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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그 삶과 음악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7
제러미 시프먼 지음, 김형수 옮김 / 포노(PHONO)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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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에 문외한인 내가 차이코프스키를 읽는다니... 이건 정말 어려운 숙제와도 같아,라는 생각을 했다. 차이코프스키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그의 음악세계에 대해서도 모르는데,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그를 잘 안다면 뭐하러 책을 읽겠어? 라는 조금은 당연한 생각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음악에 대해 흥미가 없기 때문에 그 삶에 대해서는 더군다나 알고자 하는 맘이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인걸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말 별 생각없이 책을 펼쳐들었다. 

우선 책을 읽기 전에 음악이나 들어보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대포소리 쿵쿵거리며 신나게 들었던 1812년 서곡이니 그걸 찾아서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음반을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평소 책을 꽂아둘 공간도 없는 방에서 비좁게 지내느라 시디도 박스같은 곳에 몰아넣어버려서 왠만한 정성이 아니면 찾아내기 힘들어 우선 눈에 보이는 교향곡을 꺼내들었다. 귀가 밝지도 않고 음악을 듣는 재능이 있는 귀도 아니니 그냥 이래저래 귀에 익숙한 교향곡 6번.
책을 읽으며, 일을 하며, 친구와 수다를 떨면서도 그냥 흘려들으며 지내다보니 이상하다.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이 괜히 친근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후세는 변덕스러운 정부 같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변덕스러운 연인 같다. 그리고 결국에는 의제를 설정하는 주체는 대중이지 비평가나 전문가가 아닐때가 대부분이다. 이것이 후세에 정식으로 인정받는 유일한 관점이다. 마침내 권위자들도 대중이 올바르게 이해하고 있다는 의견에 동의하게 된다. 그러나 음악은 본질상 불가피하게 주관적인 경험이며 '좋은 음악'이 무엇인지는 순전히 개인적인 판단의 몫이다. 음악이 좋은지 나쁜지 증명하는 객관적인 기준은 물론 근접한 성과도 없다"(214) 

이 글에 용기를 내어 오로지 내 개인적인 감상을 이야기한다. 솔직히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차이코프스키의 삶에 대해서는 그닥 관심을 쏟게 되지 않는다. 이슈가 되는 에피소드만 찾아내보자면 절대 만나지 않기로 약속하고 (두어번 스치기는 했지만 서로 모른척하고 지나간) 그의 재정적인 후원자 나데즈다 폰 메크 부인에 대한 이야기라거나 그의 동성애적 성향과 애인들, 역시 동성애자인 동생 모데스트와 차이코프스키와 결혼한 안토니냐... 하지만 그런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예민하고 감정의 기폭이 컸지만 그의 음악은 결코 예민하지 않다.
클래식은 들어도 들어도 잘 모르는 음악이지만 그래도 처음 들었을 때부터 마음에 쏙 들어오는 곡들이 있는데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모짜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는 언제 들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느낌에 좋아하는 곡이다. 그리고 사실 백조의 호수,라고 하면 선율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해도 그 선율을 들어보면 아, 이 곡이구나 할 수 있을만큼 많이 알려져있고 그런 측면에서는 차이코프스키의 곡들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져있다는 생각과 함께 듣기 편한 곡들이 많음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차이코프스키의 꽤 유명한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연주, 예프게니 므라빈스키 지휘의 교향곡 4,5,6번을 들으며 책을 다 읽었으니 슬슬 책에 부록으로 딸려있는 음반을 들어봐야겠다. 클래식을 잘 모른다 해도 귀에 익은 선율들은 분명 있겠지 라는 기대를 갖고. 어쨌거나 오랜만에 음악을 듣고 있으려니 너무 좋다. 내 개인적인 판단을 하라고 한다면 역시 음악은 좋은 것이다. 
그리고 책에 대해 덧붙이자면 차이코프스키의 생애뿐만 아니라 19세기의 배경과 연표, 시디곡 해설까지 부록으로 실려있으며 본문의 중간에 간주곡으로 차이코프스키의 곡 설명이 되어 있다. 음악을 잘 모르니 곡 설명이 마음에 확 와닿지는 않지만 그래도 곡을 찾아 들어가면서 다시 설명을 읽으면 그 느낌이 조금은 더 강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사실 꽤 오랫동안은 내 느낌대로 음악을 듣는 것이 더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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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그림 보면 옛 생각난다]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옛 그림 보면 옛 생각 난다 - 하루 한 장만 보아도, 하루 한 장만 읽어도, 온종일 행복한 그림 이야기
손철주 지음 / 현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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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점만 봐도, 하루에 한편만 읽어도 온종일 마음이 행복해지는 글과 그림의 만남이랜다. 그런데 나는 뭔가. 느긋하게 그림을 쳐다보고 그 마음을 새겨넣지 못하고 휘몰아치듯 책 한 권을 집어넣었으니 아무리 좋은 음식도 과하면 몸에 해롭듯이 이 좋은 책을 도판이 작다고, 책의 펼침부분에 그림이 말려들어가 제대로 그림감상을 할 수 없지 않냐고 투정 부릴 생각만 하고 있을뿐이었다. 

