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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파탈 - 치명적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
이연식 지음 / 휴먼아트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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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눈은 그닥 뛰어나지 않지만 그래도 미술관련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세간에 알려진 꽤 유명한 그림들은 누군가의 책에서 도판으로 본 기억이 많다. 그런데 그 많은 그림들을 볼 때 특별히 나체에 신경을 쓰지는 않았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 그림들이 성애의 모습으로 그려졌다기 보다는 비유와 은유가 담겨있는 예술작품이라는 개념을 애써 담아놓으려 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주문해 받은 미술책의 겉표지가 유명한 루벤스의 그림이었지만 그걸 전체적으로 보지 않고 부분만 봤을 때 누드의 여인만 보이는 것 때문에 책표지를 포장해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런 기억은 이 책에도 나와있는 `세상의 근원`을 봤을 때에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 그 그림을 봤을 때는 뭘 그렸는지 인식하지 못했고 설명을 듣고 난 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예술`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물론 `외설`이라는 느낌도 없이 단지 이 그림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스치는 물음 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하더라도 누군가 옆에 있었다면 세상의 근원을 바라보는 내 눈길이 그리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라는 건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느낌의 기억때문일까. 나는 사실 `아트 파탈`이라는 책이 그리 궁금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책은 바로 눈앞에 주어져있고, 그래도 내가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있는 예술서라는데 어떤 책일지 훑어보지 않을수는 없잖겠는가.
책을 읽다보니 문득 오래전에 유학가 있던 신부님이 메일을 보내면서 첨부파일로 `비너스의 탄생`을 보내줬던 것이 떠올랐다. 실제로 본 적은 없고 책의 자그마한 도판으로만 보다가 그나마 모니터를 가득 채운 비너스의 탄생은 신비롭기도 했지만, 그러한 감상 이전에 메일로 첨부되어온 비너스의 탄생이라는 것의 첫느낌은 여인의 나체였다. 그리 불편한 그림이 아니었음에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던 것은 그때까지 교육받았던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그에 대해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대놓고 보기에는 좀 편치만은 않다.
그런 예술작품을 놓고도 마음껏 감상하기에는 마음 한쪽이 불편한데, 한참 논란이 되었었던 풀밭위의 식사는 어땠을까?
나는 우연찮게 루브르에 갔을 때 풀밭위의 식사를 볼 수 있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박물관 내 지도도 없이 마구 헤매이며 돌아다니다 모나리자를 찾았고, 당시 특별전이 있었던 것인지 십미터도 안되는 거리에 풀밭위의 식사가 걸려있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커다란 그림에 놀랐고, 그 그림이 전혀 외설스럽게 느껴지지 않은 것에도 놀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림감상을 한 것이 아니라 그 그림에 대한 유명세만 보고 온 듯 해 부끄러울뿐이다.

 

알몸과 성, 팜 파탈과 춘화... 치명적인 매혹과 논란의 미술사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이 책은 알몸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성과 속을 드나들고 예술과 외설의 모호한 경계를 이야기하며 `음란함`의 미술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알몸은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알몸이 드러나는 방식이 문제다. 어디서 어떻게 드러나느냐에 따라 알몸의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그런데 굳이 알몸이 아니더라도, 미술관에 걸려있는 춘화를 봤을 때 그 느낌은 꽤 묘한것이었다. 함께 갔던 분들 중 결혼한 분들은 간혹 감탄하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볼 때 춘화는 풍속도 이상도 아니었고, 때로 풍속도만큼의 재미도 없는 그런 그림이었을뿐이다. 그림을 자세히 보지 않는 한 뭘 나타내려고 하는지 모르겠는 그림도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신윤복이나 김홍도처럼 유명한 화가의 춘화라는 것이, 그저 외설로만 보이게 되는 생소함때문에 그림 자체를 제대로 보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저자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 책이 음란함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에 균열을 내기를 희망하고, 소박하게 말하자면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야한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빙긋 웃는다면 좋겠다. 사람들은 야한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각자가 좋아하는 걸 떠올린다. 야한 이야기는 그런 떠올림을 위한 매개이다. 음란함은 매개와 경계의 문제이고, 이 책은 매개와 경계에 대한 책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매개와 경계를 나는 잘 이해하고 제대로 읽어낸 것일까?
책을 다 읽고나니 미술사 책을 조금은 가볍게 읽어낸 느낌이 들 뿐이다.

