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의 극과극>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사진의 극과 극 - 카피라이터 최현주의 상상충전 사진 읽기
최현주 지음 / 학고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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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게 왜 사진이야 그림이지, 라고 되묻는 자들이 있다면 그것 역시 사진가의 성취다. 사진이 꼭 사진 같으라는 법이 있나?"(211)
이 책을 읽으며 내가 느낀 마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사진이 사진 같지 않은데, 사진이 꼭 사진 같아야 하는 것인가. 사진이 사진같다면 그건 무슨 의미일까? 

책을 읽으며 점점 더 알듯말듯 어려워지는 사진에 대한 생각은 여러갈래로 뻗쳐가고 있다. 그리고 보이는 현상 그대로의 모습을 담은 것이 사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사진은 과연 사실만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에 빠져들게된다. '디지털 시대가 되고 사람들은 사진을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지워버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모습만 남겨둔다. 있는 그대로 찍히는 것이 아니라 찍히는 자에 의해서 사진이 거짓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예쁜 척, 멋진 척, 친한 척. 시간이 길어지면 어떨까? 시간이 길어지면 '~하는 척'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만큼 진실에 가까워지는 거다.'(38) 물론 순간의 포착으로 미처 숨기지 못하는 더 강력한 진실을 담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여지는 모든 사진이 다 진실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모델이라든가 슈팅이라는 말이 싫어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오브제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죠. 사진으로 현재를 재현한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것이 중요하지 않아요. 그때 받은 느낌이나 경험이 중요하죠. 시간이 길어지면 사진 속에 그와 나와의 '관계'가 드러나요. 사진은 영혼과 관련이 있는 매체니까요"(천경우,38) 

사진의 극과 극은 사진에 대해 대조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대립과 비교의 이분법이 아니라 연속된 선상에 있는 두개의 지점이라 할 수 있으며, 저자는 사진 예술에 관심을 가진 이들이 사진을 보다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있도록 새로운 관점의 사진 읽기를 제안하기 위해 쓴 글이다.
"나는 사진을 보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종종 이상한 점을 발견하곤 한다. 추상적인, 무의식적인, 난해한, 혹은 모호한 사진에 대해 사람들은 일종의 반감을 가지고 있다. 회화를 보는 태도와는 다르다. 사진은 즉각적이고 곧바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의 결과다.
타자와 세상에 대한 새로운 독법을 터득하고 있는 시인이나 소설가, 십수 년 동안 창의력과 상상력을 재산처럼 키워온 카피라이터, 온갖 종류의 시각 이미지에 민감한 디자이너 지인들도 사진 앞에서는 본인들의 무기인 자의적 해석을 망설인다. 사진이 늘 스스로 정답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사진의 다양한 해석을 방해한다."(137) 
그러고보니 이야기가 담겨있는 사진보는 것을 좋아하는데, 내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사진에 대해서는 그 느낌을 이야기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그건 어쩌면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떠한 해설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책을 읽고 난 후 내 느낌을 정리해보는데 저자 자신의 의도와는 달리 많은 독자들이 정반대되는 관점의 서평을 주로 남겨 당혹스러웠다는 저자의 글을 읽게 되었었다.
사진의 의미는 어떨까?
지금까지는 '순간의 역사, 역사의 순간'이라는 의미가 더 크게 담겨있는 기록사진을 더 많이 봤고 또 그런 사진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었기때문에 내가 사진을 보면서 그 의미에 대해, 내가 받은 느낌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봐야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그런데 사진의 극과극은 내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사진가들의 신선하고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상상화를 감상하게 해 준다.  

그렇다고 사진이 상상력인 것만은 아니다. "현실이 너무나 강력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사진의 위치를 정하고 편집해 버렸다"(245, 강홍구)라는 말처럼 그 모습 그대로 담은 사진안에서 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프레임 안에서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펼치며 유쾌한 사진놀이를 하고 있지만, 사진은 우리의 삶의 현실 또한 오롯이 담아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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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콘서트>를 읽고 리뷰를 남겨주세요.
건축 콘서트 - 건축으로 통하는 12가지 즐거운 상상
이영수 외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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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의 가치는 멋있다고 표현될 수 있는 것 너머에 있다. 건축은 우리의 가치관을, 우리의 사고구조를 우리가 사는 방법을 통하여 보여주는 인간 정신의 표현이다"(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서현) 

