야기가 되었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거기에 중점을 두고 퇴고에 몰두했어요. 청춘이 아니라도 그렇지만, 청춘 때는 더 그런 것 같애요. 자기 전존재를 확 뒤돌아보게 하는 일이 있어요. 나와 관계 맺고 있던 타인의 이해할 수 없는… 너무 이해 불가능한. 너무… 아무 잘못이 없는, 누구도 탓할 수 없는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런 단절을 가장 깊이 생각해보는 때가 청춘의 때라고 봤어요. 사랑 못잖게, 인간에 대해서도 깊은 사색을 하는… 그런 시기가 청춘의 시기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죽음, 사회의 죽음, 공동체의 죽음을 나의 일로 강력하게 느끼는 때요. 어딘가에서는 정윤과 명서가 만나서 기쁜 순간들을 쌓아가고 하는 것처럼, 상실과 아픔도요. 또 그런 상실, 아픔 속에서 사람을 건재하게 하고. 빛 속으로 끌고 오는 건 계속되는 만남과 사랑하는 기쁨과 발견이겠죠. 살아서 숨쉬는 것들이 지니고 있는 빛나는 아름다움 같은 것들이요. 한쪽만 취할 순 없겠죠. 이 모든 것에 가장 자기 존재를 걸어 생각하고, 투사하고, 지나오는 시기가 청춘 시절인 것 같아요.







주인공 정윤은 서울의 많은 곳을 걸어 다닙니다. 명륜동에서 혜화, 궁과 성벽. 작품에 등장하는 곳곳을 지도로 만들어 밟아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서울에서 가장 걷기 좋은 장소는 어디일까요? 가장 좋아하는 곳은 어디신지도 궁금합니다.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광화문.. 정동길. 아, 바이올렛에 나오는 길이기도 하네요. 그게 서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내가 가장 열심히 걸어 다녔던 곳은 헌책방이 있던 청계천 쪽이었어요. 지금은 모두 의류상가죠. 소설 속에 나오는 길들, 안국동, 사직동이나. 그게 다 그 선상에 있어요. 동숭동 낙산까지요. 그쪽엔 아직도 남아있는 다정한 길들이 많아요.

차를 타고 지나가는 게 현대인의 일상이 되어 버려서, 직접 접촉이라는 것이 아주 귀하게 됐는데, 걷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대지와 내가 일대일로 만나는 것이구요, 많은 생각을 할 수가 있구요, 또 무엇보다도 관심이 많아져요. 많은 사람들을 보게 되거든요. 골목에서 나오는 아이, 시장통, 식료품들. 생선들. 접촉할 수도 있고. 사고팔고 하는 사람들 통해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게 되구요. 내가 좋아하는 어떤 곳과도 많이 마주치게 되고, 궁금해하게 되죠. 늘 눈을 마주치고. 관심 있게 보구요. 차 타고 다닐 때는 몰라요. 나도 자동차를 타고 다니면서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예전엔 걸어다니면서 필요한 물건은 일부러 사러 나가는 게 아니라 걸어다닐 때 많이 샀어요. 바늘집이랄지 스타킹 손톱깎이 이런 거요. 애써서 찾지 않아도 눈에 띄면 샀어요. 작품에도 나오지만, 화분도 사구요.

 


(이 대목에서 문학동네 담당자께서 이야기를 이어가셨습니다.)
세 사람이 각자가 길을 가며 보는 게 다르잖아요. 그게 되게 좋았어요. 어떤 쪽에 가까우셨어요? 

그때 나는 주로 하늘을 많이 봤죠. 지금도 그런 편이네. 어느 때는 나만 보는 게 아까워 갖고 문자도 보내고. 짧게요. 달떴네. 세 자 보내죠. 달랑 세자겠지만 받은 사람은 달 보러 베란다에 나와 고개를 하늘 쪽에 대고 달을 찾아보겠지. 찾게 되면 같이 보게 되는거구. 지금은 사람을 보는 것 같아요. 어디 낯선 데 여행가면 시장통에 가보곤 해요. 이스탄불 시장에는 세계를 모아놓은 것 같이 벼라별게 다 있더군요. 1유로도 안 되는 돈으로 체리를 한바구니 사서 먹은 적도 있네. 램프를 사왔던 기억도. 포항 이런 데 가면… 시장에 가 봐요. 죽도시장이던가? 그 시장 너무 재미있어요. 사람보다 당연 생선이 더 많아. 난 한번도 보지도 못한 것들이 막 쌓여있어. 문어도 막 엄청 큰 게 있구요. <엄마를 부탁해>에 나오는데. 생선. 큰 거……. 물고기. 개복치라는 물고기. 그것도 보구요. 상인이 물고기 내장 안에 들어가 살을 도려 내는 것도 봤어... 진짜 물고기 뱃속이 자동차 트렁크만하더군. 그거 이름이 뭐였더라.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 (웃음)






함께 나누고 싶은, 신경숙의 취향 

 

표지 그림을 직접 고르셨다고 들었어요. 표지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탈고하고 있을 때 우연히 애킨스의 그림을 보게 되었어요. 비가 그친 후에. 여명이 비치는 거죠. 이 빛을 새벽빛이라고 생각했어요. 애킨스는 달빛화가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래요. 노란색을 빛이 이렇게 밝은 느낌으로 쓴 게 좋았어요. 사람들은 가을책 같다고 그러데. (웃음) 그림이 이 소설의 무언가하고 닿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뭐, 그냥 이 그림은 어떠냐고 말만 했을 뿐이에요. 만드는 사람이 별론데요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잖아요. 디자이너가 이렇게 잘 해줬죠. 나는 좋았어요. 만들어진 책을 보니 안심이 됐어요.

 


이 작품을 읽고 ‘에밀리 디킨슨’이라는 작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하시는 이유를 다시 여쭤봐도 될까요.

에밀리 디킨슨은 그러니까… 완벽주의자죠. 죽음에 대한 시를 많이 썼어요. 자기 시가 세상에 발표되기를 원하지 않기도 하고, 그랬었죠. 학교 다닐 때 즐겨 읽던 시집이에요. 그땐 아무도 안 읽었었어요. (웃음) 보통 즐겨 읽던 시들은 아니었죠. 백석이랑 프란시스 잠이랑 시집을 좋아해서 시들을 따라 읽었어요. 좋아해서 많이 읽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같이 읽던 시였어요. 시를 읽다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찍혀있는 말들이 있어요. 인생이란 게 모두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에 대한 애절함이나 애틋함 같은, 정말 작은, 정성스러운 마음들이나 소소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나를 이끌어준 것 같기도 해요. 당나귀를 데리고 천국에 가자는 사람이 시인이니까, 디킨슨은 무엇보다 관념적이구요 (웃음) 묵상적인 기도도 많아요. 에밀리 디킨슨을 쓸 땐, 그런 기도나 마음이 소설 속에 들어갔으면 했어요.

 
에밀리 디킨슨은 묘하게 순결하고, 또 꿋꿋해요. 요절하면서도 자기 가치를 지켜나가고, 그런 게 가만히 새겨들을수록 좋죠.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곳에서 성장했고, 어딘가에서 날아온 건지도 모르는 시인의 이름이지만, 그의 시가 시를 읽는 사람을 하나로 잇는 끈 같은 역할을 해주잖아요. 문자라는 게 그렇죠. 다른 말을 쓰고, 다른 곳에서 태어나고. 전혀 얼굴도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게 언어고, 그게 언어의 힘 같아요. 내가 언어로 작품을 만들어놓고 써놨을 때, 어디인지 모르는 누군가에 날아가서 거기서 공감을 하기도 하고. ‘어딘가에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작가가 있네. 나도 이런 생각을 하는데.’ 젖어 들기도 하고. 문자와 함께 어떤 시기를 통과해가기도 하고. 언어는 수공업에 가까운 것이고, 영상하고는 다른 고전적인 맛이 있지 않나요. 수공업적이라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하고 닿아있지 않나, 생각해요.

소설 속 청춘들에게도 걷고, 읽고, 쓰고, 그런 시간을 많이 줬어요. 그런 행동들은 풍속이 달라진 먼 훗날에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들이 읽고 쓴다고 작가, 독서가가 된다는 게 아니라 그 행위, 그 자체가 가지는 상징성이 있잖아요. 나를 써서 너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네가 쓴 것을 내가 보기도 하고, 바람 결을 타고 어딘가 가서 전파되기도 하구요. 밥 먹는 형태도 달라질 수가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은 걷고 읽고 쓸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우.리.는.숨.을.쉰.다 윤교수의 책에 들어있을 법한 작품 20권은 어떤 것들일까요?

