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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더라면>으로 장 도르메송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프랑스 아마존 1위를 기록하기도 한 티에리 코엔은 아직 우리 나라 독자들에겐 낯선 작가입니다. 그렇지만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난 후, 오직 복수만을 위한 인생을 사는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감동을 전할 만합니다.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에 관한 티에리 코엔의 인터뷰를 싣습니다. 인터뷰는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1. 첫 소설《살았더라면》에서와 마찬가지로《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에서도 ‘가족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당신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나한테 가족은 전부입니다.  첫 번째 소설에서도 «탈무드»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해서 그런 말을 했었죠.  «남자는 자신을 구축해가는 세 번의 기회를 갖는데, 첫 번째 기회는 부모와 더불어, 두 번째는 아내와 더불어, 그리고 세 번째는 자식들과 더불어 갖는다.»  나는 부모와 더불어 나 자신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매일 아내와 자식들과 더불어 계속해서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2. 당신의 소설에서는 ‘만약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라는 물음을 깔아놓고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훗날 사무치게 후회한 선택을 한 적이 있습니까?

잘못된 선택이라면, 사실 우리는 매일 잘못된 선택을 하고 있지 않나요?  하지만 그건 사소한 실수들이라고 해야겠죠.  그러니 우리는 그걸 깨닫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바로 잡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다 보면 때때로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만 하는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땐 의문에 사로잡히게 마련이죠.  그런 순간엔 자신의 가치관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만이 길을 잃고 방황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일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손쉬운 타협의 길로 접어든다면, 아니 아예 자신의 가치관을 외면하기 시작한다면, 더 이상 자신의 행동이 낳을 결과를 책임질 수 없는 위험에 처하게 되겠지요.      
나의 두 소설에서도 주인공은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기로에 서게 되며, 결국 평소 자신들이 신봉하던 가치관에 배치되는 길을 택합니다.  그 결과 그들이 어떻게 손을 써 볼 도리가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의 의지대로 통제하기 위해 모든 것을 걸지 않으면, 인생이 우리를 우리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갈 기회를 노리게 됩니다.  배를 타고 항해를 할 때도 마찬가지죠.  당신은 방향키를 잡고 모든 요인들을 제어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배가 아무 곳으로나 떠내려가게 한다거나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 않은 곳으로 방향을 잡는다고 합시다, 그러면 바다의 변덕에 놀아나게 될 위험부담이 아주 커질 수밖에요 



3. 《살았더라면》에서는 자살기도를 하는 사람,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에서는 테러로 잃은 아들에 대한 복수를 꿈꾸는 아버지가 주인공입니다. 당신의 소설은 그들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당신은 소설이 이렇듯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삶의 의미를 다루는 주제들에 마음이 끌립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란 우리가 범하는 실수들 속에서 찾아지는 경우가 많죠. 
 


4.《살았더라면》이나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의 인물들처럼 앞으로도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사건을 겪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활용하실 생각이 있습니까?     

    
모든 삶은 저마다 행복과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나는 내 등장인물들에게 역경을 통해서 완성 되어갈 때 느껴지는 강력한 밀도를 부여하고 싶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긴 하지만 언젠가 좀 더 가벼운 소설, 유머러스 한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과연 그런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나 스스로 느긋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도 그럴 필요가 있겠죠.  다음 번 소설은 아마 사랑 이야기가 될 겁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의 진실함에 대해서 등장인물들에게 묻는 소설이 되겠죠.  
 



5. 이제 두 편일 뿐이지만 당신의 소설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작가로서 어떻게 쓰는 것이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시키고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지 고려하시고 집필하십니까?    

아뇨, 그런 계산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 내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몸을 싣습니다.  그러다 보면 등장인물들이 나를 놀라게 하고 감동시키기도 합니다.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게 좋아요.  작가이면서 동시에 독자로서 나는 내 이야기 속에서 감동을 찾습니다.
 



6.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은 전작 《살았더라면》에서 사용했던 초현실적 요소와 종교적 요소들을 배제하셨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나는 이야기를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하고 싶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의 평범한 삶이 어느 날 휘청거리게 됩니다.  다니엘, 베티, 피에르에게 애착을 느끼게 되는 건 그들이 바로 우리들 각자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거대한 이야기가 사소한 일상의 이야기들과 맞부딪치고, 평범하게 살던 이들이 그들의 힘만으로는 빠져 나오기 어려운 거대한 물결 속에 휩쓸리게 되죠.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에서 종교적인 면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하더라도, 초현실주의적인 면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다니엘이 죽은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등장하니까요.  안 그런가요?  죽은 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흔히 일어나는 일이라면 또 모르겠지만요!    
     


7. 당신의 소설을 보면 아내와 아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묻어나던데 실제로도 자상한 남편, 자애로운 아빠 역할에 충실하신지요?     

물론입니다!  내 아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하고 가장 예쁜 여자이고, 나는 여전히 아내를 처음 만난 날처럼 사랑합니다(결혼 한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내는 나한테 나의 계획을 실천에 옮길 힘을 주는 사람입니다.  아이들로 말하자면, 내가 가진 진정한 재산이라고 할 수 있죠.  나는 아이들하고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의 책 머리에 내가 아이들 앞으로 적어 넣은 헌사도 바로 그런 의미를 지니죠.  



