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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의 달
나기라 유 지음, 정수윤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10월
평점 :
책을 다 읽고 급하게 책장을 덮으며 느낀 첫 마음은 '이건 뭐지?'같은 약간의 정체불명스러운 혼란이었다. 애써서 뭔가 '진실'이라는 것을 찾으려고 했기 때문일까, 라는 생각에 잠시 마음을 비우고 그냥 이 소설의 줄거리와 그 흐름, 그리고 결말을 생각해봤다. 저자가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여기서 무엇을 끄집어내야하는지 따위의 생각이 아니라 그냥 그대로 보여지는 이야기를 바라보려 해 봤다. 일본에서 올해 서점대상 수상을 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문학성과 대중성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야기,라는 기대치를 버릴수는 없다는 생각에 괜히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것이 이 소설을 읽은 순수한 느낌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어서.
화목하고 자유로운 가정환경에서 자라던 사라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집을 떠나버린 후 이모집에서 살게 된다. 자신에게는 관심이 없는 이모가족과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사촌을 피해 늘 공원에서 늦게까지 앉아있다가 돌아가곤 하던 사라사는 어느 날, 그곳에서 로리콘이라 소문이 난 남자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간다. 그 남자는 후미라는 대학생이며 그의 집에서 지내며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편안함을 느끼게 된 사라사는 이모집으로 가지 않고 후미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평화로운 동거생활과는 달리 세상의 시선은 소아성애자인 후미가 사라사를 유괴해 감금시킨 것이 되었고 그로인해 후미는 옥살이를 하고 사라사는 보육원에 보내진다. 이후 그녀, 사라사의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로리콘이라는 오해를 받는 후미는 로리콘이 아니었고 범죄자도 아니다. 후미에게 상처는 커녕 오히려 위안을 받은 사라사 역시 아무런 상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뜻밖의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다. 이야기의 화자는 대부분 사라사여서 가끔 그녀가 자신의 상처에 대해 드러내지도 못하고 견뎌내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했는데, 어쩌면 그런 모습속에서 더욱더 현실적인 편견과 거부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범죄자로 한번 낙인이 찍힌 사람에게 가해지는 의심의 시선, 겉보기에 멀쩡해보이지만 실상 폭력을 가하며 집착하거나 성추행과 성폭력을 행하는 인간쓰레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이 또 어쩌면 모두에게 행해지고 있는 2,3차의 폭력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되기도 했다.
오해를 받은 사라사와 후미가 성인이 되어 결국은 행복해졌다, 라는 단순한 이야기일것이라 예상했었는데 뜻밖의 전개에 그녀의 이야기에 빠져들어 금세 읽을수밖에 없었다. 이 이야기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까, 잠시 고민에 빠졌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첫번째 읽었을 때의 감상과 두번째의 감상,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의 환경이나 세상의 편견과 의식이 바뀌면서 사라사와 후미의 이야기는 또 다르게 느껴질테니까. 물론 지금 현재는 사라사와 후미가 유랑하는 달의 모습에 비견되는 떠돌이 생활에 만족해야하는 것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