말꼬리를 잡힐 때, 혹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난해한 작품에 대한 설명을 요구받을 때, 뒤샹이 던지곤 했던 말은 음란한 미술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해답이 없는 이유는 제대로 된 질문이 없기 때문이다"(마르셀 뒤샹,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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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후 네 시의 루브르
박제 지음 / 이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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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네시의 루브르,라는 제목 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었다. 미술관이라는 곳을 일상적으로 찾아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던 시절, 뚜렷한 목적없이 한번 떠나보자 라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고 아무런 정보없이 길거리를 헤매며 구경을 하던 파리를 떠나는 날 아침, 단 두시간만이라도 루브르를 찾아가보자는 생각으로 찾아갔던 것이 루브르 박물관에 대한 첫 기억이다. 그때 북적거리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박물관 내부 지도도 없이 마구잡이로 떠돌다 어느 순간, 내가 알지 못하는 그림이었지만 그 앞에 스케치북을 펼치고 주저앉아 그림을 모사하던 한 젊은 화가의 모습은 루브르에서 실제로 봤던 모나리자나 비너스, 니케 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날마다, 오후 네시가 되면 산책을 하듯이 루브르를 찾아오는 이들의 일상은 어떤 것일까 궁금했던 십여년전의 그 마음 그대로 이 책을 펼치는 순간 설레임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아는 그림이 별로 없어 헤매다 돌아왔던 기억도 안타까웠지만, 단체여행으로 찾아간 루브르는 감상하고 싶은 그림을 찾아가지 못하는 아쉬움에 더한 안타까움이 생겨났고 현지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보게 되는 그림이 달라지는 것 같아 흥미롭기도 했다. 언니와 둘이서만 루브르를 헤매고 다닐때는 간혹 들어오는 한국관광객을 따라 다니며 곁다리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그림 앞에서 설명을 듣기도 하고, 푸생의 그림이 방 안 가득한데 쳐다보지도 않고 지나쳐가버리길래 어린 조카녀석 손잡고 푸생의 사계를 보다가 뛰어 쫓아가야하기도 했고, 박물관 지도를 받았을 때 1번으로 기록되어 있는 장 르 봉이라는 초상화를 스치듯 지나쳐가며 처음 보는 이 그림이 왜 중요해? 라는 의문을 듣기라도 한 듯이 초상화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는 말에 다시 한번 쳐다보고 지나쳤던 기억도 있다. 아, 그래서일까. 오후 네시의 루브르의 첫 장이 초상화로 시작해서 더 마음에 들었다.

사실 루브르는 한달동안 날마다 드나든다고 해도 작품 감상을 다 하지 못할 지경인데 하루도 아니고 겨우 몇시간만을 둘러보느라 만인이 다 아는 유명세를 탄 그림과 조각만 보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쫓겨 다녀온 기억밖에 없는 내게 이 책은 조금 신선한 느낌이었다. 다른 미술관련 서적에서는 방대한 루브르 미술관의 작품을 다 언급할 수 없기에 미술사적으로 언급할만한 가치가있는 작품들과 유명한 작품들 위주로 간략히 설명이 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은 파리에 오랜세월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초상화, 풍속화, 풍경화, 종교화,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한 작품 등 5개의 장으로 나눠 저자 자신이 골라낸 루브르의 작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책을 펼쳤을 때 가장 특이했던 것은 루브르에 걸려있는 작품과 그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이 함께 찍혀있는 사진이 작품사진과 함께 실려있다는 것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나면 왠지 저자의 설명으로 전문가의 평론을 듣는 느낌보다는 내가 먼저 그 작품을 감상하고 느낀 후, 저자의 친절한 설명을 듣게 되는 것 같아 루브르를 간접적으로 관람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저자가 골라낸 작품들이기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읽어왔던 미술책에 언급된 그림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 어쩌면 오히려 그래서 더 많고 다양한 작품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각 작품의 특징과 성향, 화가의 전기적 사실, 일화등을 곁들여 소개하고 미술사적으로 필요한 경우 그 작품과 관련되어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충하여 설명해주고 있어 저자의 그림감상만이 아니라 미술사에 연관이 되는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충하여 설명해주고 있어 작품 하나만이 아니라 좀 더 개괄적으로 넓게 작품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루브르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보고 싶은 작품들이 있다. 다음에 갈 때에는 시간과 동선을 잘 그려내어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고 오리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후 네시의 루브르를 읽고 나니 왠지 루브르에 갈때는 산책하는 마음으로 가야만 할 것 같다. 거닐듯이 지나치다 문득 눈길이 닿는 작품앞에 가만히 서서 감상을 하고 난 후 길을 나서는, 그러니까 풍성한 숲속 오솔길을 거닐며 즐기다가 문득 눈에 와 닿는 들꽃을 잠시 바라보게 되는 그런 마음으로 루브르를 거닐고 싶어진다.

