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 마을들에는 캐나다 남부 어딘가에서 제트기를 타고 날아와 남의 말은 들은 체만 체하다가 굳이 고집을 부려 당일에돌아간 정부 관리나 기자 얘기가 많다. 그 성급함과 냉정한 무신경함, 권력자연하는 그 행세에는 어쨌든 비행기 탓도 있어 보인다. 비행기가 주는 엄청난 시공간 압축에 대응할 만한 것이북방 마을에는 없다. 사람들은 흔히 그 땅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가지고 돌아가고, 그 결과는 씁쓸한 분노를 낳는다.
비행기는 대단히 큰 유혹이지만, 그 땅에 대해 뭐라도 배우려는 사람은, 어떤 지도가 적절한지에 대해 약간의 감각이라도 갖고픈 사람은 비행기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런 사람은 들로 나가땅 위에서 잠을 자거나 덤불을 가르며 오후를 보내봐야 한다.
사향소의 일정에 따라 여행하고, 바다로 향한 곳에서 야영하고,
몇 날 며칠 날아 이동하는 바다오리들을 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라면 코북강 북쪽 제이드산맥의 뱀처럼 구불구불한 초록색 절벽 앞에 서거나, 겨울 해빙 위를 걸어서 개수로에 나가 부빙들이 서로 스치고 부대끼는, 미국 탐험가 엘리샤 켄트 케인의표현에 따르면, ‘강아지가 낑낑거리고 벌들이 붕붕거리는‘ 것같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봄철 해빙 위에서 해체된 바다코끼리사체에서는 해저 퇴적물을 볼 수 있다. 베링해와 축치해에 사는바다코끼리 25만 마리가 매일 수 톤의 모래와 잔 자갈을 옮긴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이라면 수천톤씩 툰드라 흙을 파헤치고 있을 나그네쥐와 들쥐를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툴레, 날뛰는 사냥감을가두기 위해 거주지로 커다란 돌을 날라 사방치기 놀이를 할 때처럼 칸칸이 세워놓은 사람들을 생각할 것이다. 거대한 돌로 지은 북극곰 덫에는 옆으로 미는 돌문이 달려 있었다. 그들은 돌을 마음대로 움직인 북극 주민들이었다.
어마어마한 하늘을 이고 며칠씩 걷을 때, 뱅크스섬 톰슨강 유역에서 세상의 적막을 느낄 때, 얼어붙은 강 계곡 수 킬로미터밖에서 들리는 썰매개들의 억제할 수 없는 활력을 느낄 때, 칼슘 섭취를 위해 나그네쥐 뼈를 먹는 긴발톱멧새처럼 아주 사소한 것들이 어떻게 그 땅을 살아 있게 만드는지 볼 때, 우리는 시간을 초월한, 더는 축약될 수 없는 더 깊은 대지의 차원들을 감지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멀어지려면 제때 해야 할 것이다. 비행기는 매일 총알처럼 북극을 드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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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땅에 태도를 드러내는 방식은 상당히 모호하고 정의하기 힘들다. 집안일에 골몰한 채 마지못해 여행에 나선 사람은땅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리고 누구도 배고픈 원주민 사냥꾼만큼 기민하지는 못할 것이다. 뭔가 아름다운 것을 보고 동경이나연민을 느낀다면, 예기치 못한 사건에 큰 흥분을 느낀다면, 그런 것들이 그 땅에 대한 긍정적인 처분에 영향을 줄 것이다. 북극에서 비행기 사고로 친구를 잃은 적이 있거나 북극 광산에 투자했다가 파산했다면, 이 땅을 적대적으로 느낄 것이고, 이 땅의 어떤 가치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예민한 감각뿐만 아니라 이해하고자 하는 욕구의 차이도 저마다 남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땅의 어떤 특징들을 찾아내도록이끌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역에 대한 작은 조각 지식이 지역 주민들사이에 이야기의 형태로 축적된다. 이야기들은 공동체 안에서기억되기 때문에 자주 확인할 수 없는 지식도 잊히거나 버려지는 일이 없다. 이런 서사들은 원주민들에게 특정 땅에 대한 복잡하고 장기적인 시각을 형성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실제로 알게 된 사실과 그저 상상한 것,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실체 사이를 오가며 확인하는 공동체 구성원들에 의해 정제되면서 매일 확증을 받는다. 복잡하지만 쉽게 공유되는 이 ‘현실‘은그 지역을 벗어나면 일반론이나 오해 또는 부정확한 추상으로축소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의 인식이든, 인식은 마치 홍수처럼 땅을 쓸고 지나간다. 여기저기서 주워 모아 판독해야 하는, 덤불에 걸린 젖은종잇장 같은 개념들을 남기며, 누구도 이야기 전부를 들려주지 못한다. - 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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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친구가 텐트 밖으로 나와보니, 아비 한 마리와 새끼가 손바닥만큼 남은 수면이 얼어붙지 않도록 열심히 발을 것고 있었다. 밤새 바다에 나가 있던 부모 중 한쪽이 30분마다 부리에 먹이를 물고 왔지만, 이륙이 불가능한 만큼 착륙도 불가능했다.
