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얼마나 함께 - 마종기 산문집
마종기 지음 / 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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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얼마나, 

함께. 

 

이들은 떨어져 있을 때면 외로우나, 붙여 쓰면 다정한 포옹과도 같은 낱말들이다.

 

그는 의사였지만 가운을 입기 전부터 시인이었다. 

황동규, 김영태 등과 함께 80년대 서정시 바람을 몰고 왔던 시인 마종기가 아득히 떨어진 이역만리에서 삶을 돌아 보며 44편의 짤막한 후일담을 묶어냈다. 방사선과 의사로, 우리 말을 매만지고 발음하는 시인으로 마종기는 긴 시간을 살아냈다. 그곳에서 모국어에 대한 정겨움과 그리움이 알 수 없는 화학작용을 일으켰으리라. 그가 두 가지 일중 어느 하나라도 놓쳤더라면 불행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생업과 시는 그냥 한 몸의 지체일 뿐이다, 적어도 마종기에게는.

 

이 시인의 산문집은 수식의 관(冠)을 내려 놓는다.

꾸밈이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다. 천성이 진솔한 그에게 정치적인 편향성이나 격문을 기대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는 다만 먼 곳의 떠돌이였고, 때로는 정신적 유배자였다. 시인의 삶을 살아내면서 그 유형지는 삶의 터전이 되었으며, 안온한 양식의 거처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 우리 말이 넉넉치 못한 자식들을 안타까워 한다. 시인의 자식들의 모국어까지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로되 그 부끄러움은 다만 속절없어 보였다. 

 

세상을 떠난 아버지(아동문학가 마해송 선생)의 뼈를 거두어 수목장을 치르는 시인은 깊이 슬퍼한다.

임종을 지킬 수 없었던 그에게 아버지란 이름은 도저히 잊을 수 없는 가르침이었고, 이제는 미완의 원고 처럼 남아 슬프게 한다. 그가 대학생이던 어느 밝은 달밤, 홀로 눈물 흘리며 라디오의 음악을 듣던 아버지를 그는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교교한 달빛 아래 흰 박꽃을 보시며 옷소매로 눈물을 황급히 훔쳐내던 아버지..

 

아버지가 내게 보낸 마지막 우편물은 돌아가시기 보름 전쯤 쓰신 것인데 맨 마지막 줄은 이렇게 끝이 난다.

"인생이 뜬구름이라지만 남의 나라에서 호강 호사한 생활은 더한 뜬구름이다. 수입이 없어 의식이 불편하더라도 내 나라에서 사는 것만도 애국하는 태도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p.134)

 

시인은 기막히게 바빴던 병원생활 중 틈만 나면 한동안은 화장실에서도 울었고 병원 옥상에서도 울었다.

내가 따뜻한 영혼을 가지고 한평생을 살고 싶다면 남보다 많이 흘리는 눈물을 부끄러워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p.080)

 

맑은 술 한잔을 앞에 두고 두런두런 풀어내듯 그의 글들은 너털웃음 처럼 맑다. 

진정성이야 말로 시든 산문이든 두루 통하는 미덕이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이 짐작했던 그대로다. 그의 시도 산문도 부유한 은퇴의사의 감상이 아니라 떠돌이의 삶에서 존재의 의의를 묻는 깊은 성찰임을 김현은 믿었다(마종기 시선/모여서 사는 것이 어디 갈대들 뿐이랴 p.80) 


그 믿음에 기꺼이 공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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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쩍하는 황홀한 순간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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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는 후기에서 돌로 쌓는 성벽으로 언감생심 자신을 비유한다.

어디쯤에선가 그가 진짜로 성벽을 쌓는 중이라면, 도시락을 싸들고 가서라도 말려야 한다. 대략 웃다가, 대략 농담 나누다가 어느덧 부실시공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충분하므로. 이 책을 읽기 직전에 읽었던 산문집이 <즐겁게 춤을 추다가>였다.

맞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갑자기 와락 달려들거나, 얼음장이 되거나 뭐 그런게 세태 아닌가.

