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다 - 우리 시대 전태일을 응원한다
하종강 외 지음, 레디앙, 후마니타스, 삶이보이는창, 철수와영희 기획 / 철수와영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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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다,라는 책을 받은 날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강론글을 읽었다. 용산참사와 관련한 시국미사에 참례한 사제의 이야기였는데 미사가 있었던 성당의 주임신부님은 비록 함께하지는 않았지만 미사를 끝낸 다른 사제들을 위해 빵과 음료수를 준비해두고 있었다는 뭐 그런 이야기. 생각과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함은 똑같은 것이기에 가능한 것이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 인간에 대한 예의가 내게, 당신에게,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바빴다는 핑계로 날짜가는 걸 몰랐다고 하지만 2010년 11월 13일, 어제가 전태일 열사의 사십주기였음을 잊고 있었음에 대한 변명은 할수가 없다. 전태일, 그가 뭐 대단하냐고? 당신이 전태일에 대해 안다면 결코 그런 말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대학에 입학하고 그에 대한 글을 읽었을때 나는 그의 위대함을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달라 외치며 분신자살을 한 그는 살신성인의 느낌은 있었지만 내게는 현실적인 느낌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살아온 세월이 쌓여갈수록, 인간에 대한 예의가 절실해질수록, 내가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무뎌져가는 걸 느끼게 될수록 전태일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 알것만같다. 그같은 사람은 또 찾기 힘들것이다.
그는 세상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정말 세상을 사랑했고, 우리 모두를 사랑했다. 이 세상의 모든 전태일을 위해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의 사랑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우리시대의 전태일을 응원한다는 부제가 달려있는 '너는 나다'는 전태일 열사의 사십주기를 기념하며 4개의 출판사가 공동기획하여 출판한 책이다. 실제 이름이 전태일인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며 또 하나의 전태일을 만난다. 나태일과 전태일의 만화를 통해 이기적이고 자신만 아는 이들의 냉소적인 비난이 당치않은 것임을 말해준다. 열사 전태일이 그저 사람을 너무도 사랑했던 사람일뿐이라는 것이다. 내가 배고프면 타인도 배고픔을 느낄것이고 내가 노동의 고됨에 힘들어하면 타인 역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하고 아는 사람은 드물다. 사십년전 전태일이 그토록 친구가 되고 싶어하던 대학생은 지금 넘쳐나지만 그들 역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뿐이다. 청년실업이 사회문제가 되어가고 있고 그들의 생존을 위한 노동은 고되기만 하다.
이 책의 네번째꼭지는 청소년에게 쉽게 풀어 이야기하듯 설명한 하종강의 노동백과이다. 직장생활을 2,3년쯤 하게 되면서 서점에 꽂혀있던 근로기준법을 사들고 읽으면서 그 옛날 자신의 몸을 불사르며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쳤던 전태일 열사의 그 마음을 아주 조금은 알것만 같았던때가 있었음을 기억한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로부터 십년이 더 지나도록 노동현실이 많이 바뀌지도, 노동법이 더 나아지지도 않았다. 물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태일 열사의 사십주기를 기념하는 그날 나는 현실의 벽이 얼마나 견고하고 높은지를 깨달아야 했다. 지금 내가 이 벽 앞에서 느끼는 분노와 절망이 이러한데 사십년전의 그는 어떠한 마음이었을까.

책의 첫머리에서 손아람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잘 살고 있습니까?'
... 다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노동은 고귀하며 값진 것이고 당신의 노동은 값싼 싸구려다,라는 생각을 버리자. 노동만큼 신성한 것은 없으며 그것은 우리 모두가 더불어 함께 살기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임을 잊지말자.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는 인간의 존엄성만큼이나 소중한것이다.
지금 나는 그것을 제대로 깨닫고 있는지,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지... 그저 사람을 너무도 사랑했던 전태일의 그 마음을 닮아가려고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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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주고 싶어요
알리스 브리에르 아케 지음, 김현좌 옮김, 셀리아 쇼프레 그림 / 봄봄출판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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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주고 싶어요'라고 아주 작은 아이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를 위한 아주 작은 아이의 사랑스러운 마음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아주 작은 아이는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을 주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마음처럼 커다랗고 어둠속에서도 밝은 빛이 되어주며 엄마를 포근히 감싸 안아서 행복으로 가득 채워 줄 그런 아주 멋진 선물을요."

