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어느 날이었던가 보다. 언니네 이석원 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치니님의 페이퍼에서 알고 무슨 선물이라도 받은 듯 기뻤던 며칠 후, 화면으로 볼 때보다 이쁘장하게 노랗고 외로워보이는 표지를 마주한 늦은 밤. 언니네 이석원, 나는 그가 '생일기분'의 가사를 쓴 사람이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줍잖이 동류,라고 혼자 생각한 지 벌써 십 년이 넘었다. 마음이 아주 잘 맞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듯 조금은 떨리기까지하며 책장을 넘기면서, 내가 쓴 거 아냐? 할 정도로 빠져들기도 했다. 허나 굳이 희망차게 잘 살 마음까진 없지만 이제 마냥 우울하고 싶지만도 않기도 해서, 아 정말 이 양반 가히 독보적이구나! 정도의 마음이 들 때쯤에는 고이 책장을 접어두고. 또 11월의 어느 날을 빌어 마지막 책장을 덮고나서는 괜히 반갑고도 심드렁한 마음이 되었던 것도 같다.   

 올해는 이상하게 10월부터 줄창 김광석 아저씨의 노래를 들어대기 시작했고, 그 중 유난히 '내사람이여'가 꽂혔고. 그러다 10월이 깊어지면서는 김현식 아저씨까지 합세해주셨다. 일찌기 '엄마야 누나야'의 소울메이트 쌍둥이 김소연과 고수를 보며 미션임파서블인 줄 뻔히 알며 심히 갈구했던 이 세상 단 한 사람의 내 '편'에 푹 빠져 있던 한참 전을 떠올리면서... '편'클럽을 창단한다는 아저씨의 클럽공연 소식을 접했고, 11월 11일. 얼마 만인지 기억도 안나는 아저씨의 작은 공연에를 난 여전히 아저씨 편! 하며 다녀오기도 했다. 허나 하도 오랜만의 근거리 목격이라 처음엔 어찌나 나홀로 어색하던지 고개만 빼꼼 내밀면 눈도 마주칠 것 같은 부담에 나도 모르게 초반 한참은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던, '세월이 가면'의 후렴구를 십수번을 반복하는 중에는 어찌나 눈물이 났으며 '바람인가 빗속에서'에서는 아예 줄줄 흘러내렸던.  

 초반 몇 쪽의 찐한 공감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그저그래~ 하고 덮어버렸던 이석원님의 책장에서는 '나는 친구 사귀는 법을 모른다'던가 하는 문장 하나가 기어나와 어슴푸레 마음 속에 박혀 떠다니기 시작했고. 11월의 어느 날, 단체가 속한 협의회의 진종일 교육이 끝난 후 2차 제안을 기어이 뿌리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온, 이웃 단체의 10주년 행사가 끝난 후 우르르 뒤풀이 장소의 문 앞에서 홀로 발길을 돌린, 매주 월요일 노동대학의 명실상부 3교시라는 뒤풀이를 학교 갈 때부터 오늘은 뭐라 그러고 도망가지? 고민하고 내빼는. 실은 여기저기서 이미 그런 지가 한참 된 나,에 대해 약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농담처럼 난 인종플루라고, 난 사람만 보면 피곤하다고 둘러대고 말았지만. 실은 둘러댔다기보다 정말 사람만 보면 피곤한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렇지만 11월 어느 날, '여행자'를 본 다음에도 '파주'를 본 다음에도 누군가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고. 그 전 10월 어느 날, '아마추어의 반란'을 본 다음에도 '굿바이'를 본 다음에도 난 누군가랑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실은 선생님의 새 책이 나왔다는 반가움도 누군가랑 나누고 싶었고, 프레스센터 20층에서 열린 이웃 단체의 10주년 행사가 시작되기 전 출간은 됐다는데 인터넷에는 뜨지도 않는 선생님의 책을 얼른 보고 싶어 무릎이 뻐근해지도록 잰 걸음으로 교보와 반디앤루니스와 영풍을 뛰어다녔지만 허탕을 치고 허탈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한 하소연도 누군가에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번 주 토요일, 이장혁과 연영석이 나오는 가슴네트워크 페스티벌을 정말 가고 싶었지만 이제는 나만 좋아하는 사람들의 노래를 듣자고 함께 가자고 할 누군가도 없어진 지 오래고. 그러니까 다시 내가 좋아하는 노래, 내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책 이야기도 누군가랑 하고 싶고. 뭐 많이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다. 

 와중에 석 달이 넘게 중환자실에 누워있던 베트남 친구 D를 오랜만에 만난 금요일, 정말 미안하지만 그야말로 죽어가는 사람의 모습이 이렇구나 싶었던. 너무나 힘겹게 몰아쉬고 뱉어내는 D의 거친 호흡, 거의 백 일을 아무 것도 맛보지 못한 말라 붙은 혓바닥, 짧게 깎은 머리카락 덕에 얼굴은 더 조막만해졌고 퉁퉁 불은 손과 발 때문에 팔다리와 상반신은 더욱 안스럽게 홀쭉해져버린. 그런 아들의 얼굴과 손과 발, 팔과 다리, 전신을 연신 주물러대며 행여나 들릴세라 귓전에다 쉴새없이 뭐라 말을 건네는 초췌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말이지 괴로웠더랬다. 그리고 친구는 그 날 밤 떠났다. 그리고 오늘, 백일 동안 급격히 작아진 몸은 한 시간 여 만에 가볍게, 가볍게 재가 되었다. 무상한 마음으로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오는 길에서야, 한 웅큼의 재가 되어 D가 담겨있는 분골함을 보고서야 이제 정말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실감. 그제서야 병원이며 공단이며 다니느라 함께 지하철을 타고, 택시를 타고, 걷고, 사탕을 나눠먹고, 되지도 않는 한국말 베트남말을 나누던, 살가운 그의 몸과 떠나버린 생명이 떠올라 줄줄줄 눈물이 흘렀다. 근데 너무너무 힘들어보였어, 정말정말정말 좋은 곳으로 가길 바랄께요. 라는 말만 속으로 삼키면서.