내 그림 보는 안목이 없으면 어떠랴. 모든 작품들이 다 내 눈을 호사시킬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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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고 싶은 날]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그림 그리고 싶은 날 - 스케치북 프로젝트
munge(박상희) 지음 / 예담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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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상했던 책의 꼴과 내용이 아니었다! 그것이 책을 반쯤 넘길때까지는 충격적인 것이었지만 며칠동안 계속 뒤적거리면서 그림을 보다보니 어느새 물들어버렸다. '일상이 특별해지는 나만의 스케치북 만들기 프로젝트'에 나도 동참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마구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분명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많고 실제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하지만 나의 그림은 곧바로 나만의 특별한 스케치북 만들기 프로젝트를 포기하게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멍때리며 앉아있기보다 짜투리 시간이라도 이용해 책을 읽곤 했지만 TV를 보다가 지루해질 때, 그리 중요하지 않은 회의시간에 앉아 어느순간 회의 참석자들이 조금씩 잡담을 늘어놓기 시작할 때, 책을 읽다가 지겨워지는 느낌이 들때도 가까이 있는 펜을 움켜쥐고 아무것이나 쓱쓱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지는 것이 내 마음이라면, 내 맘처럼 모방그림은 모방이 아니라 창작이 되어버리고 마는 그 순간에 내 눈과 손을 저주하게 되고 만다. 사실 그림 그리고 싶은 날,에서 내가 기대했던 것은 멋지고 훌륭한 나의 그림솜씨를 자랑할 수 있는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연습과정이었다. 그리 어렵지 않은 간단한 스케치에서부터 시작하여 주위에 있는 사물과 풍경을 묘사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것을 나의 느낌으로 재창조하여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 

아, 정말이지 내 욕심이 과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나는 모든 것을 다 놓아버리고 그저 가볍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휘리릭 넘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마음이 아니더라도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이 프로젝트 책에는 저자가 그려놓은 온갖 그림들이 다 들어가 있으니 그림보는 재미에 책장을 마구 넘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책장을 넘기고 넘기다가 문득, 그녀의 말 한마디를 가슴아프게 떠올린다. 날마다, 매 순간마다 그림에 대한 습작과 노력없이 그림을 잘 그리겠다는 욕심만 갖고 그림을 그릴수는 없다는 것.
나만의 특별한 스케치북 프로젝트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이 갖는 특권이 아니라 그만큼 나의 그림이 어느 순간 멋진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을 담은 스케치북이 나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날이 올 수 있게 정성을 다 해 그림을 그려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글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번쯤은 습작노트를 만들어봤을 것이다. 나 역시 보는순간 웃음이 나오는 시를 지으며 나름대로 장식용 그림까지 넣어 만들었던 노트를 초등학생때 만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 만든 노트는 종이쪼가리를 묶어놓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시작노트의 형식이었었다. 그러니 다시 생각해보자. 책상위에 놓인 가장 간단한 사물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창작품이 되어버리는 그림이라 해서 아무 종이에나 낙서하듯 끄적거리고 말 것인가. 

머리맡에 놓고 날마다 몇장씩 그림구경을 하다 덮어두곤 하던 '그림 그리고 싶은 날'은 그렇게 내 마음을 움직였다. 정말 신기하게도 날마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 날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한순간 멋진 글이 나오는 것이 아니듯 한순간 멋진 그림이 나오는 것이 아니니, 날마다 게을리 하지 말고 그림을 한컷씩 그려나가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이런 내 결심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먼지양께서는 스케치북을 만드는 방법과 그림 도구들에 대한 소개와 설명을 뒷부분에 한참이나 해 놓았다.
책의 내용이 예상했던 것이 아니라 당황했던 나의 마음은 이렇게 새로운 느낌의 책을 만나고 즐길 수 있어서 좋아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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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공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공간 공감
김종진 지음 / 효형출판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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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한 감각이 두드러지는 공간이 있다. 야크 버터 초 향내가 가득한 티베트 사원, 소리가 울려퍼지는 중세의 성당, 부드러운 털이 몸을 감싸는 침실, 각각 향기, 소리, 감촉이 두드러졌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공간에서도 오감은 한데 어우러져 나타났다. 유난히 강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있지만 우리는 온몸으로 공간을 경험한다. 바라보는 동시에 냄새 맡고, 맛보고, 듣고, 만진다. 초의 향기가 코를 찌르기는 하지만 거친돌과 발자국 소리가 있었다. 메아리가 신비로웠지만 돌 틈의 미세한 이끼와 세월의 육중한 무게가 있었다. 나신을 에워싸는 침실에서도 수많은 실의 냄새와 둔탁하게 먹히는 소리가 있었다.
감각은 촘촘히 짠 그물과 같다.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은 씨실과 날실이 되어 그물을 이룬다. 공간의 체험은 이 감각의 그물을 통과하는 과정이다. 그물을 통과한 감각정보가 개인의 고유한 경험을 만든다.(214)  