목록을 정할까 나도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너무나 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렬했는데, 규정함으로써, 20권 안에 들지 않은… 작품들이 배제되는 게 그랬어요. 순위를 매길 수도 없는 거고. 우열을 가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잖아요. 각자 독자적인 한 세계들이라고, 난 그렇게 생각해요. 스무 권을 추려내면, 추려냄으로써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수많은 작품들이, 그게 더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사실 약간 거부감이 있거든요. 대학생이 읽어야 할 스무 권의 책, 이런 목록이요. 이것만 읽으면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안 읽어도 되는 사람도 안 읽어도 되고, 스무 권이 아니라 백 권을, 수만 권을 읽어도 되는 사람도 있구요. 정해지는 게 조금 그랬어요. 나조차 그럴 필요는 없다, 하구요. 문인들 셋에게 물어봤는데, 스무 권 목록을 셋 다 반대하더라구요.




우.리.는.숨.을.쉰.다. 같은 목록을 지닌 윤과 명서와 미루와 단이, 소설 속 아이들의 소통이 부러웠어요. 제게도 이런 책을 말해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귀 기울여주고 관심 가지고, 진심으로 ‘왜 그래?’ 이러는 사람 있으면, 사람은 자살을 하거나 그러진 않는 것 같아. 절망하지 않는 것 같아. 단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요. 현대 생활이라는 것이 그래요. 다 소통이 되는 것 같다가도, 정말 절실할 때에는 아무 것하고도 닿아있지 않는 느낌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내가 누누이 말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마음이, 서로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가까이 가려고 하는 그 마음. 마음이 주인공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설령 실패해도 말이죠. 명서하고 윤이 서로 안 만나게 되고, 하는 그 과정이 굉장히 길잖아요. 끝까지 같이 있어보려고 하잖아요. 어디냐고 물어봐서, 항상 찾아가고. 어디쯤이라도 가서. 못 찾는 날도 있었고. 끝까지 계속 못 헤어지고,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해요. 메일한통으로  십년씩 근무한 직장 해고도 시키는 시대에 그게 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렇게 했어요. 작별도 사랑도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끝까지. 노력해서... 같이 가보려고 하는 마음. 그런 진심이 어른거리는 사랑 가까이 있는 것들을 썼어요.

 


 



작가 신경숙, 새로운 소통을 경험하다



처음 경험해보신 인터넷 연재였다고 들었습니다. 조회수와 댓글로 어.나.벨을 함께 읽고 반겨주신 분들이 많이 계세요. 알라딘 독자분들에 대한 감상과 인사 부탁 드립니다.

너무 고마웠어요. 그리구… 퇴고에 퇴고를 거듭한 게, 연재했을 때 나하고 계속 같이 해준 사람을 위해서이기도 했어요. 명서랑 윤이 작별을 보류하고 그랬듯이,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에는 연재를 마치고도 끝까지 다 해내고 싶었으니까요. 여기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어요. 이걸 그 분들에게 새로 바쳐요. 되게… 진짜 모니터가 살아있는 것 같았다니까. 사실 나는 워낙 기계치라 컴퓨터를 좋아하지 않아요. 겁이 되게 많아요. 또. 그런데… 연재하면서 그분들이랑 나랑 어떤 때는 정말, 함께 쓰는 것 같았고 같이 있는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가 못 쓴 거예요. 아주 기가 막힌 일들을 많이 뺐어요. 너무 마음 아프게 하는 것 같아가지고. 그래도 책으로 낼 때는 그럴 수가 없었어요. 문학 텍스트로서 작품에는 최선을 다해야 하니까요.

아침에… 아침에 이렇게 너무 강한 내용들을 쓸 수가 없더라구요. 그게 왜 그랬겠어. 그 마음들이 전해져 오니까. 그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써놓고 안 보내기도 하고, 그랬죠. 너무 저기… 강하게 접촉을 하는 것 같더라구. 그땐 진짜 그런 마음이었네요. 그러나, 이미 이제 한 번… 연재로 만났으니까, 책은 문학 텍스트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어요. 나중에 또 꺼내서 읽어볼 수 있는.. 책이 되도록. 특히 나와 함께했던 그분들이.

 





작가 이벤트를 진행하며, 알라딘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질문을 몇 개 소개하고 싶습니다. 소설 속 청춘들은 유독 아픕니다. 명서와 윤이 그렇고, 단이가 그렇고, 미래와 미루가 그렇습니다. 작가님께서도 소설 속 청춘처럼 사랑에 아파해본 적이 있으신지요. 책벌레님께서 물으셨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청춘이 아닐 걸요. 아픈 건 그런 열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무엇이든 가볍게 스쳐가지 못하니까. 정윤이 미루에게 몰입하듯이, 누군가 관계를 맺으면 몰입하고, 그런 게 청춘 아니겠어요. 내 안에서,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괴로워도 그런 거죠. 나도 그러지 않았겠어요? 어떤 부분은 아직도 나도 해결이 안 돼요. 남아있는 것도 많이 있어요. 모든 일들이 모든 아픔들이, 관계에서 발생한 일들이 아직도 다 답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니까 아마. 의문…이라고 할까요.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 만약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그런 가정은 지금도 있죠. 끝까지, 인생이 끝날 때까지, 가끔 가슴속에서 꺼내서 돌이켜보겠죠? 그런 것은 가지고 있는 게 좋죠. 그런 것도 없이 사는 게 더 안타까운 일이죠. 난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소설 안에도 썼던 이야긴데, 상실의 감정이나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사람에겐 감정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그걸 받아들이고 내면화시키고 그러면서… 한 발짝씩 다른 시간 속으로 건너가는 거죠. 바래지면서. 다른 모습으로 비쳐지면서… 간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해결 안 된 게 떠돌고 있죠. 가끔 왜 그런 일이 생겼지, 생각해요. 그게 그때만 생기는 일이 아니더라구요. 나는 사십이 되어서도, 너무 깜짝 놀랄 일이 생기던데. 그런 점들은 강렬하게 불멸의 풍경으로 남죠. 청춘 때 겪은 아픔들은. 인생의 끝까지 따라와요. 그 감정, 상실의 감정… 서로 멀어지는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 이런 마음들이 발생해야, 미루라든지 이런 사람처럼 자기를 다 투사해버리지 않고도 다른 시간으로 넘어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서로 크리스토프 이야기처럼. 업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업히는 사람이기도 하다는 거죠. 나 혼자는 살아갈 수 없고, 함께. 공유. 연결된 채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독자 앨리스님의 질문입니다.  슬픈 사랑이나 마음이 찡하게 잔잔한 이야기들을 주로 쓰시는데 행복한 해피 엔딩의 이야기를 쓰실 계획은 혹시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아. 있었어요. 내 작품 중 <J이야기> 그런 거 읽으면 밝은데. 어나벨도 재미있는(유머러스한) 부분이 있잖아요. (웃음) 이상한 결과물이 되니까, 따로 떨어지는 유머나 그런 걸 할 수는 없었죠. 섞여 들어야 되는 거니까요.

또 나는 살아가는 것이 그렇게 해피엔딩 쪽에 선이 가 닿아있다면 뭘 계속 쓰고 있겠나 싶어요. 해결되지 않고 금지되어 있고,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쓰겠죠. 내가 가끔 얘기하는데, 사람이 아무 희망이 없어도 살아가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에요. 희망 때문만에 사는 것은 아닌, 또 다른 무엇이 있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는 거. 닿지 않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어도, 희망이 단 한 톨도 없어도 숨을 쉬고 살아가야 하는 게 우리잖아요. 그런 현실의 이야기들에 비하면 굉장히 밝은 이야기들이 아닌가요. 소설이 현실을 앞설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인걸요. 그래도 긍정적인 쪽으로 가까이 가려고 하는 이야기들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구요.

진짜로 사람을 변화시켜놓는 것은, 나는 슬픔을 느끼는 그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그 마음이 우리 안에서 죽어있다면요. 연민스러운 어떤 것을 봐도 내 마음이 아주 무감각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있을 때면 그때 내 마음이 끝나는 거죠. ‘어떡하지 저 걸…’ 생각하는, 갖가지의 슬픈 마음들, 그런 마음들…이 존재하는 한 그것들을 변화시킨다고 봐요. 타인의 불행에 공감하기 때문에, 내 마음도 흔들리고 아픈 것이지 않겠어요. 끝까지 흔들리고 아프고 그래야 될 것 같아요. 그게 피하고 싶겠지만. 피하는 것은 정면으로 보는 게 아니죠. 글쎄. 근데 유머라면 모를까, 해피 엔딩을 적나라하게 쓸 수는 없을 것 같네요.