 이젠 정말 마지막을 준비해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을 마음 속에만 묵혀뒀던 글을 적고 인터넷에 올리고 하는 기계적인 일을 정말이지 실무자처럼 하고 있는 내가 심히 냉혈한인 것만 같아 삐죽 비소가 샘솟다가도. 파우치에 들어있는 그의 의료보험증, 아버지가 건넨 편지, 근 1년 동안의 이력이 담겨 있는 그의 상담파일에 눈길이 닿을 때면 또 금세 눈물이 고이는 내가 미친년이 아닌가 싶기도 하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혹은 내가 원래 어떤 인간인지가 도무지 정리되지 않는. 그냥 넌 지금 인종플루를 앓고 있는 인간이다, 라고 덮어두고 말아버렸던 뒤죽박죽, 11월. 떠난 사람에게는 떠나는 게 가장 큰 일이고,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시덥잖아도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게 또 가장 큰 일인가 보다 싶어버리는. 이주노동자의 친구,라고 했었지만 실은 별로 친구답게 해줄 수 있는 것도 없고. 마지막 가는 길에 값싼 눈물이나 몇 줌 보태주고는, 난 또 '내사람이여'를 줄창 들어대며 다정다감한 동류를 만나고 싶다는 이제는 소소할 수 없는 담담한 내 열망에나 애잔함을 보내고 자빠져 있다. 무척 해리스럽게도 난 이제 친구가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고, 실은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지도 도무지 모르겠는. 이석원님 식으로 말하자면, 참 더럽게 외로운 세상이 아닌가 싶은, 추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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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9-12-01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렵고 힘든 길 벗하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사람 보내는 게 그렇게 무미건조하고 애달프고 그래요...

나어릴때 2009-12-01 23:38   좋아요 0 | URL
고작 1년쯤 띄엄띄엄 만났던 저야 멀리 떠났던 아들을 잃은 아버님 심정에 비할 것도 아니지요. 사람 보내는 게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치니 2009-12-01 1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석원의 책, 읽은 소감이 저와 비슷하신 거 같아요. 그저 그래 하고 덮어두었는데 문득 어느 한 구절, 삐죽 하고 솟아올라요. 동감은 되는데 동류는 아닌 걸로, 제 마음 속에서 그리 미뤄두었었는지.

저도 오래전의 그 느낌처럼 작은 공연에 가고 싶기는 한데, 이제는 좀 엄두가 나지 않네요. 하지만 아저씨 입장에서는 그렇게 오랜 팬들이 찾아와주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기다려질 지도. :) 티비에서 봐도 늘 한결 같아서, 어떤 사람에 대한 희망을 품게 해주는 분 같아요.

<웰컴>이라는 영화, 아마도 이번 주에 개봉하는 거 같은데 전 이석원씨랑 대화하는 이벤트에 당첨되어 미리 봤어요. 이주노동자의 친구, 라는 부분에서, 이미 저보다 숱하게 많은 또 깊은 생각을해오셨을 나어릴때님이 보면 좋을 영화 같아서 추천합니다.

P.S. 인종플루^-^;; 나으시면, 더 많이 포스팅해주시고 자잘한 이야기 나눠요, 우리.

나어릴때 2009-12-01 23:47   좋아요 0 | URL
치니님, 이석원님의 글에는 조용한 공명의 힘 같은 게 있지 않나 싶어요. 마음에 들어왔는지도 몰랐을 만큼 요란하지 않은 게 또 마음에 들었답니다. '웰컴'은 서울 한복판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아 지레 아쉬워하는 중이구요. 아저씨는 그 옛날을 떠올리면 정말 상상할 수도 없었던 모습으로 한결 같으셔서, 여전히 고맙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뭐 그렇네요.
... 가끔 올라오는 치니님 글 덕분에 흔적없이 공감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고 있어요. 인종플루니 내뱉은 말들은 떠밀리듯 둘러싸이게 되는 사람들 말고, 정말 얘기 나눌 수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워 그런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답니다. 어제 그 정신에 페이퍼를 다 올린 걸 보면요. 반갑고, 고맙습니다...^^

2009-12-21 0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1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1 23: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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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17: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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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6 03: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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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7 2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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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3 17: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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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4 0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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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4 19: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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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8 00: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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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31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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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1-08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2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법무부의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집중단속이 또다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10월 8일, 단속의 신호탄인 양 우리의 오랜 친구 미누(Minod Moktan)씨가 잡.혀.갔.습.니.다.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그리고 가장 소중한 친구임을,
한국 정부는 아직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이주민들이 삶을 송두리째 뿌리 뽑힌 채로 낯선 고향으로 강제출국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만은, 그냥 보낼 수 없습니다.
우연히 걸음하신 분들께도 감히 부탁드립니다.
글을 읽어주시고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세요!
    

 

* 스탑크랙다운밴드, 앞줄 제일 오른쪽이 미누씨. 


