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소설집 <이 인간이 정말>을 출간한 성석제 소설가를 가을날 카페 꼼마에서 만났습니다. 기억과 말,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인터뷰 진행은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협조해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기록되는 것, 기억하는 것



오랜만에 만나는 소설집입니다. 전작 <위풍당당>은 한 마을의 당당한 싸움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이번 소설집 작가의 말엔 오늘이 어제의 기억으로 지탱되듯이 현재를 기억함으로써 미래가 만들어진다. 잊지 말지니, 기억의 검과 방패로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이라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이렇듯 기억에 관한 이야기를 모으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소설이라는 형식 자체가 기억에 대한 찬가 같은 거죠. 물론 기억만 가지고 소설이 되진 않지만, 기억을 불씨 삼아서 불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기억에 의지하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고요. <이 인간이 정말>에 실린 글은 2008년부터 작년까지 발표한 단편 소설들인데, 책을 묶기 전에 전체적으로 보니까 지금 우리가 사는 게 굉장히 힘들구나, 사소하구나, 무의미하구나, 많은 사람들이 응급한 대로 살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내 발로 땅을 딛고 살아가는 게 아니고, 헛걸음을 걷는 것 같은 느낌


우리가 쓰고 있는 것들, 대화하는 방식이 그렇게 된 현상 자체를 부인할 순 없겠죠. 그렇지만 내 친구나 가족이나 이웃 같은, 나와 같이 가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고유성이나, 정체성, 사람됨, 이런 것들이 퇴행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보면 거대한 치매증에 걸려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편리하다고 쓰고 있는, 개발되고 있는 도구들, 앞에 스마트가 붙은 도구들과 정보, 매체 이런 것들이 점점 우리를 퇴행시켜가는 것 같아요. 중세시대에 교회가 사람들을 겁주고 억압하면서 무명의 상태, 무지의 상태를 원했던 것처럼 우리가 우리 스스로 무지의 상태를 초빙한 게 아닌가 싶죠. 이익을 얻어내려는 집단이나 사람들이 부지불식간에 기억 같은 것들을 강탈당하고 있는 것 같아요. 간접세를 내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것들을 모르는 채 빼앗기다 끝내 나에겐 아무 것도 남지 않은 상태가 되는 거죠.


 

그래서 기억을 중심으로 한 소설을 엮으셨나요?


 

기억은 과거로 가는 열쇠 같은 거죠. 기득권층들이나 나이든 사람들이 자기 경험을 강조하면서 상대방을 협박하는, 그런 경우에 우리가 과거지향적이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지금은 그런 의미의 과거마저 희귀자원이 되어버린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는 기억되지 않을 과거라는 생각을 해요. 매체나 뉴스, 인터넷 같은 것들이 한꺼번에 집단의 기억을 가져가버리고, 개개인에게 남은 것은 굉장히 적죠


비슷한 음식을 먹고, 뭔가 소비하고, 감각적으로 자극 받고, 그만큼 반사적으로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는데 뭘 하고 살았나 싶고 기억은 안 나는 거죠. 지금이라도 그것을 쉽게 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말로, 언어로 기록하고, 붙잡아야 나중에도 우리가 우리 자신의 것이라고 칭할만한 게 남게 되지 않을까요


SNS나 인터넷 매체가 실시간으로 개개인의 삶을 기록하지만 기억되진 못한다고 생각해요. 매체가 갖고 있는 약탈적인 성격이 개개인의 개성이나 삶의 본질 같은 것들을 덮어버려요. 트위터의 140자라는 형식이 한 사람이 표현하고 싶은 것을 결정해버리는 것처럼요. SNS라는 형식 자체가 우리를 제한하고 간섭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고, 효과가 있든 없든 문학 같은 예술이 이러한 현상에 저항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이라고 봐요.

 


 

이 책의 표지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조문기 작가의 <굴절과 분산>이라는 작품인데요프리즘을 사이에 둔 남녀의 모습이 시선을 끕니다

 

책 만드는 분들이 디자인 요소를 결정을 해요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데대개는 좋아요를 누릅니다느낌이 좋았어요화사해서두 사람이 마주보고 있는 모습에 어떤 포인트가 있는 것 같았고요.






'이 인간들'이 정말



<인간적이다>, <인간의 힘> 같은, ‘인간이라는 단어가 제목에 포함되어 있는 소설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번 소설집에선 다소 진상이라고 할 만한 어떤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표제작에 등장하는데요.

 

앞 소설 제목들은 제가 정한 건데, 이번 소설집 제목은 제가 정하진 않았어요. ‘인간을 많이 사용해서, 안 썼으면 했는데 이 제목이 제일 낫다고들 하더라고요 (웃음) 우길 수도 없고 해서, 그러자고 했죠. <인간의 힘> 같은 소설을 냈을 때는 지금보다는 인간이 값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간의 힘> 같은 경우엔 조선시대의 인물을 불러내서 쓴 글이죠. 그 조선시대 인물의 삶과 행적이 지금보다 인간적이었을 거예요. <인간적이다>라는 책은 짧은 소설인데, 인간과 비인간을 왔다갔다하는 상황을 굳이 말로 붙잡고 싶어서, 우연히 그 말이 들려와서 그 제목을 잡은 거지 싶어요.


