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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뉴브 ㅣ 인문 서가에 꽂힌 작가들
클라우디오 마그리스 지음, 이승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2월
평점 :
그 옛날 전장은 지금 옥수수와 해바라기 밭이다. 날이 무덥고 음울하다. 여기저기 피어있는 파란색 불로화와 붉은 사루비아 꽃들이, 쓸데없이 인생은 전쟁뿐이 아니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모하치는 그 나름대로 하나의 박물관이다. 뭔가를 전시하는 게 아니라 인생 자체, 인생의 허무와 영원을 전시하는 고통스러운 박물관이다. 누군가 전쟁 날짜 옆에 신선한 꽃들을 놓았다. 그 옛날의 패배가 아직도 쓰라리고, 그때 죽은 자들이 아직도 옆에 있다.
창이나 뒤집힌 텐트 말뚝처럼 땅에 박아놓은 나뭇조각들은 전쟁,
그 질서와 무질서, 무너진 균형, 먼지 이는 순간, 지울 수 없이 깊게 새겨진 폭력과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성급하고 독창적인 조각들은 인간과 말의 머리, 죽어가는 말들의 갈기, 거대한 터번, 치명적으로 내리치는 몽둥이, 죽음의 고통이나 잔인함에 일그러진 얼굴들,
십자가들과 반달들, 멍에를 쓴 노예들, 술레이만 대제의 발밑에 굴러다니던 머리들에 대해 사유하게 한다. 물결치는 곡식 이삭을 모방하여 나무에 새겨넣은 조각 속에서 번쩍하고 떠오르는 윤곽, 모든 것은추상적이고 본질적이다. 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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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나마 알수있는 전쟁은 세계대전이지만.
다뉴브는 그 이상의 전쟁을 새겨넣어 흐르고 있다.......
모하치는 그 나름대로 하나의 박물관이다. 뭔가를 전시하는 게 아니라 인생 자체, 인생의 허무와 영원을 전시하는 고통스러운 박물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