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에게 보내는 편지
대니얼 고틀립 지음, 이문재.김명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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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아무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우리 몸속에 다 있습니다. 필요한 영양분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면 스스로 알아서 상처를 치유하죠"
의사의 말이 내 가슴에 와 닿았다. 몸의 상처가 그렇게 치유된다면,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되는 것일까? 아기들이 태어날 때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지혜를 지니고 태어난다는 옛 예언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렇다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도 우리 안에 다 있을 것이다.(55-56)

 
   

 

어떤 말로 이 책의 느낌을 전해야할까...

아까부터 한참동안 쳐다보고 있지만 내 안에서 말로 정리되어 나오지는 않는다. 나 역시 어쩌면 상투적으로 똑같은 말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내 마음과 영혼을 울리는 삶의 진실, 삶의 행복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심리학자 할아버지가 손자인 샘에게, 할아버지의 사랑과 삶의 지혜가 담겨있는 글을 쓴 것이다. 여기에 조금 '다른' 내용을 덧붙이자면 심리학자 할아버지인 대니얼 고틀립은 서른세살에 교통사고로 인해 전신마비를 겪었고, 아내와 이혼을 했고, 아내뿐 아니라 자신을 가장 잘 이해해주던 누나마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그의 손자인 샘은 전반적 발달장애, 흔히 말하는 자폐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정말 삶이 행복하다 라고, 매일매일을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물론 샘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나는 그가 진실로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니얼 할아버지는 장황하게 설명하거나 극적인 변화를 이야기하거나 과장된 감동을 표현하지도 않는다. 그저 담담히 자신이 겪어야 했던 일들에 대해 설명을 할뿐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받아들이기 힘들어하고, 절망하고 화도 냈다. 다만 그가 다른 모두와 다른것은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점의 눈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아니다. 이 말은 그가 다른 사람과는 다른 뭔가 특별함이 있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자신이 당한 모든 일에 화를 내고 절망하였음을 숨기지 않는다. 자신의 실수와 치부를 부끄럽게 생각했었고 수치스러워한 감정도 숨기지 않는다. 언젠가, 되풀이되는 일상의 삶에서 어느 한 순간에 문득 깨닫게 되는 삶의 통찰을 풀어놓을 뿐이다. 그 어느 한 순간,이 되기까지 겪어야 했던 절망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두려워하지 않는다. 치부를 드러냄으로써 치유가 된다,는 그의 말은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었기 때문에 더욱 마음에 와 닿았다. 물론 그것을 느꼈었고 알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여전히 치부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한다. 그래서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일순간에 삶의 지혜가 생기고 깨달음이 생겨나 모든 비극적인 상황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가 나오는 것은 아닌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 있도록 노력은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노력의 과정이 특별하다거나, 특별한 누군가만 성취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대니얼 할아버지는 샘에게 편지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 이야기는 다시 상투적인 얘기를 하자면 내 마음과 내 영혼을 깊은 곳에서부터 감동하게 만들고 사랑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코끝이 찡하게 되는 감동어린 사랑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대니얼 고틀립의 이야기대로 이 책에 실린 글은 모두 샘에게 보내는 편지들이고 그의 인생에서, 또 세상에서 그가 배우고 깨달은 이야기들일뿐이다. 그것은 결국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이야기인 것이다.
이 말 외에 더 무슨 말이 필요한가.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이 세상의 모든 샘에게 읽히기를 바랄 뿐. 나도, 당신 역시 또 다른 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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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사단법인 한국여성민우회 지음 / 민연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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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마 이 책을 선물 받지 않았다면 차마 읽을 생각을 하지 못했을수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왠지모를 선입견이 이 책의 내용 역시 그저그런 내용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내 머리속에 집어넣고 있기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어쩌면 이 모든 이야기가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이들의 이야기와 똑같은지! 우리가 둘러앉아 굳이 '페미니스트'라고 하지 않아도 수다떨다가 나옴직한 이야기들이 한보따리이다.

