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먼 동네지만 어쨌거나 한시간 거리에 있는 우리 동네의 여름 풍경.
아니, 여름 풍경의 하나.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이도 많지만, 뜨거운 태양아래 노동의 땀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는 걸 잠시 생각해보게 되는 우리 동네의 또 다른 풍경.
겨울이 되면 노랗게 익은 귤들이 이 여름의 고생을 잊게 해주겠지...?
그 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그저 떠오르는 건 어둠 퇴근 후 딸각, 스위치를 켜면 부엌 한쪽에서 흐느끼던 아내의 얼굴과 다시 딸각, 불을 켰을 때 거실 구석에서 어깨를 들썩이던 아내의 윤곽뿐이다. 냉장실 안 하얗게 삭은 김치와 라면에 풀자마자 역한 냄새를 풍기며 흐트러지던 계란, 거실 바닥에 떨어진 갈색 고무나무 이파리 같은 것들뿐이다. 이따금 아내는 베란다 창문을 보며 동어반복을 했다.
... 여보, 영우가 있는 곳 말이야. 여기보다 좋을 것 같아. 왜냐하면 거기에는 영우가 있으니까.
23, 입동.
- 마지막 방법으로 ..... 드물게 안락사를 선택하는 분들이 있어
- 그게 뭔데요?
- 아픈 동물 친구를 곤히 재운 뒤 심장 멎는 주사를 놔주는 거야. 편안하라고.
의사는 "그러고 나서 후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도 많으니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일단 에반에게 잘해주라고, 살아 버티는 동안 무척 고통스러울 테니 옆에서 잘 다독여주라고 했다. 그렇지만 찬성은 어떻게 해야 잘해주는 건지, 에반이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때마침 건넛방에서 할머니가 한숨 토하듯 "아이고, 죽어야 모든 고통이 사라지지. 죽어야 근심이 없지. 하느님 나 좀 조용히 데리고 가요"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찬성이 몸을 돌려 에반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서로 코가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네가 네 얼굴을 본 시간보다 내가 네 얼굴을 본 시간이 길어 ....... 알고 있니?'
에반의 젖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들거렸다. 찬성이 에반의 입매, 수염, 눈썹 하나하나를 공들여 바라봤다. 그러자 그 위로 살아, 무척, 버티는, 고통 같은 말들이 어지럽게 포개졌다.
- 있잖아, 에반. 나는 늘 궁금했어. 죽는 게 나을 정도로 아픈건 도대체 얼마나 아픈 걸까?
- ......
- 에반, 많이 아프니? 내가 잘 몰라서 미안해.
62-63, 노찬성과 에반.
일상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그 슬픔과 영원할 것만 같은 슬픔과 고통의 시간에 대한 세심한 묘사가 슬퍼. 너무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