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존재
어긋난 틈 위에
똑바로 서서
소설가 조남주
84년생 한국 여성으로서,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관통당해 버렸다. 책을 읽은 25000여 명의 공통 경험일 가능성이 높지만, 화살 따위가 아니라 전차포에 당했다는 느낌이었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이건 내 이야기야, 숨이 차서 중얼거렸고 언젠가 만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장편 위주로 활동하는, 출판사 모임엔 잘 나오지 않는 신비스러운 분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만나게 된다 해도 먼 훗날일 거라고 예측했었다. 그래서 편집부에서 ‘쓰는 존재’에 조남주 작가를 초대해 주겠다고 했을 때 덥석 반기고 말았다. 지읒 자쯤에서 예스를 외쳤던 것 같다.
조남주 작가는 신도림에서 10년째 살고 있다고 했다. 신도림역을 지나 구로역으로 살짝 치우쳐, 아파트 단지와 상가 사이에서 만났다. 문득 앞서 출간된 『고마네치를 위하여』에서 옛 신도림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던 부분이 생각났다. 아직 빌딩들이 서기 전, 연탄 공장 풍경이 눈에 그린 듯했다.
“결혼하고 나서 2년 정도만 다른 동네에서 살았고, 여기서 10년째예요. 예전 이 부근에 대해 썼던 부분은,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서 들었어요. 토박이들이 많아요. 저쪽에 있는 초등학교를 나와, 중학교를 또 저쪽에서 다녔고, 저기는 연탄 공장이었고, 나지막한 동네에서 제일 높았던 건물은 대성학원이었고…… 매일 이야기해 주세요. 그땐 다른 높은 건물이 없어서 안양천에 물 흘러가는 것도 다 보였대요. 그런 이야기들을 듣고 시각적인 건 서울 사진 자료집에서 찾아봤어요.”
실감이 굉장해서 당연히 작가 본인의 경험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소설가들에겐 매번 속고 마는데 속아도 기분이 좋다. 매일 만나는 이들에게서, 작은 열매 따듯이 이야기를 채집했을 것 같아 그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쓰는 작업은 어디서 하는지 궁금했다.
“단골 없이 이 근처의 카페들을 떠돌아요. 익숙해지면 자꾸 딴짓을 하는 성격이라, 매번 다른 곳에 가려고 해요. 집에 있으면 집안일을 해서 집에서는 안 쓰려고 노력하고요. 일단 세탁기 돌려 놓고 글을 쓰자, 해도 세탁기 돌리는 과정조차 사실 단순하지 않잖아요. 그 앞에 여러 단계가 있는 거 해 본 사람은 알죠. 그래서 아침에 딸을 데려다 줄 때 같이 나와요.”
본격적으로 인터뷰를 하려니 떨렸다. 2010년대 한국 문학의 흐름에 뚜렷한 분절을 만든, 앞으로도 끝없이 사랑받을 스테디셀러를 쓴, 모두가 이야기하고 있는 작가가 앞에 앉아 있었다. 문득 작가 본인은 조금 얼떨떨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실 중쇄를 처음 찍어 봤거든요. 『귀를 기울이면』은 중쇄를 찍지 못했고, 『고마네치를 위하여』는 얼마 전에 세종도서로 선정이 되면서 그 수량만큼 찍긴 했는데 약간 다르잖아요. 그래서 『82년생 김지영』이 처음 중쇄되었을 때 중쇄를 찍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굉장히 기뻤어요. 신기했고요. 그런데 벌써 11쇄네요. 한 쇄에 조금도 찍고 한꺼번에 많이도 찍고 했는데 편집부에서 알려 주실 때마다 놀라요.”
『82년생 김지영』이 충격적으로 좋은 소설인 이유는, 다루는 주제도 주제지만 그 주제를 바라보는 방식 때문이다. 그동안 유사한 주제를 은근하게 녹여 내고 드러낸 작품들은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똑바로 마주 봐 준 적은 이때까지 없었다. 결코 단단한 결심 없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이 아니었다. 집필 초기부터 정면으로 바라보기로 마음먹었는지 궁금했다.