<이 인간이 정말>이라는 단편이 이 책의 표제이기도 한데, 소설 속 주인공인 이 인간은 오리지널리티라는 게 거의 없죠. 파편으로 챙긴 정보들만 있는 사람이에요. 그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행동해서 획득한 자기 자신의 정체성이 없죠. 남이 준 말을 바탕으로 말을 하는데, 그가 하는 말이 맞는 말 같긴 하나 따지고 들면 정확한지 아닌지 본인도 모르고 있어요. 잡다한 정보로 가득 찬 사람이고, 마음에 드는 여자한테 보여줄 수 있는 게 그런 것뿐이죠.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잖아요, 사실은 정말 절망적인 상황이죠.


이 모습이 우리의 현재인지도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있는 식당 같은 데에 가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가 많이 들려오는데, 화제가 점점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TV에서 봤는데, 신문에서 봤는데, 영화에서, 라디오에서이렇게 말을 하는데, 요즘은 갑자기 특 튀어나오는 게 인터넷 아니면 트위터잖아요. 매체의 유행어가 투두둑 튀어나와요. 이 와중에 TV에서 봤는데, 어제 드라마에서 누가이러면 촌스러운 사람이 되죠. 다른 사람들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대화의 소스가 점점 변해가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대화라고 생각하는데, 이 대화가 빈약해지는 거죠. 대화의 화제가 되는 소스가 지금처럼 빈곤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야기의 근거가 불확실해요. 내 삶도 아니고 남의 삶도 아닌 걸로 지저귀는거죠. 매체가 워낙 많으니까, 점점 극성스러워지는 게 아닐까 싶죠.

 



<이 인간의 정말>의 주인공 남자의 대화에는 정작 눈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사실 그 남자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는 불안이죠. 불안이 노출된 건데, 본인도 통제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 매일 집어먹는 수많은 약만 봐도, 약이 아니라도 다른 방법이 있잖아요. 예전 같으면 배가 너무 부르면 나가서 운동을 하겠죠, 잠이 안 오면 목욕을 한다든지 책을 본다든지 했을 거예요. 지금은 살이 찌면 거북하니까 남미 어디 숲에서 나왔다는 열매를 추출해서 먹는단 말이죠. 잠 안 오면 알약을 먹고요. 처방 과잉이에요. 약이라는 건 원하는 기능을 얻기 위해 압축하거나 정제한 것이잖아요. 반드시 부작용이 있죠. 중독상태에 습관적으로 빠져 계속 약을 먹어야 하겠죠.




<찬미>의 여주인공 이민주를 보면서 <단 한 번의 연애> 민현이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소문, 해프닝, 능청스러운 사건이 결합된 이야기를 보며 이것이 성석제식 로맨스라는 생각을 했어요.

 

짝사랑이죠. 시골서 성장한 숫기없는 아이들이 읍에 사는 여학생을 향해 품는 흠모의 정 같은 것들. 개개인의 이야기가 하나의 광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이야기, 짝사랑의 경험이 제겐 연료효율이 높은 경험이에요. 응용분야가 많죠. (웃음)


민주는 상당히 적극적인 여성이죠. 자기 얘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나가는 인물이고요. 민주를 흠모하는 시골 아이들 생각과는 전혀 다른, 자기 나름의 인생을 살아가는 거죠. 주변에서 바보 같은 시골애들이 저들 멋대로 생각하는 점에 대해 마지막에 아주 기분 좋게. 한 방 먹이죠. 그런 태도가 참 좋아요. 어릴 때부터 가족을 부양한다든지, 부모 없는 세상을 살아간다든지, 나이 많은 남자와 결혼한다든지, 이런 민주의 운명 자체는 흔한 건 아니죠. 본인에겐 고통스러웠을 수도 있고, 그 무렵의 또래 애들이 누렸을 기쁨들을 많이 누리진 못했을 테고, 많은 걸 놓치며 살았을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제겐 그런 점들이 멋져 보여요. 일찍 철이 들고 세상을 빨리 알아간, 이 모습이 민주라는 인물의 인생이니까요. 평균적으로 초,,고 졸업하고 적당히 군대가고 직장 잡고, 추첨해서 아파트 분양 받고 1/n로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에 비해서 이 여성이 얼마나 드라마틱하고 자기결정권이 있는 사람인가 싶어요. 평범하게 쭉 살아오던 사람들일수록 나중에 인생 후반으로 가면 피동적인 인간이 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자기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니고, 외부에서 자기 인생에 대한 결단을 내리고, 끝장을 내주는 거죠. 그런 인생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사람과 민주는 다르죠. 자기결정권이 강하고, 선택해서 인생을 살아가는 점이 멋있다고 생각해요.