8. 소설을 집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감동이죠. 감동을 통해서 인간의 모든 좋은 감정들이 전달됩니다.  하지만 이 감동이라는 것도 의미가 있어야 해요, 무언가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야기가 겉만 번지르르 하고 알맹이 없는 사탕발림이 되고 말거든요.  작가가 글을 쓰면서 감동을 느낀 대목에서 독자들이 똑같이 감동할 수 있으면, 그리고 작가가 전하려는 메시지가 독자들의 입에서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오게 된다면 성공한 소설이라고 볼 수 있겠죠.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의 경우, 이 페이지 저 페이지를 읽다가 눈물을 흘렸다고 적어 보내는 독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독자들이 말한 그 페이지들을 쓸 때 나 자신도 눈물을 흘렸었죠.  또, 젊은 여성 독자들 가운데에는 내 소설을 읽고 자살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내 눈에서 한없이 눈물이 쏟아지죠...... 독자들과 이보다 더한 교감을 어떻게 나눌 수 있겠습니까?       «널 떠나지 않았더라면»도 마찬가지였어요.  묵직한 주제이긴 하지만 나는 그 주제를 인간적인 차원,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적이고 정서적인 차원에서 다루었습니다.  독자들은 그 점에 대해서 아주 열정적으로들 말하죠.  다니엘과 베티가 실재로 존재하기를 바랄 정도라니까요.  감동은 갑옷도 관통할 수 있으며, 인간의 진정한 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평온한 가운데 생각을 할 수 있죠. 

 


9. 당신은 이제 갓 데뷔한 신예작가라 할 수 있지만 마치 베테랑 작가처럼 상당히 무르익은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작가 수업 기간에 주로 어떤 준비를 하셨는지요? 

나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준비라고는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나한테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으니까요.  그렇지만 난 항상 무언가를 썼어요, 그저 그렇게 하고 싶었으니까요.  콩트나 단편 같은 짤막한 이야기들을 주로 썼죠.  나한테는 뭐랄까, 그게 제일 중요한 취미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혹시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지, 그럴만한 소질이 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나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셈이죠.  그렇게 해서 쓴 게 바로 «살았더라면»입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읽어보라고 주었더니 당장 출판사에 보내라고들 성화였어요.  난 당연히 거절했죠, 내가 끄적거린 소설이 누군가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건 정말 너무 뻔뻔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한 일년쯤 그렇게 버티다가 결국 내가 지고 말았어요.  몇몇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더니 세 군데에서 즉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러니 아마도 이런 자발성이 그 소설의 성공 요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10. 프랑스에는 훌륭한 작가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작가와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다면 누굽니까?

나는 좋아하는 작가들이 엄청 많아요!  대중적인 작가들 중에서는 우선 마르크 레비.  신비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인 소설의 선구자인데다 아주 기발한 상상력을 가졌으니까요.  에릭 엠마뉘엘 슈미트는 매번 다른 종류의 이야기이면서 늘 흥미로운 이야기를 쓰는 비상한 재능이 있는 작가라 좋아하죠.  타티아나 드 로즈네(De Rosnay, Tatiana)는 감수성이 뛰어나고 서스펜스를 구성하는 재주가 그만이죠 («사라의 열쇠»는 정말 대단해요).  아녜스 아베카시스는 남다른 유머가 마음에 들고요.  다비드 푄키노는 아주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언어 구사 능력이 아주 뛰어난 작가라 좋아합니다.  제시카 넬손은 변함없는 재능으로 여러 다른 세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죠.
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들을 풍부한 언어로 담아내는 일련의 작가들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알베르 코앵, 체임 포톡, 마이클 커닝햄, 조나단 사프란 포어, 짐 해리슨, 미시마, 그 외에도 아주 많아요!   



11. 인터넷, 아이폰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의 등장으로 한국에서는 종종 소설의 위기를 말하곤 합니다. 작가로서 소설 장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고 보십니까?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작가들이 특별히 해야 할 노력이 없다고 봅니다.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쓸 뿐, 외부적인 제약을 고려해야 할 필요는 없지요.  글쓰기는 신기술과 아무 상관 없으니까요.
반면, 이런 건 생각해 볼 수 있겠죠.  가령 작가들은 뉴미디어를 경쟁자로 여기는 대신에, 원한다면, 독자들과의 교류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는 개인적으로 뉴 미디어에 관심이 많고, 따라서 그걸 잘 이용하는 편입니다.  예컨대 새 영화가 나올 즈음이면 예고편을 내보내는 것처럼, 나는 새 소설을 낼 땐 일종의 띠지 같은 걸 내보내죠.  또 독자들을 맞이하기 위해서 인터넷 사이트도 열었고, 페이스북에도 가입해서 독자들하고 대화를 나눕니다 (facebook.com/thierrycohen5).  앞으로는 한국 독자들도 많이 찾아와주기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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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문학평론가와 문학 전문 기자, 서점  MD 등의 설문조사로 선정한 2000년대 최고의 한국문학 목록이 발표되었습니다. 최고의 장편과 최고의 단편, 최고의 시와 최고의 작가 등, 지금 여기, 바로 우리가 읽어왔던 10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겨레 21측의 양해를 구하고 해당 리스트를 싣습니다. 당신의 리스트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세 손가락 안에 포함된 작가/작품과 비교하며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습니다.