작은 아이는 그저 평범한 아이입니다. 작은 아이가 특별해서 엄마에게 세상에서 가장 멋진 선물을 찾는것은 아니지요.

작은 아이는 정말 아주 작은 아이지요?

그렇지만 사랑하는 엄마에게 가장 멋진 선물을 드리고 싶은 마음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커다랗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물을 드릴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달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아이는 하늘의 달을 따기에는 너무나 작았고, 아빠와 친척들에게, 이웃들에게 하늘에 손이 닿을 수 있게 자신을 올려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들 모두는 기꺼이 작은아이의 부탁을 들어주지만 작은 아이는 도움을 받은 모두와 달을 나눠줘야만 한다는 것에 화가 나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혼자 달을 차지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난답니다. 그렇게 세계의 여러곳을 여행하며 다닌 작은 아이는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요?

작은 아이가 엄마에게 드린 선물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작은아이를 도와주려고 한 이웃들의 마음은 어떤것이었을까요?

엄마가 기뻐한 작은아이의 선물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하나뿐인 엄마를 위한 사랑의 선물은 무엇인지 한번 더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찬찬히 읽다보면 달보다도 더 빛나는 모두의 마음이 보입니다.
이 아름다운 색채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함께 보실래요?
놀라운 선물을 발견하시게 될 거예요,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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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 선사 삼국 발해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1
유홍준 지음 / 눌와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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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의 첫머리에 '교양과 상식으로 한국미술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일반인과 미술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한 입문서'로 씌어졌다고 말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밑줄을 치며 공부하는 한국미술사가 아니라 소파에 기대어 편안히 독서할 수 있는 한국미술사에 더 중점을 두고 썼다는 이야기이다.
그말을 믿고 그닥 교양과 상식이 많지는 않지만 조금은 편하게 책을 펴들수 있었다. 하지만 편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는다면 빨리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과 달리 너무 오래 들고다녀서 이 묵직한 책의 제본이 뚝 반으로 갈라져버리지 않을까 싶은 괜한 걱정이 앞서기도 할만큼 진중하게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입문서라고 하지만 저자의 말대로 미술사의 이해에는 많은 예비지식이 필요한 것이며, 한국미술사의 통사通史이기 때문에 미술사관의 이해없이는 책을 술술 읽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렵기만 한것은 아니다. 깊이 들어갈 수 없다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즐기자는 기분으로 책장을 넘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미술사를 기술하는 첫번째 책으로 한국의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와 발해까지의 미술사를 기술하고 있다.
학창시절에 국사시간에 듣는 여러이야기를 재밌어해서 국사수업을 열심히 들었던 덕분에 친숙한 역사이야기와 역사적 유물들의 도판이 낯설지 않아 그나마 아름다움에 감탄을 하며 조금은 여유롭게 책장을 넘기며 즐거운 교양 강의를 듣는 듯 책읽는 시간이 재미있었다.
그런데 막상 한국미술사 강의에 대한 정리를 해 보려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진다. 역시 이 책은 강의록 정리노트가 아니라 도판그림을 보면서 유홍준교수의 강의를 듣는 느낌으로 직접 책을 읽어봐야한다는 말밖에는 할말이 없다.

'미술사의 입문서는 박물관 관람과 현장 답사의 지침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존의 미술사에서는 잘 다루지 않은 고고학 분야와 산성, 비석의 금석문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4)라는 말처럼 지금까지 내가 그리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읽었던 책들보다 훨씬 다양하고 깊이있는 내용이 담겨있고 또한 풍부한 자료의 도판과 사진들이 있어 눈을 즐겁게 할뿐만 아니라 직접 박물관으로 찾아가거나 유물과 유적이 있는 곳으로 현장답사를 가보고 싶은 마음에 괜히 들떠버렸다. 생각해보면 이 책의 탄생배경에 대한 설명에서 한국미술사에 대한 책이 전무하다시피 한 우리의 현실에 대해 언급을 하고 있었는데도 한국미술사 강의가 너무 신선하다고 흥분하고 있었으니 내가 책을 제대로 읽기는 한건가 싶지만. 