이야기의 안과 바깥


민주를 서술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어요. 그에게 일어난 사건 자체만으로는 여인의 일생이라고 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신산스러운 삶인데도, 그 삶의 비참함이 서술되지 않고, 정말 이 여자의 삶을 찬미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민주의 삶을 들여다보면 인간의 한 면이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민주같진 않더라도, 이런 사람들 사이에 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아직은 참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죠. 내가 이렇진 못하지만, 이런 지지 않고, 허물어지지 않는 강한 사람들을 보면 존경스럽죠. 아직 세상이 버티는 건 이런 사람들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주선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홀린 영혼>이라는 작품은 <찬미>와 함께 읽힙니다. “현세와 우주, 지상에서 단 하나뿐인 너의 영원한 벗이라는, 오세호에게 보낸 편지의 과장됨이 주선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했어요.

 

주선은 일종의 자기중독자예요. 스스로에게서 출발한 소재를 갖고. 남들에게 계속 뭔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 중독자죠. 그의 실체가 과연 그의 이야기와 얼마나 합치하겠어요. 그렇지만 이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라고 믿고 있겠죠. 그런 팩트가 재미있어요.


주선이 오세호에게 보낸 편지의 과장됨은, 중학교 일이학년 때엔 그런 문구도 쓸 수 있어요. 물론 아무나 쓰는 건 아니지만요. 주선의 경우엔 거짓말에도 기본이 되어 있죠. 거짓말에도 나름 여러가지 실력이 있어요. 전혀 근거없는 건 아니고, 침소봉대를 하는 거죠. 이 거짓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져온다든지, 정서적으로 큰 상실을 가져오는 것도 아니에요. 만나면 계속 떠드는 사람이 있다면 피곤하긴 하겠지만요.


주선과 같은 인물들이 참 많아요. 제 눈엔 많이 보여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실질이 뭔지를 자기가 잘 모르는 게 큰 문제죠. 사방에 막 떠벌려놓고 집에 들어가서 넥타이를 풀고 양복을 벗고 앉았을 때 굉장히 허무하지 않겠어요? 자기 이야기에 중독된 좀비들이 한편으론 굉장히 증가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요.

 



찬미를 서술하는 방식과는 다르게 주선이라는 인물을 그리고 있는데요, “그러고보니 그의 주름은 환상과 이야기라는 흡혈귀에 생의 피를 너무 많이 빨려 생긴 것처럼 보였다.” 같은 문장은 공포스럽기까지 했어요.

 

무섭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내가 해를 입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일 것 같아요. 혹은 내가 저 사람처럼 될 수 있다, 그런 불안일 수도 있고요. 주선의 거짓말이,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나에게 해를 끼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르겠다’, ‘나 역시 사실은 저 비슷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그런 불안이 느껴질 수 있지요. 그게 확대되면 두려움이 될 수 있고요.



 

아버지의 외투에 관한 짧은 소설에선 외투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소맷단과 아랫단의 솔기가 더 많이 터진 것 같았고 곰팡이의 균사를 확대해놓은 것처럼 실뿌리처럼 생긴 잿빛 실밥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가 싶게 수백 가닥이 뻗어나와 있었다.” 구체적인 묘사가 외투의 신비성이 납득되도록 해주었습니다.

 

제가 입어봤던 외투 이야기예요. 내 외투가 아니라 아버지의 외투죠. 대학 다닐 때, 군대 갔다 휴가를 나왔었어요. 초겨울에 아버지의 봄가을외투를 입고 다닌 적이 있어요. 코트도 있고 오바도 있었는데 간편하니까 얇은 아버지 외투를 입고 돌아다니며 친구들도 만나고 했죠. 아버지의 중절모를 덮어쓰고 다니기도 했는데, 그땐 젊을 때라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는 게 싫은 느낌이 들지 않았어요. 자기 현시에 사로잡혔다고 할까요. 오토바이에서 소음기를 떼어버리고 큰 대로를 쏘다니는 사람들 있잖아요. 제겐 아버지의 외투와 중절모가 그런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제가 아닌, 배우가 되어서 연기를 하는 느낌. <외투>라는 소설을 쓸 때는 그때 그 외투를 많이 참고했죠.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 소설



예전에 시내 도서관 행사에서 성석제 작가님 강연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외부 활동을 하시면서도 독자라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시게 될 텐데, 이러한 만남이 작가님의 소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독자와 만나 어떤 얘기를 하려면, 저 자신이 정리가 좀 되어야 해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내가 잘 몰랐던 걸 알게 되기도 하고요. 독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소년들을 볼 때가 있어요. 열몇살 쯤 되는 소년들을 만나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군.’ 하는 생각이 들죠. 내가 처음 작가들의 소설을 접하게 된 게 그 무렵이에요. 11, 12살 무렵부터 단편소설을 읽었죠


그 당시엔 자유교양문고라는 일종의 독서캠페인이 있었어요. 책을 시리즈로 백 권 넘게 만들어서 전국 초, , 고에 배포를 해서 읽힌 후에 독서 경진대회를 하고 독후감을 내고 했죠. 시험을 보러 가야 되니까 할 수 없이 책을 읽었어요. 누나, 형들, 친척들이 많아서 중고생용 자유교양문고도 집에 여럿 있었어요. 농사일 거들랴, 학교 다니랴, 일하랴, 공부하랴 그 와중에 책까지 읽어야 하니까 형들이나 누나들은 그게 싫었을지도 모르겠어요. 제 경우엔 좋았죠.