출처 : 한겨레 21 구둘래 기자 관련 기사 링크  

 

지난 10년 최고의 장편소설

 

   

 

 

 

 

 

 

 

21세기 최고의 장편소설의 영예는 김훈의 <칼의 노래>가 차지했습니다. 그 뒤를 김연수라는 이름을 '문청'의 아이콘에서 대중들에게까지 확대시킨 <밤은 노래한다>와 한국 문학을 논하려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이름, 황석영의 <손님>이 차지했습니다. 박민규와 김연수, 천명관 등의 이름들도 돋보입니다. 21세기 들어 가장 많이 팔린 작품을 써 낸 신경숙 역시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10년 최고의 중/단편소설 

 

 

 

 

 

 

 

 

 

21세기 최고의 중 단편소설은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 차지했습니다. 단편소설의 특성상, 비교적 최근 발표된 작품이 주로 거론되었습니다. 앞서가는 한국문학 독자들이라면 더는 빼놓지 않는 이름 '김애란'과, 단편에서도 그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김훈' 역시 그 뒤를 이었습니다. 김연수의 단편소설은 무려 세 편이나 거론되는 영광을  누렸고, 이외에도 이장욱, 편혜영 같은 젊은 작가들의 분전도 눈에 띕니다. 

   

 

 

지난 10년 최고의 소설집

 

 

 

 

 

 

 

 

 

지난 10년 최고의 소설집의 영예는 박민규의 <카스테라>가 차지했습니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단편집이 작가가 그동안 써왔던 단편들의 모음이 아닌, 수록 단편들간의 유기적 조합을 통해 또 하나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당시로선 기념비적인 '괴작'이었습니다. 한편, 단편마다 고른 퀄리티를 선보이는 김애란의 단편집이 두 권이나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소설집 분야에서는 20세기를 말할 때도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 저력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 전성태의 <늑대>, 윤대녕의 <제비를 기르다> 등이 언급되었습니다.

 

지난 10년 최고의 시/시집 

 

  

 

 

 

 

 

 

 

 

 <시> 분야에서는 각 시들이 비교적 고르게 득표했습니다. 가장 좋은 시와, 가장 좋은 시집을 투표한 결과 역시 유사하게 나왔습니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시는 문태준의 <가재미>였습니다. 이외에 황병승의 <여장남자 시코쿠>, 김경주의 <내 워크맨 속 갠지스> 등이 좋은 반응을 얻었습니다. 문태준, 황병승, 김경주 등은 다른 시로도 리스트에 고루 이름을 올렸습니다. 비교적 최근 발표된 시집으로는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과 송경동의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등이 거론되었습니다. 

 

 지난 10년 최고의 작가

 

 

지난 10년 최고의 작가를 묻는 질문에는 가장 많은 사람이 '박민규'의 이름을 거론했습니다. 이외에도 김애란, 신경숙, 황석영 등의 이름이 빠짐없이 거론되었습니다. 이 작가들의 이름은 개별 작품이 아닌,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2000년대 한국문학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알라딘 소설 MD의 개인적인 추천을 더합니다. 여러분의 추천이 이 리스트를 더욱 풍성하게 해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리스트를 꼽아주세요. 서로의 리스트를 나눌 때, 지난 10년의 기억이 더 풍성해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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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작품에 관심을 갖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등장인물들과 하나가 되어 그들의 뜨거운 여름을 함께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미나토 가나에)

 
   

* 일본 서점대상에 빛나는 <고백>이라는 강렬한 작품으로  국내 팬에게 첫 인사를 한 미나토 가나에에게 알라딘 회원분들이 질문을 남겨주셨습니다. 미나토 가나에 역시 성실하게 질문에 답해주었습니다. "나 자신, 그리고 나와 친한 친구만이 세상의 중심"인 그 미묘한  시기에 대한 기록, 미나토 가나에가 말하는 <소녀> 이야기를 서재를 빌어 공개합니다.

관련 이벤트 페이지 보기

 

 



* 두 소녀가 죽음의 순간을 보고 싶어한다는 <소녀>의 아이디어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었나요?  


== 어떤 두 명의 여고생을 본 적이 있는데, 서로를 보는 눈은 따뜻함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에게는 차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이런 아이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 계기였습니다. 
 


*<소녀>를 작업하시면서 무엇이 가장 힘드셨나요?  


== 소녀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나누어 쓰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아쓰코와 유키는 정말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잘 조화시켜 어색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 전작인 <고백>도 그랬지만, <소녀> 역시 주인공들의 사실적인 행동이나 심리 묘사가 압권입니다. 혹시 이 작품을 위해 주변의 여고생을 만나서 취재를 했다거나, 모델을 설정하셨나요?  


== 취재는 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를 설정할 때는 각 캐릭터들의 이력서를 만듭니다. 예를 들면 그들의 성격이나 가족 구성, 취미, 학교에서의 성적 같은 것을 미리 정해두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10대 소녀들, 여고생들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일까요?  


== “나 자신과 나와 친한 친구가 세상의 중심.” 그 세상이란 것도 학교와 집 주변으로 아주 좁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그들은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지요. 제게 소녀는 그런 느낌입니다. 
 

 
* 국내에 나온 <소녀> <고백> <속죄>가 모두 미스터리 류입니다.
미스터리 장르를 계속 고집하게 된 이유가 있으신가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미스터리 장르의 매력은?
 
 

 == 미스터리 작품을 대상으로 주는 상을 받아 데뷔했기 때문에 당분간은 미스터리 분야 안에서 어떤 것을 쓸 수 있을지 계속 저 자신을 추궁해보고 싶습니다. 미스터리의 매력은, 작품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주인공이 된 듯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 집필하실 때 스토리가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 마감이 있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뭔가 쓰도록 노력합니다. 
 


*작업하실 때 특별한 버릇 같은 것이 있으신가요?  


