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아이들 - 부모를 한국으로 떠나보낸 조선족 아이들 이야기 문학동네 청소년 8
박영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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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이 고생이라면, 이곳에 남은 자녀들은 고통이지요.
'고생'과 '고통'이라. 고생은 육체의 한 부분이고 언젠가 끝난다는 희망이 보이는 반면 고통은 마냥 견뎌야 하는 시간에 맡겨 두기조차 버거운 느낌이었다.(27) 

이미 만주의 아이들에 대한 짐작만으로도 책의 내용이 버거우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펴들고 고통이라는 단어를 보니 마음 깊은 곳을 찌르는 듯한 그 느낌에 아릿하게 올라오는 슬픔과 아픔이 더해져 몰려온다. 이 아이들의 고통을 어찌한단 말인가. 

90년대 한중수교가 성립되면서 중국의 조선족에게 북한이 아니라 남한의 개방을 촉진시켰으며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해가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흐름을 따라 많은 조선족이 한국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면서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조선족 자치주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현실적인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러한 변화의 큰 흐름인 만주 조선족의 한국이주노동은 만주에 사는 수많은 아이들의 고통을 담고있고, 자본만이 움직이는 한국사회의 단면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서 살아가는 조선족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살펴봐야만 함을 만주의 아이들은 말해주고 있다.
누구나 좀 더 편하게 지내고 싶고 더 많은 물질적인 혜택을 누리고 싶을 것이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이치가 다 그렇듯 어느 한면만을 보고 그것이 전부라고 할수는 없지 않겠는가. 우리의 삶이라는 것은 버선발 뒤집어보듯 그 속을 까집고 바라볼수도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깊이 들여다 본 만주의 풍경은 너무도 쓸쓸하고 안타까웠다. 부모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운 것인지 겪어보지 않고서는 모를일이지만, 어린시절 날마다 일을 나가시는 부모님으로 인해 혼자 밥챙겨먹고 혼자 집을 지키고 갑작스러운 학교행사로 인해 필요한 물품준비와 돈이 필요할 때 텅빈 집에서 어찌할바를 몰라 당황해하던 나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그 아이들의 고통이 어떠할지 마음이 아려온다. 

한때 만주는 우리의 이상향이었다. 만주벌판 말을 달리던 우리의 선조, 일제시대 항일운동의 메카였던 드높은 민족해방의 기상이 어린 곳.
그곳이 한세기가 채 지나기도 전에 독립과 자유를 꿈꾸던 우리 선조들의 후손들은 돈벌이에 떠밀린 부모와 생이별을 해야하고 공동체가 무너지고 한글교육마저 사라져가는 현실에서 황폐해져만 가는 만주의 벌판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너무 쓸쓸해져버리고 있다.
우리의 아이들과 별다를 것이 없는, 노래와 춤을 좋아하고 이성에 관심을 갖고 좀 더 이쁘고 멋진 모습으로 꾸미고 싶어하는 만주의 아이들은 그 또래 아이들의 특권이라고 할수도 있는 반항의 모습을 가질 수 있는 마음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부모의 이혼으로, 어쩔 수 없는 생활고 해결을 위해 한국으로 떠난 부모를 만나지 못해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아이들...
그들에게 우리는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것일까. 

조선족 자치주가 사라지게 될지도 모른다,라는 대외적인 변화의 모습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고통의 모습을 보고 있는 마음이 아프다. 특히 그 안에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 깊은 고민과 반성의 시간들이 흐르지만 현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내 마음은 쓸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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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 - 형태로 이해하는 문화와 예술의 본질
한명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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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무한도전을 봤다. 대한민국 평균이하라는 타이틀이 붙기도 했었던 고만고만한 멤버 일곱이 서로 흥분하면서 자기들만의 미남이시네요를 찍고 있었다. 그냥 어이없게 웃으면서 보다가 '미남'에 대한 기준을 어디에 둬야하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들을 알고 있는 일반 시민들은, 물론 한류열풍의 영향으로 TV에서 무한도전 멤버를 본적이 있는 아시아권의 시민까지 포함해서 미남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은 친근함인 것 같았다. 성형전문의들의 의견 역시 대부분 보편적으로 몰리긴 했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수는 없기에 조금씩 다른 의견을 보이기도 했으니 정말 미의 기준은 동일한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조금씩 다를수밖에 없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 익히 알고 있듯이 고대의 비너스는 다산을 상징하는 배불뚝이 비너스상이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기준인 것이다. 예술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아름다움'이었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이란 것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것이지? 