 


그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문학작품을 접했어요. 나도향, 김동인, 현진건 이런 한국문학 단편선을 읽었죠. 처음, 내가 문학을 접했을 때의 마치 감전된 것 같은, 그 느낌이 생각나요.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전혀 다른 세상, 시대, 환경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남의 이야기 같지 않고 내 이야기처럼 실감나는 느낌. 그 이유가 뭘까. 가슴이 두근거리고 저릿저릿하면서, 슬프고 눈물이 나는


무협지에서, 역사 추리소설에서,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이야기책에서 느끼지 못했던 것들,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주는 감동, 문학 작품이 지닌 힘, 그것을 지금 여기 내 앞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는 소년들이 느낄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죠. 단 한 명이라도 그런다면.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작가가 된 보람이 있겠다고 생각해요. 문학작품을 읽고 제가 그랬으니까요. 소년들의 표정과, 소년소녀들의 기대에 찬 눈망울을 보면 조금 더 다듬고, 그야말로 심혈을 기울이게 만들어요.

 



작가 성석제가 읽은 맛있는 문장들을 책으로 엮어 보여주신 적도 있는데, 최근 읽은 책 중 독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맛있는책이 있을지요.

 

요즘은 경제쪽 책에 관심이 많아서요. 소설과 직접 상관이 있는 건 아닌데, 취미 같은 거예요.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라는 빅데이터에 관한 마케팅 책이 있어요. 효율적으로 잘 조직된 자본주의와 과학과 기술과 의학적인 데이터로 무장된 마케터들이 그야말로 평범한 사람들, 부자가 아닌 사람들을 상대로 이기를 취할 때 쓰는 방법과 결과들이 나와있죠. 그런 것들에 관심이 많아서 읽고 있네요. 소설을 쓰고 있는 동안에는 소설을 잘 안 읽게 돼요. 영향을 받을까 싶기도 하고요. 소설을 쓰고 나서 쉴 때, 내가 쓴 것들을 잊고 싶을 때 주로 소설을 보죠.

 










기억이 무기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최근 경험한 일 중 소설가 성석제의 눈에 비친 소설적인 풍경에 관해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벌어지는 일에 비하면 나의 경험은 미약한 것 같네요. (웃음)

 



연재를 하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요,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창비 계간지에 <투명인간>이라는 제목의 장편소설이 연재되고 있습니다.) 아마 연재를 두 번쯤 더 해야 끝날 거예요. 그럼 내년 하반기 즈음에 장편소설이 출간되겠죠. 현재 그 다음 계획은 없어요. 소설가란 청탁에 의해서 움직이는 기계들이기 때문에 (웃음) 뭐 계속 해나가겠죠. 그런 식으로 읽고 보고 듣고 하며 살아가겠죠. 휩쓸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휩쓸린다면 할 수 없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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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 출간 이후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 가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봄의 제주도’를 기대하고 갔으나 내내 비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술만 마시다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는…… 대부분은 평소와 다르지 않게 책 읽고 글 쓰는 생활의 지속입니다. 쓸데없는 해찰도 하면서.   




이번 작품을 탈고하신 후 기분이 어떠셨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 모르겠습니다. 덤덤한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좀 복잡하다고나 할까요. 그렇습니다. 




물론 많은 독자들이 이 작품을 읽을 테지만 그중에서도 꼭 읽어주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다면 어떤 분들일까요?


- 어떤 분들이 읽어주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내 소설을 읽고 사람들이 ‘삶이 그러함에도 그 속에서 소소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습니다.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멸균’적인 것이 아니고 온갖 균들이, 곰팡이가 창궐하는 곳에서도 아름다움은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작품을 쓰게 된 계기랄까, 그런 일이나 시점이 있었는지, 또 그 후의 집필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 이 소설은 어쩌면 제가 작가가 되기 훨씬 이전, 거의 3,40년 전부터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많이 슬프거나 억울하거나 답답한 일이 생기면 늘 들었던 생각이 ‘나중에 내가 글로 써버리고 말거야’였지요. 그런 생각이 들면 덜 슬프고 덜 답답하고 덜 억울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집필 준비 과정은 특별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저 내가 살았던 시대가 어떠했는가만 잘 살피고 제 마음만 잘 다스리면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제가 글을 쓰다가 지나치게 감정을 쏟아부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자신 때문에 힘들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입니다. 소설 속 정애는 슬플 때나 고통스러울 때 노래를 부릅니다. 그럴 때는 마치 고통받는 현장에서 자신의 영혼을 분리시킨다는 느낌도 받았는데요, 이 작품에서 ‘노래’란 무엇일까요?