== 그냥 산책을 합니다. 산책을 나가면 갑자기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하는 적도 있거든요. 
 


* 지금 읽고 계신 책은 무엇이신가요?
좋아하는 작가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 저를 위해 책을 읽는 시간을 갖는 것 자체가 요즘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지금 읽고 싶은 책은 일본에서 ‘기억 시리즈’로 번역되어 나온 토마스 H.. 쿡의 <밤의 기억들 Instruments of night> 등 입니다. 
 

 

 

 

 

 

 

 


* 작품을 꾸준히 내고 계신 걸 보면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넘치시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구상 중인 작품이 있으시다면 알려주세요.
  


== 무인칭 시점의 인간 드라마를 써보고 싶긴 한데, 지금의 제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쓴다면 TV 드라마나 영화 시나리오처럼 될 것 같아요. 


  

 

최근 일본에서 영화화된 <고백>이 좋은 성과를 거두며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미나토 가나에.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 <N을 위하여>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니, 앞으로의 활약이 더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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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 평양에 열네 명의 목사가 있었다. 열두 명은 죽었고, 두 명은 살았다. 김은국의 <순교자>는 죽음의 이면을 추적함으로써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한국전쟁과 기독교라는 묵직한 소재에 신앙과 양심과 실존의 문제를 얹었다. 여기까지만 읽고 <광장>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당신. (사실, 교과서 밖에서 만나면 광장도 무척 ‘야릇’하고 흥미진진한 소설이다. 졸업 후 읽어보시라…) 그렇지만 이 소설은 소설적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다. 살아남은 목사들이 배신자인지, 혹은 다른 반전이 있는 것인지, 세련된 추리소설적 기법이 이야기를 힘있게 끌어간다. 이렇듯 서사는 단단하고 메시지는 가치롭다.

청소년이라면 김은국이란 이름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루함과 다급함으로 시험 전 아득바득 이를 갈며 외우는 문학사 연보에도 이 작가의 이름은 포함될 가치가 있다. 김은국은 고은, 조정래보다 앞서 한국계 최초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선정된 작가이다. <순교자>는 출간 당시 미국에서 20주 연속 베스트셀러였고, 세계 10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놀랍게도 1964년의 일이다!)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필립 로스 역시 이 작품에 극찬을 보냈다. 스스로의 어둠을 헤쳐 나오기 위해 까뮈를 탐독했다고 김은국은 말했다. <순교자>는 까뮈 못잖은 소설의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책은 예민하고 명민한 청소년에게 잘 어울린다. 소설 속에서 삶의 지침을 찾고 싶은 사람에겐 특히 더.

 

 청소년 MD님의 근성 돋는 추천 시리즈에 감복해 협찬했습니다. 이전에 쓴 카피의 변형입니다만... ^^;; 도스토예프스키나 까뮈를 읽으며 개안을 하는 듯한 충격을 받았던 독자라면, 틀림없이 이 작품을 좋아하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순교자는 우아하고 고결한,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리스트에 포함되어도 손색이 없는 품위있는 책입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라도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인생의 책'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이상 황금 물고기라는 막장 드라마 이야기를 들으며 르 클레지오를 떠올린 (집에 텔레비전에 없는) 고전 사랑 소설MD 올립니다... 

 

청소년 추천 릴레이! 남다른 청소년이 되는 법 이벤트 바로가기 

  

청소년 추천MD의 지난 추천 리스트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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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겨울, 서재를 뜨겁게 달궜던 뜨거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애도 여행을 떠났던 남자, 시즈토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죽음을 똑같이 애도했던 남자 시즈토. 당신은 누구를 사랑했습니까? 누구에게 감사해했습니까? 누가 당신에게 감사를 표했습니까? 겨울부터 여름까지, 이 편지가 다시 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컴퓨터를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는 텐도 아라타가 한글자씩 손으로 눌러 쓴 진중한 답신을 소개합니다. - 편지 전달, 번역 : 문학동네 출판사 | 질문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애도하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주인공 시즈토靜人의 독특한 캐릭터는 이 소설을 이루는 근간입니다. 시즈토에게 의도적으로 '조용함(sizu,精)'이라는 속성을 부여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즈토>는 사람의 죽음과, 그것도 생면부지인 사람의 죽음과 마주 선 인물이기 때문에 그 행위도, 마음도 경건하고 정갈한 자세를 취하는 것, 즉 <靜>한 것이 바람직한 것 같았습니다.
 한편으로 그는 그저 누군가의 죽음을 기억하려고 한 것뿐인데도 맞닥뜨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끄럽게 하고, 때로는 분노를 사고, 반발을 사는 등, 다른 사람들의 삶을 종종 어질러놓지요. 그렇기 때문에 대비적인 의미로도 그의 이름을 ‘조용한 사람’이라고 짓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인다면, 이것은 중의적입니다만, 일본어 발음으로 <靜>은 <鎭>과 같습니다. 진혼(鎭魂), 혼을 달래다의 <鎭>입니다. 
 

 

 


소설 속 인물은 조용함과 시끄러움으로 이분될 수 있습니다. 다카히코, 시즈토 같은 조용한 사람도 있지만, 레지같이 밝고 활달한 성격의 등장인물도 나옵니다. 두 가지로 구분되는 것 같은데, 애도하는 사람의 애도하는 행위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조용한 행동으로 보입니다. 왁자지껄한 연대와 조용한 위로 중에서 어느 쪽에 더 가치를 두시나요? 