미술사에 대한 전반적인 흐름과 이해도 중요하지만 솔직히 평범한 일반인으로서 이 책을 읽는동안 나는 도판에 실려있는 각 작품들의 아름다움에 반해 그저 멍하니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청동기시대의 굽다리잔의 소박함이 좋고, 청동허리띠장식의 아름다움이 좋고 신라가야시대의 도기에서 손잡이 달린 잔은 지금 내가 사무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머그컵보다 훨씬 더 세련미를 담고 있어 놀랍다. 무덤의 벽화나 금세공장식들 기와장식과 석탑, 그리고 불상들...이미 그 아름다움에 대해 놀라기는 했었지만 그 아름다움에 대한 설명을 읽고 난 후에는 다시 한번 더 놀라게 된다. 물론 어쩔수없이 책의 도판만을 쳐다보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직접 보기 위해 우선 박물관에라도 뛰어가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인지 혼자 책읽으면서도 개인소장,이라 설명되어있는 글을 읽는순간 박물관에 기증하세요!를 크게 외치기도 했다. 들리지도 않을텐데 말이다.) 

"귀면와 역시 삼국의 정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고구려 귀면은 선이 굵고 인상이 강하며, 백제 귀면은 부드럽고 우아하다. 신라와 통일신라의 귀면은 화려한 자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미감의 차이는 도기, 불상 등 다른 분야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이런 특징은 아주 드물게 발견되는 인물 무늬에도 나타난다. 미륵사터에서 출토된 인물무늬와당은 온화한 노인 모습이고, 신라의 인물무늬와당은 얼굴에 가는 미소가 살아있다. 
세계 문화사의 시각에서 보면 그 민족의 고유한 정서는 고대국가를 경험하면서 세련되어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고대국가를 거친 민족과 그렇지 않은 민족사이에는 민족적 정체성에 차이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고대국가를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세 나라로 경험했기 때문에 다양한 고전적 가치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와당에서 명확히 보여주는 고구려의 강인함, 백제의 우아함, 신라의 화려함은 우리 역사 속에서 이룩한 한민족 고유의 고전적 미적 가치인 것이다." (233-235)  

우리의 미술사는 우리의 역사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책의 내용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황룡사구층탑의 민족사적 시각에서 바라 본 의의에 대한 설명이 있다. 선덕여왕이 황룡사 구층탑을 세우면서 각 층마다 물리칠 대상을 열거하였는데 거기에는 고구려, 백제가 들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삼국의 전쟁은 민족 안에서의 다툼이었다는 의식을 담고 있으며 신라의 통일은 민족사적 통일이었다는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것(280)이라는 설명은 건축물의 의의뿐만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인식과 사회, 문화, 종교를 통틀어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그 자체의 아름다움도 바라볼 수 있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이제야 막 한국미술사 강의 첫째권을 끝냈는데 벌써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1년에 한 권씩, 3년동안 집필계획을 세웠는데 그걸 어찌 기다리나 싶어진다. 다음권이 나올때까지 나는 우리의 선사시대부터 삼국과 발해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와 미술사를 다시 읽어보며 그 시간을 좀 줄여봐야겠다. 그리고 미술사의 이해에는 많은 예비지식이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미술사를 좀 더 깊이 이해해보기 위해 예비지식을 쌓는 시간으로 생각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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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10-11-08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그림이 있는 책을 좋아하죠. 미술책도 좋아해요. 하지만 생각해보면, 한 번도 깊이 있게 본 적이 없는 듯..
언제쯤 저는 여유있게 미술관의 어느 그림 앞에 오래동안 앉아 사색을 즐길 수 있을까요. ^^;
 
집보다 여행 - 어느 여행자의 기발한 이야기
왕영호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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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안에 잠재되어 있는 모험과 자유의 본능을 깨우는 열쇠는 될 수 있습니다. 자유를 향해 나아가세요. 내 운명의 주인은 나 자신이고 내가 선장입니다. 그걸 잊지 마세요(168)