“네, 처음부터 정면을 생각했어요. 2015년에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해시태그 운동을 접하고 이제 그래도 될 것 같다고 판단했거든요. 전에는 혼자만 생각하고 바깥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이제 겉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되었어요. 말하고 연대하는 게 가능해졌어요. 제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쓴다 해도 심한 거부 반응이 돌아온다거나, ‘이렇게 말하기엔 너무 이르지 않아?’라고 하지 않을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판단했어요. 『82년생 김지영』은 문학적인 은유 없는, 어쩌면 대놓고 멋없게 말하는 소설인지도 몰라요. 멋있게, 아름답게 쓰지는 못하지만 하고 싶은 말을 똑바로 전하고 싶었어요.”
만약 조남주 작가가 곡선으로 에둘렀더라면, 수많은 독자들이 이렇게까지 관통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직선이어서 다행이었다고, 작가의 답을 들으며 안도했다.
“그리고 솔직히, 처음 쓰기 시작할 때는 투고할 계획이었기에 곧바로 독자 분들을 염두에 두지는 못했어요. 딱 한 명의 독자, 저 자신만 염두에 두었어요. 독자인 스스로가 100퍼센트 만족할 수 있는,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 나온 소설을 동시대의 독자들이 알아보았다는 게 너무나 멋진 일이다. 거의 어떤 현상에 가깝게 알아보았다. 봄꽃이 개화하기 직전에 내린 비처럼 타이밍이 맞아 들어갔다. 심지어 국회에서도 읽히고 있다고 한다.
“제 책을, 어떤 결정권을 가진 분들이 읽으신다니……. 그동안 정책들이 나올 때마다 전문가들이 왜 이렇게 현실을 모르나 답답함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직접 가서 이야기할 기회 같은 건 웬만해서는 주어지지 않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서만은 당사자인 제가 지금 한국의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소설의 방식으로 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쉽게도 『82년생 김지영』이 출간된 이후로도 국책 기관의 실수는 끊이지 않았다. 모두를 경악케 한 행정자치부의 ‘가임기 여성지도’에서 보건사회연구원의 ‘고학력 여성 하향 선택 결혼 유도 정책화’ 발언까지 여성들이 상처받고 분개할 만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조남주 작가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국책 기관에서 그런 황당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건, 문제를 인지하는 지점부터 어긋나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해요. 저는 교육을 비교적 동등하게 받은 80년대 생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성인기를 보내면서 스스로를 한 아이의 엄마나 누군가를 돌보는 존재로 상정하지 않고 자기 삶을 계속 꿈꾸면서 살아왔다고 생각해요. 이 여성들이 지금 맞닥뜨린 주제가 출산과 육아지요. 돌봄 노동의 착취적인 면을 꿰뚫어 보게 된 80년대 여성들에게 자꾸 미봉책을 들이밀며 아이를 뽑아내려 하니까 사회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닐 것 같아요. 시간이 흘러 80년대 생들의 부모 세대가 나이가 들어 간병이 필요한 시기가 올 거예요. 앞으로 10년, 혹은 20년 안에 닥쳐오겠죠. 그때 간병인 수요를 여성들이 책임져 줄 거라고 사회가 기대해도, 과연 출산과 육아를 원치 않았던 이들이 노인 돌봄을 저항 없이 받아들일까요? 출산율처럼 딱 떨어지는 수치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해도 분명 다른 문제들이 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돌봄 노동, 가사 노동을 지금처럼 여성을 갈아 넣어서 하는 사회는 버티지 못할 거예요. 경제 안에서 보이지 않는, 따져지지 않는 비용을 여성들에게 지우고 사회를 유지하던 사고방식부터 끊어 내야 해요. 지금부터라도 돌봄을 공공화하지 않으면 새로운 이슈들이 터질 때 얼마나 심각해질지 모르겠어요. 그러고 나면 또 우리 세대가 노인이 될 테고, 부양해 줄 다음 세대가 없는 노인으로서 맞닥뜨릴 고민들이 기다리고 있겠죠.”