잠시 마음을 다잡고 그림 한 점, 글 한편을 떠올려본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그림 속 인물들의 표정, 동작 하나하나, 그림 구석에 숨겨져 있는 인물, 표범 가죽안에 담겨있는 수천, 수만의 붓자락... 

이렇게 써놓고 또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책에 대한 느낌을 적어보려고 앉았지만 내 느낌을 글로 적어놓는것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림 한 점, 글 한편을 떠올리다가 다시 책을 집어들고 한참을 들여다본다. 이미 휘몰아치듯 책 한 권을 집어넣은 것은 일주일도 더 지났고 하나하나 다시 보기로 펼쳐들면 한달은 더 지나가게 될 것이다. 

그림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그리고 그림을 잘 보는 사람의 눈으로 보고 해석한 글이 더 유용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내 느낌대로 그림을 보고 내가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세심한 부분들은 저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바라볼 뿐이다. 아니, 그렇다고 저자 역시 어려운 말을 늘어놓고 있지는 않다
원래 그림에 붙어 있는 제목과 달리 저자는 자신이 느끼는 감성을 그대로 글의 소제목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 감성과 그림이 너무 잘 어울린다. 내가 이 책을 읽은 순서는 먼저 그림을 쳐다보고 저자의 글을 읽고 다시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면 저자의 감성만 내 안에 남아있게 될지도 모르지만 다시 바라보게 되는 그림은 더욱 친근하고 아름답고 재미있다. '돌아가는 어부'의 그림은 그림만 보고 종이를 꺼내들고 어부를 따라그려봤었다. 그리고 저자의 '빗방울 소리 듣는 그림'이라는 글을 보고 그림에 담겨있는 빗방울 소리와 어부의 흥을 보게 되었다. 잡힌 물고기가 가득 들어있는 통이 아니라 빗물만 통통 떨어지는 빈통을 들고 도롱이에 낚싯대를 걸친 맨발의 어부는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걷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어부에 감정이입되어 맨발로 빗물을 찰박거리며 콧노래를 부르고 싶은 기분인 것이다. 내가 가장 즐거워하며 바라본 그림과 글 한편이다.
이 책에는 이렇게 한 점만 보아도, 한 편만 읽어도 종일 행복하고 즐거워지는 그림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짧고 담백하게 쓰인 글맛도 너무 좋다. 하지만 당분간은 잠시 그림만 쳐다보게 될 것 같다. 물론 그림의 맛을 더해준 것은 저자의 그 담백하고 찰진 글맛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보는 그림감상이다. 이쯤에서 다시 도판이 책펼침부분에 찡겨있다는 불평을 해야하는데 그말이 쏙 들어간다. 그림을 조금이라도 크게 넣어보려는 뜻이겠지. 세심하게 보게 될 부분은 다시 부분확대까지 해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즐거워진 마음이 일주일전의 불평을 감싸고 이해하게 되는 넉넉함으로 변해버렸다. 이 또한 멋진 그림과 맛난 글을 만난 행복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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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볼프강 카이저 지음, 이지혜 옮김 / 아모르문디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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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테스크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지 않다해도 그로테스크라고 하면 일단은 얼굴을 찡그리며 인상을 쓰게 된다. 혐오라는 의미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나는 그 괴기스러운 느낌의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무섭다.
내가 갖고 있는 그런 느낌의 기억은 어린시절 읽었던 검은고양이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혼자 있는 집에서 벽장속의 고양이... 그러한 기억때문인지 나는 지금도 정적이 감도는 집에 혼자 있을 때 무서운 책을 읽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런책이라해도 일단 집어들고 나면 자꾸 주위를 힐끔거리면서도 그 끝이 궁금해 자꾸만 책을 들춰보게 되는 것이다. 내 온몸에 칼자국이 나는 것과 같은 공포와 무서움, 역겨움이 엄습해도 그 긴장감과 이야기구성때문에 절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대단한 책이라며 권하는 '검은선'도 그런 책이다. 