이 책을 통해 건축물이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감상을 위한 예술품도 아니며, 생활에 필요한 공간만을 만들어내는 경제적 구조물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건축에 대해 잘 아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히 건물짓기라고만 생각을 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던 어느날 건축가 이일훈의 인터뷰글을 읽게 되었다. 그가 건축한 한 수도원에 담겨있는 그의 세계관과 건물의 의미를 읽은 후 확실히 건축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게 건축이라는 것은 여전히 내 일상과는 멀리 떨어져있다. '건축 콘서트'가 아무리 재미있게 읽고 쉽게 이해하는 오감만족의 건축 이야기라 하더라도 내게는 그리 쉽지 않더라는 말이다. 책을 읽는 동안 예전에 친구따라 갔었던 콘서트가 생각났다. 나름대로 유명세를 탔던 가수의 콘서트였는데 내가 아는 한두곡의 노래를 빼고는 따라부를수도, 함께 즐길수도 없는 노래들이 흘러나오는동안 우두커니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 그건 내게도,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하던 그 가수에게도 불행의 시간이었다. 그때의 그 시간이 생각난것은 건축콘서트를 읽으며 내가 좀 더 마음의 준비가 되었더라면 이 책이 훨씬 더 재미있고 유익한 독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가득했기때문이다. 모든 것은 다 완벽했지만 콘서트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독자의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것이다. 

건축 콘서트는 상상력과 건축, 공간과 건축, 빛과 색의 시각적 요소와의 하모니를 이루는 건축, 생태와 욕망의 사이에서 고민하는 오늘날의 건축, 첨단기술로 미래를 향해가는 건축 등 다양한 방면으로 건축의 이야기 공연을 듣는다.
'건축은 사람의 삶을 제 안에 담는다'라고 했다. 단순한 건축물과 구조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던 내가 그 말뜻을 이해하고 건축에 담겨있는 역사와 철학을 고민해보게 되었다는 것이 어쩌면 건축콘서트를 읽으며 생각의 확장을 가져왔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읽었던 건축과 관련한 책들은 대부분 건축물과 공간, 건축가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건축 콘서트는 정말 색다른 느낌이었고 때로는 생소함도 있어서 쉽지는 않았지만 색채에 대한 것과 어우러짐에 대한 것, 그리고 역시 사람의 삶을 담고 있다고 하는 것들은 조금 더 건축에 대한 흥미를 갖게 한다.
지금은 초보 입문자로 건축 콘서트를 조금밖에 즐기지 못했지만 이제 조금씩 세상을 채워가는 건축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즐길 준비가 되어가게 되지 않을까? 

예술로서의 건축은 인간이 문자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고 종교적 의식이나 기도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과 문학과 다르지 않다. ...... 행복하고, 즐겁고, 흥겹고, 기쁘고, 아름다운 삶과 무대의 관계를 이해함은 예술로서 건축을 바라보는 바탕이다. 건축은 이 순간 거대한 크레인 같은 장치와 어마어마하게 큰 철골 구조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누리는 우리 자신의 일상 속에서 탄생한다.(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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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서 1 문학동네 청소년문학 원더북스 14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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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란 뭐지?
'자아내는 자'가 만드는 것, 거짓말이죠.
'자아내는 자'만이 창작자는 아니야. 인간은 모두 살아감으로써 이야기를 엮어내지. 


미야베 미유키 라는 이름만으로도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영웅의 서'라는 제목을 듣기만 했을 때, 왠지 '영웅'이라는 단어때문이었는지 나는 서사시를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왠 엉뚱한 상상이었담. 영웅의 서는 책을 일컫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러니까 영웅의 서에 대한 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은 성장소설인지 판타지소설인지 미스테리소설인지 가히 환상적으로 그 모든것을 통틀어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흥분하게 만들고 있다. 

첫 시작은 '염원의 노래' 혹은 '황의를 입은 왕의 불길한 노래'이다. 한편의 서사시처럼 웅장하게 나오고 있는 이 글을 아무런 생각없이 읽을때는 뭔 말인가 싶었지만 1권을 끝내고 다시 펼쳐들면 예측할 수 없었던 그 상상력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더구나 프롤로그의 파옥은 내가 읽은 기억조차 없었는데 다시 들춰보니 모든것이 짜맞춘듯이 딱 들어맞는다. 무명승의 이야기가 나오며 이건 뭐지? 라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질만큼.  