즐겁게 성을 쌓다가 성석제는 이런 말을 할 지도 모른다.

 

이 성이 아닌가 보네..

 

커버에는 분명 소설이라고 쓰여 있는데, 대체 228쪽의 한뼘 키를 지닌 책에 어떻게 소설 32편을 우겨 넣는단 말인가. 

아무래도 좋다. 소설이든 소설 아니든. 

소설과 수필 사이에서 길을 잃은게 틀림 없긴 하지만, 그냥 모른척 읽기로 한다. 

얼토당토 않은 책이므로 뒤쪽 작가의 말 부터 읽기로 했다. 

 

내 인생은 순간이라는 돌로 쌓은 성벽이다. 어느 돌은 매끈하고 어느 돌은 편편하다. 굴러내린 돌, 금이 간 돈, 자갈이 되고 만 돌도 있다. 아래쪽의 넓적하고 큰 돌은 오래된 것들이고 그것들이 없었다면 위쪽의 벽돌들 모양이 우스꽝스러웠을 것이다. (중략)

순간이여, 알아서 쌓여라. 누구든 나를 대신하여 쌓아다오. (중략)

나는 안다. 내 성벽의 무수한 돌 중에 몇 개는 황홀하게 빛나는 것임을. 또 안다. 모든 순간이 번쩍거릴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겠다. 인생의 황홀한 어느 순간은 인생을 여는 열쇠구멍 같은 것이지만 인생 그 자체는 아님을.

 

아마도 성석제는 글을 잘 쓰기 훨씬 전에 말을 잘 했을 것이다.

 

당신이 굳이 성석제를 몰라도 좋다. 길을 걷다가 혹은 어딘가 무심코 앉았다가 누군가가 갑자기 말을 걸어 올 때가 꼭 있다. 당신이 궁금해 하지 않아도 그 '누군가는' 이런저런 말을 흘린다. 그 말은 딱히 소용되지도 않고 딱히 감명 깊지도 않다. 그저 두런두런, 수런수런 건네지는 말. 사람 좋은 얼굴에서 내비치는 안도감. 어느 틈인가 당신의 말이 '누군가'의 말과 얽혀들어 흠칫 놀란다.

 

성석제는 이 책을 그렇게 썼다. 

 

묘한 것은, 그의 말이 눈부시게 신선한 법이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맞닥뜨린 상황은 주의력이 좀 없어서 그렇지 우리가 드물지 않게 만나게 되는 상황이다. 그 이야기를 성석제는 능청스럽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처럼 풀어낸다.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웃겨서. 아니 대개 어처구니가 없어서.

(아~ 또 당했다. 그의 초기 소설집이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였다. 그가 선점한 황당함의 영토는 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내가 성석제 보다 더 웃길 수 있다고 강변하고 싶지만,

그 이전에 성석제 같은 친구가 있다면 마음의 무채색이 얼마쯤 옅어질 거 같다.

(솔직해 지자) 아니, 그냥 쫓아 다니면서 밥 먹여 가면서 웃긴 얘기 하나만 해 달라고 조를 거 같다. 


질식 권하는 사회에서 숨을 쉬고 싶다면, 이 오십대의 중후한 '남자 세헤라자데'를 불러야 한다. 천일야화든 만일야화든 당신의 수중에 들어 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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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깎기의 정석 - 장인의 혼이 담긴 연필 깎기의 이론과 실제
데이비드 리스 지음, 정은주 옮김 / 프로파간다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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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연필을 손에 쥔 적이 있던가?

쉽지 않은 질문일 것이다. 연필을 쥐기에 우린 너무 앞서 나갔으니, 이제 그 손에는 스마트폰이나 마우스가 쥐어져 있을 뿐이리니.

