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 식물세밀화가 정경하의 사계절 식물일기
정경하 지음 / 여름의서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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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 발 담그면 나도 나무가 될까, 라는 문장을 발견한 순간 마음이 확 쏠렸다.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서정적인 책 제목은 왠지 맨발로 흙길을 걸어보는 느낌, 애니메이션 토토로에 나온 메이와 사츠키가 두 손을 모아 힘껏 하늘로 손을 뻗을때마다 새싹이 쑤우욱 올라오는 느낌과 같은 그런 싱그러움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책은 세밀화가 정경화의 에세이집으로 고향의 숲 속과 마당의 화단에서 만나게 된 사계절이 식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건강을 잃게 되었을 때 고향마을의 숲 속을 운동삼아 산책하면서 무심히 지나치던 식물에 관심을 갖게 되고 계절마다 다른 꽃이 피는 것을 보며 세밀화를 그리게 되었다고 하는데, 세밀화를 그리면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되니 또 이전에는 무심코 지나치며 보지 못했던 식물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된다.


늘 푸르고 변함없는 소나무라 인식하지만 소나무는 2년이 지난 잎을 떨구고 새로운 잎을 내고 있는데 그 시간차의 변화를 세세히 보지 못하고 있어서 늘푸른 소나무처럼 보인다고 한다. 소나무는 또한 열매도 2년에 걸쳐 키워낸다고 하는데 그러한 사실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 그 열매를 추위에 노출시켜 추운 겨울을 지내고 나야 더 건강한 열매가 되는 것을 관찰하고 그 모습에서 사유를 끌어내고 있는 저자의 글이 더 마음에 남는다. "어떤 나무에겐 잎을 떨구고 겨울잠을 자는 것이 최선이나 침엽수들에겐 잎을 달고 겨울을 살아내는 것이 최선의 삶인 것이다."(35)

반면에 또 어떤 나무들은 애써 지켜낸 잎도 놓아야 또 다른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나무처럼 우리도 각자에게 맞는 최선의 삶이 있음을, 때로는 미련없이 버려야하는 삶의 자세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짐작도 할 수 없는 혹독한 야생의 삶을 나무들은 고비마다 지혜로운 방법으로 묵묵히 견디고 살아낸다"*134)


자연속에서 삶의 철학을 배우고 계절마다 피어나는 이쁜 꽃들의 세밀화를 담아내고 있는 저자의 글과 그림은 천천히 읽고 보고 느끼며 되새기게 된다. "여전히 오늘이 처음인 내게 또 하나의 빛깔을 만들어낼 하루가 시작되었다. 주어진 하루하루 작은 조각들을 모아 아름다운 단풍처럼 물들어가고 싶다"(169)는 시의 언어로 표현된 문장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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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코 티비를 보는데, 화면에서 2003년 시절의 배경이 흘러가고 있는데 원피스가 보였다. 

원피스가 2003년에 있었다고? 설마, 하고 찾아봤는데. 

25년전에 시작된 것이라니. 

2024년 1월에 107권이 발행된 것으로 나왔으니.


동네 작은 도서관에 갔을때도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책이 원피스와 명탐정 코난이었어서 놀랍기도 했었는데, 이 오랜 세월을 생각하니 그렇게 놀랄일은 아닌 듯 하다.



이렇게까지 길게 연재될꺼라 생각을 못하고 한권씩 사 모으던 원피스는 몇권까지 사두었는지 기억에 없다. 한동안 안볼 것 같아서 래핑도 뜯지 않고 진열해두다가 결국 라면박스안에 라면처럼 찡겨져 구석으로 밀려난 이후 책구입할때마다 한 두권씩 사다가 이제 그것도 끊겨서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다. 