미술과 문학에 나타난 그로테스크라는 제목은 그러한 기억과 더불어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크로노스의 그림, 판의 미로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물론 그 느낌이 아주 다르기는 했지만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도 떠오르기는 한다.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로테스크라는 말의 의미를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짐작을 하게 되리라.
그로테스크는 이탈리아어 그로타(grotta, 동굴)에서 유래한 말로 15세기 말 로마를 위시해 이탈리아 곳곳에서 발굴된 특정한 고대 장식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현재는 ‘괴기한 것, 극도로 부자연한 것,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등을 형용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혐오스럽다기보다는 괴기하고 흉측하고 우스꽝스러운 것. 그것은 어쩌면 어릴때 많이 읽는 동화 빨간 구두라거나 푸른 수염같은 내용에서 좀 더 가까운 뜻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멈출 수 없는 춤으로 인해 빨간구두를 신은 발목을 잘랐더니 두 발은 빨간구두를 신고 어디론가 사라져갔다..라는 내용의 글을 왜 우리는 어린시절에 읽었던 것일까. 

이 책의 저자 볼프강 카이저는 다소 어렴풋하게나마 이어져 온 용어의 역사에 기대어 그로테스크가 과연 무엇인지 정의내리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했다. 그로테스크라는 주제는 전혀 새로운 주제가 되고 일반적인 것에 개별적인 특성을 부여하는 방법론적인 매력, 미술과 문학을 총괄해 연구하는 일의 보람, 미지의 영역을 탐색하는 일의 즐거움, 유명한 작품들을 연구하며 얻는 지식 등으로 인해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고 했다. 문학과 미술뿐만 아니라 연극을 볼때도 어느 특정한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생소함을 그로테스크라는 주제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이 책이 어렵고 그로테스크라는 말을 그 느낌으로만 알수있을뿐이다.
"그로테스크는 생경해진 세계이다... 우리가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끼던 것이 별안간 낯설고 섬뜩하게 다가오는 것을 말한다. 다시말해 인간의 세계가 어떤 변화를 거친 것이다. 이때 느껴지는 갑작스러움과 당혹스러움은 그로테스크의 본질적 특징이다. ... 그 대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이기 때문에, 그리고 지금껏 믿어 의심치 않던 그 세계에 대한 신뢰가 허상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전율은 어마어마하다. 동시에 우리는 이렇게 변해 버린 세계에 머물 수 없음을 감지한다. 말하자면 그로테스크의 핵심은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삶에 대한 공포이다. 일상적인 삶의 질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그로테스크의 구조에 속한다."(304-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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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 -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을 읽다
김도경 지음 / 현암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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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뜬금없이 아는 녀석이 전화를 해 밥을 사달라고 했던 적이 있다. 서울에 있을텐데, 휴가나 여행인가?라고 물었더니 일하러 내려왔다는 것이다. 아니 도대체 무슨일을 하길래?
나는 그때 처음으로 우리의 옛건물, 쉽게 생각해보자면 주로 사찰이 많을텐데 그런곳의 보수작업을 하는 전문인력들이 있으며 그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개인주택이라면 낡고 페이트 색이 바랬다고 바로 보수작업을 하지는 않겠지만 사찰같은 경우는 단청의 색이 바래면 새로 칠을 해 줘야 할 것이고 기왓장 조각이 떨어져도 바로 수리를 해 줄 것 같다는 생각을 그때야 해보게 되었다. 나의 건축에 대한 관심은 딱 그런것까지였다. 

