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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아이드 수잔
줄리아 히벌린 지음, 유소영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11월
평점 :
책을 읽는 동안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스며들었다. 사건 해결의 결말로 넘어가면서 스릴과 긴장감이 점점 더 고조되었는데 막상 결말을 보니 왠지 허탈해졌다. 결국 해결은 그렇게 되어야 했을까.
하지만 잠시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니 '해결'이 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블랙아이드수잔,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나는 깨닫고 있는것일까.
십대 소녀 테시는 강간 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소녀들의 시신과 함께 묻혀있다가 우연히 발견되어 살아났다. 어린 시절의 그녀가 의사와 상담을 하며 재판에서 증언을 하는 과거의 이야기와 그녀와 함께 발견된 소녀들의 연쇄살인범으로 지목되어 감옥에 갇혀있는 페렐의 사형집행을 앞두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과거의 사건을 되짚게 되는 현재의 테사의 이야기가 교차로 진행되면서 조금씩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아니, 드러나는 것 같았다.
처음 열살의 테시가 할아버지 앞에서 낭송한 노간주나무 시를 읽으며 책장을 넘기기 시작할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후로 계속 테시와 테사가 쌍둥이 자매일꺼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범인잡기에만 급급했었는데 책장을 덮고나면 범인이 누구인가,에만 집중하고 있던 내가 조금, 아니 많이 부끄러워진다.
테시의 재판에서 그녀의 가족이 받은 고통, 특히 할아버지가 의심을 받은 상황을 읽으며 우리나라의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에서 한 소년의 아버지가 범인으로 몰렸던 사건이 떠올랐는데 그것은 또한 죄가 없지만 18년간 범인으로 지목되어 억울한 감옥살이를 했을뿐만 아니라 사형집행을 앞두고 무고하게 희생되어야 하는 페렐을 통해 미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수많은 흑인들의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어떤 상상을 하든 이 책을 읽으며 떠올리게 되는 범인의 행방은 찾기 쉽지 않을 것이지만 - 반전의 반전이 있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에 놀랄 수 밖에 없겠지만 - 사실 그것이 중요해지지 않게 되어버린다. 블랙아이드수잔이 번식력이 강하고 끈질기게 살아남는 식물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테시에게도 그렇지만 현재의 테사에게도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는 범죄현장의 블랙아이드수잔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해도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고통에 대한 은유처럼 계속 맴돌고 있다.
"나는 종결을 원해요" 스타카토처럼 툭툭 끊기는 단어, 자일즈 박사에게 책임이 있다는 듯한 요구였다.
"종결은 존재하지 않아요" 박사는 매끄럽게 답했다. 단지 인식이 있을 뿐이죠. 되돌아갈 수 없다는 인식, 삶의 무작위성이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르는 진실을 알고 있다는 인식"
"어쩌면 아직도 그를 용서해야 할지도 몰라요. 분명 전에도 이런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용서는 그를 위한 것이 아니에요. 당신 자신을 위한 겁니다"(2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