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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과 폭력 - 운명이라는 환영 ㅣ 우리 시대의 이슈 총서 2
아마티아 센 지음, 김지현.이상환 옮김 / 바이북스 / 2020년 11월
평점 :
이 책의 저자 아마르티아 센은 인도인이다. 그런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 학장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해외여행을 하고 입국을 하려고 했을 때 학교 관사의 주소가 적혀있는 여권을 보며 출입국관리 직원이 그가 바로 학장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학장의 지인인가, 라는 물음을 던진 것에서부터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명제를 떠올리게 되었고 이 책이 탄생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참 테러가 자행되고 있을 때 미국에서는 미국시민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아랍계라면 무조건 테러리스트로 의심을 받아야했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러한 것들이 일상적으로 보편화된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인가, 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랍인이라면 모두가 무슬림이고 무슬림이라면 또 모두가 테러리스트인 것인가.
"인간의 정체성이 선택의 여지가 없는 단일의 것이라는 주장은 단지 암시적이기만 하더라도 우리의 존재를 축소할 뿐만 아니라 세계를 더욱 불타오르게 할 것이다. 하나의 분류 범주만 부각됨으로써 생겨나는 편가르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 우리는 모두 하나라는 비현실적인 주장은 그 방안이 절대 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저항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격렬한 분열의 선, 단 하나의 굳어진 선에 반대해 작동하며 서로를 넘나드는 정체성의 다원성에 이 혼란한 세상에서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이다"(53)
인종뿐만 아니라 종교, 정치, 젠더 등에 대한 보편적인 정체성이 타당한 것인가를 생각해 볼 때 그 차이와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수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런 부분이 곧 평화와 화합의 장을 마련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수 있다.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이 종교이긴 하지만 이 책에서 저자는 정치, 문화, 역사 등 많은 부분에서 편견과 차별이 행해지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이 책은 십년전에 쓰여졌다고 하는데 세상이 변화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편협해진 느낌이다. 종교적 신념을 가진 이들이 자살테러를 행하고 있는 이 시대에, 그들의 신념은 과연 그 종교적 믿음으로 불변의 진리가 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물음에 그 누가 그렇다,라는 답을 할 수 있을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기는 하겠는데 솔직히 글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논쟁이 될 수 있는 부분들, 보편적인 정체성 - 쉽게 말하자면 선입견 같은 것들을 보편화된 진리로 받아들이면 안된다는 것은 알겠는데 과연 이 글이 필요한 이들에게 그러한 이야기가 받아들여질 것인가,는 별개의 문제겠지.
다른 어려운 정치적인 부분들은 모르고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저자가 인용한 셰익스피어의 문장은 한번쯤 새겨볼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가지고 태어나고, 어떤 이들은 위대함을 성취하며, 어떤 이들을 위대함을 억지로 떠맡는다. 아이들의 학교 교육에서,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삶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젊은이들에게 억지로 떠맡겨서는 안된다는 것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