- 눈물이겠지요. 우는 대신, 노래 부르는 겁니다. 가슴속에 쌓인 원한, 미움, 증오, 답답함, 슬픔 같은 것들을 노래로 승화시켜버리는 것이 바로 이 땅의 ‘가장 슬픈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오랜 삶의 방식인지도 모릅니다.




그럼 정말,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요?


- 저는 혹시 누군가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라고 묻는다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도 나오듯이 되묻고 싶어집니다. 정말 그 노래는 어디서 왔을까요? 각자가 자신에게도 한번씩 물어보면 좋을 듯합니다. 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더라도 그 물음을 묻는 순간, 뭔가 가슴 한켠의 움직임이 느껴질는지도 모릅니다.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다면 어느 부분일지, 또 그 이유가 무엇인지 간단히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 정애가 승천하는 장면. 그리고 의외인지는 모르겠지만, 묘자가 박용재의 거처인 삼아여인숙에서 바깥의 소음과 불빛에 귀와 눈을 모으는 장면이라든가, 용순이 묘자집을 청소하면서 돈을 슬쩍하는 장면 같은 사소한 장면들도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소설에서 “미치지 않은 세상은 언제였을까”라는 구절이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책을 덮고 난 후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말이기도 했고요. 이 말을 지금, 현재 우리 사회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물음이겠지요?


-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한군데로 몰려가는 세상이 미친 것 같았습니다. 그런 나를 보고 누군가가 미쳤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세상이 미쳤다는 것의 의미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으로부터 이제야 겨우 ‘자리를 잡은’ 세상이 시작될 듯도 하고 말이지요.  




9정애가 사라지는 장면은 이 작품 전체 중 가장 서정적으로 읽혔습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던 장면이었고요. 바로 이런 대목에서 공선옥 작가의 힘이 느껴집니다. 공선옥 작가의 작품은 늘 해학과 활기, 그리고 희망이 있죠. 아프고 처절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작품에 활력이 깃들어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정말 말할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가 ‘남도’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를 키웠던 고장, 그 고장 사람들, 우리 동네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 중 정말 ‘학교 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본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세상에서 알아야 할 것은 다 알았습니다. 그리고 학교 물을 처음부터 끝까지 먹어본 사람들보다 훨씬 그 말과 행동에 활력이 있었지요. 제가 아마 그런 고장에서, 그런 어른들 밑에서 컸기 때문일 것입니다. 




 소설에 많은 인물이 나오지만 집필하시는 동안 가장 정이 많이 간 인물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정애일 수도 묘자일 수도 있겠고 혹은 숙자일 것도 같은데, 누구일까요?


- 물론 정애와 묘자입니다. 소설을 쓴 사람으로서 의외의 단역들에게 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소설의 첫 장에서 정애가 뽕 따가는 것을 야단치러 왔다가 고스란히 정애 말을 들어주고 앉아 있던 산 임자도 정이 가는 인물이었지요. 




소설 결말부의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힌 묘자와 또다른 한 여자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여자의 몸에서는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나고 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는 문장이 이 작품의 주제를 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소설의 결말을 쓸 때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는지요?


- 사실은 결말 부분을 미리 다 써놓고 다른 결말들을 계속 써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애초에 써놓았던 것으로 돌아왔지요. 그렇게 하는 과정 속에서 ‘그런 결말’을 내는 게 가장 순리에 맞는다는 확신이 굳어진 셈입니다. “이 세상 모든 냄새가 나고 또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라는 문장이 말해주듯, 이 세상의 모든 노래는 실은 이 세상의 모든 ‘진창’을 다 끌어안으면서도 또 그 모든 진창의 세상을 정화시켜주기도 하지요.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어쩌면 저 높은 곳,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곳에 있지 않고 아무도 보지 않는 우리 생의 가장 밑바닥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럴 것입니다. 




‘세살 정애, 열살 정애, 열다섯살 정애, 서른살 정애’와 같은 표현이 무척 인상적이었는데요, 시적으로 읽히기도 하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삶을 살아갈 때도 한 개인의 내부에 여러 나이대가 공존한다고 생각하시는지?


- 저에게는 아이가 셋 있습니다. 지금은 다 컸는데, 한참 클 때 보니, 그 아이들 속에 얼마나 많은 아이와 또 어른이 공존하던지요. 어린아이는 한없이 어린아이가 아니고 어른 또한 한없이 어른이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은 모두 제 속의 아이와 어른을 함께 품고 삽니다. 아이나 어른이나, 누구나. 




마지막 질문입니다. 살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약자의 삶에 눈을 두는 것은 분명 괴롭고 힘든 일일 텐데요, 앞으로의 작품활동도 이 같은 괘를 이어갈 예정이신지 궁금합니다.