소설의 결말에 대한 얘기를 할게요. 미루하고 단이는, 명서와 정윤에게 있어 어린 시절 영혼의 한 부분을 나눠가진 동지들이잖아요. 같은 곳에서 태어나서, 같은 곳을 보고 성장한.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 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죠. 정윤에게는 단이가, 명서에게는 미루가 자기의 일부분이고, 태생지인 거죠. 그걸… 잃어버린 두 사람이… 어떤 시간을 서로 견뎌내지 않고는…. 정윤이 “나랑 함께 있자.” 했을 때, 명서는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나는 명서의 선택이 옳았다고 봐요. 서로를 괴롭히지. 황폐하게. 너무 아픈 사람들은 서로를 구해내지 못해요. 행간에 숨은, 그런… 뜻이 전해지길 바랐어요. 다른 사람이 오히려 그 사람을 위로할 수 있죠. 서로 떨어져 있는 게, 그런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필요하던데. (웃음)

원래 에필로그는 굉장히 길었어요. 끝내기가 싫은 거예요. 끝내는 날도 잡아놨는데, 끝내게 해달라고 내 쪽에서 말을 해놨는데도 막상, 못 끝냈어요. ‘아 다행이다. 끝이란 글자가 없어서’ 이런 덧글을 자꾸 보게 되니까요. 아마 내가 최고로 긴 에필로그를 쓰게 될 것 같군요. 그런 덧글도 달았을 거예요. 끝내야 하는데 끝내기 싫어서…. 그랬어요. 이번 소설의 결말을 다듬으면서는 미처 끝내기 싫어 길어진 부분을 덜어내기도 했죠.







책, 그리고 신경숙 

 

가벼운 질문입니다. 올해 읽으신 책 중 가장 인상깊었던 책이 있다면.

탈고하는 동안에는 책을 집중적으로 읽지 못해서, 올해 읽은 책이라기보다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서 일 때문에 읽은 한국문학은 미안하지만 뒤로 물려놓고 얘기해보면 <눈으로 하는 작별>이라는 책이 좋았어요. 음 그리고, 오늘 어제 새벽 그제 새벽 읽은 작품이 콜레트의 <여명>이라는 거였어요. 좋았어요. 재미있었어요. 번역도 좋았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어요. 내가 써야 되는데 왜 이 사람이 썼지…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웃음) 작가를 보고 궁금해서, 다른 작품 있나 찾아보기도 했구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고, 사랑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고, 그런 소설이에요. 언어에 대한 표현이, 1800년대에 썼는데도 세련되고, 아름답고,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게 많은, 그런 작품이었어요. 또 작가 자신이 정말… 굉장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더라구요. 사실 뭐 근데 나중에는 자기 어머니에게 돌아가는 이야기기도 해요. 어머니처럼 살게 되는 이야기기도 하고. 읽는 마음이 참…
 
<쥘과의 하루>라는 책도 좋았네, 읽어봐요. 얇은 책인데 별일 아닌 듯 시작되는데 다 읽고 나면 마음이 젖은 솜처럼 되어있어. 독서의 즐거움은 그렇게 요지부동인듯한 내 마음이 흔들릴 때야.  아 그것도 재미나게 읽었다. <멜랑콜리 미학>이요. 영화 글루미 선데이 얘기가 나와요. 인간의 마음속에 발생하는 멜랑콜리아에 대한 내용인데… 너무 글이 좋았어요. 읽기도 쉽고, 동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그 영화 잘 봤고 생각하는 게 많은 영화였는데도, 나늘 스치고 지나간 부분들에 대해 깊이 있음서도 공감 있게 펼쳐놨어요. 음… 많은 사람이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애. 사람을 이해하게 되는, 멜랑콜리아적인 얘기가 있어요. 사실 멜랑코리아라는 말을 흔하게 써서 가볍게 느껴지지만 굉장히 무거운 말이에요. 우리의 우울증과도 깊이 관련이 있고 애도의 시간이 왜 필요한지를 알게 되는 마음이죠. 또 최근에 읽은 책은… 김홍중의 <마음의 사회학>도 잘 봤어요. 이정도가 최근의 내 독서네.


 

 



 

 

 

  

 

마지막으로 여쭙고 싶습니다. 지금 이 땅을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아닐까 합니다. 청춘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말씀해주세요.

어나벨을 읽으면 될 것 같애요. (모두 웃음) 항상 곁에 두고, 작은 빛 같은,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해요. 표지의 이 노오란 밝은 빛이, 옆에 스며드는 느낌이었으면 좋겠어.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있는 듯한 온기가 느껴졌으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쓰긴 썼죠. 음. 몇 번 다시 읽게 되는 소설이 되면 좋겠어요. 작품 속 <우리는 숨을 쉰다>처럼. 함께 숨을 쉬는 책이 되었으면.


추천하고 싶은 책이요…. 일단은 한국문학 전집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누구누구의 책이 아닌 전체를, 열정을 가지고 읽었으면 해요. 제가 읽을 땐 이광수부터 윤흥길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그 이후부터… 펼쳐져 있겠죠. 그걸 읽는 건 중요한 것 같애요. 왜 그러냐면 지금 사람들은 작가가 아니라도 글을 잘 쓸 줄 알아야 되는 시대에요. 소통이 오히려, 글쓰기로 더 일반화된 경우가 많잖아요. 메일을 쓴다든지요. 일단은 인터넷 용어라고 하는 말들이 오래가지 않잖아요. 변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결국은, 우리는 말과 글쓰기로 돌아올 것 같아요. 그러니 노트를 하나 마련하고, 우리 말로 쓰여진 문학전집을… 그냥… 친구처럼 옆에 두고 한 권씩 섭렵하다 보면, 어떤 역사책을 읽는 것보다도.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되고, 시대적인 것들도 경험하게 되고, 모국어를 자기화시켜 풍성해질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다음에, 인문학 쪽으로 넘어가면 좋겠지요. 언어가 내면에 풍성하게 쌓이는 경험은, 한국문학 전집을 통해서 했으면 해요. 우리는 저기 50년대부터 읽었는데 그게 부담이면 7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그러니까 윤흥길서부터 김애란까지 골고루 따라 읽었으면 해요. 그러다 공감대가 형성되는 작가를 만나면 전작주의 독서를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70,80년대와 90년대를 그리고 지금 2000년대를 살아왔고 살아왔는지를 소설보다 잘 보여주는 건 없을 거예요. 그 시대를 경험하고, 더불어 사람들의 마음을 알게 되고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니까...거기에 더불어 노트 하나를 준비해서 자기가 모르는 언어의 뜻을 정리 하고… 아 그러고 보니 소설에도 나오네요. (웃음) 그렇게 읽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또 그래야 돼요. 지금은 그래요. 글쓰기라는 게 누구만 하는 게 아니고, 오히려 예전보다 더 보편적으로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 되었잖아요. 요즘  청춘들이 자기만의 노트를 지녔으면 꼭 그랬으면 해요.

 



계절이 무색하게 쌀쌀한 날씨에도 섬세한 답변을 건네주셔서 더욱 풍성하고 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한국어로 소설을 쓰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로서의 확고한 자아와 그만큼의 책임감, 또 글과 독자에 대한 애정이 동시에 느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신경숙의 글이 한 시점을 살아가는 어떤 사람들에게 큰 의미가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언젠가 글이 담긴 항아리가 가득 채워지면 비로소 문장이 되어 나타날 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해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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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ersu 2010-06-15 0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한동안 '청춘'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다시 '청춘'^^
앞으로도 '청춘'을 생각하면 <어나벨>이 꼭 떠오를거예요.
명서와 윤과 미루랑 보낸 시간, 행복했어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0-06-16 15:57   좋아요 0 | URL
인터뷰 본문에도 등장하는 리더수님 안녕하세요. 이야기를 나누던 저 자신에게 참 좋은 시간이었다보니 정리한 인터뷰도 너무 길어졌어요. 기나긴 본문임에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미망 2010-07-07 1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세하고.....쌤의 말줄임까지 ....신경쓰신 인터뷰기사 잘 읽었습니다.
윤,미루,명서와 함께 했던.....
그리고 새벽이면 늘...'지금쯤 쌤도 컴터앞에 앉아 계시겠지...' 라고 생각하며...
보냈던 연재기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그럼에도 행복했었다고 말 할수 있었네요.
엠디님...감사드려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0-07-07 14:36   좋아요 0 | URL
과찬의 말씀 부끄러워하며 받겠습니다. 기나긴 인터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은 해마다 화제가 되었습니다. 성장소설의 새로운 전형을 제시한 <완득이>가 그랬고, 성장소설도 충분히 기괴할 수 있음을 보여준 <위저드 베이커리>가 그랬습니다. 여기 <싱커>라는, 푸르고 건강하여 놀라운 SF 소설로 제 3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가 있습니다. 두 아이의 어머니라는 설명대로 작가는 서글서글하고 다정한 인상이었습니다. 배미주 작가와의 만남을 소개합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창비 청소년 문학상 <싱커>를 선택하다


창비 청소년문학상의 전작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처음 수상소식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을지 궁금합니다.