사회인이 되어 처음 직장생활을 하면서 행운처럼 외국여행의 기회가 생겼었다. 직장을 다니지 않았다면, 처음으로 유럽이 아닌 아시아지역에서 가톨릭청년들의 행사가 있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고, 또한 직장인이 아니었다면 경비때문이라도 선뜻 참가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우연찮게 나의 첫 해외여행은 시작되었다. 물론 수십만명이 모여들어 우리는 행사장에도 못들어가고 커다란 공원같은 곳에서 하룻밤 노숙을 하며 화면으로조차 대회장을 보지도 못하는 처지에 있었지만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낯선 광경들은 내게 낯설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보다 더한 설레임을 주기에 충분했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일주일정도의 짧은 기간을 필리핀에서 보내고 온 후, 또 기적처럼 1년이 안되어 자유여행을 할 기회가 생겼다. 그당시에는 몰랐지만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것도 아니었고, 여행사를 통한 패키지 여행이 아니라 항공권만 끊고 훌쩍 떠나는 자유여행은 특히나 흔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여행을 떠난다는 설레임에 나는 여지없이 여행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관련 책을 구입해서 줄을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고, 문화를 좀 더 알기 위해 관련 책들을 마구 읽어대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그 지역의 문화를 좀 더 많이 알기 위해 책을 읽는 버릇은 그 첫 여행에서의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한밤중에 로마에 도착해 숙소를 찾아헤매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말도 못하면서 무작정 떠난 우리의 수첩에 적혀있는 호텔은 이미 빈방이 없었고, 성수기가 시작되어 유일하게 지인을 통해 알게 된 한국인 가이드의 연락처에는 부재중 메시지만 남겨있을뿐이었고, 주변의 호텔이란 호텔은 모두 다 돌아다녀봤지만 밤 열시가 넘어 거리에 사람의 자취도 사라져가고 있을때까지 우리는 숙소를 찾지 못하고 헤매기만 했었다. 그러다가 빈방이 있다는 곳에서 나와 한명은 더 참지를 못하고 자리에 주저앉아버렸고, 다른 두명은 방 상태를 보고 결정하자고 주인을 따라 올라갔다. 우리가 좀 더 여유롭게 보였다면 방 가격을 좀 낮출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핀잔을 들으면서도 그저 숙소를 구했다는 기쁨에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 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다른 이들이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어렵게 들고 간 컵라면까지 끓여먹고, 설레임 가득한 마음으로 여행의 첫걸음을 내딛었던 기억은 지금 웃으며 얘기하는 추억이 되었다.

집보다 여행,이라는 책을 읽다보니 오래전 여행에서의 추억이 스멀거리며 올라오고 또다시 그때의 그 설레임이 마구 느껴지기 시작한다. 처음 이 책을 집어들어 읽으려고 했을 때 '집보다 여행'이라는 말에 약간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라는 기대감이 넘쳤다. 다른 여행에세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었는데 뜻밖에도 단편소설의 묶음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행을 떠난 곳에서, 여행에서 돌아와서... 여행에 대해 느끼고 한번쯤 여행에 대한 꿈을 꾸며 상상을 했던 그 많은 이야기들이 이 소설속에 담겨있으니 그리 새로울 것도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씩 더 읽어나가면서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의 마음이 뭔가 다른 듯 같은 공감이 느껴지니 슬그머니 책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설 형식의 글이 지나가고 이제 본격적으로 저자의 여행에 대한 에세이가 펼쳐지니 '집보다 여행'이라는 책이 담고 있는 '여행의 가치와 의미'라는 뜻이 무엇인가 새삼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에세이가 여행 그 자체에 대한 상념이라면 이 책은 여행을 통해 바뀌게 되는 자신의 삶의 모습과 세계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혼자 여행을 떠날만큼 용기있는 자가 아니라는 자괴감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단지 말이 안통해서 라는 핑계를 댔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익숙한 고향땅을 떠나 서울의 한복판에서 어딘가를 찾아갈때조차 괜한 스트레스에 돌아다니는 걸 피했고 그것은 말을 못해서 낯선 길을 떠나기 어려워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 주었다. 길찾기를 잘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유달리 못하는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낯선길을 무서워하는걸까.
여행은 모험을 떠나는 것이라고 했다. 완벽하게 계획을 한다하더라도 어딘가에서 어긋날수도 있는 것이 여행의 묘미라고도 했다. 그런데 모험을 두려워하는 내가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진짜 여행을 떠나보지는 못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씁쓸해졌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나니 그 마음이 달라진다. 몇년 전 조카를 데리고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을 떠나기는 했지만 자유일정이 있는 하루동안 그 누구의 안내 없이 나 스스로 길찾기를 하고, 조카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말도 안되는 영어를 쓰면서 대화를 시도하고 아무 탈 없이 하루를 신나게 보내고 돌아왔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집보다 여행'은 스스로의 자괴감에 빠져있는 나를 끄집어내고, 여행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게 해 주었다. 저자가 느끼고 깨달은 것은, 어쩌면 여행을 떠나 본 누구나 다 이미 알고 깨달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누구나가 다 그처럼 실천으로 옮기며 살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집보다 여행은 한 권의 책을 통해 그 모든것을 다 생각하고 스스로의 깨우침의 시간을 갖게 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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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지 않은 독자
앨런 베넷 지음, 조동섭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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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라니 이건 특별한 독자를 말하는 걸까 아니면 유별나고 독특한 독자를 말하는걸까 궁금해졌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바로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을 말하는거였어요!

