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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서평을 써보겠다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제목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으로 쓰다가말고 대뜸 이렇게 글을 쓴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은 처음 읽어봤다. 짧고 간결하지만 깊이있는 글들. 그렇게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의 글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바보같이, 그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체호프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는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모파상을 떠올려버렸었다.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글도 지나쳐버렸다. 더구나 지금 다시 살펴보니 '에드워드 호퍼처럼 카버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 삶을 배신하는, 푸른 그늘이 드리워진 그 얼어붙은 세계를 묘사한다'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책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정직한 사실적 묘사에 놀라곤 해버린 것이다. 아니, 놀랐다기보다는 자꾸만 나의 기대와 다른 이야기들에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도대체 나는 책을 왜 읽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글쎄,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단편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어 짧게 얘기한다면 나의 어줍잖은 책느낌을 적는것이 좀 더 쉬울까? 아니면 작가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더 쉬울까. 사실 이렇게 허접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리는것보다 낫지 않은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렇다고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나는 더 바보같지만.
어수선하게 쓰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 내 느낌을 끄집어내어 글로 표현해봐야겠다.
이 책 대성당에 실려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은 행복하거나 즐거운 우리집, 의 분위기는 아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의 글은 호퍼의 그림과 닮아있는 것이 맞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습들, 어딘가 익숙하지만 결코 마음이 푸근해지는 일상은 아닌.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내가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에 대해 뭘 알겠는가. 다만 그의 글에서 짐작만 할뿐이다. 언젠가 읽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마음 한구석을 전율케했던 장편소설이라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은 서늘하고 날카로운 한컷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진 한 컷이 담고 있는 것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또는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겠지. 아, 그리고 또 그 한 컷의 사진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가에 따라서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왠지 모를 답답함과 짜증섞인 마음이 솟구쳤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속의 등장인물에 동화되어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뭔가가 가득채워져버린다. 괜한 감동과 희망을 주려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짧은 글이 끝나고 난 후 내 마음에 남는 긴 여운이 끝내 감동과 희망을 끄집어내어버린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레이먼드 카버가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면 행복하리라고 말한 그 이유를 알수있겠다. 물론 두개의 단편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동감하리라 믿는다. 아직 미처 그의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레이먼드 카버가 살아남기를 희망했던 두개의 단편만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쿵,하고 울리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옮긴이 김연수 작가는 대성당의 마지막 문장을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레이먼드 카버의 글을 어떻게 잘 옮겼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영어도 짧을뿐더러, 원문을 본적조차 없으니. 하지만 왠지 옮긴이의 설명을 읽게 되면 새삼 마지막 문장이 남는다. '이거 진자 대단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