책의 첫장을 펼쳐들면서부터 나는 그가 이야기하는 공간속으로 나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느낌들과 함께 빠져들어가버렸다. 뭔가 거창하고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기도 하지만 왠지 지금은 말이 뒤죽박죽되더라도 나의 느낌을 그냥 툭 던져넣어버리는 것이 진짜 공간공감이 될 것 같아서 일관성없겠지만 그저 순간순간 떠오른 나의 기억 속 공간을 끄집어내어 투박하게 이야기하다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다.
공간에 대한 틀을 깨버리고, 특정한 감각이 두드러지는 공간에서도 오감이 한데 어우러져 나타나는 공간에 대한 기억들.
어쩌면 그것은 언젠가 떠났던 단체 관광버스의 소란스러움에 익숙해져 있다가 긴 여행에 지친 이들이 모두 잠들어있고, 혼자 깨어 나지막히 울려퍼지는 깐쪼네와 구비구비 돌아가던 이탈리아 남부의 시골길의 너와지붕, 해를 등지고 고개 숙이고 있던 해바라기꽃밭, 기분좋게 덜컹거리던 버스의 느낌까지 한데 어우러지던 그 순간, 이 세상에 참된 평화 있어라를 중얼거리며 느꼈던 그 완벽한 평화로운 느낌과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진다.  

그것은 또 어쩌면 어릴적에 읽었던 동화책 속에 나오는 다락방에 대한 선망어린 추억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락방에 놓여있는 건초침대, 동그란 창으로 보이는 달빛과 무수한 별들의 반짝거림, 저 멀리 보이는 푸른 숲, 아침에 눈을 뜨면 짙푸른 숲이 세상의 상쾌함을 몰아 맑고 깨끗한 공기를 담아주는 곳. 그래서 몇년 전 단지 3일간 머물렀을뿐이지만 아주 오랫동안 지낸것처럼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독일 산골마을의 다락방에서 지낸 즐거움의 공간. 

공간공감은 건축학으로서의 공간의 중요성은 단지 실용적이거나 디자인이 훌륭해야한다거나 하는 나의 단순한 생각을 뒤집어 엎어버리면서 동시에 나의 특별함을 간직한, 간직할 수 있는, 간직하게 될 공간의 탄생과 그러한 공간에 대한 체험과 기대가 같은 공간에 대한 기억과 경험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그렇다고 하나의 공간이 주어지고, 그 안에 툭 던져졌을 때 나의 고유하고 독특한 체험의 공간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공간의 경험을 만드는 일은, 건축을 하나의 살아있는 체험으로 보지 않으면 디자인으로 연결되기 어렵다. 건축을 이미지나 형태로 생각하면 온전한 경험이 나오지 않는다. 건물이 지어지고 나면 경험은 그냥 만들어진다는 생각과, 애초부터 공간의 경험을 위해 조심스럽게 계획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다르다."(117)   

'자신만을 위한 에워싸인 공간'. 바로 이 공간은 우리 삶 속에서의 공간 경험을 이야기할 때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된다. 여기에는 우리가 느끼고 체험하는 공간의 순수한 본질이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20) 
하이데거는 한 사람의 삶이 평안함 속에 머무르면서 자신만의 본질을 찾을 때 진정한 거주가 시작된다고 보았으며, 그가 말하는 거주란 단지 집이나 어떤 건물안에 잠깐 체류함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를 의미하며 특정한 건축양식을 초월한다. 삶은 건물 속에서도, 밖에서도, 길에서도, 숲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속이기 때문이다(38).  
그러니 공간공감은 삶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언젠가 친구 하나는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의 흙집을 그대로 보수하며 지내다 훗날 할머니가 사시던 그곳에서 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공간공감은 그 삶의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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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다다오의 도시방황]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지음, 이기웅 옮김 / 오픈하우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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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깎은 돌로 이루어진 수도원에 들이비치는 빛에는 일종의 장엄함과 웅장함으로 정신을 정화하고 승화하는 신비로운 힘이 존재했다. 나는 몸을 바짝 죄는 듯한 긴장감에 사로잡힌 채 홀로 수도원 내부를 걸어다니며, 금욕적인 석조방에 너무나 크게 울리는 내 발소리에 놀랐다. 이 공간에서는 정신만이 중요할 뿐 육체의 쾌락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아무것도 업는 곳에 들이비치는 빛의 엄격한 아름다움, 돌뿐인 방에 울려 퍼지는 소리의 장엄함. 모든 것을 버린 끝에 남은 것들은 한층 심원해지며 본질과 원리로 향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본질과 원리는 신의 영역이라 바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한 건축을 만들기 시작한 배경에는 세낭크에서의 체험이 바탕에 분명 깔려 있다."(264) 