전화로 연락을 받았는데, 받은 순간은 큰 상이니까 기뻤어요. 소리지르고. (웃음) (동행한 편집자분은 전화를 담담하게 받으셨다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3회 수상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부담이 되었죠. SF라는 장르 자체가 생소하잖아요. 영화에서도 아직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는 장르고, 문학은 말할 것도 없구요. 책 수정하고 할 때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1,2회의 명성이 있는데 잘못되는 것 아닌가 해서요. 그래도 다 좋게 얘기해주시고 하니까 마음이 가볍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작품이 이 작품으로 창비 청소년문학상을 탄 게 나름대로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글 쓰시는 분들 중 SF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 있는데, 아직 문학상 수상자는 딱히 없으니까요. 상을 받음으로 해서 SF 쓰시는 분들에게 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기존 SF는 팬덤 안에서만 소비되지만, 싱커가 문학상을 받았다는 게, 일반인 독자에게 많이 알리는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작가님의 이력이 독특하다면 독특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2008년 어린이 소설 <웅녀의 시간여행>을 발표하셨지요. 싱커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쓰셨는데, 혹시 어린이 소설과 청소년 소설의 다른 점이 있는지요.

다른 점이 많지요. 독자의 눈높이가 다르니까요. 다루는 이야기의 깊이가 다를 거고. 쓰기도 훨씬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읽는 것과, 청소년 이상이 읽는 건 달라야 설득력이 있잖아요. 아이들의 이야기가 서투르다는 얘기는 아닌데, 초점이 다르다는 느낌이에요. 아이들 이야기는 더 즐겁게, 재미있게 쓰려고 해요. 하지만 청소년 대상 작품은 ‘공상’과학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다가오잖아요. 그래서 자료 공부도 많이 했어요.

글 쓰시는 동안 오랜 시간이 걸리셨나 봐요.

이야기의 무대는 비슷했지만, 다뤄지던 배경이라든지 하는 부분이 달라져서 글을 쓰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발상에서부터 지금까지 2년 정도 걸렸고, 디테일한 설정은 1년 정도 더 다듬었구요.

특별히 청소년 문학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아동문학 하시는 분도 딱 아동문학만, 저학년만 해야지 하는 분은 없으실 것 같아요. 대개는 아동문학 하시는 분들이 청소년 문학을 쓰시는 경우도 많고, 순수문학 혹은 일반문학 하시는 분이 청소년을 쓰시는 경우도 많구요. <싱커>는 본래 단편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런데 장르가 장르다보니, 배경 세계를 그리는 게 공이 많이 들어 단편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렁ㅆ어요. 청소년으로 가겠다는 생각까진 없었는데, 점점 글이 아동문학으로 쓰기엔 어려워졌어요. 처음부터 청소년 대상으로 하진 않았는데, 써보니까 고학년 이상한테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싱커가 처음엔 동화일 수도 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네. 그랬을 수도 있어요. 더 폭넓은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해리포터 시리즈처럼 아동부터 성인까지 보여주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라고 할까요. 

 



싱커Syncher에 싱크Sync하다


독특한 청소년 소설이라 궁금한 점이 많습니다. 우선 주인공 아이들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주인공 미마 등, 도시의 하류층인 아이들은 하나같이 ‘늦둥이’로 설정되어 있어요. 부모가 워낙 고령이다 보니 대부분의 아이들은 시안 내에서 부모와의 유대 없이 살아가고 있기도 하구요. 이런 상황을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안이라는 사회는 과학기술이 아주 발달하고, 인구는 정체된 사회에요. 사회 특성상 직업을 가지고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계층은 한정되어 있겠죠. 소득이 높아야 과학기술을 누릴 수 있는데 대부분은 그럴 수도 없을 테고요. 그렇다 보니 사회 하류층은 일반적인 적령기에는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낳을 수 없는 상황을 거예요. 이런 사회의 특성 반영해봤어요. 결혼은 하기 힘들지만 아이는 갖고 싶은 사람들이 있겠지요. 사실 초고에는 나오는 내용인데(웃음) 구세계를 아는 1세대들이 구세계의 ‘가정’이라는 방식에 향수를 느끼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종의 베이비붐 현상처럼 늦둥이 현상이 생겨나 거죠. 우리가 경험했던 전후 베이비붐 세대처럼 자란 아이들이 미마 세대 아이들이에요. 이 아이들은 모두 미래가 불투명해요. 아이들이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없고. 기성세대는 반기지 않죠. 복지국가를 위해 제공은 하지만,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건 적은 세상이지요. 이 아이들은 꿈을 꿀 수가 없어요. 사회로부터 꿈이 제공되지 않으니까요.

현실에 빗대자면 88만원 세대 같은 요즘 젊은 계층의 이야기로도 읽을 수 있겠습니다. 기성세대처럼 많은 걸 누리고는 싶지만 이미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비집고 들어갈 청년 세대들의 모습을 ‘늦둥이’에서 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안에 충분히 적응했고, 만족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즐기기도 바쁘니까 굳이 아이를 낳고자 하는 욕구가 크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늦둥이’들을 낳은 건 혜택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자기위안일 수도 있을 거예요. 소설 속에도 나오는 말인데, “사랑받고 사랑하는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데.” 시안은 그 욕구가 자연스럽지 않은 사회니까요. 자신의 아이를 낳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싶은 욕구가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버린 거죠. 이 소설이 과학기술 자체를 부정하고 있진 않아요. 문명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구요. 다만 구세계에 대한 향수. 새로 얻은 것이 무조건 좋은 게 아니듯이. 한번쯤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으면 해요. 눈을 잃었다 되찾은 물고기의 상징처럼요. 두고 버리고 온 것들이 꼭 비효율적이고, 나쁘고 버려야 할 유물이고 이런 건 아니니까요.

SF 소설인데도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종 플루(H1N1)’ 등의 소재를 선정하심으로써 현실과의 ‘싱크’를 더 공고히 하신 것 같은데, 이토록 현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소재를 채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처음엔 ‘현실을 풍자해야지’ 하는 강한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점점 그런 의도가 생겨나더라구요. 바이러스의 이름은 초고엔 없었는데, 원고를 고치다 구체적으로 이름을 명시하게 되었어요.




싱커는 독특한 SF 작품입니다. 기존 SF 문법처럼 똑같은 ‘묵시록적 미래’를 소재로 삼았어도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성장해나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싱커 댄스 같은 장면을 볼 때는 고도로 발달된 사회에서 오히려 원시시대의 제의를 수행하고, 원시적인 유대감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어요. 이렇듯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연대에 특히 주목하신 이유가 있으신지요.

글은 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나라는 사람이 어둡고, 비관적이고 미래를 한쪽 측면에서 보고 이런 사람이 아니고, 낙관적이고 밝은 사람이라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 보니 아이들도 중간중간 위기에도 처하지만, 심난하면 주저앉거나 그런 아이들은 아니에요. 과학기술의 발전이 마냥 부정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발전이 현실이고, 그런 현실의 흐름은 막을 수 없는 것이잖아요. 또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세계가 인간과 무관하게 어느 순간 멸망할 수도 있는데, 그 전날까지는 자기의 삶을 지속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꿈도, 희망도, 웃음도 있어야겠지요. 전쟁터에서도 포화가 있고, 농담도 하고. 처해있는 상황에서도 꿈도 꾸고 했으면 좋겠어요.

글을 쓰면서 안네의 일기를 읽었는데, 이 싱커 속 아이들이 미래의 안네들이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했어요. 안네가 참 밝잖아요. 안네의 언니, 아빠, 이웃집 아저씨가 썼다면 그 당시 유태인의 다락방 생활을 전혀 다르게 읽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안네가 썼으니까, 글이 건강하지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 작품 세계가 달라질 텐데, 제겐 미마는 그렇게 밝고 건강한 아이였어요.