여기 예술을 읽는 9가지 시선이 있다. 이 책은 세계를 바라보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시선, 원근법, 죽음, 진화, 모나드, 기하학, 미술, 조형,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문화와 예술의 본질을 이해하는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다.
무한도전의 미남이시네요 테마는 다양한 시선과 문화의 차이, 때로는 단순한 미적 기준이 아니라 동정이라는 연민으로 한표를 내어주는 이들을 보면서 예술을 읽는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예술은 단순한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하고자 의도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본질 자체가 이미 단순한 것이기 때문"(278, 콩스탕탱 브랑쿠시)이라고 한다. 그 단순한 본질을 바라보기 위한 시선은 여러가지일 수 있으며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법 또한 무수히 많다.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문화와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이 정형화되고 보편, 일률적인 예술에 대한 설명과 지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각자 나름의 예술 감각을 갖고 자신의 생각을 더 깊이하여 예술의 본질에 다가서야하겠다. 

처음 읽을 때는 왠지 좀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주제의 묶음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읽어나갈수록, 책을 다 읽고 다시 한번 살펴보고 있으려니 전체적으로 예술작품의 기본인 형태를 이야기하며 문화를 읽고 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접근을 하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겠다. 익숙한 주제인 경우는 무척 재미있게 읽었고 생소한 부분은 전혀 색다른 시각의 접근으로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완전히 이해할 수 없어 술렁거리며 후다닥 넘겨버린 부분들도 있어 제대로 이해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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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문학에 취하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그림, 문학에 취하다 - 문학작품으로 본 옛 그림 감상법
고연희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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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그렇지만 그림 감상이 쉬운 건 아니다. 그나마 유명한 서양화가들의 그림은 쏟아져나오는 다양한 책들로 인해 잘 알지못하지만 아무튼 고개를 끄덕거리며 보게 되곤 한다. 아니, 그림에 대한 설명이 없어도 맘에 들면, 혹은 눈에 익숙한 그림이 나오면 다시 한번 더 바라보게 되는것이다.
오래전에 루브르 박물관에 갔을 때 언니는 풀밭위의 점심 앞에서 움직일줄을 몰랐고, 나는 그동안 무수히 봐 왔던 모나리자가 상상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그림임에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게 되니 또 복사본과는 다른 느낌에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진을 치고 있었다. 훗날 단체관광으로 따라갔을 땐 모나리자의 미소가 아니라 그 미소를 덮어버린 유리벽과 수많은 사람들의 머리통만 쳐다보게 되어 처음 봤을때의 그 알수없는 설레임을 다시 느껴보지는 못했지만. 