마음이 아득해지는, 그러나 아마 그렇게 되리라 동의할 수밖에 없는 예측이었다. 조남주 작가의 말이 마치 지진 예측기의 진동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말하면서 가장 자주 쓰는 단어는 ‘생각하다’였다. 아마도 작가의 소설은 한 줄기 생각에서 뻗어나가는 어떤 것이 아닐까 한다. 아이디어가 소설로 확장되는 방향마다 풍부한 데이터를 쌓아 형태를 갖추어 가는데, 그 밸런스가 굉장히 독특하다. 자료를 어마어마하게 끌어안으면서도 충분히 녹이고 흡수해 소설의 공기를 잃지 않는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적은 것 같아서 비결을 물었다.
“평소에 관심 있는 분야의 데이터를 축적해 두는 편이긴 해요. 이번 책 같은 경우는 특히나 무언가가 참 잘 맞아떨어졌어요.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쓰기 시작한 게 2015년인데, 자료가 때맞춰 폭발적으로 쏟아졌거든요. 물론 그 전에도 2013년 《한겨레 21》의 「전업주부의 종말」 같은 특집 기사를 모아 두긴 했어요. 일과 가정 사이에서 여성의 역할에 오래 관심이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재작년, 작년 들어 저의 관심사와 사회 보편의 관심사가 겹쳐진 것 같아요.”
하지만 데이터 축적이 끝이 아닐 듯해서, 약간 더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음, 시사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로 오래 일하기도 해서 아무래도 자료를 찾고 보고 그중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선별해 내는 것에 익숙한 편이긴 해요. 예를 들어, 주부들의 취업 자료를 백분율로 찾아보고 싶으면 통계청에 들어가 봐야겠다, 또 이것과 관련해서 논평과 분석을 찾아보고 싶으면 보건사회연구원에 들어가 봐야겠다…… 하는 식으로요. 데이터와 보도 자료의 언어를 낯설어하지 않아서 소설에 잘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 같고요.”
탄탄한 구조에 더해서 작품들에 조남주 작가만의 아주 세밀하고 질감 넘치는 기억이 입혀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니, 이런 게 어떻게 다 기억나지?’ 싶을 정도였다.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 아닐까 싶었고, 유년기나 청소년기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알고 싶어졌다.
“가까운 시기의 기억은 자주 잊어요. 일상을 제대로 못 챙길 정도로요.(웃음) 그런데 이상하게 어렸을 때의 기억은, 오래된 기억들은 생생한 편이에요.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 사람들한테 우리 어렸을 때 그런 거 있었잖아, 그런 학용품이 유행했었잖아, 그런 놀이 하면서 놀았잖아…… 제가 말하면 다들 놀라더라고요.”
조남주 작가가 약간 쑥스러워하며 말을 이었다.
“저는 11월생이에요. 이제 딸을 키우면서 느끼는데 마흔 무렵의 1년, 2년은 별 차이 없는 것에 비해 아이들의 6개월, 10개월은 상당히 큰 차이더라고요. 그러니 어린 저를 돌이켜 생각해 보면 언제나 늦된, 늦될 수밖에 없는 아이였구나 싶어요. 저는 놀림을 받거나 누가 속이거나 해도 당하는지 모를 정도로 맹한 아이였어요.(웃음) 청소년기에 스스로의 그런 점을 인지하고 나서는 약간 관찰자처럼 변했던 듯해요. 무덤덤한 관찰자요. 또래들은 예민하고 감정 폭이 크고 자주 격해지고 그러는 데 비해 무덤덤했어요. 주변 친구들도 무덤덤했고요. 결속력 있는 무리 속에서 극적인 감정싸움을 하거나 하는 일 없이 청소년기를 보냈어요. 보통 그 나이 때 서로 친밀해지다가 서운해하고 크게 싸우고 그러잖아요. 저랑 제 친구들은 그렇지 않았어요. 폭발하는 청소년은 아니었어요. 그보단 폭발하는 쪽을 지켜보는 무리 중의 하나였지요. 아직도 그때의 친구들과 만나요. 여전히 참 다들 무덤덤해요. 여럿이 약속을 잡고 누가 못 오게 되어도 ‘으응, 뭐 못 오는 거지.’ 하고 만나고. 바빠지면 해를 넘기거나 뛰어넘어 만나게 되어도 ‘으응, 만났구나.’ 하고요.”