그렇다고 뭔가 아주 색다르고 특별한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예요. 코기를 키우며 산책하고 자신의 일과에 대한 의무가 강한 여왕이 뒤늦게 책읽기의 재미에 빠져들면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일들에 대한 이야기지요.
근데 가만히 읽다보면 정말 어쩜 나하고 이리 똑같은 증세가! 하며 감탄하게 되기도 해요.

이튿날 아침 여왕은 코를 조금 훌쩍였고, 마침 아무 일정이 없었으므로 독감에 걸리 것 같다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는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고, 사실도 아니었다. 실은 책을 계속 읽으려는 핑계였다.
영국 국민들은 '여왕이 가벼운 감기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들이 듣지 못한 것 그리고 여왕 자신도 몰랐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이 일이 여왕이 독서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때로는 꽤 오래 머무르는 일들의 첫출발이었다는 것이었다.(20)

재미있는 책을 읽다보면 밤을 새기도 하고 그러다보면 정말 출근하기가 싫어지고 그러죠. 네, 저는 여왕을 정말 이해할 수 있어요.

여왕의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아무렴 어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왕에게는 독서가 더할 수 없이 심각한 일이었다. 여왕에게 독서란, 작가에게 글쓰기와 같은 의미였다. 즉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고, 작가가 글을 쓸 숙명을 받아들이듯 여왕은 책을 읽을 숙명을 인생의 이 황혼기에 받아들여야 했다(57)

책을 읽으면 그 책은 또 다른 책으로 이끄는 길잡이가 되고, 헨리 제임스가 너무 느리게 글을 썼다고 지겨워했지만 어느 순간 그가 마구잡이로 쓴 글이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런 여왕의 책읽기는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지요.

우연히 왕궁에 온 이동도서관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책을 한 권 빌리면서 여왕의 책읽기는 시작이 되었지요. 그리고 책읽기에 재미를 느끼면서 점점 일보다는 책읽기 자체에 빠져들어 모든 걸 팽개치다시피 하게 되고, 읽은 책에 대한 메모를 하게 되면서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적어놓게 되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차츰차츰 마구잡이의 책읽기가 줄어들면서 글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런 여왕이 여든번째 생일을 맞이하고 그 파티에 모인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요.
뒤늦게 책읽기의 즐거움에 빠져들어 책읽기를 숙명처럼 받아들였던 여왕은 과연 그 생일파티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요?

일반적이지 않은 독자,는 일반적인 독자인 우리에게 많은 공감을 갖게 하는 글들로 넘쳐납니다. 나는 잘 몰랐지만 이 책을 쓴 앨런 베넷도 할머니라는군요. 영국의 유명한 극작가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유쾌하고 재미있는 상상에서 시작된 이 글이 참말로 편안하고 흐믓한 미소를 짓게 하네요.

참, 이 책은 그림동화책이 아닙니다. 그냥.. 책을 좋아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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