아무튼 그런 유명작품들은 굳이 설명이 없더라도 나만의 느낌으로 그림감상을 해보려고 하는데 간혹 잘 알지 못하는 그림 앞에 사람들이 몰려있는 걸 볼때가 있다. 저 그림은 별론데 왜 그러나 두리번거리면서 그림에 문외한인 둘이 그 넓은 루브르를 헤매고 있을 때 마침 마주친 한국인 관광객 단체가 들어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돌아다니고 있어 설명이 아쉬운 우리도 잠시 따라다녔다. 책에서 얼핏 봤던 것 같은 그림 앞에 멈춰서서 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마침 가이드는 파리에서 유학중인 미술학도라고 하였고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림이 아니지만 미술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제대로된 설명을 해 주었다. 그림의 미술사적 의미,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 역사를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 등등... 나는 그림이란 단지 그림일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때 그림 하나에도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온 후 그림관련 책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런 관심은 서양미술에서 시작했지만 조금씩 우리 미술로 옮겨오게 되었고 실제 작품을 보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옛그림에 대한 책을 읽으며 조금씩 인식의 확장이 시작되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책에 실려있는 그림도판밖에 보지 못했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가끔은 그 도판을 보면서 이 그림이 뭐가 위대하다는거지? 라는 생각도 감히 하곤했다.
그런데 그림 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한 설명이 더 많았던 책들과 달리 '문학작품으로 본' 옛그림 감상법이라는 부제가 달린 [그림, 문학에 취하다]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옛 그림 속에 깃든 문학성은 그림을 독해하는 기본 문법이었고, 문자 향유의 특권을 누렸던 문사들의 지성과 감성을 동시에 건드린 장치이자 그림 이해의 핵심 코드였다"라며 문학적인 접근을 하며 그림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고 있는 이 책은 문학적 감성과 미적 감각이 어우러진 우리 옛그림에 대한 사랑을 더 깊어지게 해 주었다. 

내가 글을 잘 읽는편이라고는 하지만 그 문학성에 대해서 말을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고 그저 가끔 문학안에 담겨있는 은유를 느끼며 감탄할 때가 있는데 그러한 것 또한 그림에서 볼 수 있음을 저자는 이야기해주고 있다. 강세황의 지상편도에서 강세황과 유경종이 나눈 마음의 정원이야기를 풀어놓으며 "정원의 상상으로 서로의 인격을 칭송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이 그림의 내면을 멋지게 감추어준다. 글과 그림으로 즐기는 정원 속에서 물질적 욕망은 오히려 마음껏 펼쳐질 수 있었다"(194)라고 말하는데 그림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해보게 한다. 그것이 화가의 의도와 다르다고 하더라도 나의 그림 감상이 아예 틀려먹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게 해주기도 하고.
윤제홍의 한라산도 역시 "한라산의 실제 모습을 전달하려고 애쓰지 않으며 화가가 그림으로 불러들인 것은 백록담에 담긴 옛 사람들의 숨소리"(311)임을 말하고 있어 그림으로 표현되는 문학을 조금 더 느껴보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옛 사람들이 당연히 알던 것을 어렵게 이해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래서 옛 그림의 매력으로 작용했던 것이 지금은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이 책은 그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그림의 바탕이 된 문학작품을 끄집어내어 해설하고 덧붙여 알아보는 이야기까지 해 주며 옛 그림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고 있다. 
이 책은 그림이 나타낸 주제에 따라 7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먼저 우리가 감상할 그림을 앞에 두고 잠시 자신의 느낌을 짚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그리고 이어 저자의 꼼꼼한 해설이 뒤따라 옛 시문과 그 의미, 또 세부적인 그림에 대한 설명으로 다시한번 그림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게 된다. 그렇게 옛 그림을 이해하게 되면 다시 저자는 자신의 마음으로 바라본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좀 더 편한 마음으로 그림을 이해하고 바라보게 해 준다. 모르는 한자가 너무 많아 참고문헌이나 인용출처는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덧붙여 알아보기'는 새삼 저자의 친절함을 느낄 수 있어서 더 좋았고 그림을 한번 더 바라보게 한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그림 중 하나는 이재관의 오수도午睡圖(낮잠)였다. 책을 쌓아 등을 기대고 또 쌓아 머리에 베고 또 잔뜩 쌓아 곁에 두고 책을 읽던 선비가 잠든 모습이 그려진 그림이다. 책이 귀한 그 시대의 꿈일뿐만 아니라 지금도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부러워하며 오수(낮잠)을 즐기는 이 선비를 부러워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아니 보편적인 이야기로 눙칠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선비를 부러워하고 있을 뿐이다. 현실적인 책문화의 무게를 일단 배제하고, 꿈에 들어 원하는 세계를 상상해보는 즐거움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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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가족 레시피 - 제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6
손현주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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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 여울이가 수업시간에 과제로 받은 자서전 쓰기에 대한 고민으로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다. 여울이의 가족은 불량가족,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가족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운 엉망진창인 가족들로 이루어져 있다. 채권추심 하청일을 업으로 삼은 아버지와 전문대에 다니고 있지만 다발경화증이라는 병을 앓고 있어 젊은 나이에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는 불행을 안고 살아가는 오빠와 고3수험생이면서 여울이를 보기만 하면 거침없이 욕만 날리는 언니와 팔순이 넘은 나이에 가족들 수발을 해야하냐며 늘 요양원에 들어가 살기를 바라는 잔소리쟁이 할머니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울이가 가족 구성원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여울이의 형제는 모두 엄마가 다른 이복형제들이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가족 이야기는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전에 그 흐름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현실적인 가족의 이야기로 바라보지 않고 '문학'이라는 관점으로 그들을 바라본 것이다. 하지만 이 불량가족의 레시피를 읽어가다보니 그 안에 담겨있는 수많은 우리의 현실과 가족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 