- 제가 어떤 글을 쓸지는 저도 모릅니다. 일반론적으로 얘기하면 작가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쓸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문학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문학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사람들이 제 소설을 안 사주면 출판사에서도 저를 찾아주지 않겠지요. 그러면 저는 글쓰기 직업을 포기하고 다른 생계거리를 찾아야겠지요. 아아, 그럼에도 또 저는 이 세상의 삶을 글로 쓰고 싶어 하겠지요. 눈물겨운 이야기입니다. 한권의 소설책이 이 세상에 무슨 좋은 일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그 시대 사람들이 한편의 시도, 한권의 소설도 읽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모골이 송연해집니다. 

‘한국문학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가 있는 한 한국은 그런대로 ‘한국’일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국이 한국이 될 수 없겠지요. 한국문학에 애정을 보여주는 독자가 있어 한국에 한국문학이 있을 수 있고 한국문학이 있는 한은 한국이 한국일 수 있는 것입니다. 경제만 있고 문학이 없는 나라, 생각하면 쓸쓸한 일입니다. 그런 가공할 쓸쓸한 상태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 사람의 독자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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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그동안 작가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변두리의 인물을 데리고 우스꽝스럽고 위트 있는 서사로 슬픈 정경을 그려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에서는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을 받았습니다. 말과 말 사이의 간극을 표현하거나, 서사나 문장으로 감정 자체에 푹 빠지게 만들고, 그로 인해 이전보다 더 감성적인 부분이 풍부해지고 장난기가 많이 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런 변화의 계기가 궁금합니다. 

-독자 @manic_dodo 님


Q. 초기의 유쾌하고 밝은 느낌의 소설과 달리 최근 소설들은 무겁고 진지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작가로서의 시선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독자 @zancid 님



A. 저는 무거운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대체로 러블리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때론 이상한 인물들이 저를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 사람들은 인상을 박박 쓰고 있을 때도 있고, 실실 실성한 듯 허공을 바라보며 웃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되도록 그 사람들을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소설을 쓸 뿐입니다. 변화가 좀 있는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선 쉽게 말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이건 뭐 한두 개여야죠. 다만 이전 소설을 쓸 때보다 더 구체적인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거, 뭐 그 정도로 답변을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아, 그런데 이렇게 답변을 하다 보니, 제가 정말 김 박사가 된 듯합니다.   





Q. 주인공들의 이름은 어떻게 생각하시고 지으시나요? 글이 막힐 때 돌파구는? 

-독자 @soulvinstella


A. 주인공 이름은 옥편을 보면서, 뜻풀이까지 하면서 짓는 편인데, 결과적으론 튀지 않는, 캐릭터에 맞춤한 쪽으로 갑니다. 그래서 좀 촌스러울 때가 많아요. 글이 막힐 땐, 풀릴 때까지 의자에 가만히 앉아서 버팁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하면서... 그래서 쉽게 지칩니다. 





Q. 지금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방 속 혹은 주머니 속에서 가장 핫한 아이템은 뭡니까? 

-소설가 이은선


A. 잘 지내시나요? 우리 페친이지요? 저는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 주로 책 같은 건 손에 들고 다닌답니다. 주머니엔 담배와 라이터가 전부고요… 이거 참 아무것도 없네요. 그래서 이런 소설밖에 못 쓰는가 봐요. 아마, 안될 거예요, 저는…





Q. 소설집 출간을 축하합니다!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을 입고 담배를 사러 나간 청년이 꼭 이기호 작가 본인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서 질문. 만약에 글쓰기에 윤리가 있다면, 그건 어떤 것일까요?

-시인 오은


A. 최근 시집이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축하드립니다. 글쓰기 윤리까지는 모르겠으나, 소설 쓰기의 윤리는 있습니다. 제 이야기를 쓰지 않는 거지요. 저로부터 조금 멀어지는 글쓰기입니다. ‘윤리적인 팬티 한 장’의 주인공은 저와 가장 가깝지만, 사실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이기도 하답니다.





Q. 죽을 때까지 익명이 보장된다는 가정하에 소설을 한 편 쓴다면 어떤 내용의 소설을 쓰고 싶으신가요?

-소설가 정용준


A. 뭘 이렇게 어려운 걸 묻고 그러냐? 그냥 전화해라. 우리에게 익명이 보장된다면... 그 대상은 아마도 아내님들 아닐까? 





Q. ‘김 박사’가 누구인지 답해야 하는, 혹은 궁금해하는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을 해주세요. 더불어 앞으로의 작품 계획까지. 

-문학과지성사 편집부


A. 글쎄요, 꼭 답을 하라는 뜻은 아니고요, 작은 의도가 있었다면 독자들도 함께 소설을 쓰자는 뜻, 그 이상도 이하도 없습니다. 소설 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작가란 사람들도 그렇게 대단한 별종은 아니고요… 하지만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그 누가 되었든 조금 다른 인간으로 변하는 건 맞는 거 같습니다. 조금 구제되는 느낌도 들고요. 그 느낌을 전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미리 약속드리지 않고, 부지런히 쓰겠다는 말, 그게 전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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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을 오랜만에 쓰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떠신지요. 지금의 근황과 지금의 기분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세요!