다음 날은 날씨가 좀 따뜻해져서 연못에 발이 묶였던 녀석이날아가고, 새끼에게 줄 먹이를 문 다른 녀석이 착륙할 수 있었다. 그 주위에도 비슷한 곤경에 처한 다른 아비 가족들이 있었다. 아비들은 인간 관찰자가 좀 더 영구적인 피신처를 찾아 가버린 후에도 그런 식으로 버틴다. 친구는 그 새끼 아비들의 운명이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어른 아비들은 새끼들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가 기억하는 건 눈보라에 가려 희미한 검은 점처럼 보이는 부모 새들이 열심히 바다를 오가는 광경이었다. 좋지 않은 때를 맞고도 꿋꿋한, 대단한 동물이었다. - P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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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은 북극 가장자리의 동물이다. 북극곰은 해빙 테두리와 해수면, 대륙 해안에서 사냥한다. 말 그대로 얼음곰이다. 북극곰이 지배하는 세계는 햇빛이 점점 짧아지는 시기에 형성되었다가 봄이 되면 사라진다. 북극곰은 홍합과 켈프를 찾아 바다밑바닥까지 잠수한 다음, 돌아올 때는 거울처럼 잔잔한 수면 위로 소리 없이 고개를 내밀고 잠자는 물범이 없나 살핀다. 해안에서 32킬로미터나 떨어진 바다에서도 북극곰은 물고기 떼와함께 물을 젓는다. 바다곰이다. 겨울이 되면 회색곰은 동면하는반면 북극곰은 해빙 위로 나와 사냥한다. 여름이면 북극곰은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내륙 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로미와 블루베리로 성찬을 벌인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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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에서 올라오면서 받은 전반적인 인상은 매우 복잡한 세계에서 아주 단순한 세계로 이동한다는 느낌이다. 어느 한 종의나무가 두드러지지 않는 남쪽의 혼합림을 지나다가 어느 순간산등성이에 보이는 유일한 녹색이 한두 종의 나무로 구성된 침엽수림으로 바뀌는 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다는느낌은 뭔가 환상 같은 것이다. 야생의 우아함을 간직한 북극의 생태계도 열대 생태계만큼이나 세련되고 복잡하다. 그저 움직이는 부분이 적을 뿐이다. 편평하고 탁 트인 툰드라에서는 그움직이는 부분을 훨씬 잘 포착하고 관찰하고 설명할 수 있다.
북극 생태계의 복잡성은, 말하자면 열대의 한 구역에 서식하는100종류의 딱정벌레 사이에 형성되는 난해한 먹이 선호관계 같은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빛과 온도 구간에 대한 주기적인 적응의 복잡성 같은 것이다. 계절에 따른 이주 동물들의 대규모 이동 같은 것이고, 계절에 따라 변동하는 개체 수처럼 급격하지만자연스러운 적응 같은 것이다.
그러나 적도에서 북방으로 온 우리 눈에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큰 변화는, 이 땅이 개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비전문가의눈에도 이 땅은 생명의 요소들, 즉 흐르는 물이나 빛, 온기 같은것들이 결여된 절대적인 한계 지역으로 보인다. 인간이라는 동물의 관점에서 보면 이곳은 절대 자식을 낳아 기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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