원피스는 그렇게 우리집에서 골동품이 되어가고 있을 뿐....이었네. 쓰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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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고통은 여러 방식으로 사람을 바꾸어놓는다. 연치와 나처럼 전쟁의 공포에서 탈출하지 못한, 유럽에서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은 전쟁 이전과 영영 달라지고 말았다. 그들은 잔혹함의 깊이에 눈을 떴고, 동료 시민들이 어떤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목격한 후부터는 그림자 없는 세상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외면하려고 눈을 감아도 어둠 뒤에서 더 끔찍한 무언가가 자신들을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음을 느꼈다. 고문과 굶주림과 수모를 겪은 유대인들은 치료받아 건강을 되찾은 후에도 여전히 부서지고 깨어진 채 유령 같은 존재로 남았다. 조니는 끔찍한 공포에도 시달렸다. 그는 죽음만이 아니라 질병 자체를 두려워했다.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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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의 숲에서 - 바이칼에서 찾은 삶의 의미
실뱅 테송 지음, 비르질 뒤뢰이 그림, 박효은 옮김 / BH(balance harmony)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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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속의 동물 - 그것도 만나게 되면 생명의 위험을 느낄만한 곰이라거나 늑대 혹은 다른 동물 친구들 말고 이웃을 만나려면 그냥 5시간 정도만 걸어가면 되는 그런 숲에서 보내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저널리스트 실벵 테송이 시베리아의 숲 속 바이칼 호숫가에서 지낸 6개월의 기록을 그래픽노블로 만든 책이다. 저자는 이 에세이로 메디치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핵심을 잘 편집하여 그래픽노블로  표현한 것도 꽤 좋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몇년 전 자급자족의 삶과 미니멀리즘의 실현을 추구하며 외딴 숲속 오두막에서 혼자 생활하는 연예인의 모습을 방송으로 본 기억이 난다. 휴대폰이 없고 인터넷이 안되는 정도가 아니라 외부와의 통신이나 외부인과의 소통조차 없이 오롯이 혼자 먹거리를 만들며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신선했었는데, 6개월의 시간이라고 하지만 계절의 변화와 삶을 유지하기 위한 자급자족의 일상은 충분히 경이롭다. 물론 기본적인 인스턴트 식품과 그곳에서 읽을 책을 잔뜩 들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사실 겨울의 혹독한 추위가 가늠되지 않는 나로서는 눈신발을 신고도 무릎까지 빠져들어가는 눈속을 헤치며 가야하는 시베리아 숲속에서 하루도 버티기 힘들 것 같지만 그 영하의 추위속에서 풍경을 즐기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나 역시 한번쯤은 그런 곳에서 살아보는 체험을 하고 싶어지기도 한다. 


"사람들이 내게 왜 이곳까지 들어왔느냐 물으면, 나는 밀린 독서를 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할 것이다. 내면의 삶이 곤궁하게 느껴질 때는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그러면 언제든 가난한 마음을 채울 수 있다"(12)


"용기란 상황을 직시하는 것일는지 모른다. 나의 삶, 내가 살고 있는 시대, 그리고 타인들. 나는 무엇인가? 세상에 질려 숲속 깊은 곳 오두막에 틀어박힌 겁장이가 아닌가. 이 시대의 모습을 직시하지 않고 모래 사장을 서성거리다 자신의 양심을 마주치지 않으려 잠자코 술이나 마시는 비겁자"(70)


"오두막에서는 반혁명적으로 살아간다. 오두막에 어떤 정치적 의미가있을까? 이곳에서의 삶은 인류공동체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다. 은둔자로서의 경험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도모하는 공동체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는 개들처럼 은둔자의 집 문턱에 머물러 있다"(77)


문명과 동떨어진 곳에서의 인간의 삶이란 어쩌면 무의미하고 무미건조한 일상일 것이라 짐작했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면 똑같은 하루는 똑같으면서 또 다를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겨우 통신 연결이 된 무전기에 뜬 메시지는 여자친구의 이별통보였으며 잠시 키워주기로 해 받은 두 마리의 강아지는 애서 잡은 물고기를 훔쳐가고 어미 오리를 쫓아내 아기 오리를 사냥해버리는 말썽꾼이지만 강아지들이 주는 위로는 그 이상이다. 


철학적 사유가 넘쳐나는 '시베리아 바이칼에서의 은둔의 기록'인 이 그래픽노블은 실뱅 테송이 6개월을 지낸 기록이지만 순간순간들의 이야기는 6년 이상 아니 전체의 삶 속에서 생의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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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그저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다.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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