등장하는 인물을 유형화해서 표현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시즈토를 중심으로 주위에 어떤 인물들이 등장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일까. 또 반발과 공감, 분노와 정애(情愛) 등, 감정의 드라마가 전개되는 데 어떤 인물들이 어울릴까…… 그런 고민 끝에 꼭 존재해야 하는 사람들로 등장인물은 태어났습니다.
  ‘시끄러운 연대와 조용한 위로 중 어느 편에 더 가치를 두는가’ 하는 질문은 솔직히 대답하기 어렵군요. 사실 그런 비교에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고, 원래 비교 그 자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든 애도한다’는 ‘애도하는 사람’의 사상에 비춰보면, ‘어느 편에 더 가치를 두는가’ 하는 질문에 제가 거북함을 느끼는 것도 이해하리라 생각합니다. 

   

 

애도란 늘 늦기 마련입니다. 시즈토의 말대로 ‘ 한발 늦은’ 애도가 아닌 다른 행위가 세상을 위로할 수 있을까요?  

 
 시즈토의 <애도> 행위를 ‘한발 늦은’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이 죽기 전이 아니라 죽고 난 뒤에 찾는 자신의 행위가 항상 한발 늦다고 부끄러워합니다만, 가까이에서 그를 줄곧 지켜보아온 나는, 외려 그의 ‘애도’는 요즘 세계의 주류 가치관에 대항하는 사고방식으로, 그것을 꾸준히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긴다는 의미에서 조용하지만 적극적인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행위는 물론 ‘국경 없는 의사단’, 기아대책본부 등의 활동이나 지뢰철거운동 등의 적극성과는 다릅니다. 다만 다르다고 해서 그의 행위를 소극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애도’와는 다른 행위로 사람들을 위로할 수도 있습니다. 앞서 언급한 각종 운동과 자선 활동, 또 개인적인 자원봉사 활동은 많은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하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애도하는 사람』에서 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고방식, 새로운 애도방법이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뜻밖의 변화가 사람들에게, 사회에, 세계에 일어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온화하게 제시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작품에서 시즈토는 일종의 성자처럼 보입니다. 애도 행위를 계속하기 위해 시즈토는 감정적으로 완전무결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작품 후반 유키요와의 관계는 의외였습니다. 결국, 그 이후에도 시즈토의 생활은 전혀 바뀌지 않았는데, 시즈토와 유키요가 함께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시즈토를 ‘성인(聖人)’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청년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보통 청년이 우연히 사람의 죽음에 이끌렸다,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지금까지처럼 타인의 죽음에 무심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 해도 그 고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과 같은 지극히 평범한 남자가 누군가의 죽음에 성실하게 맞설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우선 <애도>라는 행위를 시작한 것입니다.  


 유키요와 만나고 또 그녀를 통해 사쿠야와 알게 되면서 시즈토의 내면은 크게 변화합니다. 그들 둘과 만나고 또 헤어지면서, 애도와 마주선 자세가 보다 진지해지고 ‘애도’가 정말로 세상에 필요한가 고민하기도 하고, 과연 의미가 있는가 머뭇거리기보다 일단은 계속 행동하자, 타인의 죽음에 맞서자, 죽음들이 넘쳐나는 현실 세계로 걸어들어가자…… 행동의 끝에 대답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하고 굳게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유키요도 시즈토와의 만남과 사쿠야와의 진정한 이별을 통해 공유하게 되죠.   


 시즈토는 사람들에게 ‘거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행위를 위선적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반발할지…… 죽음에 맞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그리고 그것을 곧 삶과 맞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받아들일지. 또 그를 ‘성인’으로 보고,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 우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해 자신들과 별개라고 생각할지…… ‘그의 행동을 따라 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처럼 사고할 수는 있지 않을까. 그와 같은 여행할 수는 없어도 날마다 접하는 뉴스나 세계의 주류 가치관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바라보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지.
 그의 존재를 앞에 두고 어떻게 생각할지에 따라 독자들이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자기 모습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사쿠야와 시즈토의 공통점은 작품 속에서도 언급되지만, 이율배반적인 존재이면서 동시에 수퍼에고의 극단적인 면이라는 점이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쿠야와 시즈토, 유키요 이 세 사람의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 더한다면 사쿠야의 최후의 바람은 이뤄질 수 있을까요?     


 내가 등장인물을 표현할 때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에게 존재감이 있는가…… 설령 망령이더라도 확실히 그곳에 존재한다고 느껴지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런 인물끼리 만나고, 부딪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하는 지점에서 이야기의 활력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상호보완적인 관계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사쿠야의 마지막 소망이라고 하면, ‘네게서 태어나고 싶다’는 것 말인가요? 그렇다면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군요 참고로 나는 등장인물을 표현할 때, 시즈토든 사쿠야든, 각자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 움직이며 자기 말을 내뱉게 될 때까지를 기다립니다. 그들을 계속 키우는 거죠. 충분히 키워서 이제 나의 사고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을 때, 즉, 그들이 그들 나름의 사상과 경험으로 생활하고, 행동하고, 발언하기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원고를 씁니다. 