영웅의 서에 대한 아무런 정보없이 그저 미먀베 미유키라는 이름만으로 책을 집어들었음에 후회는커녕 왜 좀 더 빨리 읽고 있지 않은걸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평범한 초등학생 유리코는 평소처럼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있는데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호출을 받고 집에 가게 된다. 모범생인 오빠가 학교의 반 친구 두명을 칼로 지르고 도망쳐 행방이 묘연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실종된 오빠를 찾지 못하고 흉악한 소년범의 가족이라는 주위의 싸늘한 시선을 견디던 유리코는 오빠의 방에서 이상한 목소리를 듣게 된다. "네 오빠는 영웅에 홀려버렸어"
그 목소리는 오빠방에 있는 한 권의 책에서 흘러나온 것이고, 유리코는 그 책의 인도를 받아 책들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오빠의 자의로 친구들을 해친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된 유리코는 이름없는 땅에 가게되고 그곳에서 테투리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다. 그리고 유리코는 오빠를 구해내고 영웅의 서를 다시 봉인하기 위해 '인을 받은 자'가 되어 돌아오는데...  

이야기를 읽어갈수록 이 멋진 환상동화에 빠져들고 있다. '이야기의 힘이란 때로는 사악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상상을 초월하는 비밀스러운 책의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수가 없다.  
이제 유리코는 어떠한 모험을 하게 될 것인가, 예측불허의 그 세계로 바로 달려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환상동화로 표현된 성장소설인 영웅의 서는 환상이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그 안에서 이야기의 힘이 어떠한 것인가를 되풀이해서 말해주고 있다. 이건 그냥 재미있게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것이다.   

넌 이 금기의 땅을 찾아와 이 땅의 이치를 알고 '테두리'로 돌아가는 몇 안 되는 인간이야. 사람들이 '영웅'을 숭상하고 '황의를 이은 왕'에게 매료되는 싸움 속에 있어도 결코 목소리를 잃지 마. 뭐가 옳고, 뭐가 있어야 할 것인지 가려낼 수 있는 눈을 감아버리지 마.

사악한 영웅을 쫓는 늑대 '애시'의 고향이며 오빠를 구해내기 위한 단서를 찾을 수 있는 곳, 헤이틀랜드로 간 유리코가 전쟁과 저주, 권력과 욕망에 사로잡힌 이들의 피로 얼룩진 헤이틀랜드의 역사 속에서 본 것은 무엇인가.
저주를 받은 괴물에게 상처입은 이들은 자손 대대로 그 저주가 되물림되어 나타난다.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게 됩니다. 저나 우즈같은 사람은 드물게 태어나는, 그냥 이상한 능력을 지닌 사람일뿐이고 헤이틀랜드의 역사와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요. 그래서 이름을 붙이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219)
라는 의사 라틀의 이야기에서 강자가 만들어내는 역사가 떠올랐다. 핵폭탄으로 인해 기형아가 탄생하는 현실이 있고, 전쟁과 테러가 행해지고 있는 현실이 있고, 모든 존재를 이름없는 자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이 있다. "똑같아, 유리가 사는 나라, 유리가 있는 영역도 똑같아. 우연히 유리가 전쟁과 굶주림을 모를뿐, 그런게 있는 곳도 분명히 있어."(2권, 131) 

이름없는 땅에서 인을 받고, 오빠를 구하기 위해 헤이틀랜드까지 찾아가 온갖 모험을 하게 되는 유리코가 결국 알게 되는 '진실'에는 더 많은 뜻을 품고 있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는 긴 여정을 통해 도달하는 깨달음이 있어야겠기에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을 다시 한번 더 읽어도 또 다른 재미와 감동과 깨달음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영웅의 서에는 아주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재미있게 읽을수도 있고, 온갖 판타지와 모험을 담은 이야기로 읽을수도 있고, 기나긴 여정을 거치는 성장소설로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강하게 남는 것은 '자아내는 자'로서 우리 모두가 우리의 삶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엮어간다는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도 되새겨보고 또 되새겨볼만큼 '삶'의 모습을 담은 이야기가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하며 강한 책임감을 갖고 있어야하는 것인가 마음에 강하게 남는다. "아침에 한 어린아이가 검을 집어넣을 방법을 깨닫는다면, 저녁에는 수많은 군사의 진군이 멈춘다."(340)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당신 역시 그러한 '자아내는 자'중 하나입니다. 자신은 작가도 아니거니와 역사가나 예술가도 아니라고 당신은 말씀하시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입장과 역할이 다른 것뿐입니다. 인간은 모두 삶으로써 이야기를 자아내니까요
.(20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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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들은 지금 파업 중 봄봄 아름다운 그림책 21
장 프랑수아 뒤몽 지음, 이주희 옮김 / 봄봄출판사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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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어린 꼬마 친구들이 파업이라는 말을 알고 있을까요? 왠지 '파업'은 어려운 말 같으면서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아요. 어린 꼬마 친구들은 파업을 하지 않겠지만 어른들이 보는 뉴스에 보면 '파업'이라는 말이 나오거든요. 주위의 어른들이 쓰는 말이면 왠지 확실하게는 모르지만 어떤 뜻인지는 대충 느낌으로 알 수 있는거거든요.