몇년 전 친구 언니가 사고로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갔을때의 일이다. 그 언니는 만나본적이 없는 누군가가 어찌된 일인지 자꾸 묻다보니 아빠가 다른 언니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옆에서 친구의 가족사를 잘 알고 있는 어른이 한말씀 하신다. '가족사가 좀 복잡한게 있어!'라고. 그래, 사실 친구의 엄마, 아빠는 재혼을 하신거였고 각자의 애들이 있어서 친구에게는 아빠가 다른 언니, 엄마가 다른 언니가 있고 아빠에게는 재혼하기 전 두번의 결혼을 하셔서 그쪽의 형제들이 또 더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족들이 모두 한동네에 살고 있어서 친척들과의 관계때문에 친구 엄마가 힘들어하시고, 친구도 집에 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런데 그런 가족관계가 흠이 되는 것일까? 
친구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버지로서의 책임은 사라지고 가장의 권위를 내세우며 대우받기만을 원한다며. 내가 가끔 겉모습은 니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닮았다,라고 하면 자신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그 사실이 더 화가난다고 말을 한다.
화가나지만 어쩔 수 없는 가족이라는 징표, 그리고 차마 외면할 수 없는 아버지의 곤궁함에 화나면서도 도움을 주는 관계인 가족이라는 것,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학창시절 친구에게서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고등학교때 산업체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고향을 떠나 이제는 고향에서 만나지 못하는 친구를 몇년만에 만났다. 사춘기 예민한 시절의 친구라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친구의 가정형편을 모른다. 내가 우연찮게 알게 된 것은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고, 어린 두 남매를 데려다 키운 고모는 끊임없는 구박으로 친구를 힘들게 했으며 고등학교때 처음 엄마소식을 듣고 그때 엄마와 삼촌을 만났다는 걸 알았다. 고등학교를 다니다 결국 육지의 산업체학교라는 곳으로 전학을 가야했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내가 커서 생각해보니 너무 서글픈 현실인 것이다. 그 친구를 만나 그간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고향을 떠난 이후 아버지를 찾아뵈지 않았다고 한다. 다행히 엄마는 좋은 분과 재혼을 하셨고 아이들이 잘 해준다며 작년에 아무도 모르게 엄마를 모시고 친구의 가족끼리만 고향을 찾아 여행을 왔었다고 한다. 그 친구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였을까?
아버지가 계신 고향에 왔으면서도 연락한번 하지 않고 모른척 하고, 아버지의 죽음을 그리 슬퍼하지도 않는 듯한 친구의 마음은 또 어떠한 것일까? 

