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티 이야기 카르페디엠 9
벤 마이켈슨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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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티 이야기는 소설이다. 하지만 어느 누가 그저 '소설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피티는 1922년 봄, 뇌성마비로 태어났다. 그리고 도저히 그를 고칠 수 없는 것을 안 그의 부모가 요양시설에 맡긴 후 그는 전생애를 요양시설에서 지냈고 1990년즈음 이 세상을 떠났다. 피티의 이야기는 단순하고 지루한 일상의 반복일뿐일 것 같은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가 살아있던 당시 뇌성마비는 정신지체, 아니 지각력이 전혀없는 천치바보라고만 인식되었다. 그래서 모두가 피티를 살아있는 생명체로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존엄한 인격체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피티는 세상의 모두에게, 세상의 모든 일에 긍정적이다. 이런 피티의 삶의 태도는 언제나 불평불만인 나를 순간 멈칫,하게 해버렸다.

분명 문학작품으로 피티이야기를 읽었을 때, 나는 그저 그런 흔해빠진 장애극복과 봉사정신이 뒤섞인 약간의 감동이 있는 소설이겠거니 하는 편견이 있었다. 사실 문학적으로 짜임새가 뛰어나거나 표현이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피티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나는 작가가 괜한 감동과 교훈을 주려고 한다는 느낌보다 오히려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한없이 긍정적인 피티와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친구 캘빈, 그 둘의 우정을 일깨워주고 존재의 가치와 살아갈 힘을 실어 준 캐시, 피티가 의사표현을 할 줄 알고 감정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아준 에스테반, 세상의 온갖 즐거움을 보여 준 오언 그리고 피티의 진짜 손자가 되어 준 트레버... 피티와 함께 한 그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 편견으로 가득한 나의 모습이 한없이 부끄러워질 뿐이다.
피티의 이야기는 나의 모습을 정직하게 되돌아보게 하였다. 팔다리가 뒤틀린 이를 보게 되면 스스럼없이 다가가 웃으며 인사를 건넬 수 있는가. 매일은 커녕 단 하루라도 몸이 불편한 이를 돌볼 수 있는 친절함이 내게 있는가. 인내심을 갖고 누군가를 위해 참아내고 기다려 줄 수 있는가. 진정 인간의 존엄성을 믿으며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가......

그저 감동적인 소설 한 권을 읽고 하는 그런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실제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피티의 긍정적인 삶의 태도와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이 나를 변화시켜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물론 어쩌면 피티의 이야기가 전해 준 진한 감동이 서서히 사그라져가면 다시 예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주 가끔씩이라도 피티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나 자신을 긍정적인 모습으로 바라보는 법을 익히게 될 것이다.
피티가 느꼈던, 십년만에 처음 느껴보게 되는 싱그러운 산들바람과 뺨을 간지럽히는 듯한 부드러운 햇살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 세상인지를 떠올리며 잠시 눈을 감고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될 것이다.
분명 나는 지금 세상을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마음과 열린 마음이 나 자신을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깨닫고 있다. 그 깨우침이 내 마음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조금씩 올라와 나를 행복하게 하고 있다. 최선을 다해 살아가려고 했던 피티가 이 세상을 얼마나 행복한 마음으로 살아갔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피티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고, 피티처럼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도록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내 모습을 느낄 수 있어 더 좋은 요즘이다.

피티의 이야기를 읽으며 수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그래도 피티가 내게 준 가장 커다란 느낌은 그것이다.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것. 아니, 누구나 행복해야만 한다. 그리고 상투적인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모두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봉사를 실천해야 하겠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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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그림자의 책 뫼비우스 서재
마이클 그루버 지음, 박미영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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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와 어떻게 아무도 그녀가 실제로 한 일을 밝혀낼 수 없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정말로 남편 단리 경을 죽이려 음모를 꾸몄을까? 무엇에 홀려 보스웰 같은 미치광이와 결혼했을까? 엘리자베스의 암살을 모의한 그 발각된 편지를 그녀가 썼을까? 왜그녀는 평생 머저 생각부터 해보지 않았을까?
나는 모른다고 말했다. 내게는 전부 명작극장이었다. 허나, 자기들이 가질 자격이 없는 무언가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국가의운명이 휘둘린 것이 그것이 처음은 아니었을 터였다.(499)