 미누씨는 1992년 한국에 입국해 이주노동자로 살아왔고
 2003년 말 고용허가제 도입을 앞두고 강행된 대대적인 강제추방정책에 맞서
 85일 간의 성공회성당 농성에 참여한 이후,
 이주노동자밴드 StopCrackDown(스탑크랙다운)의 리더이자
 이주노동자의방송 MWTV의 미디어 활동가로 살아왔습니다.  
 불안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유쾌하게 할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 다니며
 열심히 살아온 당당한 활동가입니다.
 
 미누씨는 10월 8일 오전 10시 30분 경 출근 길에 서울출입국에 의해 표적단속되었습니다.
 법무부는 10월 12일부터 미등록 이주민에 대한 집중 단속을 예고해놓은 상태이고,
 이주 진영은 10월 8일 오전 11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단속 방침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할 예정이었습니다.
 기자회견이 열리던 바로 그 시간,
 서울출입국의 후문을 통해 미누씨는 보호실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12시 30분경 이례적으로 화성외국인보호소로 단속 이송되었습니다.

 기자회견이 끝난 뒤에야 미누씨의 단속 소식을 전해 듣고  
 MWTV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활동가들이 함께 화성보호소에서 면회를 하였습니다.
 미누씨는 가족도 돈도 다 버리고 자신이 17년간 살아온 한국 사회가
 자신을 한낱 불법체류자로만 취급하고 강제출국 시키려는 상황에 참담해 하면서도
 한국의 법무부에게 당당히 하고 싶은 말이 있고 보호소 안에서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밝혔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미등록 이주민에게 단속은 강제출국의 정해진 수순입니다.
 2007년과 2008년 서울경기인천이주노동자노동조합의 지도부들이 줄줄이 잡혀
 법적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구제절차도 밟지 못한 채 강제 송환되었고
 감옥과 마찬가지로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이주 진영은 애끓는 마음뿐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러한 불과 1,2년 전의 상황에 대해 미누씨도 잘 알고 있고 저희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 들어와 더더욱 위선적이고 차별적으로 향해가는 외국인 정책은 말할 것도 없고
 이제는 아예 대놓고 미등록체류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여론 역시 비등해지고 있습니다.
 너무나 좋지 않은 때에 명백하게 표적단속된 미누씨의 단속 소식을 전해 듣고
 저희들 모두는 황망함과 허탈함에 멍하니 무기력해지기도 했습니다.
 이주 진영의 동력이라는 것도 너무나 일천하고
 더구나 '다문화' 홍수 속에서 미등록 이주민 이슈는 갈수록 뒷전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대로 미누씨를 그냥 보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이주노조 지도부들을 보낼 때만큼 법무부가 서두르지는 않는 것도 같습니다.
 9일 저녁의 대책회의를 통해 다음 주 기자회견 일정이 잡혔고 탄원서를 돌릴 예정입니다.  

 미누씨가 한국에서 살아온 시간은,
 한국 사회에 본격적으로 이주민들이 유입된 역사와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이주민들이 들어와 더불어 살기 시작한 지 이제 불과 20년 남짓, 그 중 17년을 미누씨는 함께 살아왔고
 그나마 외국인력제도라고 불리울 수 있는 고용허가제가 도입된 2004년 이후 그의 삶은
 겉으로는 다문화와 사회통합을 외치며 뒤에서는 미등록이주민에 대한 폭력과 인권유린을 일삼는
 우리 사회의 기만적인 양면성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경계 위에서 불안하게 지속되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각지에서 열리는 다문화축제에서 노래 불렀고,
 곳곳에서 열리는 다문화교육에 선생님으로 참여했던 그를,
 단지 불법 체류를 했다는 이유로 이대로 쫓아 보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반기지 않는 한국 사회이지만 청춘을 바치고 열정을 다해 발 딛고 살고자했던 한 인간에게
 그렇게까지 파렴치하고 잔인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정부는 미누씨에게 이미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모멸을 안겨주었습니다.

 이주민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인 미누씨를 정부는 알아볼 수 없겠지만
 우리가 함께 지켰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앞으로 전하는 소식에도 따스하게 함께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너와 나 스탑크랙다운, 미누와 소모뚜 작사, 소모뚜 작곡  


노래가 안 나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likeamike/150071669283  


알고 있니 니가 웃을 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네가 노래를 노래를 부를 때마다 세상이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니 니가 머무는 곳에서 평화를 바라는 기도와 함께
아낌없이 따뜻한 사랑을 그대에게 그대를 위하여
이제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게 너와 내가 꿈꾸는 밝은 세상으로
웃으면서 살아가는 그 날까지 희망이 있기에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도 소중하고 아름다워
그 중에 함께 걸어 갈 너와 나 세상을 빛내는 너와 나
우리는 아름다운 선물인 걸 


대책위까페   >  http://cafe.daum.net/free-minu

스탑크랙다운 영상   >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256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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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월 8일 표적단속된 미누는 이런 사람입니다.
    from 번지없는로맨스, 2009-10-12 02:41 
      * 10월 8일 출근길, 서울출입국에 의해 표적단속되어 현재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중인 미누씨의 석방과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를 위한 까페가 다음에 열렸습니다.  > http://cafe.daum.net/free-minu * 미누씨의 표적 단속은 한 이주민 활동가에 대한 탄압일 뿐만 아니라 겉으로는 '다문화'와 사회통합을 외치면서 미등록 이주민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폭력 단속과 강제추
  2. 화성보호소에 수감된 미누, 그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from 번지없는로맨스, 2009-10-13 01:03 
      * 10월 8일 출근길에 서울출입국 단속반에 의해 표적 단속되어  현재 화성외국인'보호'소에 수감중인 미누씨의 석방을 위한 활동에 함께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미누씨의 석방과 미등록 이주민 합법화를 위한 까페가 다음에 열렸습니다.  > http://cafe.daum.net/free-minu     -
 