두 친구의 아버지에 대한 공통된 느낌은 두 분 다 무능력하다는 것? 아니, 사실 아버지의 무능력이 친구의 가족관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친구의 어린 시절의 삶을 고되고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럼 무엇이 친구의 삶을 힘들게 했을까? 아니, 힘들기만 한 성장기였을까? 

어릴때부터 우리집은 콩가루집안이라는 소리를 가족들끼리 하며 커왔다.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학교도 들어가기 전 꼬맹이때부터 혼자 집을 지켰고, 혼자 밥을 챙겨먹었고, 초등학교때도 혼자 알아서 학교엘 가곤했었다. 친척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의 구박을 받으며 부모님의 싸움은 끊이지 않았고 언젠가는 이혼이라는 말까지 하며 어린 내게 앞으로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했었다. 불량써클에 가입해 경찰조사까지 받았던 오래비와 노조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간첩사건으로 형사조사를 받았던 오래비도 있다. 형부의 사업 실패로 빚더미에 올라 신용불량의 처지에까지 이르렀던 언니도 있다. 어릴때부터 싸움이 끊이지 않았고, 풍족하게 사는 그 누군가가 부러웠었고, 맛있어서가 아니라 먹을 건 라면밖에 없어 라면이 주식이었고, 어린시절에 어린이 날이라는 개념조차 없이 학교에 가지 않아 온종일 집안에만 있었던 그런 날들이 나의 어린시절이었다. 그런데 나는 왠지 지금 그 어린시절이 불행하게만 기억되지 않는다.  

"내게는 희망적인 이야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나같은 아이들도 보란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통계말이다. 그런 증거들만이 내게 약이 디고 살이 된다. 하지만 그런 통계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서점에는 불행한 아이들의 이야기보다 행복한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가 더 많아 보인다. 그래서 내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꼭 하루밖에 살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과 초조함이 생기나보다."(105) 

내가 어릴적에 읽었던 수많은 책들도 모두 나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들 뿐이었다. 여울이의 이야기가 더 마음에 와 닿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나는 지금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다. 내가 성공해서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행복을 찾으며 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여울이네 콩가루 불량가족의 모습에서도 희망을 본다. 나도 그렇고 내 친구들도 각자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아가고 있으니까 분명 여울이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불량가족 레시피는 그래서 아주 맛난 이야기책이다. 먹음직하게 장식되고 그럴듯한 그릇에 담겨져있는 이야기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가족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면서도 곱씹어가며 그 고유의 맛을 내는 맛깔스러운 이야기책인 것이다.

"나는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아직은 열일곱이다. 갖고 싶은 건 더더욱 많다. 가난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지 않는 것들을 놓치게 한다. 나는 그걸 참을 수 없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뭐든지 참고 견뎌야 한다면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불보듯 뻔한 상황에 끼여 아등바등하느니 다른 길을 가보고 틈도 엿보고 싶다. 언제든 상황은 바뀐다........ 다른 아이들과 같은 방법이 아닌 나만의 방법으로 내 미래를 준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96)
어쩌면 내가 살아온 시대와 달리 여울이는 조금 더 적극적인 모습으로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울이가 하는 코스튬플레이는 현실을 벗어나고픈 허망한 소망일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확실히 날아오를 자신의 또 다른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않는가. 더구나 여울이는 가난을 이유로 뭐든지 참고 견디지는 않을것이라 하지 않는가. 다른 길을 가보고 틈도 엿보면서 언제든 상황이 바뀔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여울이는 분명 자신의 삶을 찾아갈 것이고 그건 혼자만이 아닌 가족들과의 또 다른 관계형성과 유대감을 갖는 것이리라.
여울이는 그렇게 당당한 한걸음을 내딛고 있으며, 나같은 아이도 보란듯이 성공할 수 있다는 통계수치를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믿는다. "위기에 처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진화하는 거야"(197)라는 말을 믿으시라. 