그래도 명색이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책인데 재미없게 줄거리를 얘기할 수는 없겠고. 그렇다면 도대체 이 책에 대해 뭘 써야하지? 브레이스거들의 편지가 과거의 허구를 이끌어가고, 현재에서는 미쉬킨과 크로세티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이런 구조는 요즘의 소설에서 그리 특별한 것도 아닐것이다. 하지만 몇몇 소설이 문학적 접근이라기보다는 영화라는 영상을 염두에 둔 듯 씌여지곤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람과 그림자의 책은 그래도 문학작품이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뭐, 문학적 접근을 하는 문학작품이라는 것이 뭔 말이냐고 묻는다면 딱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위에 인용한 책의 문장은 어쩌면 그냥 뜬금없는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미발표 원고를 찾아내는 과정을 엮어낸 이 소설책의 즐거움은 내게 있어서 전부 '명작극장'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가 발견한 저 문장이 그리 반가울수가 없던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나는 이 책이 '명작극장'만큼 재미있다. 진부하고 오래되고 빤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명작극장이지만, 그 나름대로 반짝거리며 자신의 진가를 보여주고 있는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래, 한가지 덧붙여 이야기하자면 셰익스피어아닌가! 비록 그의 희곡 원작을 영문으로 읽어본적도 없지만 셰익스피어는 내게 문학의 로망이다. 그래서 바람과 그림자의 책이 셰익스피어의 미발표원고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충분히 흥미로운 것이다.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읽다보면 조금은 빤해보이는 결말이 눈에 보이는 듯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늘어지지 않는 사건의 전개와 사이사이에 그 흥미를 더해주는 브레이스거들의 편지글이 담겨있어 분량이 꽤 많은 책이지만 금새 읽힌다.

**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몇몇 책들에 비하면 정말 맘에 드는 책 편집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다른 책에 비해 글자가 좀 작고 빽빽해보여 처음 읽을 땐 어색했으나, 거의 600여쪽에 달하는 책을 한 권으로 출판하려고 애쓴 것 같아 오히려 더 좋아져버렸다. 요즘 글자를 크게하고 줄간격을 늘여서 두권으로 출판하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생각해보면 더욱더 좋아진다. 작은것 같지만 커다란 미덕이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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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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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서평을 써보겠다고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제목을 '별것 아닌 것 같지만..'으로 쓰다가말고 대뜸 이렇게 글을 쓴다. 레이먼드 카버의 글은 처음 읽어봤다. 짧고 간결하지만 깊이있는 글들. 그렇게 말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그의 글을 그렇게 느꼈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정말 바보같이, 그에 대한 평을 읽으면서 '체호프의 정신을 계승한 작가'로 불린다는 글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는 모파상을 떠올려버렸었다. 리얼리즘과 미니멀리즘의 대가라는 글도 지나쳐버렸다. 더구나 지금 다시 살펴보니 '에드워드 호퍼처럼 카버는 시간의 흐름이 우리 삶을 배신하는, 푸른 그늘이 드리워진 그 얼어붙은 세계를 묘사한다'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책을 읽으면서 지나치게 정직한 사실적 묘사에 놀라곤 해버린 것이다. 아니, 놀랐다기보다는 자꾸만 나의 기대와 다른 이야기들에 조금 당황했다. 그리고 도대체 나는 책을 왜 읽는가,라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글쎄, 뭐라고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단편 하나하나를 끄집어내어 짧게 얘기한다면 나의 어줍잖은 책느낌을 적는것이 좀 더 쉬울까? 아니면 작가가 끝까지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한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더 쉬울까. 사실 이렇게 허접한 이야기를 길게 늘어뜨리는것보다 낫지 않은 것이 어디있겠는가. 그렇다고 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나는 더 바보같지만.