 
치니 2009-10-10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여전히 일하고 계시네요. 반갑고, 좋아요.:)

나어릴때 2009-10-10 22:14   좋아요 0 | URL
치니님, 잘 지내시죠? 정말 오랜만이예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늘 흘깃대고 서성대기만 하다가 간만에 올리는 글이 이렇네요. 환절기에 건강 조심하셔요~^^
 

  

 며칠간 우중충하게 이따금 비를 내렸던 하늘이 맑게 걷히고 따사로운 봄햇살 아래 4월의 마지막 날, 참사가 일어난 지 백일이 지나 다시 첫 날이 되었단다. 1월 하순 열렸던 외노협 총회, 회의 중간 쉬는 시간마다 우리들은 서울 한 복판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죽음의 소식을 거짓말처럼 나누었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고, 출발 준비를 하며 흘깃대던 아침 뉴스의 흡사 전쟁같은 장면들이 겹쳐 떠오르며 잠시 불길하고도 암울한 마음이 되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도 나가고 촛불도 들었지만, 속도전의 한국 사회에서 백일이라는 기간은 그 어떤 엄청난 사건도 묻어버릴 수 있는 길고 긴 시간이다. 한 쪽 마음 한 쪽 귀를 열어놓아도 생활에 묻혀 일에 묻혀 이따금 들려오는 소식들은 그저 익숙한 절망과 냉소를 불러올 뿐, 한 번 잦아든 마음의 불씨는 쉽게 발길로 이어지지 못했다. 무엇 하나 해결된 것 없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 자본과 공권력이 죽인 여섯의 목숨이 이렇게 잊혀져도 되는가 하는 무기력한 한숨을 쉬고 있는 나 역시 안타까이 외면하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 중의 하나일 뿐이다.  

 아주 가끔 조직이 고마운 것은, 혼자서는 하기 힘든 일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정현 신부님이 자리를 틀고 거리의 미사를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만 보낸 얼마 후 숙제하듯 '여기 사람이 있다'를 읽었고 그리고 용산에서 하루를 함께 하자는 제안이 날아들었다. 24시간 결합을 결정하고 하루 지낼 채비를 하는 가방은 담요와 겨울점퍼와 장갑까지 든든하게 자리를 잡아 불룩해졌다. 흡사 짧은 여행을 준비하듯 잔뜩 들뜬 마음으로 짐을 챙기는 스스로를 보며, 남의 불행을 동력 삼아서나 겨우 삶의 의지를 끌어내는 못난 인간의 얼굴이 겹쳐졌다.  

 햇빛 쨍쨍한 아침. 젊어야 사십 줄인 몇 분 말고는 그야말로 노인들이 지키고 있는 분향소와 천막, 남일당 건물 뒤의 호프집을 개조한 미디어센터 그리고 주변에 즐비하게 늘어선 선전물들이, 골목 안쪽을 채운 삭막한 철거의 잔해들과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흡사 대추리를 연상시키는 그곳에는 문정현 신부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고 이윤엽 작가와 함께 몇몇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또 국가에 의해 추방당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는 일군의 활동가들이 있었다. 오다가다 하루쯤 몸 대주기에 나선 자의 무기력한 낭만이 보탤 수 있는 건 무얼까.   

 줄줄이 막아선 전경들의 방패가 발길에 채일 때마다 유족분들은 속에서 끓는 부아를 외침으로 토해내기에 바빴다. 참사 이전에도 이미 몇 달을 용역들과 그리고 백일이 넘도록 경찰들과 마주치며 악다구니를 해대는 일이 이미 일상이 되었을 그분들, 이제는 일과가 되었을 경찰과의 대치에 끊임없이 분노하고 언성을 높이는 모습은 차라리 에너지가 들끓는 생의 현장인 듯 보였다. 한이 맺힌다는 건 아마 그런 것일테다. 죽음의 한복판에서도 쉼없이 끓어오르는 활력, 더는 갈 곳도 없고 더는 잃을 것도 없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눈물겹게 처절한 외침 같은 것들. 무표정한 묵묵부답의 그들, 아니 자본과 권력이 그분들에게 되돌려주는 침묵의 대답은 아마도, 없는 주제에 저항하는 것들은 살아남아서는 안 된다는 메세지가 아니었을까. 

 어찌어찌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염치 없는 노동절. 낯 모르는 이들의 방문을 집 나갔다 돌아온 자식의 귀가만큼이나 반겨주시던, 농성단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들을 붙잡고 지지방문 온 학생들의 연행 소식을 그리도 애절하게 전하시던, 달리 할 일이 없어 자처한 설거지에도 함박웃음으로 대견해하시던, 아침 선전전 나가는 우리들을 하염없이 정답게 바라보시던 그분들을 뒤로 하고. 고작 하루를 함께 한 나는 피곤에 지쳐버렸고 허리가 아프도록 온 종일을 자빠져 잤다. 그러고도 피로가 덜 풀려 범국민대회를 갈까 말까, 마침 날씨도 궂은데 어쩔까, 얍씰한 갈등을 하다가 차마, 어머님들의 얼굴이 떠올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도착한 토요일의 서울역. 