한가지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아주 오래전에 친구 몇명과 서울 나들이를 하고 여성민우회를 찾아갔던 기억이 있다. 학교 총여학생회 부회장이었던 친구를 따라 이리저리 헤매다가 찾아들어간 그곳에서 맘씨 좋아보이는 분께서 이것저것 자료도 꺼내 보여주시고 제주도에 있는 여민회는 제주도만의 독자적인 활동단체라는 것도 설명해주시고... 나는 사실 친구 옆에 앉아서 여성신문만 들춰보고 있었기때문에 지금 기억에 남는 것은 차를 잘못내려 한정거장을 걸어가는데 서울땅이 정말 넓구나,라는 것 뿐이었다.
학교의 총여학생회 회장을 하던 선배가 권해주는 여러 책을 읽어보기는 했지만 깊은 고민은 없었던 그 옛날에, 선배 자신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여성학에 대한 관심과 고민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던 선배는 어린 우리들을 붙잡고 자신이 느끼는 여러 이야기를 해줬었다. 그때의 다른 말은 모두 잊었어도 인간해방, 노동해방...의 궁극적인 달성은 아마도 여성해방의 관점에서 나오지 않을까, 한다는 말이었다. 내가 설명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그때 선배의 말은 뭔가 마음에 깊이 꽂히는 말이었는데... 

그러니까... 조금 비약적인 이야기가 되는지도 모르겠지만, 언젠가 '여성사제'에 대한 글 한토막이 생각난다. 천주교에서는 여성사제에 대한 이야기가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아직까지는 여전히 이단시 되고 있는 문제지만 현실적으로 사제수의 감소와 여성신자의 증가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것은 사실이다. 수천명의 수녀가 있어도 사제 하나 없으면 천주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미사성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실상 사제의 권위를 더 세워주는 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종교의 전례라는 것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대적으로 조금씩 변화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단지 사제의 권위에 대한 문제만은 아닐것이다. 가부장적인 생각들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서 수천년동안 확고한 쌓고 있었기에 그것을 허물어뜨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것이다.
아, 지금.. 책에 대한 리뷰는 하지 않고 지극히 개인적인 종교이야기만 늘어놓고 있는것인가.

아무튼 책을 읽으면서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이야기라는 공감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낼름 다 읽어버렸다. 책속에서 어느 누군가가 남자들은 모이면 남 얘기만 떠들어대지만 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고 했다. 그것의 단적인 예가 바로 이 책인거 아닐까? 개별적으로 아주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 주위의 모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들이 바로 책에 그대로 씌여있기 때문에 심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어쩌면 이렇게 사는게 똑같냐'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거창하게 여성운동 어쩌구..가 아니라 이 세상을 대한민국땅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여성으로서 (간혹 남성으로서) 느끼는 이야기들에 대한 공감을 느끼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이건 멀리 떨어진 별나라의 외계인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홀랑 읽혀버리는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내 말 믿고 한번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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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11: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대유괴
덴도 신 지음, 김미령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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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둘러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오직 하나, 추석 연휴를 노려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였다. 책과 영화는 분명 다르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영화보다는 책을 먼저 읽었던 버릇때문에 이번 역시 그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서 그냥 재미있겠다, 라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역시 책으로 읽는 것은 뭔가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 영화를 본 친구의 평에 의하면 그저 무난하게 재미있는 작품이라는 말에서, 영화를 보지도 않고 내리는 성급한 결론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책이 조금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상상하기 힘든 액수의 금액을 환산해볼 때 종종 '그돈이면 책이 몇권이냐' 하는 것처럼, 돈많은 부잣집 할머니를 유괴한 무지개동자 일당 역시 자신들의 생활형태에 맞게 모든 거액의 환산을 라면단위로 한다. '그돈이면 도대체 라면이 몇개냐'라는 식으로.
이렇게 소박(?)한 무지개동자 유괴범 일당은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겨우(!) 천만엔의 돈을 갖기 위해 할머니를 유괴하는데.. 그때부터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이 책의 내용은 그렇게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 사건이야기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들다가 막판에 예상되는 이야기를 또 뒤집어 엎어버린다. 그냥 평범한 예상치를 넘겨 할머니의 대담성과 경찰청장 이카리의 통찰력과 무지개 동자 일당의 사건 이후의 삶의 모습까지... 그리고 조금은 숙연하게 생각해보는 나의 미래의 삶과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 대해서까지 잠깐동안에 무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영화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글로 된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아닐까?
단순하게 대책없는 코믹함만이 담겨있는 글인줄만 알았는데, 삼십여년전에 쓰여진 이 작품이 그리 큰 시대의 차이가 느껴지지도 않고 재미있게 느껴지니 이것이 책을 읽는 재미라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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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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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두어달만 지나면 내가 날마다 책을 읽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들 중에 가끔은 책을 추천해달라거나, 또 그보다 자주 내가 어떤 책을 읽는지 관심을 갖는다.
시누헤를 읽기 위해 가방에서 꺼내놨을 때도 누군가 힐끔 쳐다보면서 '시누헤'가 뭔가요? 라고 물어왔다. 겨우 십여쪽을 읽었을 때가 단순하게 '사람이름인거 같아요'라고만 대답했는데... 지금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는 나에게 물음 하나를 던져본다.
'정말 시누헤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어?'