말씀 대로 아이들이 일관되게 건강합니다. 사실 탕쯔칭도 악역이지만 악당보다는 악동에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작가들끼리는 너무 착하다라고도 말하곤 해요. (웃음) 악한 인물이 악독해져야 하는데. 이게 내 한계야 이런 말도 하구요. 사실 전 살면서 백 퍼센도 못된 사람도 못 봤어요. 그러니까 쯔칭도 그 나름으로는 못된 것이겠죠.


미마, 부건, 칸, 쿠게오, 탕쯔칭 등, 아이들은 하나같이 국적을 묘하게 초월한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아이들의 이름은 어떻게 붙여주게 되셨나요.

인물의 성격 및 계급에 따라 이름을 붙였어요. 싱커는 백년 안쪽의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어요. 어딘가 다른 모습으로 변할 테지만 언어는 유지가 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시안은 한국땅에서, 동아시아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곳으로 설정했어요. 외국사람이 유입된 다문화도시라, 한국사람도 있고. 중국사람도 있고. 독일이나 미국 사람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아이들의 이름은 이런 상상에서 출발했어요.

혈통을 중시하는 건 고위층일 거예요. 그래서 미마는 어느 혈통인지도 안 나와있고, 성도 없어요. 국적도 따로 드러난 부분이 없구요. 시안이 중국 자본이 많이 들어와 성장한 곳이라 중국계는 지도층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탕쯔칭이 중국계구요. 일본계는 전락했다는 얘기가 소설에도 나오지요. 그래서 쿠게오는 난민촌에 있구요.

짧은 소설 속에서도 캐릭터가 선명한데, 캐릭터를 만드신 계기도 알고 싶습니다.

사실 캐릭터에 대해 지적을 많이 받았어요. 입체적이진 않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구요. (웃음) 미마나 부건 등은 작가의 성격도 들어있는 것 같아요. 지식은 많으나 행동을 하진 못하고, 충격도 많이 받구요. 미마는 무모하고, 일단 뛰어들고 보는 성격이에요. 다이하드의 주인공이 합리적이어선 안되잖아요. 다운이는 마음이 여리고, 쿠게오는 계산적인 면이 있긴 한데 속정도 깊고 그런 아이요.

미마는 많은 분들이 남잔줄 아시더라구요. 남자인줄 알고 읽다가 주인공 여자라는 걸 알고 놀라시구요. 대체로 SF 작가는 성의식이 보수적이지는 않아요. 군대 지휘관이라 당연히 남잔줄 알았는데 여자고, 이런 일도 많지요. 정치적으로도 올바른 글을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이런 부분은 독자들이 보수적인 게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처음에는 캐릭터를 구상하면서 이전 작품(완득이, 위저드 베이커리)들처럼, 로맨스를 넣어볼까 했는데. 작품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미마의 로맨스는 포기했어요.

아, 처음부터 창비 청소년 문학상을 생각하고 원고를 다듬으신 건가요?

네. 다른 데는 안 될 것 같아서. (웃음) 여담이지만 이런 생각도 해요. 창비는 어떡하나, 4회는 뭘 뽑나 싶구요.

(편집자 주: 창비 청소년 문학상 담당 편집자도 <싱커>의 수상 후 위와 같은 걱정을 하셨다고 합니다. 다음엔 오히려 리얼리즘에 천착한, 오래된 느낌의, 소설다운 소설이 나오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작가와 편집자와 MD가 입을 모아 얘기한 대로 이야기로 승부하는 아동문학, 청소년 문학이 많이 나왔으면 생각합니다)



소설 속에서 ‘일본인 거리’에 대한 설명이 무척 구체적이었습니다. 광장의 모습 등을 떠올리면 소설 속 시안 마을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작가님이 상상한 시안에 대해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설정집까지는 아닌데, 머릿속에는 어느 정도의 그림이 있었어요. 작품에 대해 조언을 해주는 친구 둘 중 한 명이 일러스트레이터거든요. 그래서 더욱 신경을 썼고, 어느 정도는 영화 보는 것처럼 그려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움베르트 에코의 <푸코의 진자>만 해도 상상 속의 장소지만 동선 하나하나를 머릿속에 다 떠올릴 수 있도록 자료 조사하고 상상하고 하잖아요. 그 정도는 안 되어도 영상적인 느낌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시안이라는 세계를 그림으로 그리는 건 가능할까요?

초고는 그림으로 그렸었었어요. 주변에 그림 그리는 친구에게 부탁해서 그려달라고 할까, 하는 생각도 잠깐 했었구요. 그치만 한편으로는 이야기가 많이 된 상태가 아니라면, 화가는 화가 나름으로 그릴 텐데 제 머릿속에 있는 그림과 다르면 의외로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배경 설명이나, 다른 이야기가 부록으로 더 펼쳐져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지금은 들어요.

영화 <아바타> 얘기를 안 할 수 없는데요, 10월, 싱커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이후 겨울에 개봉된 아바타를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을 받으셨을지 궁금합니다. 일정부분 작가님의 상상이 현실화 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싱커>를 영화로 만든다면 어떨 것 같으신지요?

싱커를 영화로 만든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웃음) 후반부는 영상적으로 풀면 더 디테일하게 재미있어질 수 있는 부분도 많은 것 같구요. <아바타>와 <싱커>는 접속이라는 공통된 소재를 각기 영상적으로, 소설적으로 풀었다는 데서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표현도구가 다르다 보니 풀어가는 방법 자체도 달라진 것 같구요. 


 

 


싱커, 미래소설을 말하다 
 


작가의 말에 ‘SF 소설을 읽는 것은, 상상의 현실을 통해 지금 우리가 속한 현실이 얼마나 특별한지, 연약한지, 그리고 소중한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 어른들이 현실의 어떤 면을 깨달았으면 하는지 말씀해주세요.

쓰인 그대로 느껴주셨으면 해요. 싱커는 생태주의적인 면이 강한 소설이에요. 인간은 수명이 짧은데도 자신이 영원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낭비하고, 함부로 다루는 경향이 있지요. 백년 전만 해도 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던 세상인데 이젠 동물이 갈 곳도 없어요. 가까운 미래에 사람이 대문 밖을 나가면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지요.

지표면이 아닌 지하에 사는 사람들(시안의 사람들)을 설정한 건 그런 이유에서였어요. 지금우리도 사실 공기층 보호대에서 살고 있고, 보호받고 있는 거잖아요. 우리가 누리고 있는 기후, 자연,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 애써서 힘들게 얻고 벌어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태어나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얼마나 귀하고 특별한 것인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싸우고, 파괴하고, 오로지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시간 낭비하고 대신에 누리고 행복해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해요.

SF 작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나 봅니다. 지금 해주신 말씀은 무척 낭만적이세요. 

천문학자들도 낭만적인 경우가 많아요. 우주적인 차원에서 낭만적인 분이 천문학을 쓰고 또 SF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SF라는 생소한 장르 형식을 빌어 청소년 문학에 접근하셨는데요, 특별히 좋아하는 SF 작가가 있다면 어떤 분이신지요.

SF의 삼대 대부중 한 명인 아시모프를 좋아해요. 우주적 스케일과 따뜻한 유머감각이 공존하는 작가에요. SF는 메카닉한 묘사 때문에 차갑게 느껴지곤 하는데, 아시모프는 귀엽고 재미있고 소탈한 편이에요. 그런 성품이 작품에도 나타나구요. 필립 K. 딕도 좋아해요. 유빅은 매트릭스에 발상을 제공하기도 했는데,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저하고 맥이 닿아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면이요. 필립 K. 딕의 현실은 훨씬 다층적이에요. 로저 젤라즈니는 작품의 문학성과 문장력이 대단해요. 스토리적인 감각이라고 할까요. 인문학적인 SF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아요. 처음 SF 입문할 때는 르 귄과 테드 창을 읽었는데, 이 작가들은 주류 문학만 보시는 분들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해요. 특히 테드 창은 전문 작가가 아닌데도, 몇 년에 걸쳐 쓴 글을 모아 낸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같은 책을 보면 무척 치밀하고 그래요. 대중하고 소통하는, 이야기가 강한 작가라고 생각해요.

절판되는 책이 많아 복사본도 사놓고 해서, 아직 읽지 못한 책도 많아요. SF의 아주 오래된 독자는 아닌데도, 워낙 빨리 절판되고. 초판 찍고 재판이 안 나오니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주변에 SF 소설을 쓰고 있다, 쓰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런 생각을 해봐도 아쉽구요. 