 자전거도 안 된다, 함께 가도 안 된다, 가면도 안 된다, 몸자보도 안 된다. 압도적인 물리력으로 농성단이 가는 곳마다 이중삼중의 포위망을 만들었던 그 경찰들의 짓거리는 차라리 귀여운 것이었다. 흡사 계엄이라도 선포된 듯 도로에 들어찬 새까만 공권력을 보고 있자니 아무 생각이 없어졌다. 현실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어이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것은 그저 냉소 뿐. '일반시민'도 아니고 시위대도 아닌 어정쩡한 정체성으로, 분노도 없이 열정도 없이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내 모습이 오히려 막막해졌다. 

 하이서울페스티벌의 풍물패와 섞인 시위대 속에 끼어 조우한 익숙한 얼굴들이 홀로 반갑고 시꺼먼 전경들이 작전을 수행하는 와중에도 연주를 멈추지 않은 거리의 악사들이 고마웠지만, 나는 그 흔한 항의도 외침도 없이 무기력하게 자리를 빠져나왔다. 무방비상태의 하이서울 무대를 점거한 시위대의 깃발도 내 것이 아니었고 페스티벌 중단 발표에 피어오르는 환호도 내 것이 아니었다. 전경들의 물리력을 시위대가 뛰어넘을 수 없듯이, 시위대의 물리력을 축제가 이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그저 물리력 행사의 악순환에 불과했던 건지도 모르겠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나는, 군중 속에 오롯이 섞이지도 못하고 심드렁한 나는, 역시 신명 없는 태생이라 그렇다고 자위하고 말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건 언제나 변함없이 용기 없는 자의 비겁한 변명에 불과할런지도 모르겠다. 침묵과 냉소는 결국 별로 절박하지도 전혀 순수하지도 않은 내가 보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반응일 것이다. 

 늦은 밤 돌아와서는 괜히 침울한 마음에 잔뜩 피곤한 몸이 되었고, 이래저래 몸과 맘이 밖으로 나돌았던 며칠 간의 후유증이 밀려왔다. 칼퇴근을 하고 돌아온 일요일 저녁부터 뭘 했다고 실컷 앓아 누웠고, 그리고 뭐가 어찌 되었나 접속을 해보니 남일당 건물 침탈 소식. 이래저래 교차하는 생각에 황망해졌지만, 아마도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다음 할 일을 모색하고 있을 것이다. 비극은 언제나 당사자에게 더욱 명료하고 곱씹을 여력이 있는 멀리의 사람에게는 그 안전한 거리만큼의 낭만과 감상이 개입하기 마련일테니. 어떻게, 쇠고기 수입보다 용산의 죽음이 이렇게나 아무 것도 아닐 수가 있냐고, 이제는 스스로에게 물어야겠다. 그리고 실은, 어떻게 함께 노래 부른 그들이 잡혀가는 모습을 그냥 외면하고 돌아왔냐고, 내 속의 내가 아프게 묻는다. 이렇게 사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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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5-06 0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에 들어오셨는데 힘들고 우울한 소식들이네요. 요즘은 도처에서 정말 어이없고 말도 안되는 일만 빵빵 터져대니 원... 그래도 나어릴때같은 님들 덕분에 세상은 아직 희망이 있다고 믿습니다. 제대로 힘이 되지 못하는 저같은 사람을 자책하면서요. 푹쉬세요. 그래야 또 내일을 맞죠. 세상이 늘 그러란 법은 없을테니까요.

나어릴때 2009-05-07 01:04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님, 정말 오랜만이죠? 사실 자주 들어오고 가끔 끄적이기도 하는데 늘 같은 넋두리라 스스로도 지겨워 안 올리게 되더라구요. 냉소만 늘어가는 것 같아 걱정이지만 그래도 와중에 한데 모여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 내가 뭘 했다고? 반성이라도 되니 아직은 희망이 있는 것도 같아요. 열심히 읽고 기록하시는 모습, 참 좋습니다.

에로이카 2009-05-0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아.. 이 반가움이란.. 여전히 멋지게 사시네요. 오랜만에 보면서.. 예전의 익숙했던 느낌, 어떤 부끄러움 같은 것을 간만에 느끼게 되네요. 이 부끄러움은 뭐랄까... 아직 힘으로 전환되지 못한 에너지랄까... 그런 것 같아요. 우리 모두 잘 삽시다. ^^

나어릴때 2009-05-07 01:07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님, 멀리서 잘 지내시지요? 실은 아주 개판으로 살고 있는데, 족족 드러내자니 너무 민망해서 오히려 침묵하게 되는 것도 같아요. 외면할 용기도 나설 용기도 없는 자의 난처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시국이랄까요..;; 그래도 뭐, 사는 동안 잘 살려고 애써봐야겠지요...^^

치니 2009-05-06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에요. 뉴스를 한 몇일 안보고 지냈는데 이런 글을 읽으니 참 염치가 없다 싶어요.
부디, 나어릴때님 건강 해치지 않기를, 겨우 그정도만 가만히 바래봅니다.

나어릴때 2009-05-07 01:09   좋아요 0 | URL
치니님, 하린군은 갈수록 늠름하게 자라는 것 같아요. 지겹게 흐르는 나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이렇게 멋진 성장의 시간이 되기도 하는 걸 보면 실은 세상은 공평한 것도 같구요. 꾸준히 읽고 쓰시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답니다. 요즘 감기가 아주 지독한데, 치니님도 건강 조심하세요...^^

2009-06-22 2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6-25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은 재래시장 입구 오래 된 건물 3층의 가정집이다. 바깥 계단을 통해 오르는 3층에는 부엌 딸린 한 칸 짜리 방과 그보다 조금 더 큰 한 집 그리고 크고 작은 네 개의 방이 있는 우리 사무실이 기역자로 나란하다. 바로 붙은 옆집은 사무실이 이사 오기 전부터 지금까지 쭉 같은 가족들이 살고 있고 부엌 딸린 한 칸 짜리 방은 내가 일하기 시작한 이후로도 이사가 잦았다. 가끔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할 때는 새어나오는 불빛을 보기도 했지만, 낮시간에 자주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나와 마주친 일이 거의 없었으니 그 집에 사는 사람을 알 길이 없었다. 