이 책을 읽은 느낌은 시누헤가 내게 주는 의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으로 정리가 될꺼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 대답을 쉽게 할수가 없어 자꾸 책을 뒤적거리고 또 뒤적거리게 된다.
아니, 나는 지금 책의 줄거리나 정형화된 시누헤를 말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책을 들춰보다가 잠시 멈추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던 역사이야기 속의 시누헤를 바라보고 있다.
시누헤는 인간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쟁과 사랑, 종교의식의 실체, 개인의 욕망, 선의... 이 모든것을 그 안에 담아 표현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어떻게 시누헤가 뜻하는 의미를 찾아 답할수있겠는가.

사실 시누헤가 갖는 역사적 의미는 잘 모르겠다. 다만 팩션의 형태를 띄고 있는 소설이지만 당시 이집트의 역사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시사하는 사상과 철학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을 느낄뿐이다.
인간이란 개인의 부와 욕망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어떤 사상을 갖고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자기 조절과 통제가 가능하다고 생각해왔던 것이 구체적으로 시누헤의 삶에 녹아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 뭔가 '시누헤'의 이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비리족 사람들은 차라리 사막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굴속에서 굶어죽는 편이 풍족하고 기름진 시리아로 쳐들어가 태양에 그을린 살갗에 기름을 바르고 훔친 곡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보다 낫다는 사실을 피와 눈물을 쏟으며 깨달아야 했다. 나는 전쟁의 참모습을 보았다. 그것은 억압과 살인이었다"(1권, 201)

"나의 복수는 내 심장을 갉아먹었을 뿐 그녀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했다. 그리하여 나는 복수는 만족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복수의 달콤함은 짧고, 복수를 하려던 사람에게 되돌아가 불길이 되어 그의 심장을 갉아먹는 법이다"(2권 59)

"내가 바라는 것은 모든 것이 예전으로 되돌아가서 가난한 자들이 노력한 만큼 충분한 대가를 받고, 법이 올바로 진행되는 것입니다. 내가 바라는것은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선택한 신앙 속에서 평화롭게 자신의 직업에 종사할 수 있게 놓아두는 것입니다."(2권, 112)

내가 내 글로 정리 할 수 없는 시누헤의 수많은 의미 중 몇가지를 끄집어 내 본다.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복수의 허망함에 대해, 내가 믿고 있는 신의 의미에 대해.
시누헤는 역사를 살아온 우리 모두의 모습이고, 또한 지금도 역사를 이뤄나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떤 삶의 모습으로 역사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  그 답이 나오지 않겠는가.

소설의 재미로만 이 책을 읽는동안 사실 조금 지루하거나 뜻밖의 결말에 당황해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 책 시누헤는 팩션소설 시누헤가 아니라 '시누헤' 자체로 읽어야 하는 글이라고 말하고 싶다.
옛날 설화속의 시누헤는 우연히 파라오의 막사에서 흘러나오는 무시무시한 비밀을 엿듣게 되는 바람에 이방의 땅으로 달아나 숱한 모험을 겪게 되는 인물이다. 설화속의 시누헤처럼 이 이야기속의 시누헤는 숱한 모험을 겪게 되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뜻은 무한히 깊다.

