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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물고기 ㅣ 묘보설림 4
왕웨이롄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0월
평점 :
오랫만에 중국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내가 익히 알고 있는 중국 작가의 소설은 - 이렇게 말하려고 하니 왠지 책을 꽤 많이 읽은 듯 하지만 실상 그렇다기보다는 몇 권 읽어보지 못한 그저 내 개인적인 느낌일뿐이지만 - 옛 이야기와 신화가 현재와 맞물려 은유가 아닌 사실처럼 읽힌다는 것이다.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은 책물고기가 '신선'이라는 두 글자를 세 번 먹기만 하면 '맥망'이라는 것으로 변하며, 별이 뜬 밤에 그 맥망으로 별의 사신을 불러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전설은 삼인칭으로 쓰이지만 진정한 현실은 단지 일인칭에만 속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가 여러분에게 말한 것은, 모두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 현실이다"
옛날옛날 한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곶감을 무서워 하던 호랑이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는 책물고기 책이다.
책을 많이 읽는다기보다는 요즘은 그저 책 자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기는 하지만 집에는 벌써 반백년을 모셔두는 책도 있고 삽십여년이 되어가는 책도 많다. 저절로 끄트머리부터 누렇게 변색되어가고 있고 구석에 박힌 채 잊어가고 있는 책에서는 그 특유의 종이냄새가 나는데 이 책을 읽고난 후 그 어딘가에 책벌레가 살고 있지나 않나 들춰보게 된다. 책벌레가 내 몸에 들어오면 서어 書魚는 말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다. 아니, 책벌레가 웃는 소리도 들어보고 싶으니 서어라고 한번 말해볼까?
책물고기 책에 실려있는 왕웨이렌의 작품은 모두 5편이 실려있다. 표제작인 책물고기는 기이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책을 좋아하기때문에 재미있었던것일까? 아니, 나는 책에 첫번째로 실려있는 '소금이 자라는 소리를 듣다'부터 너무 좋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 감성이 왠지 귀 기울이게 하더니 '아버지의 복수'에서는 계층의 소외가 묻어나면서 해학적인 복수극(?)이 펼쳐진다. 그런 감성으로 뒤이어나오는 걸림돌을 읽기 시작했는데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이야기에 멈칫,하게 된다.
'베이징에서의 하룻밤'이란 연애를 추억하는 남녀의 이야기안에 사랑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그러니까 단순하게 짧은 한줄평을 해버리고 말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뜬금없는 이외성이 나타나면서 이야기를 읽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그 이야기꾼의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섯편의 단편 중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아버지의 복수,였다. 해학이 넘쳐나고 실제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다면 좀 더 우스꽝스럽게 그려졌을것 같은 아버지의 모습이 측은하게 느껴졌지만 결국 그 아버지가 자신만의 복수를 이뤄냈을 때, 우리시대의 작은 혁명이 성공을 한 듯 기분이 좋아졌다. 현실의 경험에 비춰 비극으로 넘어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듯한 이야기가 끝내 아버지의 복수로 멋지게 행복을 얻어낸 것이다. 그런데 복수가 행복한 결말의 끝이라고? 이야기는 끝이 났지만 왠지 아이러니한 행복의 결말은 그 이후에 더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내가 겪은 고난들을 글로 쓰고 싶었지. 하지만 그 고난들은 모서리가 날카로운 바위 같아서 나는 내내 마음에 상처를 입고 아파했단다. 그것들을 글로 쓰려고 하면 할수록 더 마음이 아팠지. 글쓰기는 뭐와 같은 줄 아니? 꼭 숫돌과도 같아서 그 바위의 모서리를 갈아 더 날카롭게 할수록 나는 피가 나고 정말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웠지. 나중에 나는 몇 번이고 내 자신에게 말했지 생각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고 말이야. 하지만 너는 알아둬야 해. 생각하지 않는 것은 결코 망각이 아니란다"(153, 걸림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