"지금까지 나는 다른 가족의 삶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
그게 고통이라 해도 나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한다"(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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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정신>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예술의 정신
로버트 헨리 지음, 이종인 옮김 / 즐거운상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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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스본의 만화 미술론을 읽으면서 미술에 대해 공자가 "학자와 군자, 사대부가 인격을 수양하고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기위해서는 미술에 열중해야 한다고. 미술은 인격 수양과 경건한 명상의 수단이었다"고 말했음을 알았다. 미술에 대한 그런 생각을 처음 들어봤지만 왠지 미술의 의미에 대해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책에서 누구나 나름의 미술 이론이 있다,라고 했지만 로버트 헨리의 예술의 정신을 읽으며 새삼 그 정의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인생과 예술은 분리될 수 없다. 어떤 예술가가 아무리 그것을 바란다고 하더라도 '순수한 아름다움의 선', 즉 인간의 감정으로부터 완전 분리된 선을 만드어낼 수 없다."(240) 
예술서를 많이 읽었다고는 하지만 사실 어려운 말들과 이해하기 힘든 내용, 여러 시대를 거치며 바뀌어온 미의 개념의 표현들이 이론으로만 마구 뒤섞여 평범한 내가 예술에 대해 쉽게 다가서고 이해하기에는 너무 거리가 멀기만 했다. 그런데 로버트 헨리의 '예술의 정신'은 그가 행했던 강의의 기록이나 편지글을 모아 편집한 글이어서 그런지 이야기하듯 말을 건네는 책의 내용에 조금은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더구나 '예술'에는 뭔가 특별함이 담겨있는 특별한 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는데 어느 누구나가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  

로버트 헨리는 예술의 정신에 대해 기량과 재주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정확히 묘사해내는 재주를 높이 평가할수는 있지만 그것이 예술가로서 최고의 의미를 갖는것은 아니다. "문제는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재치를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좋은 그림은 당신이 훌륭하게 살아온 삶의 결실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 복잡하고 까다롭게 만든 끔찍한 그림이 있다.고통스러운 인내, 연구, 온갖 재료들을 혼합하여 빚어낸 결과이다. 이런 그림들은 감수성 예민한 미술학도들을 겁나게 한다. 그 그림을 그리느라 얼마나 많은 고통과 권태를 견뎌냈는지 생각하면 안쓰럽기 때문이다."(93)
그는 렘브란트의 드로잉에 대한 극찬을 하였는데,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왠지 반 고흐의 드로잉이 생각났다. 천재라고 불리우는 피카소는 어린시절의 드로잉에도 그 천재성이 드러나있다고 하는데, 반 고흐의 초창기 드로잉은 어딘거 어설프고 균형이 맞지 않는듯한 느낌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 당시 반 고흐는 자신의 삶의 모습을 그 드로잉에 드러내보였고, 로버트 헨리의 글에 의하면 반 고흐야말로 훌륭한 예술가로서의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아이의 눈동자, 검투사의 움직임, 집시의 마음, 아일랜드의 황혼, 혹은 사막 위에 떠오른 달을 보며 위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위대함의 정신이 세상 속에서 빛날 때 비로소 인간의 신체는 아름답게 된다. 예술은 이 정신을 번역하고 구체화할 때 비로소 위대하게 된다."(103) 

예술이 무엇이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모습에 대해 실제적인 도구의 활용뿐만 아니라 감성과 사물의 본질을 깨닫는 것,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함을 강조한다. 또한 예술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비평하면서도 우선적으로 칭찬과 그 작품에 대한 애정을 먼저 이야기하며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조언을 하는 로버트 헨리의 품성을 느낄 수 있다. 예술작품의 가치에 대한 판단을 쉽게 할 수 없음을 이야기하며 단지 예술작품의 상업적 이용을 위한 수상제도의 부당함에 대해 바판하기도 한다.
예술의 정신은 예술가를 지망하는 모든 이에게, 또한 예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생활하는 우리 모두에게 '예술'에 대해 좀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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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2011-03-01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그림은 당신이 훌륭하게 살아온 삶의 결실'이란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chika 2011-03-02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