 

 


마키노처럼 시즈토를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데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애도하는 사람의 애도하는 행위를 피상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시즈토의 말대로 피해자를 향해 세 번, 그 이후에는, 가해자에게도 애도하려 한다면 그때 피해자가 느끼는 분노도 확실히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 시즈토의 행위는 타인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은 자족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작품에서 시즈토는 자신의 행위를 ‘자기만족입니다’라고 작품 속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행위를 그냥 내버려두지 못할까요? 자기 마음이 편치 않아 위선이다, 자기만족이다, 하고 마키노처럼 공격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까요? 사람들은 그때 시즈토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내면에 자리잡은, 죽음과 고통에 대한 죄악감이나 원죄감, 많은 죽음에서 시선을 돌렸던 일에 대한 껄끄러움을 그의 행위가 자극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시즈토는 모든 사람을 똑같이 애도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누군가를 죽인 사람을 애도하는 경우가 생기겠지요. 그때 그걸 안 유족이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테고요. 그러나 그것이 피해자의 아픔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즈토는 유족의 감정을 무시해도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자신도 감정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죽인 범죄자는 그도 용서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누구는 애도해야만 하고, 누구는 애도할 필요가 없는가…… 그 선을 어디서 긋고, 누가 그을까요? 


 한 개인의 생각으로 선을 긋는다면 이미 모든 사람을 똑같이 애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과잉방어로 살인을 한 사람…… 교통사고로 어린아이를 친 사람…… 전쟁에 징집되어 명령을 받고 사람을 죽인 후 그 행위를 줄곧 후회하는 사람은 어떨까요. 따돌림이나 거짓말로 누군가를 자살에 이르게 한 사람…… 사랑에 눈이 멀어 남의 가정을 망가뜨리고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입힌 사람…… 무심한 말로 누군가를 괴롭힌 사람은 어떨까요.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은 극소수일 것입니다. 아무에게도 상처입힌 적이 없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고요. 설령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그런 놈을 애도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애도해야 하는 사람과 애도할 필요가 없는 사람’을 개인적인 생각으로 구분한다면, 결국은 모든 것이 원래 그대로이고 달라지는 게 없지 않을까요?
 유명인의 죽음은 진중하게 보고 일반인의 죽음은 가볍게 본다…… 전쟁에서 죽은 한 영웅의 죽음은 진중하게 보고, 전쟁에서 죽은 많은 병사들의 죽음은 가볍게 보고 그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타국의 10만 인의 죽음보다 제 나라 축구대표의 승패에 더 연연한다…… 하지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죽음을 주위 사람들이 진지하게 여기지 않거나 얼른 잊어버리라고 할 때는 깊이 상처받는다……  
 지금까지의 그런 가치관이 반복될 뿐이지 않을까요? 


 시즈토는 자신이 사람을 재판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자신이 범죄의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닌데 그 범죄자를 미워할 권리도 없다고 합니다. 범죄자를 미워할 권리는 피해자와 유족에게 있으며, 생면부지의 자신에게는 미워할 권리도 없을 뿐더러 재판할 권리는 더더욱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범죄자를 범죄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애도합니다. 모든 사람과 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보고, 그 ‘생명’을 애도합니다. 물론 여기에는 찬반양론이 있겠지요. 하지만 찬성하든 반대하든 논쟁을 부른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것일 수 있지 않을까요?
 (시즈토는 성인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성인이나 위인들조차 그 말과 행동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텐도 아라타, 당신은 누구입니까? 

 


전작 영원의 아이를 오 년 동안 쓰고, 이번 애도하는 사람은 거의 칠 년에 걸쳐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속도가 중요시되는 시대에 시즈토처럼 천천히 글을 써온 것이 놀랍게 느껴집니다. 칠 년간, 어떤 방식으로 글을 쓰셨는지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의 죽음을 동등하게 애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진정한 애도란 가능한 것일까를 고민하고 또 고민하여 시도하고 헤매는 시행착오의 나날이었습니다.
 사람이 죽은 사건 사고 현장을 시즈토처럼 걸은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나 자신이 시즈토가 되어 그날 뉴스에서 알게 된 망자를 애도했고, 애도 일기도 삼 년 동안 계속 썼습니다. 
 그동안 뭔가 세웠다가 허물고, 세웠다가는 또 아니다 싶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이미 써놓은 원고 삼백 매를 전부 버린 적도 있습니다.  


 칠 년간 단 하루도 휴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스럽지는 않았습니다. 시즈토 같은 새로운 인물을 좇아간다는 게 행복했습니다. 오히려 글을 쓰지 않는 게 더 괴로울 정도로, 시즈토의 세계에서 떠나고 싶지 않다, 그의 세계를 깊이 느끼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정도로 시즈토는 지금 이 세상에 있었으면 하는 인물입니다. 이런 바람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에, 공평하게, 냉정하게, ‘애도 행위’를 바라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가벼운 질문입니다만, 한국판 장정이라든지 표지가 어떠셨는지요.   

 한국판 장정 정말 훌륭합니다. 이렇게 훌륭하게 책을 만들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에는 애도하는 사람처럼 질문해보겠습니다. 어떤 책에게 사랑받으셨나요. 당신은 어떤 책을 사랑했나요. 텐도 씨는 어떤 책에 감사를 표했나요. 텐도 씨 인생의 책, 최근 주목하는 책은 무엇인가요? 어떤 책이어도 좋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만화책만 봤습니다. 만화광이었지요. 형도 둘이나 있어서, 철이 들고 보니 집이 온통 만화책으로 가득하더군요. 아무튼 자나 깨나 만화였습니다. 그 시절 만화는 오늘날 일본 만화 문화나 애니메이션 문화의 근간이 되는 작품들로, 지금 돌이켜봐도 아주 수준이 높았습니다. 지금은 거장 혹은 명장으로 불리는 천재들의 전성기 시절 작품을 동시대에 흡수했지요. 