오래전에 읽은 문화유산 답사기라거나 우리 옛그림이야기, 최순우선생님의 글 등등을 읽으며 눈동냥, 귀동냥으로 들었던 우리 건축물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어느 정도는 피상적인 것일뿐 사실 하나하나 꼼꼼하게 살펴볼만한 건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간혹 서울나들이에서 경복궁 같은 곳을 찾아간다고 해도 스쳐지나가면서 수박겉핥기같은 감상만 할 뿐인 내게 조금은 진지하게 우리건축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가 생겼다. 바로 '지혜로 지은 집, 한국건축'이라는 책을 통해서말이다. 물론 어쩌면 여전히 피상적이기만 할뿐일지도 모르겠지만. 

스스로 도형과 공간감각이 무디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도면만 나오면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얼렁뚱땅 넘겨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좀 진중하게 그림과 설명을 살펴보고 이해를 하며 기초부터 차근차근 우리 건축의 지혜를 쌓아올라가보자는 결심을 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리 진중하지도 못했고 지혜로 지은 집을 내 안에 쌓아가기는 커녕 이 책을 제대로 읽어내지도 못하고 급하게 모래언덕에 모래성을 쌓아올리듯 대강 훑어버렸을뿐이다.
책을 읽는 긴 시간동안 이 책이야말로 정말 탄탄하게 잘 만들어졌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편집과 제본상태에 대해서만 자세히 뜯어봤을뿐이다. 한 권의 책을 잡으면 몰입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평소 습성을 버리고 다른 책들을 읽으며 이 책은 날마다 조금씩 읽느라 그냥 펼쳐놓을 때가 많았는데도 하나의 흐트러짐이 없어 새삼 감탄을 하고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바로 우리 선조들의 건축과 같지 않은가. 기단과 초석을 다지고 기둥을 세워 올라가 지붕을 씌우고 수장과 마감을 하기까지 하나하나의 기본구조가 탄탄하게 건물을 지어올리면서도 전체적인 비율과 멋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 돌이나 나무의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이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딱 맞물리게 깍아내거나 쪼개기도 하면서 조형미를 드러내는 것이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처음 이 책이 더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지금까지의 건축관련해서 읽었던 책들은 대부분 그 건축의 디자인적 관점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건물인가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기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아름다움뿐 아니라 기단과 초석의 기초부터 시작해서 우리 건축의 구조와 과학적인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어렵게만 생각하게 된건 아닐까.

책을 읽으며 낯선 용어들을 익히느라 내용이 더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어느날 문득 이 책 한권을 한번 읽는것으로 우리의 건축을 이해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려야하는 것을 깨달았다. 낯선 용어는 무엇을 말하는지 쓰윽 한번 훑어보고 세부적인 내용을 다 이해하기는 힘드니 그냥 전체적인 구조를 떠올리고 내가 봤던 건물의 모습과 책에 실려있는 도판사진과 그림을 보면서 대충 어떤 구조로 이루어졌고 어떤 형태를 보여주고 있는지 파악하며 슬금슬금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마음이 편해지고 그러다보니 어렵기만 하던 내용설명이 오히려 좀 더 쉽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면 이 책을 펼쳐놓고 오랜시간 들여다보는 것보다 직접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쌓여있는 건물을 한번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인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물론 건물을 피상적으로 쳐다보며 구경만 하던 예전과는 달리 그 안에 담겨있는 지혜를 느끼게 되는 것은 또 이 책의 도움이었으니 책을 읽는 것이 필요없다는 뜻은 아니다.
이 책은 내가 옛건축물을 보러 갈 기회가 생길때마다 그 준비과정으로 먼저 다시 한번 더 살펴봐야 하는 필수과정으로 넣어야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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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 속의 영화]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사유 속의 영화 - 영화 이론 선집 현대의 지성 136
이윤영 엮음.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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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었을까. 한때 나는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아니 때로는 정말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라도 영화에 열광했었다. 물론 나 스스로 열광했었다,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 생활패턴과 관심사를 지켜보던 누군가가 세상에 무척 관심이 많은 젊은이처럼 살아간다고 말을 했을때 그러한 기준의 근거로 내가 영화를 넘치도록 많이 본다는 것이라고 해서 그런가보다 했을뿐이었다. 
영화에 대한 정보도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폐간된 영화잡지 키노를 읽으면서 수많은 영화의 겉모습이라도 살펴보던 때가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지만 지방에 살고 있는 내게 볼 수 있는 영화의 폭은 넓지 않았다. 예술영화, 독립영화, 국제영화제 영화, 저패니메이션...
아니, 이렇게 말하고보니 내가 영화에 대해 꽤 뭔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나는 그냥 보여지는 대로 영화를 보며 즐기고 감탄할뿐이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가 '써니'이며, 시간을 낼 수 없어 보지 못했지만 영화관에서 봐야지 하고 기다린 영화는 다른것이 아닌 바로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인 평범하게 영화를 즐기는 사람일뿐인것이다. 