그럼, 양들은 파업중,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를까요? 양들이 뭔가 자신들이 당하고 있는 부당함에 대한 표현과 행동으로 파업을 하고 있다는데 우리 순하디 순하다고 소문난 양들이 파업을 하게 된 이유는 뭘까요?
음... 양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복실복실 따뜻한 털이 떠오르죠? 나도 양털로 짠 스웨터를 선물받았는데 바람이 매서운 추운겨울에도 무지 따뜻해요. 그런데 양은 자기들의 털로 우리를 따뜻하게 해 주는데, 털이 깎인 양들은 벌거숭이가 되어버리면 매서운 겨울 추운 바람을 어떻게 견뎌내지요?
맞아요. 그래서 양들이 파업을 결심하게 된 거예요. 왜 털은 양만 깎아야 하는거지? 왜 양들도 추운데 추운 겨울에 털을 깎아버리는거지?
우리 친구들도 다른 누군가가 자기맘을 몰라줄 때, 친구나 언니,오빠, 동생이 잘못한거 같은데 나만 혼나게 될 때 슬프고 속상해서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마음이 드는 것처럼 양들도 '왜 우리만 털을 깎는거야!'라는 불만이 생겨난거예요.

그렇게 양들은 파업을 하게 되었어요. "우리는 젖소처럼 이용만 당하지는 않을 겁니다! 털 깎기를 거부합시다!"


양들을 어르고 달래려다 그만 어린 양을 물고만 양치기 개 라프는 화난 양들에게 쫓겨났어요. "양들이 머리 끝까지 화가 났어. 진짜 짓밟히는 줄 알았다니까""다른 양떼들이 이 일을 알면 다 함께 파업을 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우린 일자리를 잃는 거야....."

어떤 동물들은 양들이 옳다며 함께 행진했어요. 또 어떤 동물들은 욕설을 퍼부었어요.

파업행진을 하던 양들 앞에 양치기 개들이 나타났어요. 그리고 잠시 뒤 우당탕 퉁탕! 탁, 탁, 탁!

서로 자기 생각이 옳다고 주장만 하던 동물들이 서로 부딪치고 남은 건 폐허처럼 변한 농장과 서로의 상처와 혹뿐인 것 같아요. 해결할 방법이 없을까요? 어떻게든 양들을 만족시킬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말이예요.


며칠 뒤 양털 깎는 날이 되어 양들은 별 불만없이 양털을 깎았어요. "그리고 밤이 되자 농장에서는 평소와 다른 일이 시작되었지요. 모두들 바쁘게 움직이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닭장에서, 토끼장에서, 마구간에서 달그락달그락 이상한 소리가 났어요"


양들의 파업은 어떻게 끝이 난 걸까요? 양들의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농장의 동물친구들은 밤새도록 달그락달그락 거리면서 무엇을 한걸까요? 알록달록 멋진 무늬와 이쁜 색의 새 옷을 보세요!
농장의 동물 친구들이 파업을 한 양의 마음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지혜를 짜내고 밤새도록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뭔가를 한 것처럼 우리 친구들도 내가 아닌 다른 친구들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배려할 수 있겠지요? 물론 커서 어른이 된 다음에도 그 마음은 꼭 갖고있어야해요.
아, 그리고 또 한가지. 내 마음을 몰라주는 것 같을 때 '왜 나한테만 그래!'라고 화만 내지 말고 나의 마음과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해요. 양들처럼 말이예요. 그러면 모두가 다 좋아질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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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역사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영화는 역사다 - 한국 영화로 탐험하는 근현대사
강성률 지음 / 살림터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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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한참 영화에 빠져들 청소년기에도, 이십대가 되어서도 또래의 거의 모두가 봤다는 영화를 보지 않고도 무던하게 잘만 지내곤 했었으니까. 그러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책을 파고들기보다는 영상이 보여주는 그 화려함과 엄청난 상상력에 빨려들어가듯이 빠져 한때는 런닝타임을 줄이기 위해 영화관에서 임의로 필름을 삭제해버리기 전에 영화를 보려고 기를 쓰고 첫 날 첫 상영을 기를 쓰며 볼 정도였다. 한때 키노라는 영화잡지까지 구독하면서 왠만한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영화까지 보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가 영화를 이해하며 보는것보다는 그저 많이 보면서 조금씩 영화를 보는 공부를 했던것이었겠지. 영화는 내게 딱 그정도까지였다. 가장 크게 다가왔던 부분은 물론 그 넘쳐나는 상상력. 