 



작가 배미주 책을 말하다 
 


인터넷 서점은 자주 방문하시나요? 실은 알라딘 서재에서 <싱커>가 선호도 1위를 한 바가 있습니다. 알라딘 서재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알라딘 주로 방문해요. (웃음) 제 책 서평은 아직 떨려서 못 보고 있구요. 주로 문학이나 청소년책을 읽곤 해요.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글 쓰고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최근에는 글을 참 많이 못 읽었어요. 읽어도 SF나 이론서나, 문학 이론서를 정도예요. 리뷰 남겨주신 고수분들 글은 읽어보기도 해요. 서재 분들이 보통이 아니라는 얘기를 워낙 많이 들었어요 (웃음)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SF라든지, 장르 책들 좋은 책이 많으니까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젊은 작가 중에도 배명훈씨 같은, 훨씬 오래 써오신 분들도 많으니까요. 듀나 같은 분들은 독특하고 독보적이잖아요. 한국적인, 한국만의 특징이 담긴 에스에프 고유의 맛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민족성이나 지역성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다는 생각도 하구요.



작가님을 만나면 책을 추천받고 싶습니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 가장 좋아하는 책, 청소년 시절 읽었던 가장 좋아한 책과, ‘미마’와 같은 닫힌 현실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책을 들려주세요.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아까 말씀드린 <유빅>이구요, 마해송 문학상 수상작인 동화책 <이모의 꿈꾸는 집>을 읽었어요. 저는 청소년 때도 쥘 베른 같은 작가를 좋아했어요. 여성적인 취향의 작품은 안 읽는 편이였어요. 그리고 미마와 같은. 닫힌 현실을 살고 있는 청소년들은 SF를 읽고 상상을 해봤으면 해요. 눈앞의 현실도 중요하지만 조금 더 지구적이고 우주적인 차원 생각을 하며 스트레스를 이겨낼 힘들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장르 소설, 성인 타겟 소설, 청소년 소설, 어린이 소설 등 많은 길이 열려있습니다. 앞으로의 작품활동에 대해 들려주세요. 쓰고 계신 작품이 있으시다면 살짝 들려주셔도 좋습니다.

청소년 문학이나 아동 문학을 계속 해나갈 것 같아요. 사실 어른들에게는 할 말이 없어요.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글을 계속 쓸 생각입니다. 아직 쓰고 있는 글은 아니고, 구상중인데요, 시대적 배경이 있는 장르물을 써보고 싶어요. 마법적인 세계의 탐정소설이 되겠지요. 사실적이면서 용도 나오고, 법사도 나오고 하는 소설이요. 이계와 현실계가 공존하는 곳에서 현실의 문제를 다뤄보고 싶어요. 물론 여전히 씩씩한 캐릭터는 유지가 되겠지요. (웃음)







건강하고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가진 SF 청소년 소설 작가. 배미주 작가에 대한 인상은 이 설명처럼 다층적이었습니다. 청소년 소설 이야기와 장르 소설 이야기를 동시에 나눌 수 있는 뜻 깊고 독특한 자리였습니다. 배미주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보며,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신 작가님과, 읽어주신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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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2010-06-07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바타가 연상되는 소설이라...기대되는군요. 영화로도 만들어지려나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0-06-11 00:22   좋아요 0 | URL
영화로 만들어져도 손색없을 거라는 생각은 했습니다. 첨단을 달리면서 전통적인 건강함이 포함된 독특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오자 2010-06-07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특별히 청소년 문학을 쓰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배경 세계를 그리는 게 공이 많이 들어 단편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렁ㅆ어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0-06-11 00:23   좋아요 0 | URL
앞으로의 활동 계획을 여쭤보니 앞으로도 청소년/아동 문학에서 뵐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생은 예측불허. 그저 좋은 글을 기다릴 뿐입니다 ^^;;
 

올리브 키터리지 中 
밀물 

 


 

   “왜 그런 옛말 있잖니.” 키터리지 선생이 말했다. “정신과 의사들은 정신병자요, 심장 전문의들은 심장이 굳었고…….”
케빈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아과 의사들은요?”
“폭군이지.” 키터리지 선생이 인정했다. 그녀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다.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가 나지막이 대꾸했다.
잠시 후 키터리지 선생이 말했다. “그게, 네 어머니는……어쩔 수 없었는지도 몰라.”
  

그는 놀랐다. 주먹 마디를 빨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그는 두 손을 무릎 위에서 이리저리 문지르다 청바지에 구멍이 난 걸 발견했다. “제 생각에 어머니는 양극성 장애였던 거 같아요. 그가 입을 열었다. ”한 번도 진단되지는 않았지만.“ 
“그렇구나.” 키터리지 선생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요즘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 아버지는 양극성 장애는 아니었어. 우울증이었지. 말이 없었고. 어쩌면 아버지도 요즘이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68-69)   

 

오랜 시간이 흐르고, 의사가 된 제자와 나이든 선생님이 만났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그들이 함께했던 시간에는 그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그런 공통점. 제자는 잊어야 할 것들을 밀어내기 위해 다시 고향을 방문한 것이었다. 그리고 끝을 보기 위해. 그들의 대화는 고즈넉하고 쓸쓸하다.



“나는 네 어머니를 좋아했어.”
그가 눈을 떴다. 패티 하우가 다시 카페 밖으로 나왔다. 그녀가 마리나 앞 오솔길로 걸어가자 어쩐지 긴장감이 느껴졌다. 케빈의 기억이 맞다면 그 앞은 가파른 암벽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다. 하지만 그거야 그녀도 잘 알겠지.
“알아요.” 케빈이 키터리지 선생의 크고 지적인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도 선생님을 좋아하셨어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똑똑했어. 똑똑한 분이었지.”
그는 이런 대화가 얼마나 지속될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가 어머니를 알았다는 점은 그에게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뉴욕에서는 아무도 몰랐다.
“네가 아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버지도 그랬어.”
“뭐가요?” 그가 인상을 쓰며 검지의 주먹 마디를 잠시 입에 갖다 댔다.
“자살.” (70~71p)
 

 


그들조차도 알지 못했던 그들의 '공통점'을 공유한 사람 몇을 알고 있다. 소설을 읽으며 지난 시간을 떠올렸다.

신입생 환영회는 무척 즐거웠다.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고, 새롭게 시작될 대학생활에 대한 꿈도 커졌다. 확실히 무척 즐거웠었다고 기억한다. 스스로의 치기에 놀랄 만큼 술을 아주 많이 먹었고, 선배의 도움으로 겨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뻗어서 드러누웠다. 새벽녘이었을까. 엄마가 그런 나를 황급히 깨웠다. 부고(訃告)였다. 자기 전 술이라도 좀 깨보려 주워 먹었던 시큼한 귤. 그 불쾌함이 알코올과 섞여 입속에서 지독한 맛을 냈다.
  


총과 아버지의 자살로부터 우리를 구해주오……자비!……방아쇠를 당기지 마오, 그리하면 나는 평생 당신의 분노로 고통 받으리니…… (83p)

 

갓 중학생이 된 아들과 초등학생 딸이 있었다. 내 입학식이었던 그 날은, 잔인하게도 그 아이의 중학교 입학식 날이기도 했다. 새로운 꿈과 앞으로 펼쳐질 미래에 대한 기대만으로도 충분해야 했던 날이었다. 입학과 동시에 아버지를 기억해야 한다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이리라 생각했다.