 지난해 가을 그 집에 누군가 새로 이사를 왔고, 며칠 후 점심을 먹고 담배를 피우다 기척과 함께 문이 열리기에 인사를 하려고 시선을 돌렸는데, 눈이 마주친 나와 그는 둘 다 순간 정지. 놀라고 반가운 마음에 OO씨! 라고 내가 먼저 외쳤던 것 같고, 내 이름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역시 깜짝 놀라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를 청했다.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여수참사의 부상자 중국동포 박OO씨였다. 며칠 전 이사를 온 사람들은 그의 친구 중국인 한족 부부라 했고 이 집을 자기가 소개시켜 줬다며, 예의 걸걸한 웃음으로 인사를 전했다. 세상이 이렇게 좁다니! 대다수가 한족이라 직접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던 여수의 부상자분들 중에서 몇 안 되는 중국동포였던 OO씨와 그의 아버지, 동생은 대책위 활동가들이 비교적 많이 이야기를 하고 친하게 지냈던 분들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만난 후에는 각자 사느라 바빠 거의 볼 수 없었지만, 언제 한 번 밥이라도 먹자는 인사를 잊지 않은 그가 중국에서 들어온 동생과 함께 사무실을 찾아와 점심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끔찍한 참사의 피해자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건장한 외양의 OO씨는 매일은 아니지만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했고, 이래저래 닥치는 어려움들에 대해 말하기는 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저 친구끼리 나누는 사는 이야기 정도로 받아들였을 만큼... 달리 도움을 청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 염려를 해주다가, 자기들은 힘쓰는 일을 하니 평소에도 많이 먹는다며 들어간 고깃집에서 잔뜩 시킨 음식값을 기어이 계산했다. 이건 정말 아니라고 박박 우겨댔지만 다음에 더 맛있는 거 얻어먹으면 된다며, 식당으로 불러낸 초면의 부인이 아예 작정을 한 듯 지갑을 열어 계산대로 향했고 OO씨와 동생의 얼굴은... 내가 비정상적으로 뻔뻔하거나 눈치 없는 인간이 아니라면, 진심으로 흐뭇해 보였었다.  

 솔직히 말하면 참으로 '거지같이' 마무리된 여수참사 이후, 현장에 내려갔던 활동가들은 나름대로의 상처와 죄책감과 굴욕감과 답답함 따위가 점철된 복잡한 심정으로 각자 자신의 삶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유족도 부상자도 없이, 대책위 활동가들끼리 모여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앞에서 치른 1주기 추모제, 그래도 제사는 지냈다는 자위 정도로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간 우리들. 그리고 2주기가 돌아왔고, 이따금 이주노동자 방송국 싸이트에 오르는 짤막한 기사를 통해 부상자분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목도하면서도... 다시 내 일상에 틀어박혀 상처와 죄책감과 굴육감과 답답함 따위에 무능력과 무책임과 무심함까지 얹어, 그렇게 지내왔던 것 같다. 

 여수에 함께 있을 때는 조금의 한국말만 할 줄 알았던 부상자 우OO씨는, 경상자라는 이유로 여수보호소에서 바로 청주보호소로 이감되었다가 우여곡절 끝에 보호일시해제로 나오게 된 분이었다. 보호일시해제로 나온 이후 여수로 와 몇 주간을 함께 지내는 동안, 다른 부상자분들과는 또 다른 사정이었기 때문에 각별하게 챙기며 친해지기도 했고, 똑같은 한국말임에도 의사 말은 못 알아듣고 내 말은 그런대로 알아들어주셨던 덕에 이런저런 상황에 지쳐가던 내가 적잖이 마음의 위로를 받기도 했다.  

 그에게 연락이 온 건 여수참사가 있었던 해의 8월 어느 밤. 시큰둥하게 끌려간 다문화캠프의 발랄한 프로그램에 질려 딴청을 피우던 참에 '나는우OO입니다너는어디에있습니까잘있습니까' 하는 문자가 도착했다. 정말 놀라고 반가운 마음에 전화기를 들고 나와 OO씨와 통화를 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잊지 않고 안부를 전해 온 그가 너무 고마웠다. 이후에도 가끔, 주로 명절이나 연말연시가 되면 서로 인사를 전하며 언제 만나서 밥이라도 먹자고 몇 번이나 말했었지만 그는 주로 아산, 청주 등지에서 지내며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료가 있을 때만 어렵사리 서울을 들렀다가 급하게 내려가는 처지였다. 

 한동안은 그렇다고 내가 멀리까지 찾아갈 형편이 안 되었고, 논문을 끝낸 후에는 병원 진료날에라도 가서 꼭 만나야겠다 마음을 먹었는데 막상 12월 진료일자를 물어 혼자서 계획을 하다보니, 어쩌면 예닐곱 부상자분들과의 집단적인 만남으로 일이 커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부담스러워지는 게 사실이었다. 다행인지 뭔지, 12월에 병원 오실 때는 꼭 연락해 달라고 당부를 했었지만, 성탄 즈음이었던 진료예정일에 OO씨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그 이후에 설을 앞두고 그에게서 날아온 '새해복많이받아세요내일중국에가려고해요OO씨무엇선물을필요합니까'라는 깜찍한 문자가 마지막 전갈이었다. 선물은 안주셔도 괜찮고 돌아오면 꼭 만나기나 하자고 답을 했지만, 그는 아직 중국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어쩌면 아주 오지 않을런지도 모르겠다. 

