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신사(神社) 살림지식총서 193
박규태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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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여행을 가기 전에 읽기 시작하고는 신사에 가서 데미즈야라고 하는 곳에서의 예절, 일본인들에게는 일종의 정화의식처럼 행하는 것을 배우고 해본것,이 전부다. 끝까지 찬찬히 살펴보지 못하고 훌쩍 여행을 떠나버린 탓도 있을 것이다.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이제야 다 읽었는데, 어찌보면 입문서 같기도 한 이 책은 많이 알면 알수록 입문서가 아닌 요약서같은 느낌이 들 것 같은 책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신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전반적으로 '신사'의 의미와 유래, 신사가 담고 있는 일본의 전통과 문화양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독서는 책 한 권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다, 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주는 책.
후에 일본의 신사에 관한 참고문헌을 하나씩 찾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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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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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해. 나는 잠자리에 누워 사람이 잠들기까지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이라는 7분을 헤아리며 생각했다. 거대한 호주머니, 우리 가족, 친구들, 심지어 리스트에 없는 사람들, 한번도 만나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보호해주고 싶은 사람들 모두를 감싸고도 남을 만큼 큰 호주머니가 있어야 한다. 구와 도시들을 위한 호주머니, 우주를 다 감쌀 호주머니가 필요하다.
8분 32초.......
하지만 ㄱ렇게 큰 호주머니는 있을 수 없다는걸 알고 있었다. 결국 모두가 모두를 잃는다.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발명은 없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전 우주를 등에 짊어진 거북이 같은 기분이 되었다.-1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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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라라피포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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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떠억하니 'A lot of people'라고 써 놓은 것은 결코 내 짧은 영어를 자랑하고자 함이 아니다. 이 책의 제목이 담고 있는 뜻, 이라고 하는데.. 설마 이 제목을 알려주는 것이 스포일러인 것은 아니겠지?

사실 이 책을 재미있다고 하는 것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이 책에는 수많은 인간상이 나오는데, 그들의 삶이 너무 희극적이다 도를 지나쳐버려 비극적으로 흘러가버린다. 아니, 이런 표현은 어딘가 미진하다. 희비극이 마구 엉켜붙어버린 인물들이 나온다. 적어도 내 느낌은 그렇다는게지.

어딘가 아름답고 동화처럼 순수하고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으며 '그들은 행복했습니다'만을 바라고 있는 어린아이 같은 맘으로만 책을 읽을수는 없을것이다. 언젠가부터 한 권 두 권 읽기 시작한 일본소설은 지독한 현실을 훨씬 더 지독하게 풀어놓아서 읽기 두려워졌었다. 아니, 내가 그동안 외면하던 세상이, 소설이지만 그 안에 담긴 현실감을 느끼게 되어버려서 힘들었던 것일까?

라라피포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실컷 비웃으며 조롱하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 그 손가락이 어느 순간 바로 내게 향하고 있을지 모를일이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맘껏 웃어제낄 수 없었던 이유는 내게로 향하는 손가락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러한 삶으로 내몰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민이 느껴져서이다. 외롭고 쓸쓸하고 소외당하는 이들의 슬픔이 슬픔이 아니라 희극적으로 묘사되어서 더욱 더 그런것일까?


하나하나의 단편이 옴니버스처럼 엮여 있는 구조라고 생각했는데, 모든 이야기가 순환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것이 또한 이 소설을 읽는 또하나의 재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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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春) 2006-11-26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라피포, 저는 보는 순간 '파페포포'인가 하는 책 생각했어요. ^^;;
오쿠다 히데오 책 다 보시는 군요.

chika 2006-11-26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다,는 아니구요... 인더풀은 일본영화로 봤어요.

하늘바람 2006-11-27 0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오쿠다 히데오

chika 2006-11-2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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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 떠오른 책이 있었다.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라는.

'과학 시대'를 사는 독자의 주체적 과학기사 읽기, 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이 책은 흔히 말하는 황우석 사건(?)이 터지기 훨씬 전에 출판된 책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과학기사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을 때, 대한민국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물론 그때 알라딘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이곳에서도 공방이 심했고 서재가 들썩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가 살짝 나쁜 나로서는 왜 꼭 배아줄기세포로 연구를 해야만 난치병이 치유되는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종교계에서 주장하고 있는 성체줄기세포로도 충분히 연구할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그렇다,라고 말을 하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지 내가 뭘 알아서 그 주장을 받아들이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이런 문제였다면 아마 엄청난 논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하지만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흔히 거짓말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 중에 '하얀 거짓말'이라고 하는 거짓말이 있다. 그런데 난치병 환자에게 희망을 줬다고 해서 황우석의 거짓말이 하얀 거짓말이 될 수 있을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으면 황우석이 줄기세포를 만들고, 난치병을 치유하고... 그래, 그것이 실제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해도 그는 그러한 선의의 뜻으로 거짓말을 한 것이라 할 수있는 것일까?
실질적인 연구와 노력을 하는 연구원들에게 충분한 연구지원이 이뤄질 수 있어야, 진정으로 난치병 환자들에게 장애인들에게 진실한 희망을 주게 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아, 조금 흥분하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하고싶은 말은 많지만 내 한마디보다는 그저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고 싶다. 더구나 나는 PD수첩을 보지 않았기에 이 책이 더 긴박감 있게 읽혀져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이런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두툼한 책이 재밌게 읽혔다.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말,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겠지만 인류를 위하는 것은 국가에 우선한다고 말하고 싶다. 2차대전때 핵무기를 투하한 조종사에게도 조국이 있었고, 군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이 있었던 것이었겠지만 훗날 그는 국가의 이익을 떠나 인류앞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하지 않는가. 이런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황우석 박사, 똑똑하고 유능하고 대단하다, 라고 말한다고 해서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제발 부탁인데 그렇게 대단하신 분이라면 괜히 논문조작하지 마시고 그럴 시간에 연구를 하고 성과를 얻어주시라. 그래서 말로만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지 말고, 진짜 희망을 주시라. 그것이 정말 진.실.로 위대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닌가?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라는 말은 '과학적 사실'은 객관적일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사실을 인간사회에 이롭게 적용하는 것은 주관을 가진 사람,이기에 '성찰'이 필요하다는 뜻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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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6-11-27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말,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겠지만 인류를 위하는 것은 국가에 우선한다고 말하고 싶다. 2차대전때 핵무기를 투하한 조종사에게도 조국이 있었고, 군조직에서 상부의 명령이 있었던 것이었겠지만 훗날 그는 국가의 이익을 떠나 인류앞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다하지 않는가. 이런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에 인간은 인간일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맞아요! 맞아요!