어수선하게 쓰고 있지만 그래도 짧게 내 느낌을 끄집어내어 글로 표현해봐야겠다.
이 책 대성당에 실려있는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들은 행복하거나 즐거운 우리집, 의 분위기는 아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그의 글은 호퍼의 그림과 닮아있는 것이 맞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습들, 어딘가 익숙하지만 결코 마음이 푸근해지는 일상은 아닌.
정직하게 얘기하자면 사실 내가 레이먼드 카버가 살았던 시대의 미국에 대해 뭘 알겠는가. 다만 그의 글에서 짐작만 할뿐이다. 언젠가 읽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가 마음 한구석을 전율케했던 장편소설이라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 대성당은 서늘하고 날카로운 한컷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사진 한 컷이 담고 있는 것은 그걸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또는 무엇을 보려고 하는가에 따라 느낌이 달라질 수 있겠지. 아, 그리고 또 그 한 컷의 사진 안에 담겨 있는 의미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는가에 따라서도.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과 '대성당'은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왠지 모를 답답함과 짜증섞인 마음이 솟구쳤다. 나도 모르게 이야기속의 등장인물에 동화되어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오르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다 읽고 나면 마음 한구석에서부터 뭔가가 가득채워져버린다. 괜한 감동과 희망을 주려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그의 짧은 글이 끝나고 난 후 내 마음에 남는 긴 여운이 끝내 감동과 희망을 끄집어내어버린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레이먼드 카버가 끝까지 살아남게 된다면 행복하리라고 말한 그 이유를 알수있겠다. 물론 두개의 단편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모두 동감하리라 믿는다. 아직 미처 그의 글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레이먼드 카버가 살아남기를 희망했던 두개의 단편만이라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나는 쿵,하고 울리는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당신도 그러하리라 믿는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옮긴이 김연수 작가는 대성당의 마지막 문장을 '이거 진짜 대단하군요'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레이먼드 카버의 글을 어떻게 잘 옮겼는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영어도 짧을뿐더러, 원문을 본적조차 없으니. 하지만 왠지 옮긴이의 설명을 읽게 되면 새삼 마지막 문장이 남는다. '이거 진자 대단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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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상처럼 문장이 시각적인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은 어떨까...
    from 놀이터 2011-07-02 09:38 
    "어렵다.(웃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일 테니, 마치 영상처럼 문장이 시각적인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집은 어떨까."아침에 메일을 확인하려다 포털사이트의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유지태.. 1년 책값으로 5백만원...'뭐냐, 지금의 덥고 칙칙하고 불쾌지수가 높은 환경에서는 다른때와 달리 돈자랑이신가,라는 핀잔이 먼저 나왔다. 그래도. 나는 유지태의 팬,이라고는 하기 힘들지만 나름 유지태에 대한 인식이 좋기 때문에 - 근데 내 친구는 유지태가 싫단다.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
이철승 지음 / 쿠오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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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온 더 로드'라는 책이 인기를 끌고, 길을 떠나고자 열망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었다. 얼마 전에는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라는 책도 읽었다. 그리고 드디어 '길에서 영화를 만나'버렸다. 왠지 이 세상의 모든 만남은 '길'에 있는 것 같다. 자, 이제 나는 그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길은 내 앞에 놓여있다'라는 시를 읊조리며?
아, 물론 그 '길'이 품고 있는 의미는 다 다르겠지만말이다.