 

최초로 연필의 장문인이 된 사람은 문자 그대로 <연필>을 썼던 건축공학자 헨리 페트로프스키였다. 페트로프스키? 그래, 공학자인지 작가인지 도무지 구별이 안되던 그 분. 그가 연필의 전생애를 뒤집고 펼치고 분석하는 방법을 취했다면, 데이비드 리스는 한 자루의 연필이 함축하는 본성과 형질, 그리고 그 심리상태(연필이 살아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리스의 말을 따라 듣다 보면 흡사 그런 것 같다)를 들여다 본다. 그에게 연필은 인생을 목도하는 하나의 눈이며, 연필을 깎는 행위야 말로 시각으로 인식되는 세상으로 출정하는 예배와 같은 것이리라.

 

저자가 지나치게 과장된 몸짓을 한다고 여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니, 그게 첫 눈에 대면하는 이 책의 솔직한 민낯이다. 

과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들거나 끝내 혀를 차게 만든다. 이거 왜 이래 이 양반이.. 이를테면 이런 대목을 만났을 때 말이다.

 

"향나무 연필을 전동 연필깎이의 목구멍 속으로 집어넣는 것은 공기인형과 성교를 나누는 것에 비할 만큼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p.132) 13장 전동 연필깎이 사용법에 나오는 각주의 설명 부분이다. 그런데 이 장이 진짜 '전동 연필깎이를 잘 쓰는 법'을 말하리라 짐작한다면 어이없는 오산이다. 그렇게 순탄하려면 이 책을 뭐하러 썼겠는가?


애초에 그의 준비물은 나무 망치와 보안경이었다. 이제 챙 넓은 모자까지 잘 차려입은 한 사내가 마을 순찰에 나선다. 친절한 사진들은 정색을 한 그가 거침없이 창문을 통해 난입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동 연필깎이를 단죄하기 위해서, 아니 그 집을 불길한 물건으로 부터 구원하기 위해서. 정교한 과정을 거쳐 6단계 작업 착수. 이제 보안경을 쓴 그는 있는 힘껏 망치로 그 미물과 작별을 고하리라. 친절한 마지막 부연도 값지다. "만일 나가는 모습을 동네 아이들 한테 들켰을 경우,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 선물로 연필을 깎아주겠다고 회유하면 된다." 

 

때로 짐짓 위악적인 체취를 풍기는 이 책의 즐거움은 작심하고 펼쳐놓는 다 큰 어른의 진지함이다. 한 자루의 연필은 어느덧 그 쓰임새 조차 위협받는 유년의 분신 혹은 유물 같은 것으로 남았으나, 저자에게 연필은 이미 글자를 생산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기 바깥의 세계와 교감하는 사색이고 성찰이다. 그걸 농담으로 받아들이거나 쇼로 치부한다면 저자에게 모욕이리니, 애초에 이 책을 내려놓는 편이 낫겠다. 연필을 깎기 전, 준비운동으로 몸을 푸는(몇가지 단계가 사진으로 설명된다) 경건함을 이해 못한다면 당신에게 연필은 한낱 흑연을 품에 안은 100원 짜리 필기도구일 따름이다. 

 

추천사를 쓴 어느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저자가 연필 한 자루를 깎아주고 받는 '장인 정신의 사례비'는 35달러다. 

아니, 연필도 몽땅 땔감에 보태서 방을 덥히거나 지우개 수프라도 끓여 먹어야 할 판에. (위의 작가의 표현이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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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대 오페라 - 교과서 속 천재 음악가가 들려주는
나탈리에 폰스 지음, 카를레스 아르밧 그림, 배상희 옮김 / 주니어김영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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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6대 오페라란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는데.. 이런 식의 무분별한 작명은 좀 피하는 편이 나을 거 같긴 합니다. 연간 공연 횟수로 따져 보는 세계 몇대 오페라, 이런 것은 그나마 가능하겠죠. 그러나 여기 거론된 오페라들은 그런 기준에서도 조금 들쭉날쭉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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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아이 사이 우리들사이 시리즈 1
하임 기너트 외 지음, 신홍민 옮김 / 양철북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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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냥 마스터피스다. 덧붙일 말이 없다. 부모와 아이 사이의 대화에 촛점을 맞춘 책, 우리는 대부분 잘 몰랐을 뿐. 모든 육아서의 앞자리에 놓여져야 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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