안도 다다오가 프랑스의 세낭크 시토 수도원에 갔을 때의 느낌과 그 느낌이 자신의 건축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이라는 책을 받아들면서 왜 요즘 다들 안도 다다오에 미쳐있는 것처럼 그의 자서전에서부터 건축에 이르기까지 온갖 책이 다 나오는걸까,라는 심정으로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자서전을 읽은 기억에 더 이상 글로 그를 만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다만 직접 그의 작품들을 보는 것이 소원이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때문에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그의 노출 콘크리트 작품이 자연의 숲과 나무들과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라는 의구심도 생겨났기 때문이다. 제주도의 야트막한 돌담과 앙증맞다 싶은 밭두렁들이 오밀조밀 어우러지는 것과는 달리 시멘트 덩이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있게 디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이건 어쩌면 그의 작품을 실제로 본적없이 콘크리트의 회색덩어리만 이미지로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러니 나는 안도 다다오에 관한 온갖 종류의 책이 아니라 실제 그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급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책을 펼쳐들고 심드렁하게 읽어내려가다가 책 제목을 다시 쳐다봤다. 안도 다다오의 '도시 방황'. 이건 그의 자서전도 아니고, 그에 대한 평전도 아니고 그의 건축작품에 대한 해설도 아니라는 걸 그때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건물이 완성되고 주변의 풍경에 녹아들고 일상에 뒤덮이면서 공사 중 건축에서 느껴지는 긴장감과 날선 생명력은 안으로 가라앉고 언젠가는 보이지 않게 되리라. 그렇기에 완성 과정에 놓인 이러한 상태야말로 건축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다.
인간도 똑같으리라. 인간이 삶과 죽음이라는 결과로 향하는 과정에 놓인 존재라면, 인간의 생이 지닌 아름다움 역시 그 과정 속에 있기 마련이다. 인간도 건축과 마찬가지로 미지의 가능성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숨어 있을 터. 그렇기에 나는 공사중인 건축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좀 더 많은 이들이 알아주기를 바란다."(130-131)  

그는 건축이라는 것을 하나의 건물을 완성해 내는 결과물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여행생활자들은 '삶은 곧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처럼 안도 다다오는 세계의 곳곳을 다니며 건축에 대한 영감을 얻고 그를 통해 삶의 의미에 대해 성찰을 하고 그 결과물로 작품을 탄생시킨다.
"생각해보면 여행이란 목적지에 이르기 전, 그 시간 동안 존재하며 그 과정 속에서 당황하고 방황하는 데 진정한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여행의 행로는 미로처럼 엉켜 복잡할수록 얻을 것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관점은 인생에 적용해도 어긋남이 없으리라. 명쾌함만을 추구한 나머지 근대 도시가 베네치아 같은 미로를 버리고, 사회 또한 복잡함과 애매함을 배제하면서, 현재 우리 인간의 생에서도 심원한 방황이 상실되고 말았다. 대체 인간의 문화와 정신이 깃드는 순간은 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수로가 흐르는 베네치아의 골목을 헤매며, 문득 나는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243) 

인간의 문화와 정신이 깃드는 순간은 정말 어디로 가버린 걸까? 엊그제 우리 사찰 건축의 자연과의 조화로운 어울림과 아름다움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사라져가버리고 있는 공간과 여백의 미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데, 편리함만을 추구하는 건물들이 진정 우리 삶의 편이성을 가져오는 것인지 생각해 볼 문제다.  

쓸데없는 뱀다리를 하나 덧붙이자면 건축이야기를 담은 책이니만큼 책의 디자인에도 꽤 신경을 쓴 느낌은 든다. 폼도 나고 깔끔하기도 하고 멋지다. 하지만 책상에 앉아 형광등빛에 반사되는 회색빛 글씨를 읽기 위해 책을 이리저리 각도조절하면서 애써 읽어야 하는 것은 그리 익숙하지 않은 책읽기를 연출해냈다. 디자인만 멋진 건축이 실용성이 없다면 무엇에 쓰겠는가 싶은 마음에 비유되니 어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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