길에서 영화를 만나다,는 얼핏 읽어보면 영화 속 그 장면을 찾아 현실세계의 여행을 떠나는 기행문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자가 단지 영화를 좋아하는 여행작가가 아니기때문에 이 책은 '영화 속 명장면'으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은근슬쩍 영화속의 실제 장소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속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하고 또 그 영화가 담고 있는 세계관까지 눙치며 슬그머니 밀어놓기도 한다. 내 주관적인 느낌일뿐인지도 모르지만, 적당히 매니아적인 영화의 선택과 또 적당히 대중적인 영화의 선택이 이 책을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영화광이 아닌 나로서는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이름을 아주 먼 옛날(?) 영화잡지에서나 볼 수 있었고 그의 영화를 봤던 누군가가 '영화가 뭐 이러냐'라는 말을 내뱉았던 것만 기억하고 있으니 이 책의 시작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야기라는 것에는 조금 당혹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가 실제로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하면서 느낀, 그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느낌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는 불투명한 이야기와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들이 모든 영화적 해석을 관객에게 맡겨버리는 불명확함이 맞물리면서 '길에서 영화를 만난다는 의미'가 무엇을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 감을 잡으며 저자와 함께 길을 떠날 수 있었다. - 아니, 사실 저자의 의도는 이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떠랴. 때로 의도하지 않은 관객의 해석이 유효할 수 있듯 의도하지 않은 의미를 찾는 독자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떠난 길에서 이제 한가지는 명확해진다. 이 책은 '영화 속 명장면'이 아니라는 것.
백명의 관객이 있다면 백개의 해석이 있기를 바란다는 데이비드 린치의 말을 너무 마음에 담아버린 탓일까. 우리 모두에게는 영화를 보는 관점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길이 다 다르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통한 여러 삶의 모습과 길을 바라보게 된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길을 떠난 것이다.
영화이야기라는 껍질을 벗겨보면 그 속에는 현실을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것을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깨닫게 된다. 어쩌면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소통'이고 자신의 삶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 그가 이야기한 그곳이 어느 특정한 지역이었다는 것도, 어떤 특정한 영화의 이야기였다는 것도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익숙하지 않은 것을 통해 익숙함을 찾아내고, 익숙한것에서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을 시도하려 했다는 이야기와 통해있다.

이제 나는 다시 나만의 느낌으로 길을 걸어봐야하겠다. 같은 영화를 보며 다른 느낌을 갖듯, 같은 길을 따라 걸으면서 다른 삶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우리의 현실을 감싸고 있는 표면의 아래에 감추어진 모든 진실은 훗날이 되어서야만 밝혀질 것이다'(스캐너 다클리,에서. 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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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새판짜기 - 박정희 우상과 신자유주의 미신을 넘어서
곽정수 엮음 / 미들하우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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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보기 전, 이거뭐야~ 하는 심정으로 머리말을 읽고 팽개쳐두려다가 꾹 참고 조금 더 읽어봤더니 왠걸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었다. 그래서 정신없이 술렁술렁 단숨에 다 읽어버렸다. 현실적으로 너무나 공감이 가는 이야기에 맞장구치면서 간혹 화나는 현실의 경제판에 욕이 치밀어 오르는 것도 참아내면서 책을 재미있게 읽기는 했는데..이 책에 대해 뭐라 설명할수가 없다.

이 책에서는 한국경제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자세히 진단하고 경제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제시를 하고 있는데, 별 생각없이 술렁술렁 읽어버리고 나니 가장 크게 남아있는 건 한국경제의 문제에 대해서만 너무 집중을 해서 읽었구나 라는 감상뿐이다. 이런 엉터리같은 책읽기라니. 그런 내가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쓴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글쓰기가 될 것 같아 그저 짧은 감상 한마디만 해야할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이 책을 읽었고, 이들이 나눈 대담을 진리인것처럼 여과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직접 느꼈던 경제이야기와 지난 몇년간의 경제정책들은 가상이 아닌 실제인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이거 뭔가, 라는 느낌으로 읽기 시작했던 이 책이 어느새 한국경제의 '새판짜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의 제시라는 것 역시 과장된 광고의 문구가 아니라는 것 역시 분명하다고 말할 수 있다.

박정희 우상과 재벌신화, 신자유주의의 미신을 넘어서라는 부제가 쌩뚱맞게 들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90년대에 이미 그 조짐이 보였던 신자유주의를 포함해서 은연중에 우리들의 - 우리라는 표현이 맞을지 잘 모르겠지만 - 의식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기업 살리기(결국 이것은 재벌을 살리기 위해 공적인 자본이 이용되는 것을 정서적으로 간과해버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국민들이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의 문제점까지 끄집어 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의 진가를 알 수 있다. 적어도 내게는.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경제의 새판짜기'에 대해 설명할 수 없음은 오로지 나의 한계일뿐이며, 이 책은 경제나 정치적으로 뭔가를 좀 알아야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라 이 땅에서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나의 한계가 참으로 안타까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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