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야간 손님에게는 물건을, 서점 손님에게는 꿈을 파는 것같았다. 꿈을 팔 때는 마음을 채굴하는 기술이 필요했다. 큰따옴표의 꺼풀을 벗겨 작은따옴표 안의 속마음, 작고 세심한 부분을 바라보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했다. 몸짓과 표정으로 말하는 사람도있는 반면 속내를 감추는 히키 같은 사람들도 있어 재밌지만 어려운 일이었다. 개성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건 새로운 세상을 배우는 일이었고 난 이 관찰이 별을 보는 것만큼이나 흥미로웠다. - P113


물론 최고의 복지는 틈틈이 책을 읽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작가가 숨겨놓은 은유와 상징에서 보물 같은 해석을 찾아낼 때면 마치함께 호흡하는 듯했다. 내 현실과 소설의 상황을 직조해 새로운 이야기가 탄생하는 놀라움, 나아가 다양한 주인공을 내면화하면서이해와 경험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른이 된 기분. 내 세상은 타인이 유입될수록 커졌다. 자유자재로 모양을 바꾸는 터지지 않는 풍선같이 시가 들어오면 움직이는 시가 됐고 불의에 맞서는 주인공이 들어오면 눈에 불을 켠 영웅이 됐다. - P1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좌파의 신화는 뼛속까지 빈곤하게 남아 있다.
그들은 계속 노력해 신화의 접착성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그러려면 몇 가지 사실을 잊어야 한다. 1925년에 일어난 교회테러 공격을 잊는다. 쿠데타가 일어날 때마다 곧바로 살해되어 집단 매장된 사람들을 잊는다. 구타를 당하고 억센 장화에짓밟히고 수용소에 감금된 사람들을 잊는다. 감시받고 기만당하고 소외당하고 금지당하고 경멸받은 이들을 잊는다.…………모든 이를 잊어야 한다. 그런 다음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 잊는 일에는 상당한 노고가 따른다. 무엇인가를 잊어야 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기억해야 하니까. 분명 모든 이데올로기는 그렇게 작동한다. - P3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5월의 해질녘은 저항의 오후에서 남은 흔적을 가리기 위해 미묘하게 애쓰고 있었다. 보리스의공원 밤나무들 위에 걸린 국기조각, 빈병, 신문,포장지...... 매번 혁명이 일어날 때마다 쓰레기는 누가 다 치우는지 나는 모른다.
282 - P282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자연의 어김없는 위안은 남을거라고 믿는다. 봄은 항상 오고 여름, 가을에 이어 겨울이 오고 또다시 봄이 올 것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보장되지는 않는다. 여담이지만, 켈트족 사람들은 세계 종말의 초기 징조 중하나가 뒤죽박죽된 계절이라고 한다. - P28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기분이 나쁘면 티가 나는 사람이다.

그래도 집에서 화가난 걸 사무실에서 티내지는 않고, 사무실에서의 스트레스를 집에 갖고 가지는 않는다.

물론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래도 차분한 성향에 더 침체되어 있을수밖에 없으니 티가 나기는 하겠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을 빼고는.

아니.

그보다는 아이들이 자기 기분내키는대로 떼를 쓰듯이 자신의 기분을 표현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 엄밀히 말하자면 '어른'이 아니라고 치부하면 되겠지만. 엊그제 유퀴즈에 나온 장원영에게 '참된 어른'을 물었더니 '참된 어른이 있을까요?'라는 말을 해서 좀 뜻밖의 느낌을 가졌었는데. 22살짜리가 그렇게 말하는데 뜨끔하지 않을 나이만 어른인 사람들이...


아니. 

아무튼.

퇴근시간이 되어가니 글도 급하게 나오고 있는데.

왜 자기 기분에 화를 내면서 사무실 분위기를 망치고, 거기에 더해 업무에까지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본인은 본인이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겠지?

나 화났는데 내 잘못은 아니야. 그런데 너는 나한테 잘못하고 있고 그걸 고칠 생각을 안하네? 그래서 난 너에게 화가 나서 말을 안하고 싶다....를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 젠장.

퇴근 준비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머큐리 테일
김달리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가는 이 글을 쓰는 작업이 즐거웠다고 표현했다. 나는 이 글을 읽는 시간을 즐거웠다,라고 말할수는 없을 것 같다. 낯선이를 만난다는 것에 대한 내향인의 낯가림때문만은 아닌것이 분명하지만...


머큐리 테일을 표제작으로 하는 김달리 작가의 이 소설집은 5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멸종아이,를 빼면 소설 속 화자는 모두 여성으로 추정되는 지구인(!)이다. 이렇게 언급을 하면 이 소설집이 SF 장르소설인가 싶겠지만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스릴러 장르 소설이다. 


나의 테라피스트,의 마지막장을 읽으며 그 테라피스트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는 반전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라 인간성의 근본을 뒤집는듯한 선언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더 가까울 것이다. 이것은 들러리,에서 단발머리 귀신이 주인공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끔찍함을 느끼게 하고 있는데 그 절정은 이 단편집의 표제작으로 쓰인 머큐리 테일에서 터져나온다.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 정말 미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고 있는데 훅 치고 들어오는 현실 속 실제 사건사고의 이야기는 가장 임팩트가 컸다. 사실 이 모든 것이 정신병자의 미친 환상 속 이야기였으면 좋겠는데 오히려 과거의 언젠가 뉴스에서 봤었던 실제 사건의 이야기가 훅 치고 들어와 더 강한 충격을 주고 있는 것이다. 

1900년대 멸종된 인류를 복원하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담은 멸종아이는 결국 지구의 종착은 소멸임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싶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토리 앤 뱀파이어에서도 토리가 품고 있는 많은 것들이 마지막 순간에 정말 사랑싸움을 보여주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결말이 좀 당혹스럽기도 해서 책을 다 읽고 난 느낌의 정리가 쉽지는 않다. 


그냥 다시 이야기의 처음으로 돌아가 머큐리 테일의 수성이 외계인이고 멸종 인류 아리는 지구에 정착했던 외계인이 멸종한 것이고 뱀파이어는 존재감이 남다르지만 우리의 일상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단순히 끝내면 좋겠다,라는 느낌만 남아있을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