chika 2006-11-27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다고 해주셔서 감사!!! ^^
 
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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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카를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이유들을 알게 될 것이다. 지난 세기의 실수들을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이유들, 잘못된 확신들에 양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들, 어떤 권력이든 반환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이론도 반박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어떤 진실도 다른 진실에 의해 추월되게 마련이다. 또한 어떤 자유의지도 소멸될 것이 확실하고, 절대적인 선도 절대적인 악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떤 생각이든 모든 것을 다 설명하지 말고, 상반되는 관점들을 받아들이며, 원인과 책임 요소들, 메커니즘과 행위자들, 계층들과 사람들을 혼동하지 말며, 언제나 열려 이어야 하는 이유들을 말이다.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아야 하는 이유 말이다.

이것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미래의 세대들이 추방된 카를 마르크스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런던의 빈궁 속에서 죽은 자식들을 놓고 슬퍼하면서 최선의 인류를 꿈꾸었던 그를. 그러면 미래의 세대들은 세계의 정신에게로 되돌아가게 되고, 그의 주된 메시지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741)


마르크스의 사상과 삶에 대해 알려고도 하지 않았었다. 또한 누군가의 말처럼 우리에게는 고유명사라기보다는 일반명사처럼 불리워지고 있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해 흘려버릴 뿐이지 정작 알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아야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이런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막상 책을 다 읽고, 마지막의 저 문장들 [그러므로 우리는 카를 마르크스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그의 주된 메시지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메시지를]을 읽고 책을 덮으려니 마음 한쪽이 도로 무거워지는 듯 했다. 사실 이 두툼한 책을 사상은 커녕 역사인식도 제대로 못하면서 읽으려고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점점 마무리 되어가는 것에만 신경을 써 가벼워지던 마음이 한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당신의 신조는? 인간적인 그 어느것도 내게 낯설지 않다.(431)]
1865년, 카를 마르크스는 사랑하는 사촌 나네트와의 고백놀이에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인간적인  그 어느 것도 내게 낯설지 않다'
또한 그가 좋아하던 표현 중의 하나는 '인류를 위해 일하다(260)라고 한다. 그저 막연하게 '자본론'의 저자, 유물론적 사관, 정치경제학을 확립시킨 좌파의 신적존재(?)로만 알고 있던 마르크스에 대해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다.

솔직히 얼치기로 알고 있는 그에 대한 내 지식을 갖고 감히 '마르크스 평전'을 읽은 리뷰를 쓴다는 것이 내게는 도저히 감당이 안되는 일이다,라는 말을 하고 리뷰를 끝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건가. '평전'이라는 것은 물론 그의 삶,에 녹아들어있는 모든 것, 사상뿐만이 아닌 생활태도, 인간관계까지 아우르며 이야기하는 것이고 나로서는 그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그가 '인간'에 대해 가졌던 마음과 그의 인간적인 생활에 더 관심이 가는 것을.
무장혁명을 원한 것도 아니었고, 신을 중심에 둔 기독교적 공산제 사회를 호소한 것도 아니었고, 일당 독재는 더더구나 말하지 않았던 마르크스의 사상을 내 능력으로 정리할 수는 없다. 성서를 읽으며 막연하게 '공산제사회'를 생각해봤던 나의 추상성과는 달리 마르크스는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사상체계를 확립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에 관심을 갖고 소외된 인간의 해방을 위한 사상적 체계를 확립한 마르크스의 이야기는 이 책을 쓴 저자의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리뷰를 대신해버리려고 한다.

"..... 그는 보편성에 관한 정치적 사상가이자 약자들의 수호자가 되었다. 이전의 수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했다 해도, 세계를 정치적이고 경제적이며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총체로서 파악한 사상가는 마르크스가 처음이다. 그는 첫 스승인 헤겔을 본떠서 현실에 대해 포괄적인 해석을 하고 싶어했다. 그렇지만 헤겔과는 달리 현실을 더 이상 신의 지배 속에서 보지 않고, 인간의 역사 속에서만 보았다. 그는 모든 분야, 모든 언어와 지식에 대해 어마어마한 욕구를 보이면서 세계와 인간 자유의 원동력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고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애를 썼다. 그는 세계의 정신이었다."[저자 머리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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