그런 내게 '사유 속의 영화'는 내가 영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물론 그래서 고맙다는 얘기가 아니다. 대중문화예술로서 영화를 가볍게 즐기는 내게 이론과 사유의 칼날을 들이밀고 있으니 지레 겁을 먹고 경직되어 영화를 즐기지 못하고 경이의 눈으로 바라보다가 점점 더 멀어지게 할 뿐이라는 얘기다.
솔직히 대충, 반이상은 글자만 보는 수준으로 간혹가다 한두문장은 그 말뜻을 이해할듯 말듯 알아채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당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면서 책장을 넘긴 내가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좀 모순이긴 하지만.
이 영화이론 선집이 무성영화의 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영화사에 대한 총체적인 연대별 논문이 담겨있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나처럼 사유의 폭이 좁은데다가 영화와 인문학에 대한 사유가 깊지 않으면 이 글들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건 아니지 않은가. 

영화의 원리와 표의문자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부터 생각이 막히기 시작했다. 부끄럽지만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어려운 글도 자꾸 읽다보면 왠지 조금은 이해를 하게 되는 것 같더라는 누군가의 말을 되새겨보면서 자꾸만 꾸역꾸역 읽어봤다. 어려운 글은 여전히 어려울뿐이야,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어느 순간 논문 하나하나를 이해하기보다는 전체적인 영화의 변천사와 이 선집의 글들의 흐름을 살펴보려고 해 봤다. 무성영화로 시작해서 극적인 표현이 한장의 스틸컷처럼 강조되어 그 뜻이 전해지는 몽타주기법이라거나 자막으로 설명하는 것, 점차적으로 목소리가 함께 나오기 시작하고 카메라의 이동과 시선처리, 촬영기법의 변화에서 영화가 담고 있는 형식과 내용, 이데올로기, 기호학, 상징주의...이런 것들을 먼저 떠올리고 나니 왠지 조금은 처음보다 이 선집에 한걸음 다가선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건 역시 나의 느낌일뿐,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 '영화, 오로지 영화만이!'라고 외쳐대는 그 말에 담겨 있는 깊이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까지 영화는 내게 즐거움과 감동, 그렇게만 표현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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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1-06-1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09님의 리뷰대신페이퍼도 그렇고, 책에 대한 흥미를 유발하네요. 별점도 그렇고 좋은 책인지 아닌지..

chika 2011-06-16 21:20   좋아요 0 | URL
음.. 저는 좋은 책에 한표 던집니다. 제가 별점을 네개 준 것은 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때문이지요. 사실 예상치못한 내용이라거나 아주 재미있게 읽은 책은 별점 다섯, 그 외에는 그냥 다 네개입니다. 너무 빤하거나 재미없고 맘에 안들면 아주 간혹 세개도 주긴 하지만 별로 없고요.
서평도서이기도 하고 빨리 읽어야겠다는 생각때문에 마구 달렸는데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꽤 유용하고 흥미로운 책이 아닐까 싶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