 2월 10일과 11일, 외노협 강당과 서울출입국 앞에서 열린 두 차례의 기자회견에서 박OO씨를 비롯해 대여섯 분의 부상자들을 만났다. 기자회견이 시작되기 전 외노협 앞마당에 모여 계시던 아저씨들과 오랜만에 인사를 나눴다. 여전히 말은 거의 통하지 않았지만 낯선 사람들 틈에서 발견한 아는 얼굴이 반가우셨는지 모두들 활짝 웃으며. 그 잠시간은 2년 전의 슬픔보다 예기치 않은 반가움이 훨씬 컸던 것 같고 오래된 친구와의 재회라도 되는 양 괜히 마음이 떨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내내, 마음이 떨려왔다. 아저씨들이 나직히 토로하는 참사 이후 일상이 되어버린 고통과 절망과 불안에, 비대위라는 이름으로 오갔던 수십 명의 활동가들이 무심히 잊고 지내는 동안 고군분투하며 그들을 수발해온 구로이주여성상담소장님의 호소에, 몸과 마음이 떨려왔다. 가끔씩 우OO씨와 연락을 주고 받고 박OO씨와는 만나기까지 했으면서도 그럴 때마다 감상에만 젖어 그들의 어려움을 살피기는커녕 여수의 추억(?) 따위나 곱씹고 곧 잊어버렸던 내 모습이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 아무 말도 나오지가 않았다.   

 오늘 다시 만난 아저씨들은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도 2년 전 함께 있었던 우리들의 무관심과 외면 같은 건 안중에도 없는 듯 반갑게 웃고 고맙다는 인사를 빠뜨리지 않으셨다. 하나같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 받고 있는 아저씨들은, 참사 이후 모두 중국으로 출국했다가 치료 목적의 비자를 받아 개별적으로 입국해 생활하고 계시다. 치료 목적의 비자를 발급받았으니 합법적으로 일할 수 없고, 체류비가 지원되는 것도 아니니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여수참사로 인한 증상과 질환에만 진료 지원이 되고 의료보험도 없으니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발생하는 추가 증상들에 대해서는 진단을 받을 엄두조차 낼 수 없다. 취업 비자가 아니니 어렵사리 일을 구해도 불이익을 받기가 일쑤고 마침 경기도 안 좋으니 일이 있다면 저 멀리 지방까지 갔다가도 한 달에 한 번 모여 진료를 받는 날에는 어김없이 서울을 향해야 한다. 애초 3년의 체류를 약속했던 법무부는 꼴랑 6개월, 3개월씩 비자를 연장해주면서 아프지도 않은데 왜 안 나가냐는 둥, 이번이 마지막 연장이라는 둥 모멸감을 잔뜩 퍼붓고 그나마도 요즘에는 2개월, 2개월 미만으로 비자 기간을 단축하며 아저씨들을 압박하고 있다. 

 아저씨들은 물론이요, '까지 외면하면 저 사람들이 살 수 없을까봐' 함께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부에 지원을 요구할 근거들이라도 모은 게 되어 다행이라는 구로여성상담소장님을 볼 낯이 없었지만, 그마저도 한낱 감상일 뿐이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자위하는 것도, 혼자서라도 무엇이건 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것도 공허하다. 지금 마음이 이렇다한들 당장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고,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평생 안고 살아가야하는 아저씨들의 남은 삶에서 법무부가 한국 체류를 허한 기간은 이제 고작 1년 남짓일 뿐이다. 고군분투해왔던 몇몇의 지난한 인내와 잊고 지냈던 많은 이들의 착잡한 반성이 2주기에 만났다. 함께했던 모두, 오늘의 마음... 누군가의 삶을 누군가가 책임질 수는 없겠지만, 무기력하게 돌아서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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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2-12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다고 자위하는 것도, 혼자서라도 무엇이건 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것도 공허하다-> 이 말이 너무나 공감 되네요.

나어릴때 2009-02-13 02:21   좋아요 0 | URL
치니님, 괜히 거창스럽지만... 살아간다는 거, 결국 매순간 엄습하는 공허를 딛고 움직이는 일이 아닐까 싶어졌어요. 손 내밀고 싶게 반가운 공감은 아니지만, 그 공감... 알 것 같아요.

2009-02-16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7 0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1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3 0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2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23 0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시 새해다. 연말 무렵이면 무심히 틀어놓은 텔레비전 속 각종 시상식의 번잡스러움을 흘깃거리며 또 한 해가 가는구나 하는 생활이 익숙해졌다. 매일 맞는 아침, 해넘이 다음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냐 싶으면서도 열 시가 다 되어 돌아온 집에서 허겁지겁 청소기를 돌리고 쓰레기를 치우고 욕실을 청소했다. 마땅히 챙길 송년회 하나 없이 심드렁하게 맞는 새해지만, 사람들이 나누어놓은 시간의 마디에 기대어 슬쩍 주변을 정돈하고 무언가 시작하고픈 알량한 의욕이 나름 충천하는 중이다. 논문 쓴답시고 손 놓고서 개판을 만들어놨던 집안 정돈에 무려 홈파워 매직행거 세트씩이나 사들여가며 옷가지들을 정리하느라 이삼일 연속 노동의 새벽을 보낸 끝에 입술이 부르터버렸다.   