대학 시절과 사회에 발을 처음 딛었던 시기도 궁금했다. 그래서 꼬치꼬치 물어보았다.
“여대를 다녔어요. 대학 때 특별히 여성주의 동아리를 하거나 여성학 과목을 듣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는 분위기였던 것 같아요. 제가 들었던 사회학 수업들만 생각해 봐도 가족 사회학, 문화 사회학 안에서 여성주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강의를 하셨던 교수님들이 계셨어요. 그렇게 배운 것도 배운 것이지만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녔다는 점이 남성에 대응되지 않는 별개의, 주체적인 한 사람으로서의 스스로를 인식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던 것 같아요. 이후 사회생활, 결혼 생활 하면서 부조화를 느끼게 되지만요. 방송국에서 일할 때는 혼란스러웠어요. 지금 저 피디가 작가들에게 저런 식으로 말하는 게 단순히 직위의 문제인가? 그런데 피디는 대다수 남성이고 작가는 또 대다수 여성인데? 판단이 잘 서지 않았어요. 일단 너무 바쁘고 그 한가운데 당장 던져진 상태였으니까요. 가부장제 안에 원치 않게 뛰어든 셈이었죠. 결혼 생활도, 저는 외가 친가 모두 전라남도 저 끝이라 서울 사는 저희가 자주 가지도 못했고 친척들이 결속력이 강하지 않았거든요. 시댁 명절에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남자들은 따뜻한 방에서 제대로 된 밥 먹고, 그 일을 했던 여자들은 난방이 안 되는 마루에서 대충 먹는 그런 상황을 처음 겪었어요.”
시사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에서 소설가로의 변신은 무척 반가운 일이지만, 그러고 보니 그 중간쯤에 논픽션 작가가 있지 않은가? 그 단계를 건너뛰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사회학 전공이지만 국어국문학도 부전공했는데 그때 창작 수업을 듣긴 했어요. 줄곧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어했고 방송 작가 일을 할 때는 소설을 전혀 생각하지 않다가…… 아이 낳고 24시간 아이를 보고 있을 때 소설 생각이 났어요. 아이 낳기 열흘 전까지 일했고, 곧바로 복직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여건이 그렇게 되지 않았어요. 어떻게든 글을 쓰고 제 생각을 정리하고 외부에 표현하고 싶어졌어요. 그런데 아무 자료도 없이 방송에 관련된 글을 쓸 수는 없었고, 드라마나 영화 각본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겠고, 그나마 소설은 제가 읽은 그대로 흉내 내어 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게 첫 장편을 써서 공모전에 보냈는데, 보내 놓고도 결과를 찾아보지 않았어요. 설마 언급이 될 줄은 몰랐던 거죠. 몇 달 지나서야 뒤늦게 찾아보고 심사평에 언급되었다는 걸 알았어요. 아, 그럼 내가 쓰는 게 소설이 맞긴 맞구나, 확인한 거예요. 그래서 이게 내 직업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이걸 계속 해 봐야겠다, 마음먹었어요. 논픽션은…… 음, 기회가 되고 준비가 된다면 취재하고 공부해서 쓰는 논픽션은 써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저 자신에 대해 쓰는 에세이는 못 쓸 것 같아요.(웃음) 그건 못 하겠어요.”