죽음 이전의 삶이 어찌나 평온하고 보잘 것 없는지, 아이 아버지는 정성을 다해 교복을 마련해 주었다. 아이는 3년 후에 입어도 충분할 커다란 교복을 입고 쪼그려 누워 있었다. 저 교복을 입었던 아침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을 일이 벌어져 있었다. 그 애의 아버지는 왜 그 삼년을 함께 살아줄 수 없었을까. 교복이 조금이라도 더 몸에 맞게 될 때까지라도. 아이는 자는 내내 헛소리를 했다. 아버지가 보인다는 아이의 말에 그 애의 할머니는 가슴을 쳤고,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일렁이는 거대한 물결 속, 움직이지 않는 뭔가에 발이 닿았다. 고개를 돌리자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패티가 보였다. 그녀는 눈을 뜨고 있었고, 치마가 허리께에서 소용돌이쳤다. 그녀의 손가락이 그를 향해 뻗었다가 그를 놓치곤 다시 뻗었을 때 케빈이 그녀를 붙잡았다. 물결이 잠시 잠잠해지더니 파도가 다시 그들을 뒤덮었다. 케빈은 그녀를 세게 끌어당겼고 패티는 그 가느다란 팔로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강하게 그를 붙들었다.(85) 


널 놓지 않을게. 파도가 칠 때마다 햇살이 반짝이는 짠 바닷물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케빈은 그녀의 눈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그 옛날 여왕처럼 줄넘기를 하던 소녀, 지금은 바다에 빠진 젖은 머리의 여인이 두 사람의 구조만을 바라며 바다의 힘만큼 격렬하게 그를 붙잡고 있는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다고. 오, 미친,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이여! 보라. 그녀가 얼마나 살고 싶어 하는지, 그녀가 얼마나 붙잡고 싶어하는지. (86) 


세상은 언제나 슬프게 돌아간다.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언제나 있다.(78)   

 

그래서 이 소설의 결말이 좋았다. 열세 편의 연작 단편 중에서도 특히 이 단편이 좋았다. 세상엔 여전히 슬픈 일이 끊이지 않으니까. 그리고 새 시대의 여명은 그럼에도 존재하리라 믿고 싶으니까.  

그 아이가 이 소설을 봐줬으면 좋겠다. 이 우스운, 알 수 없는 세상에도 여전히 새 시대의 여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너의 슬픔을 나 역시 기억하고 있노라고 그 애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알고 있다고. ‘당신의 분노’로 고통 받고 있을 다른 누군가의 얼굴도 떠올린다. 그들에게 이 소설이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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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격조했습니다. 앞으론 서재 업데이트에 힘쓰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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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의 어느 날, 헤이리의 예쁜 카페에서 전경린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풀밭 위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오시던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부터 글과 어울리는 분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루하지 않은 질문을 드리려 노력했습니다. 촬영 및 인터뷰는 문학동네 담당자 분들이 도와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풀밭 바깥에서 풀밭을 보며 
 
   오랜만에 만난 사랑 얘기가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예전 글의 독함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다는 느낌입니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라는 변주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결말부의 ‘풀밭’에서의 평화로운 포용도 기억에 남구요. 이렇듯 작품의 분위기가 달라진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요?

   무엇보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점 때문인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니까 오히려 그런 거에(열정의 모순) 더 편안해져요. 다 되는 세상이고, 무엇이든 일어날 수 있는 세상이니까요. 세상은 어차피 불가피하고 불가해한 곳이고, 불가사의로 가득한 곳이니 그런 것마저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어요. 오히려 그 불가해함에 기대서 더 편안해지기도 하고, 사랑의 불가능함에 대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네요. 
 



   여주인공 누경의 비중이 절대적입니다. 누경이라는 캐릭터에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그렇게 됐어요. 누경이라는 여성스럽고 순수한 여자가 있어요. 상처를 받은 사람에 대한 캐릭터를 먼저 만들고, 그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라디오 피디인 친구에게서 들은 얘기가 있어요. 누경과 같은 일을 당한 사람들을 ‘생존자’라고 하는 걸 보고 나로서는 너무 마음이 아파서…. 생존을 말할 정도로 절박한 일이니까요.



   (쉽게 써보고자 문장의 날카로움을 자제하셨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지만) 여전히 가슴을 치는 문장이 페이지마다 가득합니다. ‘전경린’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 쓰고 있다는 블로거가 있을 정도로 선생님의 문장은 독특한데요, 선생님 고유의 문장을 만드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창작을 꿈꾸는 알라디너 여러분께 소개 부탁 드립니다.

   특별한 요령이나 방법은 없어요. 나 자신의 삶을 그대로 감당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정면 샅샅이, 고스란히 자신의 진실을 감당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은 어떻게 되겠어요. 아픔이든 사랑이든 완전히, 순수하게 예민한 상태로 바라보는 것을 생각해요.   


   비유도 비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고유한 사물을 자기만의 해석으로 소설 흐름에 필요하게 사용해야겠지요. 꼭 필요한 비유를, 의미가 서로 맞게, 적재적소에 연결하는 게 중요해요. 누경과 ‘팔 없는 비너스’의 이미지가 그래요. 풀밭 위에서 ‘그 일’을 겪을 때 누경은 팔이 없는 것처럼 무기력했었지요. 그런 때 비로소 비유가 성공하지요. 또 누경을 상처 입힌 상대가 지니고 있던 게 ‘유리 조각’ 이었는데 이 유리는 깨진 것을 새로 녹여 다시 온전한 것을 만들 수 있어요. 누경을 상처 입힌 유리에서 다시 새롭고 온전한 것이 시작되는 거지요.

  단지 문체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사물을 <간파>하고, 바라보고, <사유>하는 게 중요하겠지요. 문체에 있어 제겐 기질적인 부분이 있어요. 상처 받는 면이 있고, 사물을 보는 시각이 있구요. 문체가 작가마다 다르고 인간마다 다른 이유는 결국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풀밭 위에서 식사를


50대 미남 교수 ‘서강주’는 그야말로 팬터지의 총집합이었습니다. 98년작 <롤리타>에서 험버트 역을 맡은 배우가 제레미 아이언스였다는 점이 문득 떠올라 그가 ‘제레미 아이언스’를 닮았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습니다. (르 클레지오는 안 닮았어요? 작가님 웃음.) 이토록 매력적인 남자주인공을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인간에게는 운명의 상대가 있다고 생각해요. 누경은 본능적으로 운명의 상대로서 서강주를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서강주를 사랑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다 보니 서강주와의 나이차도 많이 나게 되었어요. 서강주는 사랑보다는 삶을 지키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이에요. 그 누구보다 자기 삶을 좋아하는 사람이구요. 세속의 가치를 경멸하지만, 그 경멸을 다 참아내고 살 것이니까요. 그런 남자가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서강주가 삶을 가치 있게 여겨서 소설이 더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기존 주인공들과 달리 서강주는 삶을 인정하고 있네요.

   
  서강주의 한 마디 :
“나는 삶에 지면서 살아가는 가여운 사내일 뿐이지만, 너를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너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알아주기 바란다. 무슨 일로 나 자신을 생각할 때면, 언제나 너를 함께 생각했다. 꼭 잘 지내야 한다.(69p)”
 
   



누경은 아버지와 서강주를 여러 번 겹쳐서 봅니다. 아버지와 서강주가 닮았다는 표현도 나오구요. 누경의 꿈에 아버지가 나와 아버지가 누경과 결합을 시도했던 날, 서강주와 누경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서강주와 아버지, 이 절대적인 두 남자는 누경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아버지는 전형적인 가부장입니다. 풀밭에서 벌어진 ‘그 일’에 대해서도 아버지는 누경을 받아주지 않아요. 오히려 입을 다물라고 하지요. 누경은 오랫동안 스스로를 억누르고 살아요. 그러다 퇴근길 방송에서 접한 성폭행 기사를 듣고 그만 감정이 넘치게 된 거죠.

누경의 꿈에서 아버지가 누경과 결합을 시도했던 것은 아버지 자체가 아닌, 누경 자신의 원형이라고 생각했어요. 융 심리학에서도 나오지요. 풀밭에서 벌어진 일 이후 잃어버린 누경의 원형이 누경과의 결합을 시도한 거라고 보았어요. 피해자인 누경이 너무 오랫동안 덮어두었던 자기 자신이 그 지점에서 찾아오게 된 거고, 그렇게 누경은 서강주와 대면하지요.

소설MD는 이 지점에서 윤동주의 시구를 떠올렸습니다.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누경이 안쓰러워졌습니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에서 사랑의 순간은 낯선 남자가 건넨 한 마디 “괜찮아요?”에서 시작됩니다. <풀밭 위의 식사>에선 사랑의 순간이 구두 굽이 부러지는 순간 급작스럽게 찾아오는데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이토록 급작스럽고 우연적인 사고 같은 것인지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내 생에..>와 <풀밭 위의 식사>에서의 운명은 느낌이 많이 다른데, 그래도 (웃음) 그 날도 구두굽이 부러지지 않았다면 둘 사이엔 아무 일도 없었을 거예요. 사랑은 비논리적인 거라고 생각해요. 