책을 덮다 말고 나는 시누헤가 중얼거리는 말을 다시 되새김질해본다. 나는 지금도 시누헤가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머리에 쥐나도록 생각해본다. (하긴 그렇다. 내 몸으로, 나의 삶으로 체화시켜내지 못하고 나는 여전히 머리만 쥐어짜고 있는 것이다)

"물고기들은 내 형제야. 녀석들은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지 않거든. 사막의 늑대들도 내 형제고, 황야의 사자들도 내 형제야. 하지만 인간은 내 형제가 아니야. 인간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니까 말이야"
내 심장은 나를 비웃었다.
"인간이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안다고? 너야 그걸 알겠지. 너는 지식을 가진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너를 죽는 날까지 괴롭힐거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라"(2권,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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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09-21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관심이 갑니다~~ 좋응 서평 잘 보고 갑니다!
 
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
다니엘 타멧 지음, 배도희 옮김 / 북하우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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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인맨, 천국을 만나다'라는 책 제목은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책 제목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책의 제목이라는 것은 시선끌기가 조금 더 유효한 것이겠고 실제 중요한 것은 안에 담겨있는 내용일테니까.
브레인맨,이라는 것은 다니엘 타멧의 능력에서 나온 말이기도 하지만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잘 알려진 레인맨의 댓구로 사용된 말이기도 하다. 그런 다니엘이 자신의 출생 후 어린 시절, 성장하면서 겪은 여러가지 경험들, 자신의 틀을 깨고 해외자원봉사활동을 하게 되는 과정을 담담히 이야기하듯 써내려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평화로움을 느끼고 모든 것 안에 충만함을 느낀 그 순간 그는 천국을 경험한 것이다.
사실, 자폐증을 가진 이들의 보편적인 성향도 모르고, 아스퍼거 증후군 어쩌구 하는 말도 잘 모르는데 다니엘 타멧에 대한 설명을 한다는 것이 우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천재자폐서번트, 축복과 고통을 한 몸에 갖고 태어난 다니엘 타멧이라는 실존 인물의 이야기라고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실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책을 무심코 읽어나가다 어느 순간 눈에 마구 띄어버린, 아니 어느 순간 인식하게 되어버린 숫자를 보면서였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나는 이 글이 다니엘 타멧 본인이 쓴 글이라는 것도 재차 저자를 확인하고 나서야 인식하게 되었고 그만이 갖는 숫자에 대한 경이로운 세계의 체험이라는 것 역시 책을 읽는 중에 88서울 올림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참가자 숫자를 보고나서야 움찔하는 느낌으로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숫자에 대한 감각과 느낌이 특별하고, 언어에 대한 습득 능력이 뛰어나지만 은유와 비유적 표현에는 약한 다니엘이 어떻게 자신의 삶을 행복으로 채워나가는지, 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감동적이지 않을수가 없다.
내 개인적인 느낌인 '13+69'를 느닷없이 적어놓는다면 조금은 웃긴것일지 모르겠지만 다니엘 타멧은 내가 좋아하는 13이라는 숫자와 서로 마주보고 정답게 이야기하는 듯한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는 69와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 자폐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폐쇄성이 그에게서는 69와 같은 가까운 이들과의 더욱 긴밀한 관계성이라는 것으로 달리 느껴진다는 말이다.

나는 잠시 책을 읽으며 조금은 엉뚱한 인물과 사건에도 감동을 받았다. 사춘기시절 다니엘이 처음 사랑을 느낀 친구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 그 용기에 감동을 받았고 그의 고백을 들은 친구의 행동에도 감동을 받았다. 그 친구는 다니엘을 무시할수도 있었고, 다니엘의 마음을 약점삼아 놀려댈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그저 묵묵히 바라보며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완곡한 거절의 표현을 할 뿐이었다.
그래, 나의 열여섯살 시절과는 비교도 안되는 그들의 생각깊은 배려의 행동이기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다니엘은 레인맨으로 더 많이 알려진 킴 픽을 만난것을 가장 행복한 순간의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킴은 '남과 다르다고 해서 해내지 못할 것이라 미리 좌절하지 말아라. 원래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물론 킴의 메시지를 듣기 전부터 다니엘은 자신의 삶에 충실했고 할수있는 한, 하고 싶은 것에 대한 모든 시도를 다 했다. 그것이 지금 그가 천국을 느낄 수있게 된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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