  그다음에는 영화광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자나 깨나 영화였죠. 그 시절 영화 역시 드라마성이 확실한 작품과 사상적으로도 깊이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왔는데, 어린 시절 머릿속에 고스란히 흡수했던 것이 지금 글을 쓰는 상상력의 큰 원천이 되고 있습니다.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영화 원작 정도, 그러니까 문학청년은 아니었지요.
 영화를 위한 기초로, 연극은 일찍부터 공부하고자 해서, 그리스 비극(특히『오이디푸스 왕』), 셰익스피어(특히『맥베드』), 그리고 일본의 조루리음곡에 맞추어서 낭창하는 옛이야기 작가․지카마쓰 몬자에몬(특히『소네자키신주』)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굳이 거기서 요소를 빌려온 적도 꽤 있고요. 


 소설을 읽게 된 뒤로 영향을 준 작가를 꼽자면, 외국 작가로는 도스토예프스키, 일본 작가로는 이시가와 준, 사카구치 안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등이 있습니다. 그외에도 마르케스나 샐린저, 오에 겐자부로, 나카가미 겐지, 고노 다에코, 미시마 유키오, 무라카미 류 등을 비롯한 여기 다 적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작가분들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 인생의 책이라면, 『밤과 안개』의 작가 빅토르 프랑클의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를 비롯한 여러 작품, 『죽음과 죽어감』의 퀴블러 로스의 여러 작품, 톨스토이의 『글 읽는 날들』등을 기회가 될 때마다 읽었습니다.
 다만 새로운 작업에 들어가면 내 공부에 급급해서 소설은 잘 읽지 못하고, 논픽션 계통의 책을 자료 삼아 많이 읽게 됩니다. 
 

 

 

 

 

 

 

 



애도하는 사람은 마키노, 준코, 유키요, 이렇게 세 사람이 시즈토를 관찰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중 독자들에게 가장 호평을 받은 에피소드는 무엇인지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이 가는 에피소드는 무엇입니까?  



 가장 호평을 얻은 에피소드는 독자마다 달라서 어느 것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글을 쓴 작가의 입장에서도시 모든 인물이 사랑스러워 이 인물이 특히, 라고 말할 수 없고요.
 다만 병을 앓고 있는 시즈토의 어머니 준코의 에피소드는 함부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의학적인 사실, 그러니까 치료법이나 병세가 악화되어갈 때의 심신 상태에 대해서는 특히나 잘못된 사실을 쓰지 않게 주의해야 했습니다. 과거에 투병했던 분이나 그 유족, 현재도 투병하는 분들이 계시니까요. 그래서 준코의 에피소드는 의료 관계자나 병원을 취재하고 끊임없이 관련서적을 읽고 완성했습니다.
 


 
당신의 일상생활이 궁금합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땐 보통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는지요.
 
 글을 쓰지 않을 때는 대부분 집안일을 합니다. 집안일을 제대로 하는 것, 한 시민으로서  일상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은 작가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집안일을 제대로 하는 것, 일반시민으로 하루하루 일상을 성실하게 보내는 것’이 현실의 여러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는 눈을 길러준다고 믿습니다.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의 등장인물을 현실감 있게 표현할 때도 그 눈이 살아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시간 문학계에서 활동하고 계십니다만, 특히 친분이 두터운 작가나 교류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국내외 작가 가운데 주목하고 있는 작가가 있는지요. 

 

만나면 인사하고 얘기를 나누는 작가는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 굳이 이름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작가로 데뷔하기 전부터 연극이나 영화 관계자들이 많습니다.   


 주목하고 있는 한국요…… 작가로는(굳이 말씀드린다면) 영화 쪽에 관심이 있는데요. 양국 영화는 일본보다 수준이 높고 아주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봉준호 감독, 박찬욱 감독의 재능에 감탄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으로는 송강호 씨가 마키노 역으로 나오는 영화 『애도하는 사람』을 볼 수 있으면, 하고 상상도 해봅니다. (시즈토는 누가 좋을까요. 한국에는 정말 훌륭한 배우가 많아서 선뜻 누구라고 말씀드리기가 망설여지네요.)
 
 





  

 

 애도하는 사람 이후, 우리는 누구일까요?

  



애도받지 못할 삶이란 없다는 이야기는 세상에 죽어 마땅하다고 여길 만한 사람은 없다는 말로 들립니다. 그런 선상에서 사형제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는 말로 들린다’고 하셨는데, 사실 모든 사람은 죽습니다. 결국 누구나 죽지요. 지금 이 인터뷰를 읽고 있는 사람 중에 백 년 뒤에 살아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지 않을까요.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도 또 나쁜 일을 한 사람도 수십 년 뒤면 죽기 마련입니다. 그 사실을 새삼 깊이 고려하고 삶의 지표로 삼아 시즈토의 삶의 방식은 다시 태어났습니다. 