조남주 작가가 그즈음 읽었던 소설은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들이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왜 태교를 미야베 미유키로 하느냐고 우스갯소리를 했었다고도 말해 주었다. 첫 소설이 바로 최종심에 올라가기는 쉽지 않은데, 어쩌면 소설을 쓰기 전에도 소설가였는지 모르겠다. 출간된 순서는 반대지만 『고마네치를 위하여』가 첫 작품이었고, 『귀를 기울이면』이 두 번째 작품이었다. 두 책 사이엔 다소 긴 공백기가 있고 말이다. 조남주 작가가 『82년생 김지영』을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투고하고, 눈 밝은 편집부에서 책을 멋지게 만들어 낸 건 기쁜 일이지만 미묘하게 공백기가 신경 쓰인다. 문학 출판계에서 조남주 작가를 더 일찍 주목했어야 하지 않았나? 문장, 분위기, 주제에 접근하는 각도가 기존과 달라서 미처 보지 못했나? 이토록 근사한 걸 쓰는 작가를 먼저 발견해야 하는데 그런 활기가 떨어진 건 아닐까?
“첫 책으로 장편소설상을 받고 이후 단편을 딱 한 편 발표했어요.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첫 책과 두 번째 책 사이의 5, 6년을 생각할 때 두 번째 책이 늦게 나왔다기보다는 첫 책이 빨리 나온 거라고 봐요. 제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보다 빨리요. 『고마네치를 위하여』를 고치는 데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당시 제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설정을 고쳐야 했는데 그때는 고칠 수가 없었어요.”
작가가 심상하게 말했는데, 마음을 빼앗긴 독자다 보니 ‘이제는 준비가 되었습니다.’처럼 들려서 두근거렸다. 그렇다면 차기작은 언제, 어떤 주제가 될지 힌트만 달라고 부탁해 보았다.
“차기작은 아직 고민하고 있어요. 그 동안은 한 번도 청탁을 받거나, 미리 계약을 하거나 해서 쓴 적이 없다 보니 제가 쓰고 있는 소설의 독자는 언제나 저 자신이었거든요. 스스로 쓰고 싶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쓰겠다 그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번 책이 나오고 앞의 두 책들보다 독자 분들의 반응이란 걸 볼 기회가 생기면서 고민이 깊어졌어요. 이 코너 제목이 ‘쓰는 존재’잖아요. 그 전에는 제가 쓰는 존재란 걸 거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메인 잡이든 세컨드 잡이든 소설이 저의 직업이란 생각을 못했어요. 사실 결과물이 경제적인 소득으로 이어져야 그런 게 확실해지잖아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게 취미인가? 아르바이트인가? 그런 정도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제는 쓰는 사람으로서 저의 정체성을 고민해 봐야 할 듯해요. 요즘 독자 분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기분이 정말 이상했어요. 제 책의 독자를 상상해 본 적이 전에도 있긴 했지만, 그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그렸거든요. 서점에서 표지가 예뻐서 책을 집어 든다거나,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거나 단순한 상상이었죠. 그러다가 독자 분들을 직접 만나고 이야기 나누게 되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상과 경험과 생각들이 보였어요. 책을 읽는 순간도 순간이지만, 그 앞과 뒤에 연속되는 삶이 있잖아요. 제 안에서 독자의 모습이 전과는 달라졌어요. 이제 독자를 떠올리면 각자 자기 안의 균열과 파장을 지닌 생생한 누군가를 그릴 수 있어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다가와 강렬한 공감을 느꼈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그럼에도 한 사람을 바꾸는 결정적인 한 권의 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해요. 사람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존재가 아니니까요. 다만 책과 읽는 사람의 파장이 잘 맞아 들어갈 때, 균열의 섬세한 지점을 건드린다면 생각보다 여파가 클 수 있겠구나 무게감을 느끼게 되었어요. ‘내 질문을 내가 쓸 거야’보다는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는 것을요. 앞으로도 책 읽는 사람들의 연약한 지점을 건드릴 수 있는 주제를 고르고 싶어요.”
그렇다면 궁극적으로는 이런 작가가 되고 싶다, 하는 마음속의 목표 같은 게 생겼는지 물었다. 실루엣이라도.