 

 

 


풀밭을 만든 작가 전경린은


이성복 선생님은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책을 쓰셨습니다. 그러나 예술가의 고통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독한 글을 쓰시는 선생님은 피로를 느끼시진 않는지요. 독자의 입장에선 가끔 죄송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피로해요. 피로한데, <어울리는 피로>라고 생각해요. 글을 쓰기 위해 할 수 있는 데까지 내려가야 해요. 그러지 않고는 글이 안 나오니까…


그래도 이번 글은 전작보다는 덜 피로하셨지요? 이미 과거의 일이기 때문일까요? 금지된 사랑인데도 안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일기라는 형식은 꼭 한번 써보고 싶었어요. 일기는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일기 속에 기록된 그 순간들은 현재니까요. 사람들은 지나간 일에 관대한 것 같어. 서강주와 누경은 시작되지 말았어야 할 상황이니까, 읽는 독자들도 처음부터 이들의 끝을 알고 있으니까요.

이 글을 쓰는 상황도 덜 피로했어요. 토지문학관에서 다른 작가들하고 같이 쓰면서 굉장히 뜻 깊기도 했구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초록 유리(누경이 서강주에게서 선물받은)를 실제로 가지고 있었어요. 늘 보는 곳에 놓으려고 생각하다 결국 책장 위에 놓게 되었는데 어느 날 일어나서 어떻게 하다 이게 깨진 거야. 그런데 깨지는 순간 디테일이 팍, 떠올랐어요. 글을 쓸 때까지는 후반부의 디테일이 없었거든요. 그런 순간 희열을 느껴요. 어떤 글을 쓸 만큼의 욕망이 그리 쉽지가 않아요. 

 


“가끔은 내가 속물 같아” 라는 누경의 말이나 천박한 것과 비열한 것에 대한 서강주의 혐오를 보면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아름다움의 세계가 확실히 존재할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게 있다면, 속물적이고, 천박하고, 비열한… 아름답지 않은 것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름답지 않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이 질문은 어려워요. 그런 거에 대해서 예전에는 전투적으로 대치하고 확실하게 미워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그게 쉽지 않아요. 서강주는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속물을 알고, 혐오하지만 그걸 견디는 거예요. 누경에게 치마를 못 사다 준 것도 그 모든 상황을 견디는 거죠. 긍정하기에 견뎌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극도로 혐오하는 것을 말하기가 힘들어서, 답하기 난처한 질문이에요. 
 


마네, 밀로 섬의 비너스, 에릭사티, 그라파, 조지아 오키프, 이졸데와 트리스탄 등 소설에 등장하는 문화적인 코드가 많습니다.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는 P시(파주시)도 문화적인 장소이지요. 문화적인 것에 대한 애호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영화, 음악, 공연, 그림 등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19세기 인상파를 좋아해요. 우리 세대는 바그너 같은 음악도 좋아하구요. 현대의 시작이란 느낌이라. 모던 인상파도 좋아하구요. 그래서 작품엔 에릭사티도 나오고… 그림은 좀 더 모던해진 인상파의 그림을 좋아해요. 에드워드 호퍼나.... 예전에는 영화도 그림도 찾아다니면서 봤는데 요즘은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는 느낌이에요.

지방에서 자랐는데도 화집을 접할 기회가 있었어요. 세잔이었나 르누아르였나. 인물화를 보면서 마음이 가라앉고 평온해지는 걸 느꼈어요. 모네 그림 ‘생 라자르 역’ 이라든지 소녀들의 그림을 좋아해요. 

 


소설 제목 <풀밭 위의 식사>역시 마네의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어떠셨나요.

여자의 누드라는 게, 전체적으론 너무도 커다란 사건인데도 일상적이고 태연한 것에 마음이 끌렸어요. 크고 대단한 사건들인데 모든 사건들이 아름답게 나타나지요. <모든 걸 일상화시킨다>고 생각했어요. 
 



삼년 만에 발표한 장편입니다. 소설을 쓰는 시간보다 소설을 쓰지 않는 시간이 더 많지 않으셨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어떤 일을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작가 역시 지극히 세속적인 현실을 살아요. (영수증 내고 그런 것도요?) 당연히 하지요. 글 쓰다 밀리기도 하고. 문제는 글을 쓰는 언어로 인생을 살다 보니 글을 안 쓸 때는 밀린다는 느낌이 들어요. 뭔가를 하고 나서 쓸 게 없다고 느낄 때도 있구요. 글을 쓰고 있을 때 희열을 느끼지요.

거의 글 바깥으로 해방되지는 못하시는 건가요?

해방되기는 해요. 모든 생활에서 모든 것이 움직이고, 맹렬하게 활동할 수도 있어요. 그러나 확실히 뭔가를 쓰고 있을 때 안전하다고 느껴요.

이 쯤에서 다시 떠오르는 선생님의 명언 “어울리는 피로!” 

 



 작가가 되기 전, 소녀시절 가장 즐겨 읽었던 책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가장 최근에 읽으신 책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박씨전을 읽었어요. 나한텐 여자가 변신하는 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말 그대로 소녀시절이었으니까요. 독문학과를 나왔으니 카프카도 많이 읽었지요. 책으로 독해도 하고. 니체며 릴케도 많이 읽었어요. 까뮈의 이방인이라든지. 정말 소녀시절엔 폭풍의 언덕도 좋아했어요.

그리고 가장 최근은.. 이걸 보고 웃었는데요, 출판사에서 세 권을 주셨어요. 윤대녕작가 책을 보았구요 (MD 주: ‘대설주의보’로 추정합니다.) 프랑스 작가 장 에슈노즈의 일년이라는 책을 봤어요.

아, 낮에 책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반납일이 늦어 책을 빌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서서 <말테의 수기>를 읽었어요. 그 책을 중간중간 보고 제대로 보질 못했었어요. 중간중간 보는데 릴케의 맑은 의식의 흐름이 진짜…. 

 


세 작가를 꼽아 추천해주신다면 어떤 작가를 꼽으시겠습니까?

하루키, 밀란쿤데라, 마르케스를 꼽을 수 있겠죠. 헝가리 작가 산도르 마라이의 열정도 좋아요. 나이가 들수록 작가가 글 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책을 잘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그게 좋아요. 얼마 전 명절엔 시골에 가면서 차가 막히니까, 핸들 위에 책을 올려두고 천천히 운전하면서 읽었어요. 어차피 못 움직이니까요. 그게 너무 아슬아슬하고 맛있는 독서였어요.

소설도 그렇고, 원래 아슬아슬한 걸 즐기시나요?

나의 취약함 같아요. 아슬아슬한.. 그게 굉장히 위험한 건데 또 반대로 아슬아슬하게 빠져드는. 

 


<풀밭 위의 식사>는 토지문학관에서 작가분들과 함께 쓰셨다는 얘기도 해주셨습니다. 교류하고 계신 작가가 있으신지, 혹은 눈 여겨 보고 있는 작가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국내 작가도 좋고, 해외 작가도 좋습니다.

토지문학관에서는 은희경씨, 김인숙씨와 함께 있었어요. 윤대녕씨와도 만나기도 하구요. 글도 쓰고 산책도 하고…. 재미있었어요. 나와서 특별히 자주 만나게 되는 건 아닌데, 그래도 좋았어요. 집이 일산이라 일산에서 김연수씨를 가끔 봐요. 워낙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이라. (웃음) 그래도 자주 보진 못해요. 작가들은 자기만의 체험을 해야 해요. 서로 지켜야 할 영역이 있구요. <자기 세계를 지킨다>고 할까요. 

 


서점 광고 카피가 기다렸던 3년만의 장편이었어요. 너무 이르지만, 차기작은 언제쯤 만날 수 있을까요? 또 3년을 기다려야 할까요? 어떤 내용을 구상하고 계신지 살짝 여쭈어봐도 될지요.

그 카피 보고 감동받았어요. 날 기다리나? 생각했어요. (웃음) 쓸 소재가 있긴 있는데, 아직 확실하게 말하긴 그래요. 미리 말하는 건 의미가 있지 않은 것 같구요. 인물에 대해 의논을 해야하는 단계구요. 차기작은 3년보다는 빨리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인터뷰를 진행하며, <풀밭 위의 식사>는 '전경린'다움의 한 가운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전 작품과 <풀밭 위의 식사>가 달랐듯, 다음 작품도 놀라운 작품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가슴을 치는 문장이 가득한 소설처럼, 전경린 작가와의 대화는 예리한 문장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선생님의 말마따나 <삶의 표면들과 관계를 지으면서> 선생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려 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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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oomi 2010-04-2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보구 가요. 은희경 작가님도 추천하신 책인데..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 좋은 글 많이 올려주세요-

한국소설MD김효선 2010-06-11 00:21   좋아요 0 | URL
엇.. 감사합니다. 답변이 늦다 못해 쉴 지경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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