 

이현수: (나흘)은 저에게 작가로서 한 분기점 같은 소설이에요. 매 작품이 그렇지만 특별히 (나흘)은 제  한계를 좀 뛰어넘고 싶었달까요.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넉넉히 투입해 쓴 소설이라 더욱 애착이 커요. 지금은 (나흘)을 막 떠나 보낸 터라 안에서 뭔가 쑥 빠져나간 것 같은 느낌, 그래서 돌아앉아 연쇄살인에 관한 또다른 장편을 쓰는 중입니다. 떠나간 애인을 빨리 잊는 방법 중 가장 좋은 것이 새 연애니까요.   

 

 

 

 

소설 <나흘>은 제목은 처음 들었을 때 독특한 생각이 들게 합니다. 소설을 읽어보면 나흘이 상징하는 바를 언뜻 알수 있었는데요. 하지만 이현수 선생님께서 생각하는 '나흘'은 무엇일까 궁금했습니다. 더불어 제목을 어떤 방식으로 정하시는지 궁금해요.

 

 이현수: 단적으로 말하면 (나흘)은 한국판 홀로코스트!  


그래서 첫 제목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 두번 째 나온 것이 "붉은 매미". 이 책은 기존의 전쟁소설과는 달리 웃기는 부분도 많아서 두 제목이 너무 무겁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여 마지막으로 나온 것이 "나흘". 

 

아니, 까놓고 말하면 동료들이 위의 두 제목을 듣고는  우-  하고 일동 합창하는 바람에 급히 (나흘)로 바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보다 제목 정하기와  인터뷰나 독자들과의 만남 같은 행사가 더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거 누가 대신해주면 참 좋겠다는 생각.     

 

 

 

이 소설은 조선 말에서 한국전쟁을 거쳐 현대까지 내려온 역사적 사실을 짚어가는 요소가 많습니다. 역사적인 사실과 소설의 접목을 많이 시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특별히 그런 작업을 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만약 이유가 있다면 그 동기가 되었던 부분이 궁금합니다!

 

이현수: 우리 모두가 역사의 물길에 발 담그고 있는데 어찌 근원을 외면할 수가 있겠는지요? 더구나 전  노근리 쌍굴을 오면가면 지나다녔는데  어찌 (나흘)을 안 쓰고 견디겠습니까.

 

십수 년 글을 쓰다 보면 작가마다 특별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쓸 수 있는 전문 분야가 하나씩은 생기게 마련인데, 저 같은 경우는 기생이나 내시가 그래요. 나흘에 나오는 조선의 마지막 상선 반종학을 쓸 때는 이상하게  파지가 한 장도 안 나왔어요. 꼭 내가 그 시절을 살아본 것 같은, 하여 내 전생이 몹시 궁금했던 게 기억납니다ㅋㅋ   

 


 

이 소설의 인물 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괴롭히고 매력을 느끼고 애착이 된 인물은 누구인가요? 그리고 그러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이현수 : 당연히 뻐들네.  (나흘)의 키포인트인 셈이죠.  비밀 속 주인공이기도 한 그녀는  비밀을 하나씩 풀어가는 진경에겐 최고의 훼방꾼이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죠. 내면에 천사와 악마의 영혼이 동시에 깃든,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인 사람.  일명 개눈깔이라고 불리는 의안과 산발한 머리, 육중한 몸 등 기괴한 모습의 뻐들네를 내가 이토록 사랑할 줄이야... 


 

 

선생님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 중에는 소설을 공부하고 소설을 쓰고자하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그분 들에게 소설쓰기의 괴로움과 소설쓰기의 즐거움을 공개해주세요.

 

이현수 : 소설 쓰기의 괴로움이라면 영감이 안 떠올라도 써야 하고, 안 써져도 책상에 앉아서 무조건 써야하는 것. (마치 줄 돈도 없는데 악질 채권자가 대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 대부분 이런 날들의 연속임)

 

소설 쓰기의 즐거움이라면 안 써져도 무조건 쓰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빨려들어가서  정신줄 놓고 쓸 때(이럴 때면 원고료가 적다는 생각도 안 나고 무한대의 자기 긍정, 세상의 모든 것들이 사랑스러워 보임. 아쉽게도 요런 날은 가뭄에 콩 나듯 함)    

 

 

 

6) 이현수에게 '나흘'이란?

 

이현수 : 날 알뜰히 파먹은,  아주 나쁜 애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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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분해> 이남석 저자의 서면 인터뷰를 소개합니다. 탐 출판사에서 제공해주셨습니다. | 알라딘 도서팀 김효선

 



 



전작 <뭘 해도 괜찮아>처럼, 지식소설로 독자를 만나고 계십니다. 다소 생소한 장르인데요, 소설 형식으로 하고픈 얘기를 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 지식을 팍팍한 정보의 덩어리로만 받아들이면 그 지식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소중한 기회가 아니라, 거추장스러운 머리의 짐만 될 확률이 더 큽니다. 가슴으로 감동을 느낀다면 머리에 있는 것을 발로 가볍게 실천할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라는 생각에 소설의 형태로 지식을 전달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똑똑해진 사람이 많은데도 힐링이 필요하고, 사회는 더 힘들어지는 것도 따뜻한 지식에 대한 섭취가 부족한 지식 편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더 촉촉한 것들을 뽑아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가님 본인을 연상시키는 캐릭터(작가인 아버지)가 두 딸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글이 서술되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어디서부터 출발했는지가 궁금합니다.