그런 내게 '영화는 역사다'라는 제목은 영화속에 재현되는 과거와 현재의 투영과 그에 상응되는 미래까지 떠올려보는 것 정도의 이미지일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로서의 영화만을 떠올렸나보다. '영화는 역사다'라는 강한 어조의 이 책은 영화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안에 담겨있는 역사의 깊이와 무게가 느껴지는 우리 근현대사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그래서인지 조금은 무거운 느낌으로 쉬이 읽히지 않았다.  

영화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고 하지만 주로 '근현대사'에 중점을 두어 다뤄진 다큐멘터리와 상업영화는 우연찮게도 거의 봤던 영화들이었다. 특히 고향인 제주에 대한 영화인 4.3의 역사증언 '레드헌트'와 '이재수의 난'은 저자가 설명하는 것 이상으로 더 깊이있게 역사인식을 하며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는 좀 더 친절한 설명이 들어가지만, 제주사람조차 관심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이재수의 난은 기대에 못미쳤고, 그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서도 느낄수있는 것이었다. 영화감독으로서는 최선이었겠지만 그 역사에 대해 알고있는 관객의 입장에서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면 좋겠는데 그러지 못하는 영상매체의 한계에 대해 생각해볼만큼, 다큐멘터리와 영화는 많은 것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부족한것만 같았다.  
더구나 거의 텅 비다시피한 영화관에서 '송환'을 보며 함께 웃고 울고 영화속 그들의 모습이 바로 현재 우리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이라는 것이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것은 현재진행형인 우리의 현실은 역사의 올바른 과거청산없이 덮어버리려 하고 있으며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영화를 지금 보는 것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의 영화를 해석하는 것이며 그 역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각에서 과거의 영화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결국 역사와 영화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이며, 해석의 문제는 시각의 문제이고 시각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문제로 귀결된다. 감독이 있고 과거의 관객이 있고 그 영화를 바라보는 현대의 관객과 비평가가 있다. 그 안에서 과거의 상처와 현재의 상처를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며 그것은 결국 '소통'의 문제로 귀결된다.
상대에 대한 소통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의 소통도 중요하다. 역사와 영화의 문제는 과거의 현재화 문제이고, 과거의 문제를 새롭게 해석할 여지는 아직도 많다.
유럽의 경우 한가지 예를 들자면 나치 독일의 유대인 학살에 대한 과거의 기억은 덮어버리고 모른척해야 할 치욕의 역사로만 덮어두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를 인식하며 그것이 현재 혹은 미래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진실을 보여주고 잘못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영화를 통한 그 화해의 손길은 사실 그대로를 말해주고 있는 역사이야기보다는 조금 더 따뜻함이 담겨있는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 100년은 고스란히 우리의 현대사 100년을 담고 있다. 나로서는 잘 모르겠는 일제 강점기의 영화를 넘겨 분단과 한국전쟁, 군부독재와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 우리의 모습을 담은 영화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그 안에 담겨있는 영화의 '진심'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의 아픈 근현대사가 너무 무겁게 다가오기도 했지만 '영화'를 바라보는 나의 느낌은 많이 달라졌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끈이 되어주고 있으며 그 연결끈은 과거와 현재의 화해를 이끌어주고 있다. 영화안에 담긴 역사는 수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지만 결국 내가 느낀 가장 큰 것은 그런것이다. 역사안에 담겨있는 진실을 담담하게 혹은 강렬하게, 슬프게 혹은 즐겁게, 때로는 분노하며 또 때로는 판타지로... 그리고 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결국은 역사를 살아온, 역사를 만들어갈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  

역사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안에 담겨있는 진실은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안에 담긴 진실을 바라보고 진심을 다해 우리의 역사를 만들어가야한다. 문학을 통해서도 역사의 진실을 느끼고 과거와 현재의 소통을 하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지만 영화 역시 - 어쩌면 영화가 더 강렬하게 소통을 이루고 있는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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