“메인 잡이 작가인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어요. 지금은 메인 잡이 아이 엄마거든요. 다음, 아니, 다음다음 직업쯤이 작가인 것 같네요. 아이를 지금처럼 돌보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오면 육아가 두 번째 직업이 되고 그때 첫 번째 직업이 글을 쓰는, 소설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바라고 있어요.”
딸을 위해 글을 쓴다는 이야기를 다른 인터뷰에서 했던 적이 있다. 작가의 딸이 작가의 직업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제 막 이해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이라, 이제 글도 읽고 책도 읽으니까요. 『82년생 김지영』을 거의 다 읽었어요. 제 책 중에 제일 얇고 글씨도 편했나 봐요. 그전에는 제가 자기를 재우고 노트북 앞에 앉아서 뭔가 쓴다는 건 알았지만 그게 뭔지 잘 몰랐을 거예요. 책이 한참 안 나오기도 했었고요. 엄마 뭐해, 하고 물으면 엄마는 뭔가를 써…… 대답했었어요. 이제 책으로 나왔으니까 엄마가 그때 쓴 게 이거였구나, 아는 거죠. 다 읽고 나서는 성 차별 다음으로 나쁜 건 나이 차별이라 하더라고요. 왜 자기가 일주일에 몇 번 일기를 써야 하는지 어른들이 정하냐고요.”(웃음)
여성 예술가들이 젠더에 대해 이야기하기만 해도 무차별적인 공격을 받는 일이 요 몇 년간 적지 않았다. 혹 『82년생 김지영』 때문에 공격을 받지는 않았는지 걱정했었다.
“쓸 때는 많이 읽히리라 예상하지 않아서 두렵지 않았고, 쓰고 나서는 그렇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펼치는 분들은 소설 독자층이 아니란 걸 알게 되어서 괜찮았어요. 물론 인터넷 서점의 한 줄 평에 굉장히 거부감을 가지고 읽으셨구나, 추측할 수 있는 평 정도는 있었지만 그 범주를 넘어선 공격은 없었어요.”
대답을 들으니 마음이 놓였고, 한층 더 소설 독자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역시 기본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들의 기질은 다르다고 중얼거리고 말았다. 조남주 작가는 소설보다 인문 사회 분야 서적을 많이 읽는다고 들었는데 최근에 좋게 읽은 책을 몇 권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 줬어요?』였어요. 중간에 덮지 않고 한 번에 죽 읽었을 정도예요. 그리고 여성주의 필자 분들이 함께 쓰신 책들이 다 좋았는데 특히나 『양성평등에 반대한다』가 좋았어요. 미성년자 의제 강간법에 대한 장을 읽으며 젠더 이슈가 다른 모든 이슈에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너무 자주 써서 퇴고할 때 거르고 빼는 단어가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저는 ‘복잡한’이요. 복잡한 마음, 복잡한 표정, 복잡한 기분……(웃음) 글을 고치며 찾아보기 기능으로 찾으면 어마어마하게 나와요. 대체 왜 그렇게 그 표현을 반복해서 쓰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복잡한 문제를 간명하게 쓰는 작가라서가 아닐까, 속으로 생각했다. 복잡한 문제를 간명하게 쓰려면 복잡한 것을 복잡한 대로 이해해야 하는데 동시대의 누구보다도 그것에 뛰어나기에, 조남주 작가의 무의식에서 그 단어가 자꾸 튀어나오고 마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도 모르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해서 전화번호도 땄다. 은하계의 나선 팔 저쪽에 있는 별을 좋아하듯이, 멀리서 좋아하다가 또 만날 수 있길 바라고 있다.
녹음기를 끄고 나면 더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 어째서일까? 이야기를 더 나누고 싶어서 일부러 점심을 천천히 먹고, 많이 웃었다. 아마 나는 평생 조남주 작가를 따라 읽게 될 것이다. 테이블 너머의 조남주 작가에게 소설을 읽는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맡겨도 좋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