 ... 에 더해, 무어라무어라 두서없는 페이퍼를 끄적이다가 송구영신 예배를 마치고 멀리서 달려온 친구와 짧게 눈을 붙이고. 운문사와 불국사 그리고 감포의 바다로 이어지는 짧은 여행으로 2009년이 시작되었다. 여행이라 이름할 수 있는 떠남에 대한 감격은 생각보다 몹시 커서, 오래 마음에 담아왔던 겨울 햇살 내리는 호젓한 운문사는 물론이요, 그야말로 나는 관광지라며 위용을 뿜어내는 불국사 경내를 줄지어 다니는 일에서조차 나는 시시때때로 즐거웠다. 혼자 하는 운전으로 일찍 지쳐 잠들어버린 친구를 곁에 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문명의 우울'이며 '여행할 권리'의 책장을 넘기는 여유는 또 얼마만이었는지. 

 오래 끌어왔던 일 하나를 마무리하며 맞은 새해는, 몇 년 간 잠재해있던 각종 의혹과 의욕을 끌어올리는 힘센 놈이기도 해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한꺼번에 새어나오는 마음의 소리를 추스르는 일에 적잖이 진이 빠졌다. 마침내 설연휴의 마지막에 이르니, 새해라고 뭐가 얼마나 달라질까 싶으면서도 그냥 이렇게 살아서야 되겠는가 싶기도 하고. 묵직한 부담감을 벗어던진 후 너덜하게 나자빠져 보내는 시간들을 끊어줄 고마운 방점이다 싶기도 한데. 와중에 너무 무거워진 몸을 일으켜 세울 일이 생각만 해도 진심으로 고단하니 나이를 먹기는 먹은 모양이다.  

 아무려나. 살아보겠다고 무려 33개월의 계획을 세뇌하고 덥썩 학원은 끊어버렸고. 늘 있는 자리에 매몰되지 않겠다고 노동대학도 등록할 예정이고. 외로움과 심심함을 분간 못하는 경망스런 태생을 견디지 못하고 몇 년만에 만난 후배와의 밤샘 수다에서는 또 주책스런 발설을 참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은 이 모든 일들에 앞서 스스로를 압박해왔던 자승자박에서 이제는 놓여났다는 것인데, 나로 말하면 언제나 말은 한없이 가볍고 삶은 한없이 무거웠으니... 과연 습관처럼 진저리를 치면서도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겠다는 포부(?!)가 올 한 해 어떤 무늬로 그려질런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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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9-01-27 0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가.워.요.. ^^

나어릴때 2009-01-28 01:54   좋아요 0 | URL
rainy님~ 여전히 새벽에 깨어계시나요? 정말 반가워요!
얼마 전 눈 많이 온 날도 사진 찍으셨는지 모르겠네요...^^
지연양과 더불어, 잘 지내시는 거지요?

에로이카 2009-01-27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는 그저 1년마다 돌아오는 새해가 아니라, 나어릴때님께는 정말 "새" 해일 것 같아요. 한 일을 마무리지으신 것 축하합니다. 그리고 이것저것 다 좋은데, 회색노트 독자에게 신경쓰는 한해가 되었으면 ... 이라고 말하면 저의 너무 큰 욕심이련가요? 에헴... 흠... ^^

나어릴때 2009-01-28 01:57   좋아요 0 | URL
에로이카님, 그렇습니다! 실은, 그렇게 됐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새.해. ^^
저야 뭐 워낙에 발설형이니, 목을 죄는 일이 없다면 또 다시 주절거리겠지요.
에로이카님도 이따금 음주페이퍼라도 남겨주셔요, 예전 '아홉살 인생' 같은 리뷰도 대환영입니다..ㅎㅎ

치니 2009-01-27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은근한 희망이 느껴지는 페이퍼에요. 저도 에로이카님 말씀대로 욕심 좀 냅니다. 에헴, 올해는 이 쪽 독자들도 신경 좀 써주삼! ㅎㅎ

나어릴때 2009-01-28 02:01   좋아요 0 | URL
치니님, 맘 속에 품고 있는 은근한 희망이 느껴졌나요?
꾸준히 읽고 쓰시는 일상의 주인공 치니님을 본 받아 이제부터는 저도...^^

로드무비 2009-01-27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헴...신경 좀 써주삼.3
(특히 로드무비.=3=3=3)

이 아침 나어릴때 님의 반가운 페이퍼가 올라와 있네요.
건강하시고, 좋은 일로 풍성한 한 해가 되시길.

나어릴때 2009-01-28 02:05   좋아요 0 | URL
로드무비님, 마음으로는 항상 신경쓰고 있는데... 거짓말 같나요? ^^;;
작년엔 정말, 이따금 올라오는 로드무비님의 반가운 페이퍼조차도 제대로 음미를 못하며 지냈네요. 올해도 로드무비님은 열심히 읽고 보고 하실테니,
그 아련한 공감들이 현재형이 됐으면 좋겠답니다! :)

조선인 2009-01-28 08: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어릴때님, 당신의 정열이 한없이 부러워지는 아침입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무엇보다 건강을 챙기시길!

나어릴때 2009-01-29 01:16   좋아요 0 | URL
조선인님, 오랜만에 뵈어요. 잘 지내시지요?
충실한 일인다역 조선인님꼐서 정열이라 하시니 민망하네요..ㅎㅎ
마로,해람이,옆지기님과 함께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

2009-02-06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2 0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6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2-17 06: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