 제도에 대해서는 차마 서술할 수가 없군요. 짧은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문제이지요. 다만 이런 생각은 가끔 합니다. 
 자기 가족을 죽인 범죄자를 미워하는 것은 유족의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벌을 주고 싶어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럽지요. 그러나 가해자를 사형에 처했다고 해서 유족의 슬픔이 정말로 치유될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 허무함은 가해자가 어떻게 되든 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외려 걱정스러운 것은 사건과는 직접 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가해자는 이미 사형되었으니 유족들은 이제 그만 슬퍼하고 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은 유족은 언제까지나 슬퍼할 권리가 있습니다. 가해자의 사형 여부와 관계없이, 그 슬퍼할 권리를 주위 사람들이 제한하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가해자의 유족을 위한다면 우선 유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돌아가신 분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것, 그리고 몇 년이 지나도 “그 훌륭한 사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하고 유족에게 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범인이 처벌됨과 동시에 유족에 대해서도 피해자에 대해서도 잊어버립니다. 여러 명의 피해자가 나온 큰 사건의 경우, 범인의 이름은 기억해도 피해자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애초에 알려고도 하지 않지요.
 시즈토의 행위는 그 점 또한 환기시킵니다.

 

 



인터넷 서점 엠디로 드리는 질문입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는 것처럼, 특별하지 않은 책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하루에도 수십 권의 책이 쏟아져나와 저희 손을 거쳐갑니다. 세상에는 애도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책이 정말 많습니다. 이런 책에 대한 텐도 씨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라져버리는 책을 마음을 담아 안을 수 있을까요? 


 작가인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인지 잘 모르겠군요.
 내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었다고는 하지만, 내 책을 본 적도 없는 사람이 더 많을 테니까요.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세계 인구에 비하면 얼마나 될까요. 창작하는 자는 늘 그런 현실과 마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네 말, 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는 않는다. 아니, 한 사람도 읽어주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너는 이야기할 것인가, 인생을 바쳐 표현에 전념할 것인가?”   
   


 대답은 예스입니다. 그것이 작가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생각하고 쓴 작품이 단 한 명의 독자라도 좋으니 그 마음에 가 닿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어느 곳에 뿌리내리길 바랍니다. 더불어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소설을 읽고 ‘써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고생한 보람이 있겠지요. 
 

 




살인과 죽음 등 충격적인 소재가 꽤 등장합니다만, 『애도하는 사람』은 이전 작품보다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입니다. 이런 따뜻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내 창작의 바탕에는, 사람은 왜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가, 관용을 베풀며 더불어 살아갈 수는 없는가, 하는 것에 대한 슬픔과 분노가 깔려 있습니다. 『가족사냥』은 그 분노가, 『영원의 아이』는 그 슬픔이 강조된 작품이지요.
 『애도하는 사람』은 세계적인 테러와 보복의 시대를 맞아 더욱 글로벌한 감각으로 동일한 주제를 이해하는 차원에서 태어난 작품입니다.  


 동시에 역사적으로 이해할 필요도 느꼈습니다. 세계 역사를 이해하는 것과 개개인의 속마음을 이해하는 작업과 비슷합니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인간이니까요. 그래서 날조가 있기도 합니다. 강한 자, 이기고 살아남은 자가 만든 역사를 받들어온 데는 개개인의 마음의 문제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한 명의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는 사카쓰키 시즈토가 삶을 마주하는 방식을 통해, 현대세계의 주류가 된 가치관과 지금까지 세계 역사가 존재해온 방식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했습니다.『애도하는 사람』은 작풍의 변화라기보다는 성장이자 심화이며, 한 편 한 편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에 귀 기울이고, 독자와 대화하듯 작품을 써온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시즈토가 살고 있습니다. 유키요처럼, 마키노처럼,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시즈토처럼 최선을 다해 타인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일시적인 기분에, 또 위선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움직인 많은 시즈토들이 어떻게 살아나가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 시즈토 같은 인물이 많아진다면 그보다 기쁜 일은 없겠지요.
시즈토라면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은 스스로 충분히 잘 찾아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여러 곳의 수많은 시즈토들의 행동이 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바로 제가 진심으로 꿈꾸는 일입니다. 
 

 


 
다음 작품도 7년 이후에 만날 수 있을까요? 차기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다음 작품을 출간하고 싶습니다. 『붕대클럽』과 『애도하는 사람』의 속편도 구상 중입니다. 머지않아 새 작품을 발표할 수 있기를 저도 바랍니다.
 지금은 규모가 작은 마약 거래에 쓰이는 작은 포장봉투를 만드는 소년과 그의 여동생, 남동생이 등장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이들이 이 세상의 수많은 소년소녀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깨닫고, 서로 의지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서요.



 

작년도 올해도 한국에 유독 죽음이 많았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저마다 특별한 얼굴 모를 사람들의 죽음을 떠올려봅니다. 기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품으로 찾아 뵐 수 있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애도하는 사람』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국에 내 작품의 독자 혹은 팬이 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는 잘 몰랐습니다.
 그만큼 많이 놀랍고 정말 기쁩니다. 독자적인 훌륭한 문화를 가진 한국 사람들에게 내 작품이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른 사람들에게 영상이나 음악, 그림 등은 비교적 전하기 쉬울 수도 있지만, 말과 글은 번역도 힘들고 전하기가 쉽지 않으니까요. 번역자들의 역량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번역자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앞으로 창작할 때는 한국 독자분들도 생각하게 될 것 같습니다. 내게는 든든한 격려이자, 큰 자극이고, 또 성장으로 이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새삼 한국 독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인사). 

   

편지 전달 및 번역에 애써주신 문학동네 출판사 관계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텐도 아라타는 가벼운 마음으로 쉬이 도전해볼 수 있는 작가는 아닙니다. 직접 글로 써준 이 인터뷰도 그랬습니다. 그렇지만, 그가 말한 그의 글이 가닿은 단 한 명의 독자가 비단 저뿐만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그가 말한 대로, 이런 글을 써준 그에게, 또 앞으르도 계속 써줄 그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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