 

- 실제로 저의 38살에 맞이한 삶은 우울한 일상의 연속이었습니다. 마흔 이전에 뭔가를 이루고픈 생각에 저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고 고통을 주고 있었지요. 그런데 우울증을 이겨내고 폭발적으로 집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것은 이 책에 나온 것들을 제가 알게 되면서였습니다. 요즘 여러 강연을 하면서 진지한 모습으로 저를 대하는 청소년들을 보니 그때가 떠오르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제가 한참 우울증에 걸렸을 때 제 딸들이 제가 다니던 직장을 폭파시켜서라도 저를 웃게 해주고 싶다고 했던 말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래서 그냥 마냥 재미있는 글도 위로용으로 쓸 수 있었지만, 저는 당시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웃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리더군요. 오히려 정면돌파의 방법을 생각해서 문제를 직시하거나 예방주사를 놓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애들과 있었던 일들도 이야기로 집어넣으면서 저에게는 각별한 느낌이 있는 책입니다. 부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여러분을 주저앉히는 진창에서부터 벗어나기 바랍니다.

 

 

 

슬픔도 분노도 아닌, ‘따분함이라는 감정으로 청소년의 상처 난 마음을 들여다보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 우울증이 깊어지기 전에 그나마 극복할 힘이 있을 때 나오는 신호인, 따분함 즉 권태를 이해를 하면 우울증도, 극단적인 선택도 막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우울증이 생기고 나서야 고위험군 운운하며 처방을 하지만 그때는 이미 상처도 많이 받았고 자력으로 헤쳐 나오기가 힘드니까요.

 

 

 

미래를 준비하는 청소년기는 바로지금에 집중하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어려운 시기이기도 한데요, 청소년의행복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졌습니다.

 

- 청소년뿐만 아니라 어른도 사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입니다. 의무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행복이 목적이기 때문에 힘든 일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청소년이 알았으면 했습니다. 그래서 저의 책들은 겉의 주제는 모두 다르지만 결국 자기 삶의 주인이 되어 행복을 찾는 내용을 꼭 넣습니다.

 

 

 

따분함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대한 아이와 아버지의 대화를 오래 읽게 되었습니다. 원시인은 따분함을 느끼지 않았지만, 요즘 청소년은 따분함을 느낍니다. 예전 청소년보다 요즘 청소년이 더 자주 따분해하는 것 같은데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 중요한 것은 청소년 자신이 처음부터 뜻한 바 있어 따분함을 선택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결과를 정해놓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게 밀어내는 어른들이나 사회적 힘 앞에서 청소년은 적극적으로 달려나가는 기계가 되거나 적극적으로(어른들이 보기에는 소극적으로) 느림보가 됩니다. 둘 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그냥 행복과 멀어지는 길을 가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올바른 길을 가도록 힘을 줘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청소년에게 저처럼 용기를 주고 자극을 주는 동시에, 사회적 연대를 통해서 청소년이 숨 쉴 대안을 만들어 주는 노력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는 것도, 누구나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누구나 가장 예쁘고 잘생겨질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청소년들이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자신을 잘 돌봐야 하는 이유를 명쾌하게 찾을 수 있을까요

 

- 누군가에게 보여야 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가 누려야 하는 삶이니까요.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의미를 찾아야만 하는 삶이니까요. 자신조차도 구경꾼이 되어서는 진짜 자기를 내팽겨친 채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기웃거리게 되어 있습니다.

 

 

 

아픈 청소년에게 권하고 싶은 한 단어가 있다면, 그리고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 회복입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꼭 힘든 일을 만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이겨내면 더 강해지고 행복해집니다. 힘든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동화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아니 동화조자도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부디 힘든 일이 일어났을 때의 행동 방식을 미리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청소년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인데요, 청소년이 아닌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차기작 계획이 궁금합니다.

 

- 어른들의 삶의 선택에 대한 책을 낼 예정입니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 같은 책을 책에서도 추천해주셨는데요, 따분한 청소년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일까요?

 

-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이라는 책입니다. 삶을 행복의 기운으로 차오르게 할 실천 요령을 많이 구하기를 바랍니다. 결심을 하기도 힘들겠지만, 중요한 것은 결심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그 실행을 하려고 결심도 하고 책도 읽는 것임을 잊지 말아 주세요. 그냥 뭔가를 알거나, 아는 척을 하거나, 모른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서 책을 읽기에는 인생의 가치가 너무도 아름답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더 위대합니다. 모든 생명처럼요. 그것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기 때문에 행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자신의 가치를 맘껏 펴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분노하고 우울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행복의 길을 더 가기 위해서 노력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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