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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ㅣ 반올림 9
임태희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6년 11월
평점 :
춥다.
추운 날,이라고 하는데도 아직 우리 사무실은 전체 난방을 하고 있지 않다. 아마도 석유난로를 피우고 있는 전체 난방을 책임지고 있는 부서가 자기들 따뜻한 것만 알고 난방에는 신경쓰고 있지도 않은 탓일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 하나 그 부서에 이야기 하지 않는다. 모두 그런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조차 싫어서 그냥 추위에 떨고 앉았다. 개인용 히터를 온풍으로 써버리면 되는거지, 머.
그러고보니 생각났다. 더 추워지기 전에 사무실에서 걸쳐입을 만한 옷을 사려고 했는데....
이런 상황에서 나는 책을 받았다. '옷이 나를 입은 어느 날'
내가 옷을 입은 것이 아니라 옷이 나를 입었다고? 재밌는 생각이네. 이건 도대체 뭘 얘기하려는거지?
요즘 아이들의 생각은 도통 모르겠다. 나는 나름대로 많이 얘기하려고 한다지만, 언젠가 인터넷에서 봤던 한 청소년의 글이 비수처럼 내게 꽂혀있어 나는 절대로 그들을 믿지 않는다. 물론 나 자신도 믿지 않는다. 그때 그녀석은 자신들에게 보이는 어른들의 관심을 그런식으로 튕겨냈다. "당신들은 우리를 이해해주는 척 들어오고 있지만 그것 역시 진정한 이해가 아니라, 우리의 말을 들어주는 척 하다가 결국은 당신들의 이야기를 강요하고 있는거 아닌가"
물론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정부분은 맞는 말일 것이다. 서로 다가서려고 하지만 결코 다가서는 것만이 행복일수 없는 고슴도치들 마냥 어른인 나는 청소년들을 100% 이해해 줄 수 없다. 그냥 그들을 있는 그대로 100% 받아들일 수도 없다. 하지만 그게 큰 문제인가. 어차피 타인은 온전히 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 나 자신은 어떤가?
"난 그냥 무난한 옷을 입어. 외로운 건 질색이거든. 튀는 건 어쨌거나 외로운 거니까"
"나도 알아. 외로움도 견딜 줄 알아야 한다는 거. 하지만 난 고독을 즐길 줄 모르고 상처 받는 일이 무척 겁이 나. 굳이 나를 왕따시킬 빌미를 제공하고 싶지도 않아. 그래서 옷 입을 때 신경을 쓰는 거야. ... 난 얼마든지 나 자신을 그럴 듯하게 포장할 수 있어. 그럼 난 언제나 세련된 멋쟁이일 수 있고 상처 받을 일도 없는거야"(83-84)
언젠가 본 카툰에는 그런 그림이 있었다. 지극히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있는 친구가 어느 날 무심코 봤더니 다들 유행하고 있는 독특한 스타일의 운동화를 신고 있는데 아주 무난한 신발을 신고 있는 자신이 오히려 더 튀는 모습이 되어 그 다음 날 바로 유행하는 신발을 신고 학교에 가는 내용의 카툰이었다. 그것이 바로 지금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저 내 몸에 맞춰 적당히 옷을 꿰입고 무난하게 계절과 날씨에 맞춰 옷을 입으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에게는 옷을 입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마냥 필사적이다. 그건 그들의 생각이 어려서가 아니다.
모자를 사려는 각진 턱의 친구에게 짜증나는 말을 내뱉는 모자들에게 '나'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못한다. '억울했지만 어쨌든 모자만의 잘못도 아니었다. 각진 턱에 어울릴 만한 모자를 만들지 않는 건 모자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으며 사람의 능력이 안되어 그런 모자를 안만드는 것이 아니라 굳이 그러려고 하지 않기때문이라는 것도 알고 있으니까. (52)
세상은 이미 그렇게 만들어진 옷을 놓고, 아이들에게 그에 맞춰 옷을 입고 살아가라고 강요하고 있는 듯 하다. 어느 날 문득 눈을 뜨고 옷장을 살펴보다가 '옷이 나를 입고 있는' 걸 깨달아 버린 임태희씨의 마음이 그걸 들어버린 거 아닐까? 옷이 나를 입고 있어....
어쩌면 좋을까?
세일러 문은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기 위해 변신을 하여 세상을 구원한다. 그런 세일러 문의 변신은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얼마나 희망이 되어주고 있을까. 아니, 우리의 아이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변신을 꿈꾸고 있는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